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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맞으면 베이글녀가 될 수 있다?

한방 가슴 성형 기사와 관련 연구의 문제점

침을 찔러 가슴 크기를 키운다는 한방 가슴성형, 가능한 일일까?

지난 12월 21일 MBC 뉴스데스크는 한방가슴성형을 시술하는 한의사의 주장을 소개했다. 학술지에 평균 2.6cm의 성장효과가 확인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연예인들도 시술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한해 2천여 명이 이런 시술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서 한의사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는 단지 "약간밖에 많지 않은 효과이기 때문에 본인이 확실한 효과 원하거나 드라마틱한 변화 위해서는 수술적 방법이 꼭 고려돼야 합니다."라는 성형외과 전문의의 의견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과연 이 한의사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해보자.

검색 결과 2009년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한방가슴성형을 소개하는 형태의 다양한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기사들에서는 논문을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노골적인 홍보 성격을 띤 기사들은 대개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써주는 광고기사인 경우가 많다.
 



 
한방가슴성형의 근거로 주장하는 논문은 대한침구학회지에 발표된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자흉침의 유방확대효과에 대한 임상연구”라는 2008년 논문과 "30~40대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자흉침의 유방확대효과에 대한 임상연구“라는 제목의 2010년 논문 두 편이다.

가슴이 얼마나 커지나?

연구 설계 및 결론 도출과정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앞서 가슴 크기가 2.6cm 가량 성장한다는 주장은 거짓임이 곧바로 드러났다. 가슴둘레가 증가한 정도는 평균 1cm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방의 크기를 잴 때는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유두를 지나는 가슴둘레와 유방 바로 아래 부분의 밑가슴둘레를 잰 뒤 그 차이를 구한다. 예를 들어 밑가슴둘레가 75cm이고, 가슴둘레가 그보다 8cm 큰 83cm 라면 75A가 된다.

아래 표에서 보는 것처럼 가슴이 성장한 정도는 20대에서 1.150cm, 3~40대에서 0.53cm에 불과해 1인치(2.54cm)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가슴둘레가 증가한 정도를 퍼센트로 보면 20대에서 1.51%, 3~40대에서 0.66%의 극히 미미한 차이에 지나지 않았다.
 



 
침 시술 뒤 가슴이 커졌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밑가슴둘레가 줄었기 때문이다. 밑가슴둘레가 감소한 폭이 가슴둘레가 증가한 폭보다 크며, 이로 인해 유방 크기를 측정하는 가슴과 밑가슴 둘레의 차이가 2.6cm 가량 증가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산술적으로는 2.5cm기준으로 컵의 크기가 달라지니 컵이 한 단계 커진다는 말이 성립하긴 한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시술을 받기 전에 가슴둘레는 0.53~1.15cm가량 늘어나는데 그쳤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슴이 정말로 커지나?

가슴둘레가 증가한 정도도 다소 실망스럽지만 가슴 크기를 측정한 방법에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발견된다. 연구에서 사용한 줄자를 이용한 방법은 가슴의 부피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간접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2003년 충남대 홍경희 교수팀이 3,40대의 유방부피 측정법을 연구한 결과에서는 줄자를 이용한 측정법과 유방의 부피의 상관계수가 0.169에 불과해 브래지어컵 사이즈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두 값이 완전히 비례하다면 상관계수가 1이 되고, 전혀 관계가 없으면 0이 된다.)

참고로 1997년 스웨덴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가슴의 크기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리게 해서 유방 기저면의 면적과 높이를 재서 부피를 계산했다. 이렇게 계산된 유방의 부피는 키와는 0.32, 몸무게와는 0.50, BMI와는 0.53의 상관계수를 보였다. 가슴의 부피는 줄자로 잰 값(0.169)보다 오히려 몸무게를 통해 예측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의미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밑가슴둘레가 줄어든 만큼 가슴이 커졌다고 표현한 한의원 측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자흉침 논문에서도 이런 한계를 인정해 “본 연구는 평면계측치인 가슴둘레와 밑가슴둘레 만으로 이루어진 연구로 3차원인 유방의 정확한 확대 정도 및 형태적인 변화를 알 수 없어 추후 다양한 계측방법과 계측치를 통한 자흉침의 효과 검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논문에서 이런 언급이 있었음에도 2010년 논문에서도 같은 측정방법을 사용했다.

