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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왜 퇴출되어야 하는가?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하기 위해 비과학적인 한의학을 국가의료시스템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 글은, 의료일원화국민연대(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전신)가 주최한 국제세미나 ‘2차 의료일원화 국제토론회 - 동양의학! 만들어진 전통인가, 유구한 문화적 유산인가’(2009년 1월 17일, 서울 장충동 만해NGO 교육센터 세미나실)에서 장궁야오(张功耀) 교수가 강연한 원고('나는 왜 중의중약(中醫中藥)을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박혜은씨가 번역하고,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황의원 원장이 편집했습니다. 장궁야오 교수는 중국 중난대학 과학기술사회연구소의 과학철학 전공 교수로, 지난 2006년부터 중국의 국가의료시스템에서의 한의학 퇴출론을 내세워 중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학자입니다. ([니하오 베이징]“중의학이 엉터리라니”)



한의학은 왜 퇴출되어야 하는가?


2006년 10월 6일, 과학철학자인 필자 장궁야오(张功耀)와 미국의 중국계 의사인 왕징(王澄)은, 공동으로 인터넷에서 서명활동을 전개하여, 의료 보건 시스템 개혁 과정에서, 정책을 취해 약 5년의 경과를 거쳐 한의한약을 국가의료시스템에서 퇴출토록 하며, 한의한약이 정부의 감독과 관리를 받되, 정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닌 단지 민간의술이 되도록 하자고 중국 정부에 호소하였다.

이 서명에 참여한 국내외 인사들은 모두 245명이었다. 서명활동 초기에 ‘중국청년보(中国青年报)’에서 한 차례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비록 많은 중국인이 한의학이 “치료효과를 지니고는 있다”고 믿으면서도,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한의학을 실제적으로 선택은 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거의 2년 동안의 중국 국민들의 자발적인 반(反) 한의학 투쟁을 거쳐, 2008년 7월에 장춘 한의약 대학(长春中醫药大学)의 한 연구팀의 조사 통계에 의하면, 한의학이 효과가 있다고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의 수도 2년 전의 87.80%에서 57.82%로 떨어졌다.

우리의 행동은 자연 발생적이면서도 자발적인 의지이다. 우리들은 정부·언론계·출판계로부터의 어떠한 지지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다방면으로 압박을 받기까지 하였다. 우리들의 글은 그저 비난용으로 인용될 수 있을 뿐, 제대로 갖춰 온전하게 발표할 수가 없다. 우리들의 서적은 출판될 수 없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도 녹화될 수 없다. 현재까지, 한의학을 비평한 우리들의 언론(言论)이란 그저 인터넷이라는 경로를 통해 전파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힘은 가로막지 못한다. 우리의 작업이 충분히 효과가 있다는 것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통해 증명되어지고 있다. 중국의 국민은 오랜 기간에 걸친 한의학의 기만(欺骗)에서 깨어나고 있다.

어떤 이는 늘 내게, 당신은 도대체 왜 한의한약이 국가의료 시스템에서 반드시 퇴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라고 묻곤 한다. 이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1. 고대 허위 의학으로서의 한의학

세계적 범위에서 다양한 전통 의학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의학은 일찍이 인류가 질병을 정복하는데 있어 불멸의 공헌을 한 바 있다.

프랑스 전통 의학에 근거하여 류머티즘(痛風)을 치료해내는 콜키세인(colchiceine)이 개발되었고, 아프리카와 스페인 전통 의술을 근거로 남성의 발기불능을 치료해내는 요힘빈(yohimbine)이 개발되었으며, 스웨덴의 전통 의학에 근거하여 여성의 성적 불감증을 치료해내는 다미아나(damiana)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인도 전통 의술을 근거로 정신 분열증을 치료하는 레세르핀(reserpine)이 만들어졌다. 또한 남미아메리카 전통 의술에 근거하여 암을 치료하는데 흔히 사용되는 약 카타란틴(catharanthine)을 개발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예가 바로 전통 의학의 공헌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역시 전통의학인 한의학의 경우는 그 치료법에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그 어떤 다른 나라의 전통의학과 같은 현대적 가치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있다.

에페드린과 알테미시닌

어떤 사람은 일찍이 일본 의사 나가이 나가요시(长井长义)가 마황(麻黄)으로부터 에페드린(ephedrine)을 추출하여 천식(asthma)을 치료한 것을 놓고 고대 한의학의 공헌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과학사 연구를 하는 필자로서는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리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여긴다.

고대 한의사는 무분별한 방식으로 마황(麻黄)을 사용하였다. ‘본초강목(本草纲目)’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마황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30여 가지이지만, 그 안에 천식(asthma)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청조(清朝) 때 편집 출판된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古今图书集成·醫部全錄)’에는 천식을 치료하는 처방제가 96가지 수록되어 있는데, 고작 20가지의 처방제에서만 마황을 사용하였다. 게다가 이 20가지 처방제 모두 마황을 주요 성분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 외에, 중국의 가장 저명한 학자의 세밀한 선별 편집을 거친 이 한의학 저작 대전서(大全書)에는 또한 천식을 치료하는 민간처방이 44가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들 역시 마황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로써 고대 한의사들은 마황이 기관지를 확장하고 천식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한의학이 인류 의학에 공헌한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예로, 중국인이 거의 3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개사철쑥(sweet wormwood herb)에서 알테미시닌(artemisinin)을 추출해낸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학질(말라리아)를 치료하는데 쓰이는 약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비록 이러한 성과가 중국에서 나왔다고 해도 한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의학의 질병 분류 속에는 ‘학질류(疟门)’가 있다. 그러나 ‘학질류’의 질병에 넣는다고 해서 결코 학질(malaria)은 아니다. 한의학 서적에 의해 ‘학질류’에 속하는 질병의 주된 증상으로는 발열, 두통, 사지 기력 쇠퇴, 한기, 갈증, 코막힘이 있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증상을 띠는 질병을, 한의사들은 모두 ‘학질류’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학질 원충(protozoan parasites)’에 의한 감염과 그로 인해 발발한 학질에 대해, 한의사들은 오늘까지 최소한의 인식마저도 결핍되어 있다.

1693년, 청조(淸朝)의 강희(康熙) 황제는 “학질에 걸렸다.” 그것은 명확하게 현대 진단학적인 의미에서의 학질에 속한다. 당시 중국의 모든 궁정 어의들과 민간 한의사들은 황제가 앓고 있는 학질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만일 고대의 한의사들이 일찍 쑥(青蒿)으로 학질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강희 황제는 프랑스 선교사가 처방한 기나피(cinchona) 분말가루를 먹지 않고도 건강을 회복했을 것이다.
 



한약의 위험한 독성 문제

세계의 다른 민족의 전통 의술(传统醫术)과 서로 비교하여, 한의학은 효과가 있거나 안전한 의술이 결코 아니다. 한의약의 품질 보증은 한층 더 엉망이었다. 실제로 한의사는 오늘까지도 약물독소와 약물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한의학은 말로는 납득시킬 수 없는 수많은 제조 방식을 갖고 있다. 동물의 대소변, 곤충의 시체, 빗에 묻어 있는 때, 길에 버려진 낡은 짚신, 이 모든 게 한의사에게는 약으로 쓰이는 것들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더러운 것들을 약에 집어넣으면서, 오늘까지도 아무런 실험근거나 관찰근거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그 어떠한 안전성 논증 또한 행한 바 없다.

국제의학계에 의해 폭로되어진 유해(有害)한 한의약에 대해 한의사는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도, 성실하게 연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대내적으로는 정보를 차단하고, 대외적으로는 이를 폭로하는 자를 단속하였으며, 심지어는 전혀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파렴치에다가 교활하게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한다. 이로써 국제 사회에서 악명이 높은 쥐방울덩굴과(Aristolochiaceae 혹은 Birthwort) 식물이 약으로 쓰이는가 하면, 중금속이 국제 표준의 17만배를 초과한 복방(復方) 노회(芦荟) 캡슐이나, 비소(As) 함량이 14.7배나 초과한 관심소합환(冠心苏合丸) 등과 같은 약이 중국에서는 오늘까지도 사용금지 되지 않고 있다.

한의학의 치료 효과를 믿을 수 없음에 따라 한의약(中药)의 안전성과 품질은 보장받을 수 없는데, 이는 한의한약이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위험과 낭비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다음의 예가 가장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2006년 8월, 하북성(河北省) 행당현(行唐县) 용강(龙岗) 보건소(卫生院)의 염산천(阎山川) 노(老) 한의사는 자신의 환자 학숙금(郝淑琴)을 본의 아니게 독사(毒死)시키고 말았다. 그 후에, 염(阎)의사는 자신의 결백과 자신이 수십년간 행한 의술을 증명하기 위해, 학숙금이 복용한 같은 한의약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독사시켰다.

