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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틱스워치 (정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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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표절로 벼랑 끝에 몰린 진중권이 과거 변희재 대표의 미학과 게시판글을 꺼내들며 폭로에 나섰다. 그러나 변희재 대표와 진중권이 처음 조우한 것은 1999년 4월 22일, 변희재 대표가 인터넷신문 대자보에 '진중권 네 얼굴에 침을 뱉으마'라는 비판글을 게재하면서부터이다. 변대표는 이 글에서 진중권의 글쓰기를 강간범의 글쓰기, 복제인간의 글쓰기, 미숙아의 글쓰기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변대표의 이 비판글 뒤에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의 비판까지 이어지자, 진중권의 자살설이 나돌기 시작, 이에 놀란 강준만 교수는 위로의 편지를 변대표는 위로의 인터뷰를 진행해준 바있다. 인터넷신문 대자보에 게재되었던 변대표의 진중권 비판글을 미디어워치에 소개한다. 이 글은 변희재 대표의 정치논객 데뷔글이나 마찬가지이다.


변희재 대표의 '진중권 네 얼굴에 침을 뱉으마' 전문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강준만과 더불어 조선일보 비판의 다른 한 축을 형성했던 진중권이 강준만 비판에 나섰다. 물론 진중권의 지식인 비판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면서 이인화, 송복, 이문열 등 극우 지식인은 물론 최근에는 [당대비평] 6권을 통해 민족해방계열의 전대협(한총련)과, 한때 자신과 같은 길을 걸었던 민중민주계열의 이진경까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는 진중권이 번역한 [미학강의]와 그가 대중들을 위해 쉽게 풀어 쓴 [미학 오디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다 진중권이 조선일보 비판에 나섰을 때, 그가 사회참여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중권의 글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텍스트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애초에 대화가 통하지도 않을 조선일보와 싸우는데 반칙하지 말고 정정당당히 하라는 요구를 한다는 것은 그 역시 또 하나의 조선일보 옹호와 맥을 같이 하므로 너그럽게 이해하려 노력했었다.

그러다가 [당대비평] 6권에 실린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에서 NL, PD의 언어비판을 보며 대충 내용에 관해서 동의하기는 하지만 이들을 비판하면서까지 조선일보를 비판할 때와 같이 전혀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진중권의 글쓰기가 이미 도를 넘어서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 들기 시작했다. 이미 거기에 대해서는 월간 [말] 4월호에서 최진섭씨가 비판의 칼날을 들었다. 하지만 난 거기까지도 진중권을 이해하려 했다. 진중권의 NL, PD 비판이 무례하기는 했으나 그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정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진중권에게 칼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번에 발간된 [자유라는 화두]중 "한 전투적 자유주의자의 지식인 혐오증?"을 읽고 난 이후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난 강준만을 두둔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강준만 역시 그 글을 읽고 할 말이 많을 줄 안다. 특히 미크로 파시스트란 부분은 분명히 강준만이 진중권과 토론을 해봐야 할 부분이다.

내가 여기서 짚고 싶은 것은 강준만이 파시스트인지 여부가 아니라 "진중권의 텍스트 읽기"와 "진중권의 글쓰기"이다. 진중권이 위태롭게 끌고 오던 도덕적 정당성과 논리적 일관성이 그 글 한 편에서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이제껏 써오던 신랄한 언어로 철저히 파괴해 버렸다. 그의 글에서는 그가 비판하고 있는 강준만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체세포 분열로 분신복제를 한 수 십 명의 진중권 패거리만이 보였을 뿐이다.

내가 진중권의 글을 읽은 후 얻은 유일한 미덕이라 한다면, 그것은 타인의 글을 인용할 때 정확히, 문맥을 거스르지 않으며 인용하여야겠다는, 그리고 인용문의 출처를 명기하여야겠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타인의 텍스트를 파괴적인 방법으로 인용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폭력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글을 인용하더라도 반드시 출처와 페이지수를 명기하도록 하겠다. 다만 내가 진중권의 글을 인용할 때는 출처까지는 몰라도 페이지수는 적어놓지 않을 예정이다. 그것은 그가 남의 글을 인용할 때 출처를 확실히 밝힐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그가 저지른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한다.

