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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독’ 열풍이다. 한의사, 의사, 다이어트 전문가 등 다들 “독소”와 “해독”을 외쳐대며 한 몫 챙겨보겠다고 나선다. 서점에는 해독을 내세운 책들이 즐비하고, 케이블 방송뿐만 아니라 KBS <생로병사의 비밀>, EBS <다큐프라임> 같은 공영방송 프로그램까지 해독 미신에 취했다.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데, 방송에는 사이비과학이 설친다. 언론도 전문가도 이를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일부 의사와 교수들까지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한 몫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해독 미신을 파헤쳐보자.

조선시대 천연두와 독

독소와 해독이라는 개념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두창, 창진, 마마라고도 불린 천연두는 치사율이 30%에 달하는 인류에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세종대왕도 동생과 두 아들을 천연두로 잃었다.

조선시대에는 천연두가 태아 때 삼킨 독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했다.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더러운 것을 먹어서 오장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태어날 때에 아이의 입속에 불결한 것들이 있다가, 아이가 울음소리를 한 번 내고 호흡함을 따라서 아이의 장 속으로 들어가 숨어 있으면서 나타나지 않는다. 풍한 같은 사기를 만나면 더러운 기운이 서로 엮여서 두창을 이룬다."
- <언해두창집요> (1608년)

태아 때 삼킨 독이 원인이라는 설명은 모든 사람이 천연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나타낸다. “풍한 같은 사기를 만나면”이라는 구절은 천연두가 전염되어 집단적으로 발병하는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나쁜 기운이 휩쓸 때 태아 때 독을 삼킨 사람은 천연두가 발병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한의학에서는 천연두의 예방책으로 출산 시 태아의 입 속의 오물을 제거하고 한약으로 입을 닦아 독소를 제거하도록 했다. 당대의 한의사들도 요즘 유행하는 ‘독소’와 ‘해독’의 관점으로 접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연두는 더 이상 독소와 해독으로 설명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바이러스와 독소, 백신과 해독을 대응시키기에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천연두의 원인이 독소가 아닌 바이러스 감염임이 밝혀지면서 현대의학은 백신을 이용해 천연두를 멸종시켜버렸다.
 



모든 문제는 ‘독소’ 탓?

‘독소’와 ‘해독’은 천연두 말고도 어디든 가져다 붙이기 좋은 단어이다.

머리가 빠져도 독소 탓, 살이 쪄도 독소 탓, 여드름이 나도 독소 탓, 우울증이 생겨도 독소 탓을 하면 된다. 심지어 EBS에서 다큐멘터리 방송을 책으로 엮은 <독소의 습격 해독 혁명>에서는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에도 원인불명으로 남아있는 만성피로증후군이 독소 때문이라고 허튼 소리를 한다.

그런데 독소 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독소”가 어떤 물질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틀렸다고 들통 날 위험이 크지만 주장이 애매모호하면 빠져나가기 쉽다.

해독을 주제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인 <서재걸의 해독주스>에도 어떤 독소가 있고 어떻게 해독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21세기는 과학의 시대이기 때문에 “독소”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으면 마지못해 활성산소, 환경호르몬, 식품첨가물, 농작물에 뿌려진 살충제 따위를 댄다. 간혹 과학자들의 새로운 연구결과에서 다룬 물질들을 자신이 말해온 독소라고 주장하며 그 연구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아전인수 격의 주장을 하기도 한다.

비과학적 주장을 조사하고 과학적 사고를 전파하기 위해 6천 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연합해 만든 Sense About Science에서도 독소와 해독의 허구성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독소를 내세우는 장사꾼들마다 독소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라고 지적했다.

‘해독’이 답이다?

어쨌거나 문제의 원인이 독소임을 알았으니 해독을 하면 된다. “해독 다이어트”, “해독 주스”, “해독 팩”, “해독 마사지”, “해독 체조”, “간 해독”, “장 해독” 너도나도 해독이다.