자원을 허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명안전까지 위협을 하는 전통의학은 우리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킬지언정, 우리에게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는 없다.

의사는 본디 숭고하고 성스러우며 위대한 직업이다. 우리들은 일찍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복음의 전통의술에 대해서는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의사의 가운을 걸치고 있는 몇몇 사기꾼에 대해서 예를 갖출 필요는 없다. 또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위험한 의술에 대해서 잘못을 덮어주거나 눈감아 주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다.
 



의학의 역사

본능의학(本能醫学)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 혹은 타인의 의사였다. 이후 점차 뚜렷한 의식을 갖고서 천연 동식물 혹은 광물을 이용하여 질병을 정복하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야생 식물을 이용해 질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역사는 8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57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의 고고학자 솔레키(Ralph Solecki,1917~)가 이끄는 고고학 연구팀이 이라크(Iraq) 동부 쿠르디스탄(Kurdistan) 내의 자그로스 산맥(Zagros Mountains)의 북쪽 산기슭에서 후기갱신세(Late Pleistocene)의 인류 동굴 유적지를 발굴하였다. 이 동굴은 샤니다르 동굴(Shanidar cave)로 불리는데, 이 동굴 안쪽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8만년이나 떨어진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이 죽은 자가 매장되면서 고대 이라크인들이 일찍이 사용한 바 있는 8종의 약초도 함께 묻혔다. 이 약초들이 인류 최초로 야생 식물을 사용하여 질병을 정복한 증거이다.

어떤 학자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Lascaux caves) 벽화에 구석기 시대의 프랑스인이 일찍이 식물을 이용해 병을 치료한 흔적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라스코 동굴에 기록된 인류 문명은 지금으로부터 가깝게는 13,000년 전(前)이라는 시간에, 멀게는 25,000년 전이라는 시간에 닿아 있다.

1991년 9월에, 지금으로부터 5,300년 된 자연 그대로(天然)) 미라(mummy)가 알프스 산맥의 외치(Otztal Alps)에서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미라를 “냉동 인간 외치(Otzi the Iceman)”로 부른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은 이 냉동인간 외치가 죽은 후에 곧바로 저온의 환경에 놓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체의 보존 상태가 온전하며, 피부는 여전히 탄성(弹性)을 지니고 있었다. 냉동인간 외치를 해부해보고서 이 자연 그대로의 미라의 장(肠道) 속에 편충(鞭虫)의 시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 위(胃) 속에는 오스트리아인이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는 기생충을 없애는 약초가 들어 있었다.

이라크, 프랑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옛 조상들이 일찍이 식물을 이용하여 질병을 정복했던 것처럼, 중국 고대 사람들 또한 이러한 방법을 시행을 행한 바 있으며, 또한 일부 치료 효과를 얻었던 적이 있음이 틀림없다. 중국의 일부 역사서, 예를 들어 ‘성씨고략(姓氏考略)’, ‘산해경(山海经)’, ‘설문해자(说文解字)’와 같은 역사서는 서로 답습해가며 “무당 팽(彭)이 의(醫)를 행하다(巫彭作醫)”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기록을 지지할만한 어떠한 독자적인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위서(僞書)의 가능성이 큰 한의학 의서들

현재까지도 여전히 중국에서 폭넓게 읽혀지는 ‘신농본초경(神农本草经)’은 신농씨(神农氏)에 의해 저술된 게 아니라, 150년경의 몇몇 지식인들이 신농(神农)의 이름을 빌려 허위로 조작한 것이다. 양(梁)나라 학자 완효서(阮孝绪)의 폭로에 의하자면, ‘신농본초경’을 위조한 게 다름 아닌, 당시 한의사들에게 “의학의 성현(醫圣)”로 불리어지는 장중경(张仲景)이었다.

마찬가지로 ‘황제내경(黄帝内经)’ 또한 황제(黄帝)가 쓴 게 아니다. 서한(西汉) 역사학자인 사마천(司马迁)의 ‘사기(史记)’에 기록된 ‘황제내경’은 모두 18권이다. 양(梁)나라에 들어서 '황제내경'은 9권으로 감축된다. 그리고 약 200년이 지나, 당(唐)나라의 왕빙(王冰)이 제멋대로 그것을 24권 81편으로 보충하였다. 원(元) 나라에 전해진 '황제내경'은 12권이다. 명(明) 왕조에 이르러서 '도장(道藏)' 본(本) '황제내경'이 50권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혼란스럽게 유행한 한의학 서적을 의외로 한의사들은 “한의학의 경전(中醫聖經)”으로 받들었는데, 사실 무척이나 불가사의한 일이다.
 



많은 문헌과 문물 증거들은 한의학이 실제적으로 뒤늦게 일어난 의학임을 밝히고 있다. 더욱 지적할만한 것으로는, 중국 고대의 의술은 본래가 꽤 낙후되었으며, 심지어는 무척 우매하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동한(东汉)에 이르러, 일부 무책임한 지식인들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 민간의술의 경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와 환상과 직관에 근거해 의학 사업에 종사하는 잘못된 길을 걷다가, 끝내는 허위의학(伪醫学)으로 변질되었다는 것 또한 지적할만하다. 스스로 체계를 만든 이 허위의학은 사상에서 방법에 이르기까지 줄곧 잘못 전해져온 특징을 유지하면서 오늘날까지 추호도 바뀌지 않고 있다. 현대 한의학의 위험(危害)은 고대 한의학에 비해 보다 더 큰데다가 기만성(欺骗性)마저 띠고 있다.


2. 한의학의 인식론 기초와 그에 관한 비판

가령 이전에 어떠한 징후도 없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돌연 두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면, 더더구나 한의사의 손 위에 놓인다면, 이 한의사는 이 환자를 어떻게 치료(處置)할까?

우선 그는 거드름을 피워가며 이해도 되지 않을 몇몇 허튼 소리를 지껄여서 이 환자에게 아주 그럴 듯하게 병의 원인에 대해 “비장(脾)은 모든 음(阴)의 으뜸(首)이며, 눈(目)은 혈맥(血脉)의 근본(宗)입니다. 그러므로 비장이 허(虚)하면 곧 오장(五脏)의 정기(精氣)는 모두 그 본분을 상실할 것이며, 실명(失明)할 것입니다”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런 다음 옳다고 여기는 그들만의 치료 원칙인 “풍(風)을 없애서 비장(脾)을 깨끗하게(清) 하고, 담(胆)을 이롭게(利) 하여 습한 기운을 제거하며, 간(肝)을 씻어(泻)내어 화(火)를 다스린다(祛风清脾、利胆除湿、泻肝降火)”를 명확하게 논할 것이다. 듣건대, 한의사는 거의 이러한 안질(眼病)의 ‘표(标)’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본(本)’까지도 이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의미 없는 허튼소리다.

그 다음으로, 침구에 대해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부 한의사들은 이 환자에게 침을 놓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혈(穴位)은 눈 주변의 정명(睛明), 승읍(承泣), 어요(鱼腰), 구후(球后)일 것이다. 더군다나 스스로 총명하다고 여기는 한의사는 눈에서 약간 더 먼 태양(太阳), 풍지(风池), 예명(翳明), 합곡(合谷) 등을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황당한 침구 치료법은 이 안질을 치료하는데 있어 어떠한 긍정적인 작용도 일으킬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 한의사는 이 환자에게 몇몇 처방을 내릴 것이다. 이러한 한의학 처방은 그저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古今图书集成·醫部全錄)'라는 책 속에서만 145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처방들은 그 역사가 유구(悠久)한데, 이는 이 문집에 선정·기록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의학 처방의 권위성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은, 이러한 처방에 따라 한 트럭분량의 한의약을 복용한다고 해도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 고종의 질병과 두개골 절개술

당(唐) 왕조의 세 번째 황제인 당 고종(高宗) 이치(李治)는 682년 음력 11월에 일찍이 이 질병을 앓았다. 그는 진명학(秦鸣鹤)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의사에 의해 치료되었다. 그러나 이 기독교 의사가 사용한 것은 한의학 방법이 아닌, B.C. 5세기의 고대 유럽에서 이미 널리 사용된 두개골 절개술(craniotomy)이었다. 그것은 한의사들에 의해 ‘백회혈(百会)’과 ‘뇌호(脑户)’로 표방되는 두 개의 혈[1]에서 출혈을 일으켜 뇌압(颅内压)을 낮추고, 시각신경(视觉神经)을 누르는 압박감이 사라지며, 성공적으로 황제의 시각(视觉)을 되찾았다.