강간범의 글쓰기

난 이번 글에서 이제껏 하지 않은 하나의 색다른 글쓰기 방법을 하려고 한다. 진중권을 진중권의 언어로 상대해 주겠다는 것이다. '강간범의 글쓰기'란 내가 만든 용어가 아니다. 그건 바로 진중권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쓰는 저속한 용어들은 모두 그의 글에서 나오는 수준의 것들이니 그에 대한 책임은 응당 진중권이 져야 할 것이다. 욕할 자유가 있듯이 욕먹을 책임도 있는 거니까.

개별적 표현을 컨텍스트로부터 분리하여, 그것을 고립시킨 다음, 그 표현의 사용빈도의 통계적 평균치에 입각하는 논증을 한다. 한 마디로 텍스트를 강간하는 거다.(단행본 [인물과 사상] 9권, ' [조선일보]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그 이후')

이건 진중권이 최장집 교수의 글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기준을 가지고 진중권의 글을 분석하겠다. 만약 진중권이 개별적 표현을 콘텍스트로부터 분리하여 텍스트를 강간했다면 내가 그를 칭해 강간범이라 불러도 그가 하등 서운해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은 독자들의 판단일 테니까. 진중권은 강준만이 [인물과 사상] 2권에 쓴 조갑제 기자 비판 글을 가지고 꼬투리를 하나 잡더니 이렇게 써놨다.

……김구로 대표되는 해방적 민족주의자는 물론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자유주의자까지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그런데 강준만은 우리에게 이 수법을 배우라고 가르친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겸허하게 조 기자로부터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강준만 책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진중권이 말한 것처럼 그 수법을 배우라는 게 아니라 단지 조갑제 기자의 성실함을 배우라 그런 것임은 한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갑제 기자가 성실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 그 성실함 좀 배워서 그 사람과 맞서 싸워보라는 건데, 그걸 가지고 조갑제가 저지른 파시스트적 테러를 배우라 그랬다고 텍스트 날조를 하고 있으니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진중권이야 말로 그 수법을 조갑제에게서 그대로 배운 모양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결국 그가 김용옥을 천재라고 부르는 주된 이유는 그가 상아탑을 박차고 거리로 뛰어나와 대중매체를 최대한 활용한 대중지식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매체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곧 천재인가?

이것은 [인물과 사상] 3권에 실린 "위선적 언어에 도전하는 김용옥의 화려한 투쟁" 중에 나오는 강준만의 서술에 대해 진중권이 사실여부까지 바꿔 시 한 편을 지어놓은 것이다. 그 글에서 강준만이 왜 김용옥을 천재라고 생각하는 지 분명히 밝혔다. 최소한 남의 글을 읽을 때 그 정도의 기억력도 발휘해 줄 수 없다면 앞으로 글을 쓰지 않기 바란다. 강준만은 진중권이 예시하고 있는 바로 같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김씨를 천재로 보는 건 기호학과는 무관하게 그의 탁월한 언어 구사능력과 그것보다 더욱 탁월한 시간관리 능력 때문이다. ([인물과 사상] 3권, 67쪽)

강준만은 김용옥의 화려한 언어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도 수많은 글을 쓰는 그의 성실함에 놀라 천재라는 호칭을 부른 것이다. 언제 강준만이 그의 대중성 때문에 천재라고 불렀는가? 별 필요도 없는 곳에는 온갖 언어분석을 다 하는 사람이 이런 문장까지도 놓치는 이유를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약과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진중권의 강간이 시작된다. 바로 조선일보가 최장집 교수의 글을 강간한 것과 똑같은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강준만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 역시 우리 나라 지성계엔 진정한 진보세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적 표현이다. 가령 이 나라에 "진정한 교수" 있으면 나와 보라. "진정한○○○는"으로 시작되는 문장은 겸손한 사회에서는 대개 그 뒤에 "없다"라는 술어가 붙게 마련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결국 강준만이 이 시대의 진보세력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는 자기 논리로 이끌어 나간다. 정말 놀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앞에 것은 강간이라기보다는 성희롱에 가까웠다. 이번에 아예 본격적으로 시작할 모양이다. 내가 강준만의 글 전문을 제시하겠으니 검토해주기 바란다.

