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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한의학을 비판해온 문화비평가이자 과의연 특보인 서범석님의 시리즈 한의학 비판 글인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입니다. 서범석님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필치에 더해 한의학 문제를 바라보는 보다 풍부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귀한 원고를 투고해주신 서범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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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를 더 진행하기에 앞서서 잠깐 고대 문명으로 눈을 돌려보자. 주지하다시피 모든 인류 고대 문명은 강을 끼고 부흥하였다. 수분 섭취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므로 당연하다 할 것이다. 생로병사 또한 자연의 섭리라, 인간들이 모인 강 주변에서 토착색이 반영된 고대의학들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고대의학들 중 인체를 보는 관점이나 이론의 유사성에서 ‘고대중국의학’과 쌍벽을 이루는 것은 단연 ‘고대인도의학’이다. 이 둘이 대체 얼마나 비슷한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인간의 몸에 ‘(피의 흐름과는 무관한) 별도의 에너지 통로가 있다’라는 것이 고대 중국인들의 아이디어였다. 신묘한 에너지인 기(氣)가 흐른다는 통로를 경락(經絡), 경락 중에서도 특히 에너지가 모여있다는 지점을 경혈(經穴)이라 칭했다. 인도에도 ‘아유르베다’라는 고대 의학 체계가 있다. 인도 내 각종 요가 분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서 그들 특유의 문화를 형성한 것인데, 이들 역시 인체에 모종의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 및 센터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 에너지 센터의 명칭이 바로 ‘차크라(Chakra)’다. 차크라에서 ‘나디(Nadi)’라는 통로가 뻗어나오는데, 이 통로를 타고 ‘쁘라나(Prana)’라는 정체 불명의 신묘한 에너지가 흐른다. 이 정도면 고대중국의학과 고대인도의학의 기본 인체관은 일란성 쌍둥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이름은 달리 작명할 수 있는 거니까. 이를 표로 비교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다른 지역의 인체관은 이 둘과는 상당히 다르다. 예컨대, 나일강 유역에서 발전한 ‘고대이집트의학’의 경우, 메디컬 파피루스(Medical Papyrus)의 형태로 당대 의학 지식을 남겨놓았는데, 현존하는 모든 메디컬 파피루스(Medical Papyrus)를 뒤져보아도 인도나 중국에서 발전한 것과 같은 사고 방식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유사점이 있다면, 나일 강이라는 ‘통로’에 흐르는 물이 대지를 비옥하게 하듯이, 인체에도 피나 물 등을 공급해주는 모종의 ‘통로’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정도이다. 나일강이 막히면 곡물이 자랄 수가 없는 것처럼 인체에 있는 ‘통로’가 막히면 사람이 병들게 된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하지 않은가. 모든 문명의 근간인 강. 강의 범람 주기나 그에 따른 풍토병으로 고생했을 고대인들에게 이 강이라는 존재는 실로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점은 여기까지이다. 고대 이집트 의학은 인간의 몸 안에 모종의 통로가 존재한다는 기본 착상만 비슷할 뿐, 그 통로에 흐른다는 신묘한 에너지인 ‘기(氣)’나 ‘쁘라나(prana)’를 소통시켜야 한다는 고대중국의학, 고대인도의학의 주장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통로가 막혔을 경우 설사제를 주어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고 소박하게 생각한 것일 뿐이다. 즉, 이집트인들이 말한 ‘통로’란 현대적 명칭으로는 소화계 정도를 의미한다. 입으로 음식물을 먹으면 항문으로 나오고, 창칼에 찔리면 피가 뿜어져 나오니 경험적으로 이를 관찰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소박한 추론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대 이집트 의사들은 인간의 몸에 관해 해박한 해부학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이 중국이나 인도와는 가장 다른 점이다. 특히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Edwin Smith Papyrus)’ 집필자의 경우, 막연하게나마 심장 순환계의 존재까지 인식하고 있을 정도.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란 ‘고대 이집트 제2 중간기, 16∙17왕조 시대(기원전 160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이다. 학계에서는 그 전에 이미 존재하였던 문헌들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원전 3000년까지 올라간다. 총 길이 4.68m에 달하는 이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의 외과적 의료처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왜 그럴까?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나 ‘런던 메디컬 파피루스(London Medical Papyrus)’ 같은 것들에는 질병을 일으키는 악령을 몰아내기 위한 치유 주문 등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지만,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에는 외상에 대한 합리적 처치법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Edwin Smith Papyrus)’ 오른 쪽 부분에는 48개의 부상별 검사, 진단, 예후 및 처치가 기록되어 있다. 봉합물로 상처 부위를 감싼다, 꿀을 발라 감염을 막는다, 날고기를 붙여 출혈을 막는다, 골절에는 고정법을 쓴다는 등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더욱이, 두개골 봉합선, 뇌척수막, 뇌척수액 등에 관한 해부학적 관찰 기록까지 적혀 있다. 모두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는 최초의 것들로 친다. 학계에서는 이 파피루스에 기록된 사례들이 매우 실용적이라 이 파피루스가 전쟁에서 외상을 입은 병사들을 치료하는 데 쓰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집트 문명 특유의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해부학적 지식이 추가적으로 습득되었을 것이다.

