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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판단을 무시했던 ‘PD수첩’

눈초의 ‘새로운 광우병 이야기’ (13)

지난주 살펴본 것처럼 아레사 빈슨의 주치의가 CJD 가능성을 언급하자 그 가족은 생소한 질병에 대한 자료를 광범위하게 찾아 공부해 CJD라는 범주의 질환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쌓게 된 것이다.‘PD수첩-광우병’편에서 소개한 아레사 빈슨 관련 모금포스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아레사 빈슨의 가족은 산발형CJD(sCJD), 의인성CJD(iCJD), 가족성CJD(fCJD) 그리고 변종CJD(vCJD)등을 구분해 각각의 원인과 증상을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아레사 빈슨 어머니 로빈 빈슨은‘PD수첩’취재진과의 인터뷰과정에서도 CJD, variant CJD, a variant of CJD 등 다양한 표현을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MRI 검사 결과 아레사가 CJD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한 로빈 빈슨의 인터뷰에서 CJD를 vCJD(인간광우병)로 자막 처리하는 등의 오역이 의도적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PD수첩’제작진은 오역소동에 휘말리게 됐다.

오역소동이 일어나자 광우병대책회의는 CJD와 vCJD가 다른 병이라는 검찰의 주장이 CJD가 vCJD의 상위개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하는 등‘PD수첩’지원에 나섰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CJD를 왜 vCJD라고 했느냐는 검찰의 주장은‘왜 의사들이 아레사 빈슨을 사람이라는데‘PD수첩’은 흑인이라고 하느냐’는 주장과 같다.”고 꼬집었다.

양에서 발생하는 스크래피, 소에 생기는 광우병, 사람에서의 CJD, 쿠루(kuru) 등의 질환은 프루시너가 제안한 프리온 학설에 따라서 프리온병으로 분류하는 것에 공감하고 있는 수준이다. 교과서를 보면 CJD라는 진단명 아래 sCJD, fCJD, iCJD, vCJD를 넣고 있다. 그러나 CJD환자의 80%가 sCJD임을 고려한다면 통상 지칭하는 CJD는 sCJD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경막이식 등 CJD환자와 관련된 시술을 통해 CJD가 발생한 경우를 의인성CJD(iCJD)라고 하는 것과는 달리 vCJD는 소해면양뇌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 광우병)에 걸린 소의 특정위험물질(SRM)을 섭취하여 생기는 것이고, 그 증상과 검사소견도 CJD와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질병을 분류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CJD가 vCJD의 상위개념이라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 사람의 뇌를 먹어서 생긴 쿠루(kuru)가 오히려 CJD환자와 직접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CJD 아래 넣을 수도 있다. 한편 vCJD는 BSE와의 관계를 고려해, 예를 들면 ‘BSE와 관련된 프리온병’ 같은 별도의 진단명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인간광우병이 확인된 초기에 신변종CJD(new variant CJD), variant CJD 등의 용어가 혼란스럽게 사용됐다.‘CJD가 vCJD의 상위개념’이라는 주장은‘PD수첩-광우병’편과 관련된 명예훼손사건 공판과정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PD수첩’측에서는 vCJD라는 진단명과 관련된 다양한 증거물들을 제시했는데, 심지어 vCJD에‘광우병(mad cow disease)’이라는 설명을 붙여 넣은 문서도 있었다.

필자는 참고인으로 출석한 법정에서‘PD수첩’측이 제시한 증거물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필자가 2003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전달성해면양뇌증 심포지엄에서 발표한‘한국에서의 광우병 관리상황’이라는 제목의 발표 자료였기 때문이다. 공판 전 모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으로부터 해당 자료를 보내줄 수 있느냐는 이메일 요청을 받고 자료를 제공한 적이 있는데, 그 자료가 법정에 증거물로 제출됐던 것으로 짐작된다. 까맣게 잊고 있던 자료인지라 자료를 만들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CJD라는 진단명 아래 변종CJD와 신변종CJD를 포함시킬 정도로 용어사용에 혼란이 있었던 것이며, CJD를 변종CJD의 상위개념으로 정리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해둔다.