나 역시 우리 나라 지성계엔 진정한 진보세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극우가 함부로 날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인물과 사상] 3권, 84쪽)

이 말을 진정한 진보세력이 없으니 깡그리 부정하자고 해석할 수 있는가? 지금 강준만은 진중권이 인용한 앞 문장에 힘을 준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극우가 함부로 날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삭제된 뒷 문장에 힘을 주고 있다. 이 전체를 보고 정상적인 국어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아! 우리 사회엔 아직 진보세력이 미약해 극우가 함부로 날뛰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뭐, 끝까지 언어철학 전문가인 진중권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말한다면 그럼 왜 의도적으로 뒷 문장을 삭제했는지 물어보겠다. 그렇게 자신이 있었다면 당연히 뒷 문장도 같이 올려야지 마음대로 삭제하고 마음대로 소설 써도 되는 건가? 그러는 주제에 조선일보의 "역사적" 운운에 대해서는 무슨 자격으로 비판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더 심각한 것은 진중권이 정진홍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라 할 지라도 그 용어만 따로 고립시키지 말고 그 사람의 텍스트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중권은 위에서,

'진정한○○○는'으로 시작되는 문장은 겸손한 사회에서는 대개 그 뒤에 '없다'라는 술어가 붙게 마련이다.

이렇게 말해버렸다. 만약 조선일보에서 이렇게 주장하면 당신은 어떡할 건가?

'역사적'이라는 단어는 첨예한 남북 대치의 상황에서 대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게 마련이다.

이에 대해 한 번 답변을 하기 바라며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대개 '없다'라는 술어가 붙는다는 그 '진정한'이라는 말을 실제로 강준만이 '있다'라는 술어와 함께 줄기차게 써왔다는 것이다. 도대체 강준만을 비판하려면 최소한 그가 쓴 책을 십 분의 일이라도 읽어봐야 하지 않는가?

나는 '가짜' 또는 언행일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해 왔을 뿐 진짜 진보적 지식인은 존경한다고 누누이 말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가 진짜 진보적 지식인인가? 나는 김동춘을 첫 번째로 꼽는 데에 주저하지 않겠다. ([인물과 사상] 8권, '진짜 진보적 지식인 김동춘의 지식인 비판', 137쪽)

이렇게 당당히 진짜 진보적 지식인을 존경한다고 했음은 물론 그 인물까지 소개해 주지 않았는가? 남들이 대개 안 쓴다고 해서 강준만도 쓰지 말라는 법 있는가?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이제껏 어떤 언어를 사용했고 어떤 맥락에서 문장을 쓰는지 연구부터 하고 글을 쓰기 바란다. 그건 이미 진중권 자신이 조선일보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진중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화려한 연쇄 강간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강준만이 김용옥의 치기를 인정해주자는 대목을 가지고 또다시 상상력의 나래를 펴 나간다.

"나는 천재는 치기를 부릴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미크로 권력의 "천재론"은 마크로 권력의 "천재"론을 연상시킨다. 이인화에 따르면 박정희는 "천재"이므로 그가 설사 "헌법을 파괴"했을 지라도, 이를 "고도의 인간적 도덕성의 표현"으로 봐주어야 한단다.

이것도 텍스트 강간이다. 왜? 고의적으로 한 문장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바로 그 글에서 이렇게 썼다.

