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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적으로 추정된 아레사 빈슨의 사인

새로운 ‘눈초의 광우병 이야기’ (11)


비만을 치료하기 위하여 위절제수술을 받은 아레사 빈슨이 불과 두 달 만에 죽음에 이른 것은 분명 충격적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아레사 빈슨은 위절제수술을 받은 환자의 부작용인 메스꺼움과 구토가 생기고, 비타민 B1(티아민)이 부족해지면서 급성 베르니케뇌증으로 발전하여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레사 빈슨이 사망하기 전에 가족들이 들었다는 CJD 가능성이 vCJD로까지 발전하여“살고 있는 동네 밖이라고는 구경해보지도 못한 젊은 여성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는 식의 뉴스로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진 것일까?

김보슬PD가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 로빈 빈슨을 만난 것은 한미 쇠고기협상이 타결된 다음날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취재가 급박하게 진행되었음을 시사하는 한편, 상황을 꼼꼼하게 분석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취재진은 아레사 빈슨의 진단 뿐 아니라 위절제수술의 후유증이나 다른 뇌질환 가능성에 관하여 의료진으로부터 들은 것이 있는지 가족들에게 확인해 달라 요청했다고는 하나, CJD 혹은 vCJD 진단 이외의 다른 사항을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취재과정에서 신경과학 분야를 전공한 의사로부터 아레사 빈슨의 병증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구한 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주로 그 가족이다. 김보슬PD가 로빈 빈슨을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딸이 인간광우병 의심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하였으며, 아레사 빈슨의 사망을 전후하여 미국 언론에서도 그녀가 vCJD에 걸렸을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레사 빈슨을 진료한 의료진이 그 병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한 자료는 없었다.

진료결과를 두고 의료진과 견해 차이를 보이는 사례에서 책임소재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레사 빈슨의 가족은 그녀의 진료에 참여한 모든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의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의료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원고 측은 의료진의 과오 가능성을 알리기 위하여 주력을 하는 반면, 의료진은 환자의 질병경과에 관하여 최대한 말을 아끼려는 경향이 있다. 아레사 빈슨의 사인에 관한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취재진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빈슨의 가족들이 유일하였다고 전한다.

‘PD수첩’취재진은 아레사 빈슨의 진단에 관하여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기관을 취재하고자 메리뷰 병원이나 버지니아주 보건당국에 취재를 요청하였으나, 개인 환자의 신상을 알릴 수 없다는 이유로 취재를 거절당했다고 한다. 방송에서 인용된 바롯의 경우도 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유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레사 빈슨에 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고, CJD와 vCJD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만을 확인해준 것인데, 이런 정도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뷰해줄 신경과의사를 충분히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롯 역시 빈슨 가족이 제기한 의료소송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아레사 빈슨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론에서 개인병력과 관련된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통상 환자의 가족을 포함 주변인물을 1차 취재원으로 하게 된다. 이들은 당연히 환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정리하기 마련이다. 특히 의료소송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환자 측이 의료진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항도 있을뿐더러 경우에 따라서 환자입장에서 불리한 사항은 감출 수도 있다. 따라서 환자의 반대편이라 할 의료진의 입장을 듣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당연히 비교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자문을 반드시 구해야 한다. 자문을 하는 전문가 역시 의료진과 한 통속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할 수도 있겠으니,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모으다 보면 중립적인 판단을 얻을 수 있다.

‘PD수첩’취재진이 의료소송과 관련된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본수칙이라고 할 수 있는 이해당사자의 의견과 제3자의 자문을 얻어 객관적인 판단을 했다는 증거는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오로지 아레사 빈슨의 유족 측 발언과 사건발생에 관하여 확인되지 않은 취재원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된 미국 현지의 언론보도의 추측성 기사를 검증 없이 방송에 인용한 것으로 보여 방송윤리를 지키지 못한 문제점은 없나 싶다.