도대체 생체 내에서 어떤 대사 회로를 거쳐 해독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촉진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이따금 과학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간세포의 해독작용 따위를 예로 들며 해독은 건강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생리작용이라고 설명을 한다. 과학적 근거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닌, 과학적으로 위장하기 위한 아전인수 격 해석일 뿐이다.

의사들까지 방송에 나와서 해독을 엉뚱한 의미로 사용하지만 임상의학적 관점의 해독은 중독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독사에 물린 환자에게는 뱀의 종류에 따라 뱀독소에 대응하는 해독제를 주사해 독소를 중화시키는 것처럼 특정 독소에 대한 해독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해독제가 따로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접 해독을 시켜주지 못한다. 독극물을 삼킨 환자에게 위세척과 관장을 시켜 독소의 체내 흡수를 최소화시키고 인체가 스스로 독소를 분해하고 배출시켜 이겨낼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수준에 머무른다.

자칭 ‘해독 전문가’들의 처방이 진짜로 독소를 배출하거나 분해시키는 비결이라면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배워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독전문가들은 응급실의 중독환자들을 치료해 낼 능력이 없다. 시중에 판매되는 여러 가지 해독 제품이나 해독 식단 따위도 마찬가지다.

독소에 대한 오해

독은 온 천지에 널려있다.

해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식품첨가물이 들어있는 음식을 피하고 야채와 과일, 가급적 유기농 식품을 섭취하라고 말한다.

과학자들도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유기농을 선택하라거나 식품첨가물을 피하라는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를 둔 주장이 아니다. 특정 첨가물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에는 피해야 하는데 합성이라 나쁜 것이 아니다. 합성화합물이 아닌 천연 식품이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합성물질은 독소이고, 천연물질은 해독을 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천연 식물에도 독소가 가득하다. 식물은 동물을 먹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하면 뜯어 먹히는 것이다. 때문에 식물들은 우리 인간 같은 동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독소를 만들어낸다. 또, 곤충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살충성분을 만들고, 곰팡이 같은 미생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독소를 만든다.

양배추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천연 독소 50여 가지를 테스트 한 결과 반 이상이 쥐에게 암을 일으켰다.

커피에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이 있는데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발암성 여부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쥐 실험을 통해 발암성을 테스트 한 결과 21가지가 발암성분으로 확인되었고, 8가지가 발암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약으로 사용되는 합성 살충제들 중에서도 쥐에게 암을 유발하는 물질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1년 동안 농작물을 통해 섭취하는 합성 발암물질의 양은 커피 한 잔에 들어있는 발암물질 정도의 분량밖에 안 된다.

우리는 공해물질, 농약, 합성 첨가물보다 식물과 미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천연 독소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김치 같은 발효식품에는 원재료가 가진 독소 외에도 발효과정에서 히스타민 같은 아민계 화학물질이 생성된다. 아민은 체내에서 발암성을 가진 니트로사민으로 변환되기도 한다.

독소를 걱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독소에 노출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양에 노출되는지가 문제다. 많은 양이 아니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진화과정을 통해 독소를 해독시킬 능력을 갖추었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독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멀쩡하게 잘 살아간다.

오히려 현대인은 과거보다 독소 노출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식물은 해충이나 미생물의 공격을 받을 때 독소를 더 많이 만드는데 인간이 농약을 이용해 보호해주기 때문에 독소를 적게 만든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은 독소가 적어 쓰거나 떫지 않도록 개량되었다. 독소를 가장 적게 만들어내는 시기에 출하해 가장 먹기 좋은 때 먹지만 옛날 야생에서 살던 조상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그냥 닥치는 대로 먹어야만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냉장고를 이용해 음식에 세균과 곰팡이가 자라지 못하게 보관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독소를 최소화하고, 발효나 조리 과정에서의 독소 발생을 최소화시키는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독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부추기는 방송

독소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원인은 방송도 크게 작용한다.