천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그런 상식을 초월할 특권이 있으며, 우리 사회가 그런 특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인물과 사상] 3권, 67쪽)

이미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를 두었는데, 헌법파괴가 왜 나오는가? 진중권에게 묻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과 '헌법파괴'의 합치점에 대해 밝혀라. 우리의 언어 관용으로는 둘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당신의 고상한 언어철학으로 마음껏 궤변을 펼쳐주기 바란다. 아니면, 당신은 '헌법파괴'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진중권은 강준만의 글을 모두 찾아 읽기는커녕 그나마 읽은 단 두 편의 짧은 글도 제대로 읽지 못 하고 글을 써버린 나태함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단 한 문장만을 이용해서 자기 마음대로 요리해 놓았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그 문장을 어디서 뽑았는지 페이지는 물론 출처도 안 밝혔다. 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삼인출판사 이홍용 편집장과 표지에 이름이 걸려 있는 김동춘 교수에게 강력히 항의한다. 텍스트 검토도 안 해보고 출판을 했단 말인가? 최소한 남의 텍스트 가지고 난도질을 해놨으면 출처는 명확히 밝혀야 하지 않는가? 공식적인 사과가 있기를 바란다.

난 이것을 진중권이 의도적으로 했으리라 짐작한다. 한 번만 찾아보면 다 드러날 속임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걸 찾아볼까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을 할수 있는 이유는 진중권이 [당대비평] 6권에서 NL, PD를 비판했을 때는 텍스트는 물론 그 페이지수까지 정확히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텍스트 날조를 감행한 강준만 비판에서는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진중권은 강준만의 지식인 비판이 파시스트의 그것과 구별짓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게 의도적이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의식하지 못 했을 게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그의 양심보다는 그의 지적 태만함을 비난하기로 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아니다. 난 언어철학 전문가인 진중권이 그까짓 초등학생 수준이면 독해할 수 있는 문장도 제대로 읽어낼 줄 모른다고 믿지는 않는다. 더구나 강준만의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그의 주장으로 생각해 보건데, 이건 지적 태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강준만의 글을 강간하려는 양심적 태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표현을 그에게 그대로 돌려주겠다.

나는 이게 의도적이라고 본다. 그는 이를 의식했을 게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그의 지성보다는 그의 양심적 태만을 비난하기로 했다.

복제인간의 글쓰기

나는 앞에서 진중권의 글을 읽다 보면 비판 대상인 강준만은 없고 수 십 명의 진중권만 보인다고 했다. 진중권은 극우 파시스트를 비판하며 '이인화 VS 조갑제', '조갑제 VS 이한우' 하며 같은 편끼리 싸움을 붙였다. 난 이러한 진중권의 노력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며 그 글 역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번엔, 진중권 VS 진중권이다.

진중권은 자기 자신을 좌파라 칭했다. 그러면서 우파이자 자유주의 지식인인 강준만을 비판했다. 그리고 진중권은 자신은 상아탑 속의 지식인이고 강준만은 대중 지식인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비판했다. 진중권이 좌파적 지식인이건 진보적 지식인이건 내가 알 바 아니다.

난 그러한 사상논쟁을 할 만큼 역량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진중권이 한 사람인지, 수 십 명인지 그 정도의 숫자세기 놀이는 할 수 있을 만큼 산수에 대한 지식은 있다. 지금부터 하는 것은 그러한 작업이 될 것이다. 진중권은 그의 글에서 우선 강준만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저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필력,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만 가지고도 우리 사회의 사이비들과 싸운다.

그렇다. 이거야 말로 이제껏 나온 강준만에 대한 표현 중 가장 짧고도 정확한 것이라 생각한다. 진중권이 이렇게 쓰면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사이비들에 대해 진중권의 비판이 시작되든지 아니면 강준만에 대한 좀 더 치밀한 분석이 전개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또 한 명의 복제인간 진중권이 나타나 이에 끼어든다.

하지만 왜 그는 특정을 하지 않고, 모든 지식인을 싸잡아 비판하는가?