결국 몸을 대하는 지역 문화의 차이가 고대 의학간 특징을 구별지었던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고대 이집트의 의자들이 고대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데는 이러한 인체 지식 덕이 컸다. 근육이나 뼈의 구성, 가슴에 난 상처를 통해 심장이 뛰는 것까지 보았을 정도로 구체적인 경험을 했던 그들로서는 대뇌피질의 사변적(思辨的) 원리에 의존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 점이 중국 및 인도와 결정적으로 갈리는 부분이다.

고대이집트의학은 돌고돌아 고대그리스의학에까지 영향을 끼쳤지만, 외과적 처치의 구체성은 1000년 뒤를 살았던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를 오히려 능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현대과학기반의학(MSBM)’ 관점에서 볼 때 고대이집트의학 역시 다른 고대의학들과 마찬가지로 효과가 있는 것보다는 효과가 없거나 유해하며 심지어 주술적이기까지 한 것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사혈법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말까지, 근 3000년 동안 서양에서는 피 뽑기나 사혈을 치료법으로 여겼다. 과거 서양인들은 혈액을 신성한 액체로 보았기 때문에 짐승의 피를 마시는 습속이 있었다. 또 혈액을 열의 상징으로 보고 당시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던 열병이 생기거나 돌림병이 돌면 맨 처음 한 일이 환자의 피부터 뽑는 것이었다. 이러한 치료법을 퍼뜨린 최초 정신감염원이 바로 고대 이집트인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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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로필 :

퇴몽사(退蒙士) 서범석

현재 모 고등학교에서 입학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기여활동으로서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홍보특별보좌관’도 겸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성균관-조지타운 대학교 TESOL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넘게 중증 아토피로 고생하며 여러 대체 의학을 접했지만, 그 허상에 눈을 뜬 후 사이비 의‧과학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몽매주의’를 퇴치하는 번역 및 집필 작업에 뛰어들었다.

저서: Q&A TOEIC Voca, 외국어영역 CSI(기본), 외국어영역 CSI(유형), 외국어영역 CSI(장문독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시리즈 / 서범석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특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 : 왜 '한의학'을 '고대중국의학'이라 불러야 옳은가?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2) : 도올 조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3)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4)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②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5) : 뜸사랑 체험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6) : 세계 보건기구(WHO)의 경혈 위치 표준화 작업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7) : 경락 대뇌피질 기원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8) : 컨디셔닝, 플라시보, 노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9) : 고대중국문명의 플라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0) : 고대중국의학의 현대적 적응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1) : 고대중국의학의 효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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