유럽인이 두개골 절개술로 눈의 실명을 치료하였다는 최초 문헌 자료는 히포크라테스(Hipporcrates)가 쓴 '시각을 논하다(论视觉)'라고 볼 수 있다. 이 책 속에서는 “눈이 아무런 뚜렷한 질병 없이 실명되었을 때에는 뇌두개골(腦頭蓋骨)을 절개하고, 뇌연조직(脑软组织)을 갈라서 뇌두개골을 뚫어 생긴 액체(液体) 전부를 흘려 내보내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치료한다면, 환자는 이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의술이 중국에 들어온 것은 당(唐) 왕조의 두 번째 황제 당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이 재위할 때이다. '신당서·열전제146(新唐书·列传第146)'에는 “대진(大秦)에는 뛰어난 의사가 있어 뇌를 열어서 벌레가 나올 수 있게 하여, 이로써 눈의 백태를 치유한다(大秦有善醫能开脑出虫,以愈目眚)”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대진(大秦)’이란,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에 대한 중국 고대의 명칭이다. 또한 이 글에서 말하는 ‘생(眚)’은 시각(视觉)이 흐릿하거나 실명한 눈의 질환을 전문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의술이 중국에 전해진 후, 이 의술을 사용할 수 있는 중국인은 극소수였다. 진명학(秦鸣鹤)은 이 극소수 중국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당(唐) 고종(高宗)이 앓았던 것과 같은 이러한 안질은 뇌두개골 외과수술을 해야지만 비로소 완치될 수 있는데, 오늘날의 한의사들조차 이러한 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다.

한의학에는 오늘날까지도 해부학(解剖学), 생리학(生理学), 그리고 병리학(病理学)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각신경(视觉神经)의 해부학과 생리학이 기초가 되어 있지 않는다면, 이러한 질병의 병인(病因)이나 병리(病理)를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한의학에는 현재까지 병소(disease focus)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한의학은 아직까지도 그 어떠한 병인과 병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한의사가 표현해낸 병리(病理)와 병인(病因)의 진술에 의해, 자주 거드름을 피우며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오히려 전혀 현실적인 가치가 없다.

“의(醫)는 의(意)이다”라고 말하는 한의학

한의학의 전체 인식론 기초는 “의(醫)는 의(意)이다(醫者意也)”로 개괄할 수 있다. 영어로 이를 표현하자면, “to practice medicine based on ideological intuition”이다. 이 “의(醫)는 의(意)이다”라는 한의학 인식론에 근거하여, 어떠한 의학이론과 의학방법적 건립도 실험을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관찰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기본적인 논리조차도 필요치 않을 것이며, 그저 모종(某種)의 관념적인 직관(直觉)에 따라 판단내리면 될 것이다.

당(唐) 나라 의사 손사막(孙思邈)은 “의술에 대하여 말하자면, 참으로 오직 의(意)뿐이니라(若夫醫道之为言,实惟意也)”라고 말했는가 하면, 또한 “의(醫)는 의(意)이니라. 능숙하게 의(意)를 이용하면, 곧 명의(名醫)가 될 것이다(醫者意也,善于用意,即为良醫)”라고 말하였다. 손사막(孙思邈)은 그 본인이 쓴 '천금방(千金方)'을 통해, 뱀이 허물 벗은 껍질을 비단 주머니에 넣어서, 임신한 부인의 허리에 묶으면 임신한 부인의 난산(難産)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건의하였다. 그 가운데 ‘의(意)’는 뱀이 허물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다. 뱀 허물 가죽의 ‘의(意)’를 ‘의(醫)’에 억지로 갖다 붙였는데, 바로 부녀의 난산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한의사가 보기에, 만일 사람의 직관적인 사유 속에서 ‘의(意)’와 ‘의(醫)’의 일치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러한 ‘의(意)’를 사용하여 서로 호응하는 ‘의(醫)’를 채택할 것이다. 그래서 만약 ‘벗겨내야’ 하는 질병, 예를 들어 부녀자(婦女子)의 난산(难产), 백내장(白内障), 내장안(眼翳)이라면, 한의사들은 모두 뱀 허물(蛇蜕, 뱀이 허물 벗은 껍질), 매미의 허물(蝉蜕, 매미가 허물 벗은 껍질), 누에 허물(蚕蜕, 누에의 탈피한 껍질)과 같은 것들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11세기에는 암탉이 병아리를 부화한 뒤 남긴 계란껍질은 “껍질을 깨고 나왔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여겼다. 이 뜻은 그 어떠한 ‘탈피하다(蜕)’라는 것보다도, 부녀자들이 순조롭게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관념적 요구에 한층 더 부합한다. 그래서 한의사들은 이러한 달걀 껍질을 물에 졸여 임산부에게 마시도록 하여 부녀자들의 난산(难产)을 치료한다.

“의(醫)는 의(意)이다”라는 한의학 인식론이 비록 황당하고 가소로움을 면할 길 없다고 할지라도, 한의사들은 오늘까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를 영예롭게 여기면서, 뻔뻔스럽게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이러한 우매함을 ‘동방의 지혜(东方智慧)’로 표방하고 있다. 심지어 스스로를 기만하고 타인마저도 기만하며 과장되게 말하는데, 이러한 길을 미래의 한의학 역시 걷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는 한의사가 어떻게 “의(醫)는 의(意)이다”라는 인식론을 근거로 의술을 채택하였는가를 열거한 것이다. 실제로 한의사는 질병을 진단하는데 있어서도 “의(醫)는 의(意)이다”라는 인식론 철학에 따라 행한다.

중풍(中风)이라는 질환과 한의학

한의학 질병의 명칭에는 ‘중풍(中风)’이라는 질병이 있다. 이 질병의 명칭은 매우 애매하다. 현대 의학에 따르면, 한의사에 의해 묘사된 중풍(中風)은 대개 세 가지 다른 유형의 질병으로 나뉘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졸중풍(头风)’[2]으로, 영어의 apoplexy에 해당되며, 임상(臨床)에서는 두통이 일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며, 성기능 장애를 나타난다. 이는 뇌하수체저하증(Hypopituitarism)이나 뇌하수체 종양(Pituitary tumors)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반신불수(偏瘫)’에 해당되며, 다소 오래된 한의학 서적에도 역시 ‘반신불수(偏枯)’ 혹은 ‘마비(麻痹)’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영문의 palsy이다. 임상에 있어서는 몸을 움직일 때 부들부들 떨고, 신체나 입과 눈이 비뚤어지며, 착란을 일으키기 쉽고, 언어 장애가 있으며, 눈에 생기가 없고 근육이 뻣뻣하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등의 증세를 보인다. 반신불수를 일으키는 원인은 비교적 복잡하고도 구체적이다. 대략적으로 10 종류 가량의 질병이 있는데, 이러한 질병은 임상에서 반신불수로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뇌성 소아 마비(Cerebral palsy), 진행성 핵상 마비(Progressive supranuclear palsy), 안면근육실조(Bell's palsy), 상완신경총 손상(Brachial plexus injury) 등을 들 수 있다.

‘중풍(中風)’으로 열거될 수 있는 또다른 질병이 있는데, 현대 의학이 말하는 ‘뇌졸중(脑瘫)’이 이에 해당된다. 그것은 대뇌로 통하는 혈관이 장애를 받거나 파열되어서 일으키는 대뇌 기능의 갑작스런 상실로, 근육이 수축되고,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하며, 혹은 감각과 의식을 잃기도 하고, 머리가 어지러우며 언어가 명확하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

비록 ‘중풍’이 세 가지 다른 질병 유형으로 나뉘어 해석된다고 할지라도 병의 원인은 비교적 복잡하고 구체적이다. 그러나 한의학은 종종 이러한 질병의 원인을 해석할 때에, “정기가 부족하고 낙맥이 텅 비어 있으며, 사악한 바람이 침입하였다(正氣不足,络脉空虚、风邪入侵)” 등으로 조잡스럽게 해석한다.

중국어에서 ‘중풍’이라는 글자의 표면적인 함의(含意)는 “바람이 인체에 들어갔다"이다. 인체로 들어간 이러한 ‘바람’은 바깥으로부터 왔을 경우에는 한의학에서는 아마 이를 ‘외풍(外风)’이라고 부를 것이며, 안으로부터 발생했다면 ‘내풍(内风)’이라고 부를 것이다. 사람의 몸에 풍이 들게 되면, 그 증상은 마치 바람이 이는 나뭇가지나 나뭇잎처럼 흔들흔들거리고 부들부들 떨 것이다.