무슨 소린가? 아까 앞에서 사이비들하고 싸운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이비 지식인이라고 자기 자신이 특정해 놓고는 복제인간 진중권이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다른 복제인간 진중권 3호가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지식인들에 대한 인물평을 써 부각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건 또 뭐야? 아까는 모든 지식인을 싸잡아 비판한다고 해놓고서 이제와서는 강준만이 훌륭한 지식인들에 대한 인물평을 열심히 쓰고 있다고 말한다. 벌써 세 명의 진중권이 탄생했다. 도대체 몇 명까지 복제를 할 것인가? 또 다시 진중권 4호 등장.

그는 타깃을 다시 한 번 진보적 지식인에게 돌려놓는다. 강준만의 지식인 비판과 핵심은 진보적 지식인이다.

네 명이 등장하니까 이제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도대체 강준만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 사이비 지식인이란 말인가, 아니면 모든 지식인이란 말인가, 아니면 진보적 지식인이란 말인가? 이쯤 되니 진중권이 자기 복제를 하는지, 강준만이 자기 복제를 하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한 가지 분명히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강준만은 누누이 밝혔듯이 사이비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니 김동춘, 유시민, 장하성, 조한혜정 같은 사람들은 올려주고 손호철, 소준섭, 송복, 이도형 같은 사람들은 내려치는 것이다.

이미 4명이나 올려줬기 때문에 모든 지식인을 싸잡아 비판한다는 진중권 복제 2호는 탈락이다. 그리고 4:4게임에서 진중권이 말하는 대로 진보VS보수 구도로 나눌 수가 없다. 나눌 자신 있으면 진중권 당신이 나눠보기 바란다. 비판하는 지식인들 중에 두 명은 진보이고 두 명은 보수이다. 올려주는 지식인들 역시 두 명은 진보이고 두 명은 보수이다. 물론 진보란 개념 가지고 진중권과 논쟁할 생각 없으니 이건 내가 판단한 진중권의 기준으로 따진 거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또 한 명의 진중권이 [당대비평] 6권에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NL, PD를 두들겨 패버렸다. 간신히 정리해놨는데 진중권 복제 5호가 날뛰는 바람에 다시 다 엉망이 돼버렸다. 진중권은 처음에 극우파쇼를 때렸다. 그 다음에 NL, PD를 때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자유주의자까지 때렸다.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한국 사회에서 날고기는 지식분파는 다 때린 거다. 그렇다고 강준만처럼 누구를 대단하게 추켜세워준 적도 없다. 모조리 두들겨 패기이다. 이로써 진중권 복제 6호가 탄생하게 된다.

왜 진중권 복제 6호는 모든 지식인을 싸잡아 비판하는가? 이런? 이렇게 돼버리면 결국 진중권 자신이 지식인 혐오증에 빠지게 되지 않는가? 제목을 바꿔야 되겠다. "한 좌파 지식인의 지식인 혐오증"으로.

진중권은 강준만에게 진보 지식인 다 죽인다며 열 받았다. 이건 몇 호 진중권인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이번에 출판된 [자유주의의 화두]에서 자유주의자 비판의 선두에 선 대장이 누구인가? 바로 김동춘 교수이다. 강준만이 김동춘 교수를 죽였는지 살렸는지 한 번 직접 가서 물어보기 바란다. 진중권 입장에서 김동춘 교수마저도 진보가 아닌 보수 지식인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진중권은 좌파인 이진경까지 진보 취급을 안 해주지 않는가?

그럼 결국 진중권 7호가 나와줘야 한다. 진보진영 다 죽인다고 '땡깡'부리지 말고 도대체 누굴 올려줘야 한다는 건지 진중권 7호가 나와 알려주기 바란다. 앞에서 언뜻 보기에 소준섭을 올려주길 바라고 있나 본데, 그럼 더 이상 이야기 안 된다. 김동춘 교수를 올려줘도 마음에 안 들고 이진경도 마음에 안 들면서 결국 소준섭을 올려주란 말인가? 그런 정도는 직접 하기 바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게 진중권은 자신을 아주 고매한 상아탑 속의 지식인이라 여기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김용옥과 강준만에게 대중 지식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자신과 구분하려는 거겠지. 그러면서 그들이 대중매체를 활용하여 정치인들이나 하는 당파성을 보여준다고 비웃는다. 고매한 지식인 진중권 8호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난 전혀 진중권을 학문에만 전념하는 상아탑 속의 학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대중 지식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절대로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다. 난 애초에 [미학 오딧세이]를 통해 진중권을 만났다. 그리고 그를 높이 평가한 이유도 그러한 대중적 글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 선 사람이 자신은 죽었다 깨도 대중 지식인이 아니라고 그런다. 진중권 9호가 복제된 것이다. 또 한 가지 물어보자. [네 무덤의 침을 뱉으마!]는 뭔가? 학술서적인가? 조선일보 비판함으로써 어차피 김대중씨나 국민승리 21이 이익을 볼 수 있는데 그건 당파성 아닌가?