특히 방송 전에 제작진이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의 정해관 교수에게“22세 여성이 위수술이 원인이 되어 3개월 만에 CJD로 죽을 가능성이 있는지”물었을 때, 정 교수가 위수술과 관련하여 CJD나 vCJD가 발생한 보고는 아직까지 없고,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의인성CJD(iCJD)라 해도 잠복기 등을 고려하였을 때 타당성이 없다고 답변하였음에도 이를 방송에 반영하지 않았다.

취재진은 공판과정에서 아레사 빈슨의 사인과 관련하여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 이외의 다른 뇌질환의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PD수첩’이 시사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 사건 방송 당시까지의 정확한 진단내용을 취재하여 보도하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사건 의심 진단 이외에 다른 뇌질환의 가능성 역시 방송당시까지의 정확한 진단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떻든 아레사 빈슨의 진료과정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고,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족 측이 제기한 의료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니 미국 법원에서 최종판단이 내려질 때까지는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검에 의한 최종진단과 단편적인 실마리들을 엮어 사건이 진행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미루어 재구성해본다.

아레사 빈슨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평소 고민해오던 비만을 치료하기 위하여 2008년 1월23일 메리뷰병원에서 위절제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퇴원하는 아레사에게 위절제수술을 받은 환자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과 이를 피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사항들을 설명해주었다. 설명 가운데는 고단백, 적절한 지방성분, 저탄수화물의 음식을 소량씩, 천천히, 자주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강조되었으며, 비타민과 철분 등을 포함하는 영양제를 별도로 처방하였다.

하지만 아레사 빈슨은 평소 과식하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수술 후 줄어든 위장에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러운 양의 식사를 하고는 토하기도 하였는데,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식사를 한 다음에 메스꺼움과 구토가 일어나는 증세가 생겼다. 구토가 지속되자 2월26일 메리뷰병원을 찾았고, 탈수와 전해질장애로 진단되어 10일 동안 입원가료를 받았다. 입원기간동안 수액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았다. 특히 입원 초기에는 심한 구토로 식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포도당이 든 수액이 처방되었다. 항구토제를 처방하여 구토증세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가벼운 식사가 가능해지면서 아레사 빈슨은 퇴원하였다.

퇴원 후에도 구토증세가 남아있어 가정의학과 의사의 처방을 받아 구토완화제를 복용하였다. 25일경에는 심한 두통이 발생하여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두통약을 구입하여 복용하였지만, 이번에는 어지럼증이 생겼다. 3월16일에는 어지럼증이 심해서 메리뷰병원 응급실에서 수액과 어지럼증 완화제를 처방받았으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시력장애가 동반되었다. 3월23일경부터는 계단을 내려오지 못할 정도로 보행장애가 심했고, 기억력도 감퇴되었다. 결국 3월31일에는 일어서기, 걷기, 말하기 등이 어려워져 이번에는 하버뷰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였다. 메리뷰병원을 믿지 못해서였을까? 수술기록 등을 검토하고 투약중인 모든 약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는 등 응급가료를 받고 퇴원하였지만, 결국 4월2일에는 메리뷰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MRI 등 정밀검사를 받게 되었다.

종합해보면 아레사 빈슨은 퇴원 시 설명 받은 식이요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유발된 구토증세가 전해질장애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있고, 구토가 반복되다 보니 필수 비타민도 부족상태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2월 말, 증상이 심해져 입원하게 되었을 때 전해질장애를 교정하고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수액요법에 다량의 포도당이 포함되었다면 티아민(비타민B1)이 급속도로 감소되어 대뇌의 유두체를 중심으로 하는 시상하부, 시상을 침범하는 급성 베르니케병증이 촉발되었을 것이며, 대뇌에서 일어난 이런 변화는 두통과 시력장애, 어지럼증의 악화 및 기억력 장애 등의 증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 측에서는 병세의 원인을 찾기 위한 정밀검사를 즉각 시행하지 않은데다가 3월16일 응급실을 찾았을 때에도 수액을 투여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아레사 빈슨의 급성 베르니케병증은 수술 후 식이요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환자요인과 대사장애를 교정하기 위하여 수액요법의 적절성 및 뇌병변의 조기진단이 지연되는 등의 의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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