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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18일이 되면 한국은 숙연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된다. 한국 현대사의 큰 비극 중 하나인 5.18이 일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5.18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광주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당시 광주에 살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당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증오와 불신, 미움과 공포의 기억을 남겼다.

5.18 이후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고, 언론도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사건의 개요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시에 관련된 유언비어도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됐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을 죽이러 왔다” “임산부의 배를 대검으로 찔러 태아를 끄집어냈다”등 잔혹한 상황묘사이다. 후일 5.18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진상규명이 이뤄지기까지 이런 뜬 소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더욱 증폭되거나 잔인하게 변모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소문을 접한 일반시민들의 감정은 격하게 움직였다.

그러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시초가 누구인지, 어떤 경로였는지는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불순분자라는 주장도 있고, 우연히 증폭돼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런 유언비어들을 조직적으로 아무 검증 없이 마구 유포시킨 사람들은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즉 조총련의 존재가 있었다.

북한 로동신문보다 악질적인 조총련 조선신보

먼저 조총련이 발행하는 조선신보(朝鮮新報)라는 신문에 대해서 알아보자. 조선신보는 조총련의 정식기관지로 1948년 창간된 민중일보를 모태로 하고 있다. 조총련 기관지인만큼 그 논조는 물론 표기법, 화제 등도 철저히 북한을 따라가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일본 내 재일동포들의 생활, 뉴스 등이 많이 실리고 있지만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로동신문과 거의 내용이 비슷했다.

북한뉴스가 로동신문에 보도되면 며칠 후 거의 같은 논조의 기사, 사설이 조선신보에 실리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는데, 로동신문보다 조선신보 기사들이 빠르게 나갔던 예도 간혹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5.18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1980년 6월10일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전하는 조선신보 기사를 보자.

“ ‘야 이년아 주머니에 들어있는 게 뭐야?’나는 무엇을 묻는지 영문을 몰라 그녀의 손을 살폈으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무엇을 담았을만한 주머니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이 쌍년! 뭔지 모르냐? 머슴아가? 기집아가?’옆의 놈이 다그치는 것을 보고야 나는 그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녀인의 기이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으나 아마 자기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눈치인 듯했다.‘그럼 내가 알려주지’순간 녀자가 반항할 짬도 없이 옷을 나꿔채자 그녀의 원피스가 쭉 찢어지며 속살이 드러났다. 공수병은 대검으로 그녀의 배를 쿡 찔렀다. 후비면서 찔렀는지 금방 창자가 튀여 나왔다. 그들은 다시 그녀의 아래 배를 가르더니 태아를 끄집어 내여 아직도 할딱이는 녀인에게 던졌다.”
“ 이는 지금도 대표적인 5.18 유언비어로 꼽히는 것 중 하나인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머슴아가? 기집아가?’라는 경상도 방언이다. 잔혹한 살인마가 경상도 방언을 사용하는 것으로 표현, 간접적으로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 이틀 뒤인 6월12일 북한 로동신문도 같은 얘기를 그대로 실었으나, 로동신문은 그나마 표준어로 대화를 표현했지 조선신보처럼 노골적인 경상도 서술은 하지 않았다. 실제 이런 식으로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내용을 활자화한 최초의 보도매체가 바로 조선신보다. 외국에 있으면서 조국의 화해와 단합이 아닌,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원조 종북’조총련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위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조총련은 줄곧 5.18에 대해 북한보다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남발했다. 예를 들어“3천만 민주시민 총궐기하라”(1980년 5월24일 조선신보),“사살된 사람은 1,200명이고 교통사고, 대검등에 의해 죽은 사람은 800명으로 도합 2,000여명이 넘는다고 강경한 어조로 전했으나 시체를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중략)어느 종교단체에서는 사상자수를 20만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1980년 6월10일 조선신보) 등 터무니없는 정보들을 마구 퍼뜨렸고, 이는 일본인들에 한국에 대한 공포 이미지를 조성하는 한편, 북한과 한국으로 역수입돼 북한에서는 한국을 비판하는 소재로, 한국에서는 국민 간 증오와 반목을 고착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이후 소련붕괴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 시인으로 조총련은 큰 타격을 입고 최근 들어서는 정치색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다. 그러나 냉전시대 저지른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이 이후 한국사회에 수십 년 동안 남긴 후유증을 생각해보면, 조총련과 조선신보 측도 한 마디 사죄의 코멘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한국에서는 종북세력에 대해 좌파진영 내에서도 견제와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비단 한국 내 종북세력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사회 분열을 조장한‘원조 종북’세력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와 비판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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