또 한 가지. 강준만이 대중매체 이용해 진보 지식인 다 죽인다고 그런다. 하지만 바로 그 강준만의 매체에다 글을 쓰고 있는 진중권 10호는 또 뭔가? 아니 왜 똑같은 매체에 똑같이 조선일보 비판하는데, 남이 쓰면 대중 지식인이고 자기가 쓰면 끝까지 고매한 지식인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진중권에게 부탁한다. 교통정리 좀 해달라고. 진중권 11호를 복제해 축구팀을 만들어도 좋으니까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 이해할 수 있게 정리 좀 부탁한다. 아니, 안 되겠다. 또 한 가지 남았다. 축구팀은 물론 럭비팀까지 구성해야 할 판이다. 진중권은 강준만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언론에게 살랑살랑 꼬리를 치는 비판적 지식인' 같은 선정적 묘사는 삼가는 게 좋겠다.

교통정리하라고 내보낸 진중권 11호의 말이다. 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으며 조선일보 비판하고 있구나 정도만 이해했지 사실 워낙 현란하고도 선정적인 묘사 때문에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그래도 나쁜 애들 때리고 있으니까 잘하고 있으려니 했을 뿐이다. 진중권 12호가 그 책에서 '맹구'니 '똘아이'니 '저능아'니 '머저리'니 이런 말을 다 뱉어 놓지 않았는가? 아니 이런 것은 선정적인 묘사가 아니라 고매한 지식인의 언어란 말인가? 난 그런 말한 것 비판하는 거 아니다. 그 정도의 표현은 충분히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글에서조차도 강준만에게 맹구 수준의 자승자박의 논리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김용옥에게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정말 유치해서 같이 못 놀아주겠다. 이렇게 지 얼굴에 똥칠하더니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자신은 이렇게 마음껏 선정적인 묘사를 해놓고 왜 강준만에게는 그거 반에도 못 미치는 공손한 표현조차 못 하게 하는가? 도저히 안되겠다. 내가 직접 정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새로운 유전공학으로 자기복제를 하며 12명에서 글쓰기를 하는 진중권의 작업이 얼마나 위험한 지에 대해 제레미 리프킨은 이렇게 말했다.

유전공학에는 핵무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위험이 수반되어 있는 것이다. 즉 우연이나 순간적인 무모한 결정이 아니고, 충분한 계산과 계획에 의거해서 완전히 똑똑한 정신과 숙련 끝에 수 백만의 남녀와 그들 자손 대대의 생물학적 형질을 불가역적으로 개조하려고 어떤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가 신을 대신할 수 있는가?] 삼성미술문화재단, 1982, 6쪽)

미숙아의 글쓰기

나는 진중권에게 강간범이라느니 복제인간이라느니 하는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였다. 이래가지고는 아무래도 좀 심한 것 같아 진중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나온 것이 '미숙아'이다. 미숙아나 미성년이라는 것이 절대로 그렇게 나쁜 의미의 말은 아니다. 나중에 미성년에 대한 칸트의 정의를 소개해 놓겠다.