한의학이 이러한 질병을 두루뭉술하게 ‘중풍(中风)’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한의학이 이러한 질병을 치료하는 원칙은 “근본을 견고히 하다(固本)”와 “풍을 제거하다(祛风)”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을 견고히 하다”라는 것은 흡사 나무줄기를 강건하게 하듯이 인체를 증강시킴으로써 풍(風)이 엄습해오는 것을 막아내는 능력을 뜻한다. 이로 인해 한의사는 늘 환자에게 “근본을 견고히(固本)”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약(藥), 예컨대 백작약의 뿌리(白芍)·현삼(玄参)·천동(天冬)·용골(龙骨)·굴(牡蛎)을 추천할 것이다.

“풍을 제거한다(祛风)”는 것은 인체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風)을 평정시킨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등잔불을 불어서 끄는 것과 같다. 이에 한의학은 불화변 ‘火’를 가진 ‘(불을) 끄다(熄)’라는 글자를 이용하여 이러한 치료 원칙을 묘사하여, ‘바람을 끄다(熄风)’라고 하였다. 한의학에서 일반적으로 ‘바람을 없애(熄风)’는 한의약으로는 천마(天麻), 국화(菊花), 구등(钩藤), 영양의 뿔(羚羊角) 등이 있다. 만일 환자가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킨다면, 한의사는 아마도 그들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어 풍을 없애버리려고 할 것이다. 보통 그들은, 이러한 환자들의 처방 속에 말린 옹근 전갈(전갈의 시체), 지네(지네의 시체), 백강잠(僵蚕, 치명적인 세균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죽어버린 누에벌레의 시체) 등을 더 늘릴 것이다.

한의사는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벌레의 시체를 먹으면 ‘중풍(中风)’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명(明)나라의 한의학 저술자인 이시진(李时珍)은 자신이 편집한 '본초강목(本草纲目)'에서 지네의 “풍을 가라앉히는(熄风)” 기능에 다음과 같은 해석을 달았다.


“무릇 그 움직임이 빠른 것으로는 오직 바람과 뱀뿐이니라. 지네가 뱀을 제지할 수 있으니, 고로 또한 풍(風)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盖行而疾者,惟风与蛇。蜈蚣能制蛇,故也能截风).”


이 말의 의미는 세상에서 그 움직이는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는 바람과 뱀만한 게 없는데, 지네가 뱀을 사지에 몰아넣을 수 있으니, 지네를 먹으면 반드시 풍(風)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 총명하다고 여기는 한의사는, 급성 신경 경련과 같은 질풍(疾风)은 천마(天麻)와 영양의 뿔(羚羊角)과 같은 류의 식풍약(熄风药)[3]을 사용하여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기고, 뱀을 사지로 몰아넣는 지네만이 “바람을 막아(截风)”낼 수 있다고 그저 믿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병이) 심해지는 ‘중풍’ 환자에게 한의사가 처방하는 말린 옹근 전갈(全蝎), 지네(蜈蚣), 백강잠(僵蚕)은 또한 더 많아질 것이다. 만일 중풍 환자의 입을 열 수 없다면, 한의사는 늘 모종(某種)의 야만적인 방식으로써 이러한 벌레 시체를 지지거나 삶아서 짜낸 즙액을 환자의 위 속에 억지로 부어 넣을 것이다.

현재 우리들은 이러한 벌레의 시체(虫尸)가 간(肝) 중독을 야기하기 쉬우며, 이러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야만의 극에 달해있는 중국의 한의사, 특히 사리에 어둡고 완고하여 변하지 않는 일부 노(老) 한의사들은 여전히 고대 한의학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러한 우매함을 계승하고 있다.

상술한 예를 제외하고 한의학이 조제한 약제의 형태를 구상하고 사용하는 면에 있어서, 그 근거가 되는 바 또한 “의(醫)는 의(意)이다”에 있다. 예를 들어, 몸에 한기가 오면 한의사는 약을 먹음에 있어 ‘산약(散药, 가루약)’을 먹어야 한다고 건의하는데, 이는 바로 “해열하다”를 뜻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복부가 좋지 않을 때, 한의사는 약을 먹음에 있어 ‘탕약(汤药)’을 먹어야 한다고 건의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탕(汤)’이란 “깨끗이 씻어버리다”(荡)를 뜻한다. “오장을 씻어내다(荡涤五脏)”의 의미를 취한 것도 오장육부(五脏六腑)를 한 차례 씻는다는 의미이다. 오랫동안 병이 치유되지 않으면 한의사는 ‘환약(丸药)’을 먹어야 한다고 건의하는데, ‘환(丸, wan)’과 ‘완(顽, wan)’은 중국어에서 같은 음(谐音)의 글자에 속한다. 한의사는 이러한 동일음을 이용하여, ‘환(丸)’으로 ‘고질병(顽)’에 대처하는 약제의 사용원칙을 세웠다.

중국 고대 지식인들의 한의학에 대한 비판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정상적으로 사유하고 어떠한 편견도 갖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한의학 인식론 철학의 황당하고 야만스러움을 판단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와 같기에, 한의한약은 예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각성한 중국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최초로 한의학에 회의를 품은 자는 아마도 '주역(周易)'의 작가일 것이다. 그는 64괘(卦)의 무망괘(無妄卦) “구오효사(九五爻辞)”에서 “당연히 얻은 병이니, 약을 쓰지 않아도 낫는다(無妄之疾,勿药有喜)”라고 말했으며, 또 “구오상사(九五象辞)”에서 “당연히 얻은 약이니, 시험 삼아 해 볼 필요가 없다(無妄之药,不可试也)”라고 말하였다. 이는 질병이 뚜렷하게 밝혀진 병인(病因)을 갖기 전에, 약을 먹지 않은 것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며, 뚜렷하게 밝혀진 약리(药理)가 없는 약들에 대해 무턱대고 시험 삼아 먹어봐서는 안 되는 것이 유익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주역(周易)'의 작가는 한의학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조사된 근거에 따르자면, 한의학을 믿지 않은 최초의 저명한 역사인물은 공자이다. '논어·향당(论语·乡党)'의 기록에 의하면, “강자(康子)가 약을 보내오니 예를 차려 이를 받아들이며 말하기를, ‘구(丘, 공자)는 이에 통달하지 않으니, 감히 맛보지 못하옵니다’라고 적혀있다.” 이는 공자가 병이 들었는데, 이강자(季康子)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약을 보내왔고, 공자는 예의를 차리고 나와 매우 겸손하게 이강자의 약을 정중히 받았으나, (그는) 본디 그 약들이 병을 치료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아, 그저 그것들을 한쪽으로 밀쳐놓고서 전혀 맛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춘추좌전·소공19년(春秋左传·昭公19年)'의 한 기록도 공자가 한의학을 믿지 않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노(鲁)나라 소공(昭公) 19년(기원전 523년), 노나라의 허도공(许悼公)이 학질에 걸렸다. 5월 허도공은 그의 아들 허지(许止)가 보내온 한의약을 복용한 후 죽었다. 그 후 허지는 진(晋)나라로 도망가 자책하며 글을 썼다. 그는 후인에게 “심력을 다해 임금을 섬긴다면, 약물은 버려도 좋다(尽心力以事君,舍药物可也)”라고 경고하였다. 이 얘기의 의미는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려면, 그저 약을 국왕에게 보내어 먹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허지는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호의로 그의 부친에게 약을 보내어 복용케 하였는데, 오히려 부친은 독에 의해 죽게 되어버렸으니, 이를 “임금을 시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후의 역사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소간의 논쟁을 벌였다. 어떤 이는 허도공의 죽음은 ‘정상적인 사망(正卒)’으로, ‘임금 살해’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노(鲁)나라에서 이 일이 발생했을 때, 공자는 이미 28세로, 이 역사의 증인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공자는 '춘추(春秋)'를 지으면서, 무척이나 확고하게 허지의 행위를 ‘임금 살해’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춘추'를 연구하는 학자 두예(杜预)는, 공자가 허지의 행위를 ‘임금 살해’로 정한 것은 후인들에게 경고하려고 한 것으로, 어떻게 고려해냈는지도, 또 의미가 있든 없든 간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한의약을 바쳐, 일률적으로 모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면, 당연히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중국 근현대 지식인들의 한의학에 대한 비판