작년 방영된 KBS <생로병사의 비밀>의 독소 편에서는 인스턴트식품을 독소로 가득한 해로운 음식으로 묘사했다. 워싱턴 대학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햄버거와 콜라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게 했더니 독소가 건강을 망가뜨렸다고 소설을 지어냈다.

실상은 이렇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독소가 아닌 비만을 주제로 연구했다. 비만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세 달 동안 매일 1천 칼로리를 추가로 섭취하게 했다.

패스트푸드를 먹으라고 한 이유는 햄버거 세트가 정확한 칼로리와 영양성분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연구책임자인 Samuel Klein 교수는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정확한 칼로리와 영양성분 비율을 알 수 있고, 아주 저렴하면서도 간편하고 맛있게 사람들에게 추가 칼로리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며 이 점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즉, 모든 실험참가자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1천 칼로리를 추가로 섭취시키는데 적합했기 때문이지 패스트푸드의 독소 따위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Klein 교수는 비만이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을 설명하며 간에 지방이 쌓이는 사진을 설명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워싱턴대 장면을 끝마치며 “패스트푸드 역시 우리 몸에서 많은 해독을 필요로 하는 음식. 결국 다량의 섭취는 간 기능 이상으로 이어진다”라는 엉뚱한 주장으로 정리했다.

워싱턴대에 직접 가서 촬영을 했던데 연구진이 이렇게 왜곡된 방송이 나간 것을 알고 있을지, 알았다면 얼마나 황당해할지 궁금하다. 방송에 과학자가 얼굴을 비추었다고 해도 그 방송은 비과학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MBN <엄지의 제왕>에서는 ‘피 해독’이라는 황당한 주제를 방송하면서 해로운 식단이 피를 탁하게 만들었다는 화면을 내보냈다. 방송에서 박상준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왼쪽은 맑은 피고, 오른 쪽은 기름진 음식을 먹은 나쁜 식습관 탓에 혈관에 독소가 쌓이게 되는 탁한 피라고 설명한다. 방송에 출연한 의사와 한의사들은 다 같이 피 해독이 필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하고 감염으로부터 대응해야 하는 혈액이 맑고 깨끗하면 좋을 리가 있을까? 인체는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음식을 며칠 달리 먹었다고 피가 이렇게나 많이 달라져서 되겠는가?

위 두 혈액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탁해진 혈액을 해독시켜서 맑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른쪽 혈액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려 혈소판 등을 가라앉히면 왼쪽의 맑은 혈장이 분리된다. 기본 상식의 문제다. 독소나 해독 따위와는 일절 관계가 없다.

대개 사람들은 방송이 신뢰할만하고 권위있는 매체라고 생각하지만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방송을 제작하는 PD나 방송작가들은 전문가가 아니며 일반인의 수준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시선에서 방송을 계획한다. 언급한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수준미달인 경우도 많다.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충분해

해독을 하겠다고 유난떠는 짓은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의료기관 중 하나인 Mayo Clinic 홈페이지에서는 생야채나 주스, 약초(한약) 등을 먹는 해독 다이어트가 과학적 근거가 없고, 영양 불균형과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하는 이유는 해독 작용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몸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성분들을 충분히 섭취하기 위해서다. 과학자들은 번거롭게 해독 주스 따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늘리고, 기름기와 나트륨을 줄이면 된다. 쓸데없는 짓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독소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해독을 따질 이유도 없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항상 독소에 노출되어왔고 그것을 처리해낼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기능이 무너졌거나 건강에 해를 줄 정도로 많은 양의 독소에 중독됐다면 해독을 시켜준다는 미신에 따를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독소에 대한 걱정을 떨쳐낼 수가 없어 무엇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면 암의 가장 큰 원인에 속하는 1급 발암물질인 술과 담배부터 멀리 하는 게 좋다.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이사 (webmaster@i-sb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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