진중권은 현재 지성적으로야 대단한 수준에 올라 있는데 그걸 사용할 수 있는 판단력이 부족하다. 어디를 집중해서 때려야 하는지 전혀 파악을 못 하고, 소리 나는 곳이라면 아무 데나 돌을 던진다. 똑똑하기는 하지만 철부지 어린애란 말이다. 그러니까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진중권은 조선일보 비판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같이 비판하는 입장의 강준만에게 칼을 겨눴다. 진중권은 전략과 전술이라는 것도 모르는가?

그렇다고 해서 같은 좌파 지식인과 연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마저 비판해 버린다. 난 진중권의 이진경 비판을 보고 그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중권과 이진경이 어떤 사이인가?

내게 아리에스의 책을 알게 해주고 또 귀중한 원본을 기꺼이 내준 이진경에게 감사한다. 늘 받기만 하고 주는 게 없어 미안한 마음이다. ([춤추는 죽음], 350쪽)

[춤추는 죽음]은 진중권이 1997년도에 쓴 미학 전공서이고 윗 글은 그 중 맺음말에 나와 있는 말이다. 물론 친구 사이에도 비판을 하겠다라는 그 비판 정신은 높이 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늘 받기만 하고 주는 게 없어 미안하다는 사람이 해괴한 말버릇이라느니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느니 하는 무례한 말까지 해가며 이진경을 비판할 것까지 있겠냐는 말이다. 좀 좋은 말로 해도 되지 않았을까? 난 그것이 단지 우연이라고 보지 않는다. 아마 그 사이 진중권과 이진경 사이에 무슨 돈싸움이라도 벌어졌나 보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대로 추측을 하냐고? 그런 추측은 진중권의 전문이니, 나도 그 정도의 추측을 해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강준만의 4대 차별, 즉, 지역차별, 학력차별, 여성차별, 장애인차별 폐지 운동을 이렇게 추측하며 비하했다.

그는 [서울대 망국론]을 썼다. 그런데 김대중은 우연히 서울대 출신이 아니다. 둘째로 그는 전라도 지역차별을 비판했다. 그런데 우연히 김대중은 전라도 출신이다. 셋째, 그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차별을 비판했다. 그런데 TV를 보니 우연히 김대중이 다리를 전다. 여기서 난 우연히 우연성 이상을 본다. 그리고 내게 우연히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제기해야 할 문제를 정치적 의도로 제기하는 게 과연 온당한가?

두 말할 것 없다. 그냥 죽을 죄를 지었다고 사과해라. 김대중과 강준만에게 사과하라는 것이 아니라 비서울대 출신, 전라도 출신. 그리고 장애인이라 차별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서울대 출신, 서울 출생, 그리고 자기복제까지 하는 정상인을 넘어선 초인적 능력을 갖고 있는 진중권 당신이 사과하란 말이다.

난 강준만의 4대 차별 폐지 운동을 적극 지지하지만 여기서 그것이 정치적이지 않다라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4대 차별은 무조건 철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운동을 이제껏 강준만보다 더 효율적으로 추진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강준만의 그 운동 덕택에 이회창씨 대신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쳐주자. 그렇다고 해서 그 운동 자체를 깡그리 부정할 만큼 그렇게 나쁜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것만은 지적해야겠다. 진중권 당신이 단 한 번이라도 휴머니즘 관점에서 차별 철폐 운동을 해본 적이 있는가? 서울대를 비판한 적도 없고 장애인을 위해 따뜻한 글 한 편 써 본 적도 없다. 다만 조선일보 비판하면서 아주 조금 지역차별을 건드렸을 뿐이다. 자기 변명하려고 '나는 매체가 없다'라고 주장하지 말기 바란다. 그 주장 했다가는 지식인도 대중매체 활용해야 한다는 진중권 13호가 탄생해야 할 테니까.

난 진중권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말로는 계속 진보 지식인, 좌파 지식인 하지만 도대체 그가 생각하는 진보가 뭐기에 모든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는 건가? 그러다 우연히(?) 이진경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그가 생각하는 진보가 뭔지 알게 되었다.