한의한약에 대한 중국학자의 비판은 19세기에 전대미문의 절정에 이르렀다. 1834년, 하북성(河北省) 출신인 한의사 왕청임(王清任)은 내부 반란(内部造反)을 일으켜 스스로 한의사들의 추악함을 폭로하였다. 그는 '의림개착(醫林改错)'이라는 책에서 한의사가 “근거 없는 말로써 사람들을 기만하는 일”을 질책하고 있다. 그는 인체 구조에 관한 한의사의 이론은 모두 잘못된 논조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한의사들에게 “이기(利己)는 헛된 명성(虚名)에 불과하며,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오히려 실제적인 재앙에 속한다. 재물을 훔치는 것조차 도적이라 하건만, 이름을 훔치는 것을 어찌 도적이라 하지 아니 하는가? 긴 세월이 지난 후에 어찌 아는 자 없겠는가!(利己不过虚名,损人却属实祸。窃财犹谓之贼,偷名岂不为贼?千百年后岂無知者!)”라고 경고하였다. 이 의미는, 비록 한의사가 현재 스스로 총명하다고 여기며 남을 속일지라도, 수천 수백 년이 지난 후에는 필경 어떤 이가 각성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기만(欺骗)을 폭로하리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증국번(曾国藩)은 중국 역사상 성과를 이뤄낸 드문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군사 전문가로, 중국 현대화를 부르짖은 최초의 제창자이다. 1860년, 그는 자신의 아우 증국전(曾国荃)에게 편지를 써서 훈계하기를, “우리의 조부 성강공(星冈公)이 살아 계실 적에, 의약을 믿지 않고 승려와 무당을 믿지 않았으며, 풍수지리와 신선을 믿지 않으셨다. 이에 세 가지 것을 아우는 하나하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형제는 마땅히 이 뜻을 본받음으로써 가풍으로 계승하여야 할 것이다(吾祖星冈公在时,不信醫药,不信僧巫,不信地仙。此三者,弟必能一一记忆。今我辈兄弟,亦宜略法此意,以绍家风)”라고 말하였다. 한의학을 믿지 않은 것을 ‘가풍(家风)’으로 삼는 것을 아우에게 신신당부하였으며, 반드시 준수하고 발양하도록 하는 것을 보면, 그가 한의학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히 단호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또 “무릇 눈으로 보는 바는, 모두가 용렬한 의(醫)뿐이다. 나는 그것이 사람을 해할까봐 몹시 두렵도다. 고로 3년 동안 의사한 처방한 약을 복용하지 않을 것을 결심한다(凡目所见者,皆庸醫也。余深恐其害人,故近三年来,决计不服醫生所开之方药)”라고 말하였다.

중국 역사상, 한의학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첫 번째 사람은 중국에서 가장 저명한 유학의 영수(领袖)인 유월(俞樾)이다. 그는 1821년에 태어나, 일찍이 조정 고문헌 정리(朝廷古文献整理) 수석(首席) 전문가와 고시원(考试院) 주임 시험관(主考官)을 지낸 바 있다. 그는 평생의 대부분을 중국 고대 문화를 연구하는데 보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는 폭넓게 문학, 철학, 역사, 그리고 한의한약을 언급하였다. 그는 각 분야의 연구에서 줄곧 절대적인 권위성을 유지하고 있다. 1879년에 유월은 '한의학 폐기론(废醫论)'을 발표하여 한의한약에 대해 체계적인 비판을 하였는가 하면, 굿(巫术)을 폐기한 것처럼 한의학도 폐기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주장하였다.
 



유월(俞樾)의 뒤를 이어, 체계적으로 한의학을 비판한 두 번째 학자는 수준 높은 의학 교육배경과 실천 경험을 지닌 여운수(余云岫)이다. 1920년에 그는 '‘영소’상태(‘灵素’商兑)'를 발표하였는데, 10개 부분으로 나뉘어 한의학 사상 이론을 기초로 한 '황제내경(黄帝内经)'을 체계적으로 비판하였다. 이후, 그는 '상한발휘(伤寒发挥)'와 '온열발휘(温热发挥)' 등의 저작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1928년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논문을 '여씨의론(余氏醫论)'로 편집하여 출판하였다. 무척이나 빠르게, 이 책은 1930년에 재판(再版)되었다. 1950년에 이 책은 '의학혁명론(醫学革命论)'으로 개명하여 세 번째로 출판되었다. 1954년에 모택동(毛泽东)은 한의학을 바로 잡기를 주장하는 두 명의 국가 위생부 부부장(副部长)의 직무를 해임하였으며, 또한 전국적으로 “서양의학은 한의학을 배우라”를 호소하였다. 모택동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이미 세상을 떠난 여운수를 향한 까닭 없는 질책과 경멸을 낳았으며, 그의 '의학혁명론' 또한 이로 인해 더 이상 출판할 수 없게 되었다.

상술한 바 있는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서도 중국에는 또한 손중산(孙中山, 쑨원), 오여륜(吴汝纶), 엄복(严复), 채원배(蔡元培), 양계초(梁启超), 진독수(陈独秀), 진원(陈垣), 노신(鲁迅, 루쉰), 여사면(吕思勉), 주작인(周作人), 장몽린(蒋梦麟), 정문강(丁文江), 진인각(陈寅恪), 호적(胡适), 곽말약(郭沫若), 왕경희(汪敬熙), 모자수(毛子水), 풍우란(冯友兰), 부사년(傅斯年), 강소원(江绍原), 진서경(陈序经), 전종서(钱钟书), 도행지(陶行知), 파금(巴金) 등과 같은 일부 뛰어난 학자, 정치가, 교육자, 문학가, 과학자 모두가 한의학을 확고하게 반대하였으며, 심지어 되도록 빨리 한의학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3. 한의학 치료 효과는 과학 평가를 이겨내지 못한다.

과학의 주요한 직책(职责) 중 하나는 공정하게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다. “공정하게 사실을 해석한다”는 말은,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진술(陈述)이 가능한 새로운 사실의 각 종의 반박과 추궁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사실의 질의와 논리 추궁을 견뎌 낸 해석만이 비로소 공정(公正)한 해석이라고 보여질 것이다.

중국에서 일찍이 어떤 이가 중국의 인구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한의학이 유효(有效)할 뿐만 아니라 선진(先进)적이라고 해석한 적이 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사실이 이러한 논거를 충분히 반박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하고자 한다.

호랑이는 한 배(胎)에서 많은 새끼들을 낳고, 일 년에 한 번 임신한다. 야생 산양(野山羊)은 한 배(胎)에서 새끼 한 마리만을 낳는데, 이 또한 일 년에 한 번 임신한다. 생육(生育)의 속도로 말하자면, 호랑이는 확실히 야생 산양보다 앞서 자란다. 생존 경쟁 관계에 있어서, 호랑이는 야생 산양을 먹지만 야생 산양은 호랑이를 먹지 않는다. 야생 동물의 평균 수명을 얘기하자면, 야생 산양은 보통 10년을 살 수 있지만, 호랑이는 오히려 25년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생태 환경을 보자면, 야생 산양의 수가 호랑이보다 확실히 많다. 추측컨대, 정신병자를 제외한, 사유체계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사실만을 가지고서, 야생 산양의 의술(醫术)이 호랑이의 의술보다 더 효과적이며 앞섰다고 증명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비록 중국의 현 인구가 미국의 4.3배일지라도 이를 근거로 중국의 의학이 미국의 의학보다 더 효과적이고 선진적이라고 믿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만일 한의학이 미국의 의학보다 더 효과적이고 선진적이라면, 현재까지도 여전히 중병에 걸린 전(前) 쿠바 대통령 카스트로(Fidel Castro Ruz)와 전(前) 이스라엘 총리 샤론(Ariel Sharon)은 한의학으로 치료하려 했을 것이다.

‘의료 평가’는 상처를 입은 인체가 건강을 회복한다는 의미로서의 치료과정에 관한 평가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치료과정은 건강 회복 과정 이전에 발생한다. 그러나 어떠한 이전의 과정일지라도, 그 다음 과정에 따른 원인은 결코 아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병이 생겨 우선적으로 서양의사에게 진찰받았는데 치료되지 않자, 다시 한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았으나, 이 또한 치료되지 않아 무당의 힘(巫术)을 빌렸는데, 그 결과 나았다고 하자. 그러나 미신에 빠져 있는 광적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는데 있어 무당의 술법(巫术)이 도움 되었다고 믿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의학의 의료평가방법은 주관적이고 개별적이다

개괄하자면, 한의학의 의료평가방법은 그저 다음과 같은 두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주관(主观)으로 객관(客观)을 평가한다.

