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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고 말들이 많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필즈상도 수상자가 없다. 우리나라의 국가 규모를 생각했을 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과학자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세계 최고라고 공인받은 과학자가 없다는 데 국민들의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 매체를 보고 있으면 노벨상 정도는 우스운,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발견을 한 과학자들이 여럿 보인다. 몇몇 기자들과 언론사가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발굴한 것 마냥 들떠서 찬양하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

국내 언론 말대로라면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했던 일을 해냈다는 ‘국산’ 영웅들의 실체를 벗겨보자.

인류를 에너지 걱정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시켜 줄 ‘무한동력 영구기관’

올해 <뉴시스>는 국내의 한 발명가가 ‘무한동력 영구기관’을 발명했다는 기사와 지지하는 칼럼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그 중 한 기사의 제목을 보자. “무한동력 영구기관 발명, 인류 연료걱정 해결…1경5천조원 가치" 전 세계가 깜짝 놀라 뒤집어질 일이다.

발명가 김광호씨가 40년간의 연구 끝에 전력을 넣으면 그보다 더 큰 전력이 나오는 장치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전설의 화수분이 따로 없다.

<뉴시스>의 신동립 문화부장은 김광호씨의 대통령에 대한 호소를 전하며 “대통령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람은 모름지기 없을 것이다”라는 이상한 근거까지 들먹이며 지지하는가 하면 “완벽한 무한동력 영구기관, 외국 줘야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국민을 속이는데 자주 쓰이는 ‘국익’과 ‘애국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에너지는 형태를 바꿔가며 전환되거나 질량이 붕괴될 때만 나올 수 있다는 물리학 법칙을 고작 무명의 발명가가 깨뜨리고, 증거가 충분한데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주장을 믿어야 할까? 이걸 믿는 일은 순진하다기 보다는 미련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나 싶다.

김광호씨가 내세우는 근거는 1500W 모터를 돌려 발생시킨 전기로 20W 전구 2800W 만큼에 불이 들어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구에 불을 켜는 쇼는 순진한 투자자나 과학에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언론인의 주목을 끄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생산된 전력량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소꿉장난은 집어 치우고 전력이 얼마나 생산되는지 측정치를 보여주면 간단히 해결된다.

물리학계를 뒤흔들 ‘제로존’ 이론

2007년 <신동아>는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재야 과학자’가 주장한 이론을 ‘노벨상 0순위’ ‘아인슈타인의 한계를 뛰어넘다’라는 낯 뜨거운 수식어까지 사용해가면서 대서특필했다. 치과의사 출신의 아마추어 과학자 양동봉씨가 이론물리학계를 뒤흔들 굉장한 이론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당시 단국대학교 부총장이었던 전기전자공학 박사 오명환 교수는 “라이프니츠, 괴델과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파인만을 비롯해 수많은 선대 물리학자들이 시도했던 꿈의 검증방식”이라며 제로존 이론이 물리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제로존 이론에 대해 정부차원의 지원을 검토하자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한국물리학회는 과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숫자놀음, 엉터리 이론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일부 언론매체와 네티즌들은 '기존 과학자 집단이 아집으로 뭉쳐있다'며 비난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검증 안 된 주장을 찬양하는 언론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계속되어 2010년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에서 토론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과총이 사이비과학을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열린 마음’ 운운하며 제로존 이론을 지지해오던 <전자신문>은 토론회 소식을 전하며 “혁신적 아이디어를 좀처럼 못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논쟁이 지속된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제로존 이론을 둘러싼 논란이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과총 토론회 보도 이후로 어떤 매체에서도 언론이 만들어낸 ‘위대한 이론물리학자’ 양동봉씨와 제로존 이론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생물학과 의학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을 인물, 최원철

제로존 양동봉씨는 <신동아>가 띄웠다 꺼져버린 영웅, 무한동력 영구기관 김동봉씨는 <뉴시스>가 띄우려는 영웅이라면, 더 파급력이 큰 현재진행형의 영웅이 있다. 1997년 <경향신문>을 비롯해 현재까지도 여러 언론에서 찬양을 마지않는 ‘살아있는 영웅’이다.

1997년 <경향신문>은 광혜원 한방병원 원장이었던 현 단국대 책임부총장 최원철 교수가 소변검사나 혈액검사로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기술과 장비를 개발해 임상시험에서 입증했다고 보도했다. 최 교수는 인터뷰에서 “각종 암질병 표준코드를 입력한 양자공명분석기에 환자의 소변이나 혈액을 넣어 나타나는 반응을 살펴보면 암질환을 쉽게 식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가 근거로 내세운 원리는 ‘파동 의학(radionics)’이다. 그는 인체의 각 장기나 암세포는 고유의 파동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파동 공명 분석기’를 이용해 소변이나 혈액에서 간암세포나 위암세포 등의 파동 혹은 기감(氣感)을 분석해 간단히 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주장했다. 또 에너지 파동을 인체에 전달해 치료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런 주장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의학, 생물학, 물리학 전문가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다. 이론도 엉터리일뿐더러 현재까지도 파동의학을 이용한 진단이나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인정받은 적도 없다.