측정방법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줄자를 이용해 가슴둘레를 잴 때는 재는 각도나 높이, 잡아당기는 정도, 피계측자의 자세, 호흡량 등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연구에서 확인된 1cm 내외의 차이가 이런 오차를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인지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한방가슴성형 논문의 측정값이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2003년 충남대 연구팀 논문의 주저자였던 군산대 의류학과 이현영 교수는 “이 방법으로 유방의 부피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특정인의 유방 크기 변화에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하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면 부피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2인 이상이 측정을 하는 것이 좋고, 여러 차례 측정하여 오차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권장된다고 설명했다.

자흉침 논문에서는 동일한 측정자가 시술 전마다 최대 호기 (숨을 최대한 내쉬었을때) 시의 둘레를 측정했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자흉침 논문이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통 의약품의 효능 검정을 위해서 사용되는 이중맹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측정하는 사람이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측정하는 사람이 지난번에 침을 맞고 둘레를 쟀던 사람인 것을 알고 잰다면 가슴둘레가 커질 것이라는 (또는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게 되어 측정값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 연구에서 이중맹검 방식은 의료 행위의 시술자와 환자 양 쪽 모두 진짜 치료(제)인지 가짜 치료(제)인지 모르는 채로 시술을 진행하고 진짜 치료를 받은 그룹과 가짜 치료를 받은 그룹을 비교해 효과가 있는지를 평가한다. 시술자가 진짜 치료인지 가짜 치료인지 알면 무의식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환자에게는 가짜 치료로 인한 위약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걸러내기 위해서 이중맹검이 필요하다.

가슴이 왜 커지나?

신뢰할만한 측정 방식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가슴이 어느 정도 커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해당 논문에서는 어떤 원리로 유방을 커지게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일반적인 의학 논문들이 도입부에서 배경이 되는 이론과 효과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설명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이론적인 배경 없이 외모가 일상생활에서 미치는 영향, 미용성형을 희망하는 비율, 유방 성형을 고려하는 이유 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론적 배경에 대해서는 단지 다음과 같이 이물질을 몸속에 넣어서 자극하는 방법이라는 내용만 언급되어 있다. 그 원리가 어떤 실험으로 검증이 됐는지, 유사한 사례들이 있는지에 대한 언급 없이 서론이라기 보다는 주장에 가까워 보인다.


“매선침법이란, 혈위매장요법이라고도 하며, 특별히 고안된 기구를 사용하여 혈위 내에 어떤 이물을 매입하고, 그 이물을 통해 혈위 자극을 지속적으로 하여 200여 가지의 질병을 치료하는 침법으로”

“자흉침은 한의학 경락체계와 근육학을 기초로 하는 매선침법을 이용하여 여성의 유방 확대와 리프팅에 목적을 둔 침 치료법이다.”


시술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슴에 일반적인 침을 꽂는 시술과 ‘매선’이라는 이름의 실을 가슴 속에 삽입하는 시술 두 가지를 사용했다. 모두 유방의 주변부에서 가슴의 대흉근이라는 근육을 향해 삽입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매선의 성분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고 그저 대한약침학회에서 직접 제작한 6cm 길이라고만 언급하며 참고문헌도 달아 놓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성형 시술을 하는 다른 한의원들에서 매선에 대한 내용을 찾아본 결과 Polydioxanone이라는 성분의 실을 사용한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의료용 실로 심장이나 눈 등의 연부조직을 봉합하는 데 사용된다. 인체 내에서 완전히 녹아 없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6~8개월로 길어 오랫동안 봉합부위를 지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주로 사용된다.