보통 한의학은 환자가 스스로 말해주거나, 의사 혹은 다른 제삼자의 관찰과 진술로, 치료과정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낸다. 주관적인 진술에 의해 객관적인 결과를 판단하는 이러한 방법은, 관찰하는데 있어 편견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한 사람이 의사의 치료를 받은 후, 이 의사가 환자를 방문하러 갔을 때, 의사는 물론이고 환자 모두 될 수 있는 한 “다소 호전되었다”는 몇몇 주관적인 체험을 찾아내어 치료 결과를 얘기할 것이다. 의사와 환자 모두 관찰 편견(观察偏见)을 자각적으로 없앨 수 없기에, 한의사는 치료를 실시할 때,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빌려서 주관적인 체험상의 ‘치료효과’를 얻어낼 것이다. 예를 들어 진통제를 사용하여 통증을 멈추게 하고, 흥분제를 사용하여 기운을 내게 하며, 심지어 일부 약물을 사용하여 환자에게 새로운 생리 체험(生理感受)을 만드는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실제로 통증을 멈추는 것과 의식을 차리는 것(提神)을 모두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통풍(gout 혹은 metabolic arthritis) 환자에 있어, 만일 혈액 속의 요산(Uric acid)이 관절 속에서 쌓이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통풍 환자의 모든 진통에 대해 참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백혈병으로 인해 정신이 쇠약해진 환자에게 한의약 속에 흥분제를 섞어 주면 잠깐의 흥분의 느낌을 얻을 수 있을 뿐, 결코 진정한 치료라고 할 수 없다. 몇몇 특수한 약물을 사용하여, 환자에게 이전에 일찍이 경험한 바 없는 생리적인 느낌(生理感受)을 얻도록 한다. 그래서 그 치료 작용 혹은 보양작용을 증명해 내는데, 이는 무척이나 황당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중국에서는 ‘온보(温补)’[4]를 줄곧 미신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약을 먹은 후에, 몸이 뜨겁다고 느끼고 심지어는 코에서 피가 난다면, 그들은 이 약의 온보(温补) 효과가 매우 좋다고 잘못되게 평가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새로운 생리적 감수는 약물 중독 혹은 약물 알레르기로, 인체에 백해무익하다.
 



둘째, 개별(个别)로 보통(一般)을 평가한다.

인체는 복잡한 ‘자가 구성 시스템(self-organized system)’이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무질서에서 유질서로 나아가는 경향을 지녔다. 질병이 호전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우선 질병의 자가 치유성(自愈性)으로 결정된다. 일부 질병은 어떤 의학적 간섭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자가 치유를 할 수 있다. 또한 몇몇 질병은 의학적 관여를 거치지 않고는 자가 치유를 할 수 없는가 하면, 일부 질병은 어떠한 의학적 간섭일지라도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없다. 만일 의사가 환자에게 행한 의학적 치료가 적절치 않다면, 환자에게 몇 가지 새로운 질병이 더 생길수도 있다. 심지어는 환자가 처음부터 갖추고 있는 자가 치유적인 토대를 철저하게 파괴할 수도 있다. 이는 인체를 한 대의 기계로 비유한 것으로, 기계가 수리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이 기계는 고쳐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더 뛰어난 엔지니어도 고치기 어렵다. 만일 파손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기계를 서투른 엔지니어들에게 건네 수리하게 한다면, 이 기계는 고치려 할수록 더욱 훼손될 것이고 심지어는 못쓰게 될 정도로 망가질 것이다.

오늘날의 인류 의학의 발전 수준을 놓고 말하자면, 90%의 질병은 자가 치유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질병으로 인식된다. 그 가운데, 35(±2)%의 신체적(육체적)인 질병과 45%의 정신적인 질병이 있는데, 어떠한 의학적 관여도 필요 없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자가 치유적인 기반을 갖춘 나머지 질병은 오히려 알맞은 의학적인 관여가 있어야지만 비로소 환자로 하여금 건강을 회복케 할 수 있다. 많은 질병이 의학적 관여 없이도 자가 치유 될 수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유효하게 보여지는 개별 안건(個案)을 보편적인 유효(有效)함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맹목적이다.

나는 여기에서, 개별 안건을 이용해 일반을 평가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우리들이 의학 연구에서의 개별 안건의 작용을 부인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실제로 어떠한 과학 연구도 개별 안건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강조할만한 것으로는 개별안건이 그 보편성으로 증명되기 전에, 개별안건에 근거하여 보편적으로 판단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방법

개별 안건이 보편적인 의미를 갖추고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이하의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첫째, 실험 생리학 방법이다.

1852년 프랑스 의사 베르나르(Bernard, C.)는 최초로 쿠라레(curare)[5]가 어떠한 작용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명백히 논술하고, 실험 생리학(Experimental Physiology)의 학술 방향을 창설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실험 생리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게 된다.

1870년대, 미생물학의 창시자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병인학(aetiology)의 병원균(germ) 이론을 제기한 후에, 감염으로 인해 얻어진 질병에 대해, 실험생리학의 임무는 실험방법을 통해 질병들을 야기하는 ‘병원균’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인류의 소화성궤양(peptic ulcer)에 대한 인식을 예로 들어보자. 1983년 이전에 의학계는 소화성궤양(消化性溃疡)의 병인학(病因学) 해석에 관하여 올바르지 않은 음식습관으로 결론지었다. 예컨대, 폭음폭식(暴饮暴食)과 편식(偏食), 그리고 불규칙한 식사습관이나 몇몇 편중된(예컨대 얼얼하고 매우며, 시고 달거나 향이 독특한) 음식물만을 먹기 좋아하는 습관은 위산 분비 과다를 일으킨다. 그래서 1970년대에 약물학계(药物学界)는 제산제(cimetidine)와 라니티딘(ranitidine) 류와 같은 위산 억제제(降酸药)를 개발하여 소화성궤양을 치료해냈다. 그 후의 임상시험(临床实践)을 통해 위산 억제제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을 뿐, 결코 소화성궤양을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83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의사 워런(Warren)과 마샬(Marshall)은 위궤양(胃溃疡) 환자의 위(胃) 속에서 새로운 세균을 발견하였으며, 현재 이것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 이하 Hp)라고 이름 지어졌다. 그것은 새롭게 소화성궤양(peptic ulcer)을 해석하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 후의 실험 생리학 연구는 이 Hp균이 소화성궤양을 일으킨다는 것을 실증하였다. 그래서 위궤양을 치료하는 약이 보통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이 약이 Hp균을 없앨 수 있는지 없는지에서 나타난다.
 



둘째, 무작위 규제 실험 방법(RCT 방법)이다.

실험생리학(实验生理学)은 어떤 약물이 몇몇 질병을 없애는 병원균에 대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할 뿐이다. 그러나 만일 효과가 있는 약물이 이러한 질병의 병원균에 도달할 수 없다면, 그 작용 또한 일으킬 수 없다. 이것은 마치 미사일(missile)이 엄청난 위력의 무기라 할지라도, 만일 발사된 미사일이 궤도를 벗어난다면 표적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그 미사일이 효과적으로 살상용 작용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이로써 실험생리학방법을 근거로 치료과정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결코 믿을만하지 못하다. 이 점을 고려하여 1972년에 스코틀랜드(Scotland) 유행병(流行病) 학자 아치 코크란(Archie Cochrane)은 '유효함과 유효성: 보건 서비스에 있어서의 확률론적 영향(Effectiveness and Efficiency: Random Reflections on Health Services)'를 발표하여, ‘이중맹검 연구(double-blind studies)’라고 불리기도 하는 무작위 규제 실험(RCT)을 통해, 치료과정의 유효성을 평가해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이 방법의 건립은 의학사(醫学史)의 혁명으로, 그것은 의학이 효과 있다고 판단하는 인류의 맹목성을 철저하게 극복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간혹 환자는 무척 고통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한 상태가 이어지다가 후에 환자는 점차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만일 환자가 매우 고통스러워 할 때에 의사가 해롭지 않은 약을 건넨다면, 계속되는 고통에 이어진 후에는 통증이 완화되기 때문에 약을 건네는 이 과정은 환자와 의사에게 동시에 효과가 있다는 인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상(印象)이 치료 효과의 평가를 오도(误导)하는 것을 배제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무작위 규제 실험(RCT)을 통해 검증을 행할 것이다. 우리들은 통증을 멈춰야 하는 몇몇 환자들을 무작위적으로 뽑아내어 그들을 두 개의 조(组)로 나눌 것이다. 그 중의 한 조에게는 약물 활성을 지닌 진짜 알약을 먹게 하고, 다른 한 조에게는 약물 활성이 전혀 없는 위약(placebo)을 먹도록 하였다. 실험이 이루어질 때, 누가 진짜 약을 먹는지, 누가 위약을 먹는지, 누가 실험 당하고 있는지, 그 누가 실험 대상이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사와 환자 모두 ‘알지 못하는(盲)’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의사와 환자의 관찰 편견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이 ‘치료’를 거친 후에야, 의사는 획득한 치료 효과를 알아낼 수 있다. 만일 의사가 두 조의 환자로부터 치료 효과에서 같은 답안을 얻게 된다면, 역으로 이 알약은 실제로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

무작위 규제 실험(RCT) 평가를 통과한 치료 효과만이 비로소 진실한 치료이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어떠한 한의학 치료법도 이러한 치료 효과 평가를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4.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의 한의한약 퇴출에 대한 내포(内涵)와 의미(意义)

시스템 문제는 종종 정치 문제와 관계된다. 정치가는 시스템 문제를 숙고할 때에, 보통 시스템 구조의 과학성을 숙고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민선제(民选制) 국가에서 경선자(竞选者)는 늘 그 자신들이 더 많은 투표용지를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로만 시스템의 설립과 변혁을 고려해낼 것이다. 비민선제(非民选制) 국가에서 정치가는 종종 권력의 중심을 둘러싸고 다양한 형식의 각축을 치룰 것이다. 이로써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체제 문제(体制问题)나 과학 문제(科学问题), 민생 문제(民生问题)는 주로 정치가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권력 각축의 성패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을 때에만 그들은 비로소 허세를 부리며 이러한 문제들에 장광설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어떤 의미에서 ‘민감한 화제’가 되면, 정치가들은 종종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러한 화제를 금지시킬 것이다.