가령 돈 없다고 병원에서 쫓겨나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 대책 없이 길바닥에 나앉은 이들에게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황량한 인권유린과 싸우는 것, 이런 게 진보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가? ([당대비평] 6권,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

정말 좋은 말 했다. 그럼 독일에서 돌아오길 바란다. 와서 싸우고 봉사하길 바란다. 난 진중권에게 대단한 학문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일 가서 열심히 공부해 학계에 오래도록 빛날 별로 남아주길 바란다. 그런데 요즘 비싼 돈 들여 독일 가서 공부는 하지 않고 연일 매체에 나타나 싸움판만 벌이고 있다. 한총련도 항상 실천을 강조한다. 그런 것이 바로 진보라고. 그런 것 하자고 하는 한총련은 파쇼집단이라 욕하더니 다시 PD로 가서는 그런 게 진보라 한다. 이러니 미숙아의 글쓰기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오히려 진중권 비판에 나선 민족해방계열의 최진섭씨는 진중권을 과대평가했다. 진중권이 NL계열 언어를 비판함에 있어 텍스트만을 취급했다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텍스트밖에 없다고 고백한 진중권씨가 텍스트 안팎의 인간을, 그리고 인간의 실천과신념, 눈물과 양심을 읽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기때문이다. (월간 [말] 1999년 4월호, 188쪽)

위에서 강간범의 글쓰기라고 칭했을 정도로 진중권은 텍스트 읽기조차 못하고 있다. 텍스트도 못 읽는 사람에게 신념과 양심을 읽으라니 이거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닌가? 그렇지만 진중권의 성격에 대해서는 제대로 짚었다.

진중권의 심리도 열등감의 표현양태인 냉소주의, 극단적인 단점, 무차별 공격성, 타인학대의 증세가 농후하다. (월간 [말] 1999년 4월호, 192쪽)

한 마디로 이야기해 미숙아란 말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앞서 말한 대로 칸트가 정의한 미성년에 대해 알려줄 테니 검토해 보기 바란다.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 미성년 상태의 책임을 스스로 마땅히 져야 하는 것은, 이 미성년의 원인이 지성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을 경우이다.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13쪽)

진중권 비판을 마치며

사실, 이번 비판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 했다. 장기표 선생님에게는 오랫동안 민주화투쟁에 앞장선 분에 대한 예의로서 보여줘야 할 존경의 표시라도 할 수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영광이었다. 하지만 진중권에게는 그것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조선일보가 아직 굳건히 살아있는 마당에 조선일보 비판에 큰 몫을 한 진중권에게 칼을 겨누어도 괜찮을까라는 조심스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히려 조선일보의 정적을 한 명 제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위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비판은 지식인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깨어있는 전 지식인과 전 매체가 달려들어야 한다. 오죽하면 강준만이 조선일보 비판을 위해서 손호철과도 연대한다고 했겠는가? 그렇다면 조선일보 비판을 중단한 채, 무차별 지식인 비판을 일삼고 있는 진중권은 더 이상 조선일보 타도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진중권이 조선일보에게 공격당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한 것이다. 진중권은 이런 정신상태로 글을 썼다.

강준만과 같은 자유주의자를 논적으로 갖게 된 것은 좌파에게 축복이다.

이 문장이 하루 빨리 이렇게 바뀌기 바란다.

강준만과 같은 자유주의자를 조선일보 타도의 동반자로 갖게 된 것은 좌파에게 축복이다.

진중권은 논적으로서인지 동반자로서인지 모르겠지만 강준만에게 '준법서약서 철폐'에 나서라는 단 한 가지 요구만을 했다. 거창한 좌파 지식인치고는 참으로 쉬운 요구였다. 그래서 나도 진중권에게 요구하기로 했다. 세 가지다.

첫째, 조선일보 비판에 충실하라.
둘째, 아군과 적군을 가려라.
셋째, 휴머니즘적인 방법의 차별 철폐 운동을 제발 보여줘라.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내가 상당히 무례한 표현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것은 모두 진중권에게서 배웠다는 것이다. 이 글을 마치는 즉시 다 잊어버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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