혈액이나 소변으로 몇 가지 암을 진단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있다. 암세포를 직접 발견하거나 특정한 암세포의 표식이 되는 단백질을 검출하는 방법인데 대개 정확도가 낮고 검출할 수 있는 암의 종류가 많지 않아서 보조적인 수단 정도로 활용된다. 이 진단방법은 파동이나 기감 따위와는 무관하다.

만일 암의 종류마다 고유의 파동이 있고 그것을 이용해 암을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다면 암과의 전쟁에서 한 획을 그을 의학계의 역사적 사건인 동시에 세포와 생명현상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 열려 생물학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정도는 우습다.

이 대단한 발견을 언론과 방송에서 떠들어댔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 교수 본인도 요즘에는 파동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지 않는 듯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슬라이드에 혈액을 도포한 사진에 먼지로 보이는 이물질을 ‘암성 어혈’이라고 주장하며 혈액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점차 자신의 이론을 확장시켜 ‘파루템(parutem)’이라는 존재를 주장했다.

파루템에 대한 그의 주장을 몇 가지 들어보자. “암 등으로 체내가 산성화가 되면 세포 내에 존재하던 미토콘리아가 세포밖으로 나와서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유기체가 되며 파루템이라고 한다.”, “혈액을 전자현미경 등을 이용하여 관찰하여 그 존재를 입증하였다.”, “이는 원시 원핵 수중 유기체에서 보여지는 '역진화(retro-evolution)'와 유사하다.”,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이용해 분자진화 연구를 했던 나에게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이상한 소리로 들리지만, 어쨌거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이 또한 노벨 생리의학상 정도는 우습다.

생체 내에 우리가 모르던 존재가 있고 그것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인데, 그동안 생물학자들이 자기 연구실 안에 토끼들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데도 보지 못하는 정도로 장님이었다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최 교수는 한방 암치료제 ‘넥시아’로 유명하다. 옻나무를 원료로 만든 한약으로 말기암 환자까지 치료한다는 것이다. 넥시아는 1년 이상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고가의 한약이라 1년에 4천만 원 가량의 돈이 든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넥시아 효과에 대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다. 최 교수는 넥시아 치료로 논문을 발표했다고 하지만 “암 환자가 호전되었는데 그 환자는 넥시아를 복용했다” 정도의 의미에 불과해 환자들이 호전된 이유가 넥시아 때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효과를 검증하려면 반드시 적절히 설계된 대조군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최 교수가 효과의 근거라고 내세우는 논문들 중에 효과를 검증하는 방식의 논문은 없다.

그는 언론을 통해 넥시아를 국제화하기 위해 아징스 75(AZINX 75)라는 신약을 개발 중에 있다고 자랑했었다. 신약 개발 단계에서 환자를 상대로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 2상 시험 결과가 2012년에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었다. 임상 2상은 환자들을 상대로 대조군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단계인데 통과하지 못하고 신약 개발은 무산된 상태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언론에 따르면 최 교수는 외국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환자들은 효과가 있으니 외국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 아니겠냐고 믿기도 하지만 그것은 효과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외국 투자자들은 최 교수를 찬양하는 국내 언론과 넥시아에 기대를 거는 수많은 환자들을 효과의 증거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환자 한 명 당 1년에 4천만 원을 벌어들이는 한약을 만드는 인물에게 투자자들은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1천명의 환자를 유치하면 1년에 4백억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옻나무의 원가가 비싸지 않은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순익을 기대할 수 있다.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언론의 헛다리 짚기

백년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위대한 인물들이 우리나라에 여럿 현존하고, 하필이면 그 엄청난 업적이 전문가집단에게 배척당하고, 기자의 날카로운 눈은 홀로 그 위대함을 알아채고, 언론을 본 대중들이 환호하는데도 전문가 집단에서는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벌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는 뻔히 보이는 허황된 주장이, 그래서 전문가 집단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주장이 기초 소양이 부족한 언론인을 통해 엄청나게 부풀려지고 대중들을 현혹시킨다. 대중들의 인기에 불이 지펴지면 아무리 전문가들이 틀렸다고 말해도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순진한 투자자들이나 환자들은 거기에 속아 전 재산을 탕진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비일비재한 언론의 헛다리가 맞으면 엄청난 특종이고 틀리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태도인지, 그저 속아 넘어간 것인지, 뒷돈을 받은 것인지, 어떤 내막인지는 모르겠다. 언론 스스로가 대중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음을 인식하고 섣부른 보도를 삼가야 할 것이다.

이런 보도를 접하는 사람들도 주의가 필요하다. 언론이 아무리 추켜세우고 다른 사람들이 열광해도 그 분야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믿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쉽게 속지 않는 사람들은 언론과 대중이 아니라 그 분야 전문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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