가령 현재 한국(韓國)에 여전히 한의학을 맹신하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면, 한국의 대통령 자리를 놓고 선거에 뛰어든 사람은 반드시 이러한 대다수의 사람들 입장에 서서 선거 연설을 발표할 것이다. 바꾸어서 말하면, 만일 한국의 국민이 한의한약의 위험에 대해 충분하게 각성하고 있고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 이상 한의학을 믿지 않는다면, 한국의 대통령을 놓고 선거에 뛰어든 사람은 공개적으로 앞장서서 한의학을 반대할 것이다.

정치가들은 모두 실용주의적이다. 그래서 한의한약의 체제 변혁에 있어, 우리들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한의한약의 기만에서 깨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2006년, 전체 중국인들 가운데 한의학을 믿는 사람 수는 87.80%를 차지하였다. 2년이 되지 않아, 이 숫자는 30%나 떨어졌다. 만일 중국에도 선거 운동이 있다면, 선거에 뛰어든자(竞选者)는 2006년에 발표한 선거 공약(纲领)에서 반드시 한의학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2008년에 이르러서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선거 공약을 바꾸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30%의 투표용지를 잃어버릴 가능성에 직면할 것이다.

이 의미에서 말하자면, 정치가는 늘 과학적인 용기가 부족하다. 그들은 국민들이 여전히 깨어있지 않을 때, 감히 국민들을 이끌어 우매함에서 벗어나도록 하지 못하였다. 투표용지를 위해서 그들은 심지어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서 이러한 우매 혹은 우매한 변호에 타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역사 상, 온 국민의 비난에도 굳건히 자신의 소신을 지킨 정치가가 있다. 그들은 중국의 일반 국민들 중 대다수가 여전히 한의학에 대한 미신과 우매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대담하게도 이러한 의학의 우매함에 대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하였는데, 증국번(曾國藩)과 손중산(孫中山, 쑨원)이 바로 이러한 담력과 식견을 지닌 정치가의 대표이다.

(편집자주 : 증국번(曾國藩, 1811-1872)은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 학자로 중국의 근대화 운동인 양무운동(洋務運動)의 핵심인사다. 흔히 쑨원이라고 부르는 손중산(孫中山, 1866-1925)은 공화제를 창시하고 삼민주의를 제창한 중국 근대화 혁명가다. 장궁야오 교수가 앞서 열거한 바와 같이 이 두사람 외에도 중국의 근대 지식인들과 정치가들 중에서는 한의학의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한 이들이 많다.)
 



근현대에 네차례나 폐지론이 제기된 중국의 한의학

중국에서 한의한약의 시스템 구축은 일찍이 네 차례의 중대한 충돌을 겪어야 했다.

제1차는 1914년에 발생했는데, 대학에서 한의약 커리큘럼을 개설해야하는지의 여부를 둘러싸고 중국 정부와 한의약 개업인들 사이에 심각한 의견대립이 있었다. 중국 정부 교육부는 대학에 한의약 커리큘럼을 개설하자는 한의사들의 청원(请愿)을 매몰차게 거절하였다. 이 거절은 갓 건립된 중국의 각 대학들로 하여금 떳떳하게 과학의 전당이 되게 하면서, 허위과학·신비주의·미신의 은신 동굴과 남의 말을 따라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게 하였다.

제2차는 1929년으로, 한의사에게 의료 행위 자격 증서를 발급해야 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중국 정부 중앙 위생 위원회(中央卫生委员会)와 한의사들 간에 새로운 충돌이 생겨났다. 중앙 위생 위원회는 여운수(余云岫)가 제기한 “한의학 폐지안(废止中醫案)”을 토론하고 비준을 얻었다. 이 결의안에 근거하여 중앙정부는 당시 만 20세 이상의 한의사들에게 의료 행위 자격 증서를 발급하고, 이후에는 더 이상 발급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40년가량의 시간을 들여 중국에서 철저하게 한의학을 폐기토록 하였다. 비록 여운수의 “한의학 폐지안(废止中醫案)”이 통과되었지만, 중원대전(中原大战)의 발발과 9·18 사변과 이후 항일전쟁(抗日战争), 거기에다가 한의사의 청원(请愿)과 중앙정부 내의 몇몇 정치가의 관여로 인해, 이 한의학 체제 개조 방안은 실제로 시행되지 못했다.

제3차는 1951년 8월에 있었는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위생부가 전국 의료 위생 사업 회의를 개최했을 때, 회의에서 8명의 대표들에 의해 제기된 “한의학 정리안(整顿中醫案)”이 통과되었다. 당시 제기한 구호는 “한의학의 과학화, 서양의학의 중국화(中醫科学化,西醫中国化)”이다. 이는 한의사에게 현대의학 지식의 학습을 강화하여 적극적으로 의과학(科学醫学)으로 가까이 다가가도록 요구하였는가 하면, 동시에 중국 전체에 차츰차츰 서양의학을 확대 보급하였다. 회의는 이에 상응(相应)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 또 3년간의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한의사들의 강렬한 항의에 부딪쳤다.

이는 분명히 정치적인 고려에 의한 것으로, 모택동은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아무런 민주적인 결정과 과학적인 결정단계도 없이,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중앙정부로 하여금 “한의학의 과학화, 서양의학의 중국화”를 추진하고 실현하기 위해 제정한 모든 규범과 제도를 폐지토록 했다. 또한 모택동은 당시 위생부(卫生部) 부부장을 맡고 있는 왕빈(王斌)과 하성(贺诚)에 대해 전국적으로 비판을 하도록 개시하였으며, 심지어는 매우 황당하게 정반대의 방법을 써서, “서양의학은 한의학을 학습하자(西醫学习中醫)”를 호소하게 만들었다. 이후에, 모택동(毛泽东)은 중국에 극좌(极左)적 한의학 체제를 형성하였다. 이 극좌적인 한의학 시스템 속에서 한의한약은 줄곧 어떠한 규범과 제도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오늘까지도 여전히 “약 속에 들어가는 중금속의 제한 표준”, “한방 제제(中成药) 품질 평가 기준”, “약 속에 들어가는 유독성 한약(中草药)의 제한 표준”, “한의약의 안전 조항”을 규정한 바 없으며, 심지어 한의약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서양의약의 결과를 도용하기까지 하고, 노골적으로 한의약 속에 서양의약을 섞는데도, 오늘까지도 그들의 법률적 근거를 제제한 바 없다.

제4차는 2006년 10월에 있었다. 과학철학자인 필자와 미국의 중국계 의사인 왕징(王澄)은 인터넷 서명활동을 개시하여, 중앙정부에 약 5년에 걸쳐 한의한약을 국가 의료시스템에서 퇴출시켜 민간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한의한약으로 하여금 정부의 엄격한 감독과 관리, 그리고 과학 지도 하에서 사용하는 민간의술이 되도록 하였다.

한의학은 국가의료시스템에서 어떻게 퇴출되어야하는가

우리들은 한의한약을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전면적으로 물러나게 하는 구상에 관하여, 도합 10가지 방안의 내용을 포괄한다.

첫째, 국가는 더 이상 한의한약 문제로 당사자로 일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한의한약의 감독관과 관리자로만 일하여야만 한다.