당시‘PD수첩’측은 미국 농무부의 2004년 연방관보와 질병통제본부(CDC)가 인터넷에 게재한 자료를 제시했다. 농무부 자료에는“In 1996, a variant of CJD (vCJD) was first described”라고 돼있었다.“1996년에 CJD의 한 형태로 vCJD가 기술됐다.”고 번역될 수 있다. 즉‘PD수첩’측이 주장하는 a variant of CJD(CJD의 한 유형)를 the variant CJD(변종CJD)라고 보기 힘들다고 해석할 수 있다.

CDC 자료에는“A variant of CJD, caused by a prion with an altered protein configuration, is bovine spongiform enceaphalopathy(BSE or mad cow disease)”라고 적혀있다.“소 해면상뇌증(광우병)은 단백질구조가 변형된 프리온에 의한 CJD의 한 유형이다.”라고 번역되는데,‘PD수첩’측 주장대로 a variant of CJD를 변종CJD라고 해석한다면“광우병은 변종CJD, 즉 인간광우병”이 된다. 같은 자료에는“The most recently identified prion illness is a new variant of CJD reported in England, (…) The illness is thought to be linked to BSE.”라는 구절도 나온다.“가장 최근에 확인된 프리온질환은 영국에서 보고된 새로운 변종의 CJD다. (…) 이 질환은 광우병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로 번역되는데,‘a variant of CJD’는 자체로 변종CJD를 의미한다는 것보다는 CJD의 한 유형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겠다.

다시 로빈 빈슨의 인터뷰로 돌아가서, 그녀는 인터뷰 과정에서 CJD, the variant CJD(변종 CJD), CJD the variant(변종CJD), a variant form of CJD (CJD의 변형된 형태), human form of mad cow disease(광우병의 인간형),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용어사용 행태는 오히려 그녀가 CJD와 vCJD의 개념을 헷갈리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PD수첩’제작진이 처음 인터뷰를 할 당시 아레사 빈슨을 진료했던 의사로부터 CJD의 가능성을 들었다는 얘기와 다른 병일 가능성도 있어 부검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등 얘기를 했던 로빈 빈슨은‘PD수첩’의 후속인터뷰에서는 첫 번째 인터뷰와는 사뭇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PD수첩-광우병’편의 번역작업에 참여했던 정지민씨로부터 방송과정에서 의도적인 오역이 있는 것 같다는 문제제기가 있자, 제작진이 서둘러 후속인터뷰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PD수첩’제작진은 오역소동이 확대되자“인터뷰 과정에서 고인의 어머니가‘광우병(mad cow disease)’이라는 말을 썼고, 전문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어머니가 의학용어인 vCJD와 CJD를 혼동한 것으로 판단해 vCJD로 처리했다”고 해명했다.

로빈 빈슨은 앞선 인터뷰에서 가끔‘변종(variant)’이라는 단어를 빠뜨렸다는 이야기를 듣고“아레사의 사인이 변종CJD로 의심되었다는 뜻이 아니면 MRI결과에서 변종CJD를 의심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것은 CJD 범주 아래에 놓이는 것이다”라고 답변했다고 하는데, 자신이 지칭한 CJD는 대부분 변종CJD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상위개념과 관련하여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앞에서도 간략하게 소개했지만,‘PD수첩’측은 개인병력과 관련한 취재에서는 가족이 중요한 1차 취재원이 된다고 했다.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만한 정보를 전해줄 취재대상은 의사와 보건당국으로부터 진단결과를 직접 전해 들었을 로빈 빈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기관과 의료과오 여부를 놓고 다툼이 있는 가족이 전하는 정보가 중립적이고 신뢰할 수 있다고 보는가?

취재진은 취재과정에서 얻는 환자관련 정보를 가급적이면 실시간으로 분석해 문제점을 제대로 찾아들어갔어야 할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 관련 분야 전문가 자문을 얻기 어려웠다면 귀국 후에라도 제대로 된 자문을 구했어야 한다.

‘PD수첩’제작진이 취재과정에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의 박상표 국장(수의학전공)에게 아레사 빈슨이 발병 전 받은 위수술과의 관계를 묻자“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80%가 넘는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반면‘PD수첩-광우병’편 방영 당일 성균관의대 정해관 교수는‘PD수첩’제작진과의 전화통화에서 아레사 빈슨의 사인으로 sCJD, iCJD 그리고 vCJD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자문해줬음에도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의 질병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데 있어 의사의 판단은 버리고 수의사의 견해를 취하는 것이‘PD수첩’의 프로그램제작 원칙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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