병원에서 팔에 주사를 맞으면 그 자리가 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슴 안쪽에 침을 찔러대고, 없어지는데 6개월 이나 걸리는 실을 피부를 궤뚫고 근육 속에 열 가닥씩 여러 차례 박아놓았는데도 가슴이 붓지 않고 크기가 그대로라면 오히려 더 신기할 노릇이다.

저절로 커진 건 아닐까?

유방의 부피는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변한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월경주기에 따른 호르몬 변화로 대개 월경이 끝날 무렵에 가장 작고, 월경이 시작하기 1주일 전 쯤에 가장 커진다. 월경주기에 따라 가슴 부피를 MRI로 정밀하게 측정한 연구에서는 유방의 부피가 무려 13%이상 변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흉침 논문에서는 첫 시술을 월경 직후에 시작해 다음 시술은 10-14일 뒤 배란기에 하는 방식으로 월경주기에 맞춰 측정과 시술을 했다고 한다.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아도 가슴크기가 가장 작은 월경 직후에 측정을 하고, 최종적으로는 가슴의 크기가 커지는 시기에 측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크기가 13%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한방가슴성형, 믿을 수 있을까?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의 황의원 원장은 자흉침 연구에 대해 "통계값을 제시하며 효과를 주장하는 논문에 대해서는 통계값 자체가 갖는 확률뿐만 아니라 사전확률(prior probability)를 감안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즉, 이런 시술이 가슴을 키울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와 선행 연구가 전무한 상태로, 사전확률이 극히 낮아 유의미하다는 통계값 자체가 오류일 확률이 매우 크다."는 설명이다.

논문에서 시술 후에 감소한 밑가슴둘레의 원인은 미궁이지만, 증가한 가슴둘레 0.5~1.2cm에서는 자흉침의 신비로운 효과 외에도 위에 언급한 다양한 원인들도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 0.5~1.2cm에서 이런 부분들을 빼고 남은 길이가 당신이 수백만원을 들여 한방가슴성형 시술을 받아 얻을 수 있는 기대치다. 줄자로 잴 때마다 몇 mm가 달라지게 될지 고민하는 것도 빼놓지 말자.

보도에 앞서 자흉침 논문을 검토하면서 발생한 의문점들에 대해 논문의 저자들에게 메일로 설명을 듣고자 했다. 질문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1. 유방의 부피를 측정하는 보다 정밀한 방법으로 연구를 추가로 진행하지 않았나?

2. 연구방법에는 생리가 끝난 직후 최초 시술을 하고, 한 달이 아닌 10-14일 주기로 시술을 했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생리주기에 의한 유방크기 변화가 충분히 통제되지 못하는 것 아닌지?

3. 침을 찌르고 매선을 주입하는 등의 시술로 인해 일시적으로 해당 부위가 붓는 것과 시술의 효과를 구별해낼 수 있는지?

4. 혹시 중국을 비롯해 외국에서 침술을 이용해 유방의 크기를 확장시킨 연구결과가 있는가?


책임저자를 비롯해 이메일 주소 확보가 가능한 모든 저자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며칠을 기다려도 아무에게도 답신을 받지 못했다. 결국 원장이 저자로 참여한, 논문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미형한의원 측에 연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 여름 후속 논문 발표를 준비 중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자흉침 논문을 발표한 한의원 뿐만 아니라 여러 한의원들이 덩달아서 가슴 크기를 키워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가슴 뿐만 아니라 안면 윤곽 성형, 안면 비대칭 교정 등 성형외과에서 칼을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할법한 시술을 한다고 광고하는 한의원들이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서도 지난 12월 <미용 성형 한방 서비스 피해 요주의!>라는 기사를 통해 한방 미용 성형에 대한 소비자 피해를 경고했다.

한방가슴성형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300만원부터 800만원까지 호가하는 비용에 걸맞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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