둘째, 다음에 열거한 의료 권리는 국가 의료 기구에 의해 독점되어야하며, 한의한약이 개입하여 번거롭게 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1. 신체검사, 치아 뽑기, 외과수술, 인공유산, 전선의 구호(救护), 영아 조산(助産)을 실행하는 권력
2. 서양의학의 방법과 서양의학의 의료 기구의 사용권
3. 영아 출생증명서, 환자 사망 확인서, 환자 전원(转院) 건의서, 위독 통지서의 서명권(签字权)
4. 법의학 평가서
5. 환자 응급 치료권
6. 의료 사고 평가서
7. 처방권

셋째, 한의한약이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퇴출된 이 후, 한의사의 의료행위자격은 업무의 자율적인 형식에 의해 승인한다. 정부는 더 이상 어떠한 형식으로도 한의사의 의료 행위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넷째, 국가는 이하 세 가지 원칙에 의거하여 한의사의 개원(中醫执业)을 관리한다.

1, 무상해(無伤害)원칙에 따라 의학을 관리한다.
2. 안전, 청결, 희귀동식물을 약 속에 넣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에 따라 약을 관리한다.
3. 규정된 납세 원칙에 따라 경영을 관리한다.

다섯째, 국가는 더 이상 한의한약에 어떠한 형식의 승인번호도 제공하지 않는다.

여섯째, 국가는 어떠한 형식의 한의약 교육도 개설하지 않는다.

일곱째, 한의한약에 대한 국가 조직의 관찰과 그 기초 위에서, 안전(安全)·효과(有效)·적당(适當)이라는 원칙에 따라, 한의한약을 결합(整合)한다. 결합한 이후의 한의한약은 국가 시스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여덟째, 국가는 결합(整合)되지 않은 한의한약 항목(项目)에 의약비용(醫药费)을 결산하지 않는다.

아홉째, 방역·의료검사·건강조사·질병조사·오염원(污染源) 조사 등은 모두 한의사(中醫) 개원의가 개입하여 일할 수 없으며, 국가 시스템 속의 의료 기구에 의해서만 맡아진다.

열 번째, 한의한약 개원의는 정부와 정부 기능 기구의 명의를 빌려, 그 연구 성과를 공표할 수 없다. 국가 공무원, 의사, 약사, 교사, 엔지니어가 한의한약의 광고 선전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다.

세계 보건 기구(WHO)는 안전(安全)·유효(有效)·적당(适當)이라는 원칙에 의거하여 전통 의학을 정합(整合)하도록 줄곧 제창하였다. 중국 정부는 아직 어떠한 형식도 결합(整合)시키지 못하였으면서, 직접 한의한약을 전면적으로 국가 의료 시스템에 넣은 것은 세계 보건 기구가 전통의학을 정합하도록 한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한의한약을 결합시키기 위해, 반드시 “전체가 들어가면, 전체가 나온다”는 방식으로, 솔선하여 한의한약 전체를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다시 안전, 유효, 적당이라는 세 가지 기본 원칙에 따라 한의한약을 항목에 맞춰 결합한다. 결합된 한의한약의 항목을 얻으면, 정부에 의해 책임이 지워지고 정부에 의해 공포되며, 국가 의료 시스템 내에서의 사용이 허락된다. 제대로 결합되지 않은 전통의술은 일률적으로 국가 의료 시스템 내에서 사용될 수 없다.

국가의료시스템에서 한의학 퇴출의 장점

개괄하자면, 한의한약이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퇴출되면 세 가지의 장점을 얻게 된다.

첫째, 집중적으로 인력(人力), 재력(财力), 그리고 물자(物力)를 사용하여, 현대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

만일 중국이 19세기 혹은 그 전부터 세계 의과학(醫学科学) 발전의 흐름을 따르면서, 중국의 한정된 자원(资源)에 주의를 기울여 현대의학을 발전시켰다면, 중국에는 아마도 “중서의학의 논쟁(中西醫之爭)”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의학이 서양의학을 맞닥뜨리”면서 겪어야 하는 곤란함 또한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로써 중국의 의료 보건 사업의 상황은 더 나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바로 우리들이 제1차 공업 혁명 물결의 보조(步調)에 뒤따르지 않았던 것처럼, 중국도 현대 의학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무척이나 좋은 기회를 상실하였다. 1950년대를 시작으로, 중국은 한의학 대학, 한의학 병원, 한의약 공장, 한의학 연구소를 창설하였다. 비록 이러한 한의학 기구의 창립이 중국 의료 보건 사업 발전에 긍정적인 어떠한 영향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심지어 중국 의료 보건계의 학술 기풍(風氣)을 심각하게 파괴하였을지라도, 줄곧 중국의 인력(人力)·물자(物力)·재원(财力资源)을 대량으로 점용하고 있는데, 그 낭비는 사람을 경악하게 만든다.

한의한약이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물러난 후에는 이러한 자원들은 절약될 것이며, 중국 의료 보건 사업 발전에 있어 실질적인 작용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둘째, 국가가 한의한약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데 유리하다.

한의한약의 이론과 방법은 최저한도의 정확성조차 결핍되어 있다. 한의학의 질병 명칭, 질병 진단의 표준, 치료 시행 원칙, 치료 결과 평가는 오늘날까지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한의한약이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퇴출된 후, 국가는 한의한약에 대해 ‘심판(裁判员)’이 될 뿐, 직접 ‘운동선수(运动员)’는 되지 않는데, 이렇게 하면 한의약에 대한 국가의 관리 기능을 강화하는데 유리하고, 그 어떠한 형식의 한의약 기만(欺瞞)일지라도 강하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셋째, 한의약의 자아완선(自我完善)에 유리하다.

한의약이 국가 의료 시스템 속에 놓이면서, 실제로는 한의약의 자아발전(自我发展)과 자아완선(自我完善)을 제한하였다. 한의약이 단숨에 국가 의료 시스템에 넣어지면서, 모든 좋지 않은 의술 또한 국가의 보호 아래서 현존하고 운행되고 있다.

이렇듯, 한의약은 자신의 발전(进步)에 있어 이익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일반 국민에게 의학적 기만성마저 폭로되어지고, 애당초 피할 수 있었던 어려운 상황마저 떠안게 되었다. 만일 우리들이 한의약에 대해 ‘시스템 밖에서의 생존(体制外生存)’ 모델을 채택한다면, 불량한 의술들은 반드시 도태될 것이며, 민간 한의사의 한의약 기만(欺骗) 또한 국가 정책의 틈새를 뚫고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무효(無效)하면서도 유해(有害)한 전통 의술이 소멸로 나아가는 것이지, 절대로 중국 전통 문화의 위기를 의미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중국 사회 진보의 표현과 문화 재생(更生)에 있어 좋은 기회이다. 이런 식의 우승열패(優勝劣敗)는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한의약 정수(精髓)를 마침내 (표면으로) 떠오르게 할 것이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한의한약을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퇴출토록 하는 것은 과학 규율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원칙에 부합되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이롭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한의한약을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퇴출하자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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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1] : 혈위방혈법(穴位放血法)은, 적당한 혈(穴位)을 찾아 직접 삼릉침(三稜針)을 사용하여, 이를 근육과 피부에 찔러(刺破肌膚) 출혈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출혈량이 비교적 적다. - 역자주

[2] : 냉기가 두부 경략(經略)에 들어와 생기는 두통 -역자주

[3] : 식풍약(熄风药)은 현기증·고열·어린아이의 경풍(驚風)·간질 등을 완화시키는 약이다 -역자주.

[4] : 보법(補法)의 하나로, 성질이 더운 약을 가지고서 허증(虛症)과 한증(寒症)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 역자주

[5] :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화살에 바르는 독으로, 마전속(馬錢屬) 식물의 즙으로 만든다. - 역자주
     
 


장궁야오(张功耀) 교수 프로필

중국 중남대학교 과학기술 연구소 교수

1956년 11월10일, 중국 호남성 침주시에 태어남

1981년, 중국 호남대학에서 철학과 졸업. (전공은 과학기술 철학임)

1983년, '기하학과 공간개념 간의 변증발전'을 발표.
'자연신식'이라는 잡지 출판사에서 편집부 주임.

1988년, 중국 절강대학에서 석사 학위 취득 (전공은 과학 사상사임)

전에 한의사로 활동한 적 있음.

현 재 중국 중남대학교 과학기술과 사회 발전 연구소 소장 및 교수
중국 호남성과학기술철학 및 과학사 연구 책임자

주요 저작:
'상대론혁명'(1999년), '과학기술 철학교정'(2001년), '문예부흥시기의 과학혁명'(2004년), '과학철학과 과학사 논문집' (2007년).

주요 철학 논문:
'현상부터 지식 객체까지', '진리관에 대해 연구에서 남기는 문제', '어법에 관한 철학사고'

주요 과학 논문:
'π의 역사', '찰스 다윈의 진화론 혁명의 의의', '‘의심하는 화학가’ 뭘 의심하는가?', '송대 과학기술 개요', '고별중의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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