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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이 과연 제대로된 '문화유산'인가?

'동의보감'은 집필 당시에도 세계적 기준에선 3류에 불과한 의서에 불과했다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신 athina(필명)님이 과거 스켑티컬레프트닷컴이라는 시사토론 커뮤니티에 2009년 8월 6일과 2009년 8월 13일로 각각 기고하신 글을 종합 편집한 글로,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던 글입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황의원 원장이 편집하였습니다.



‘동의보감’이 투명인간이 되는 법부터 시작해서 수은과 납을 치료제로 권하는 등 도대체가 오늘날 현대의학 관점에서 봤을때 맞는 내용이라고 볼만한 것이 거의 없고, 정신사나운 넌센스만이 산재해있는 책이라는 것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나 의사라면 다들 동의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의 넌센스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동의보감’의 넌센스를 그 시대의 한계로서 나름 이해해줘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고는 한다. 어차피 그 시대에 동양의학이나 서양의학이나 다 엉망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또한, 어쨌건 넌센스건 뭐건 당대의 치료법들을 수집 편집한 허준의 공로(?)는 인정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항변도 없지 않다.

필자는 ‘동의보감’에 대한 이런 온정주의적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충격적으로 들릴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동의보감’이 집필 당시에도 세계적 기준에선 3류에 불과한 의서였다고 생각한다. 2009년에 있었던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한방대책특별위원회의 전신)의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선정 관련 성명도, ‘동의보감’의 진짜 역사적 위상을 고려한다면 사실은 무척 온건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 온건한 성명조차도 무척 과격하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관련기사 : “동의보감 등재 역사상 ‘유산’일 뿐 한의학은 의학이 아니다”)
 



‘동의보감’의 주 내용은 약초학(herbal medicine)이다. 어떤 질환에 어떤 약초(혹은 광물질이나 동물의 신체부위)를 어떻게 배합하여 쓰느냐가 그 주된 내용이란 것이다.

당연히 경험적인 차원에서 특정 약초가 특정 질환에 효험이 있을 수 있다. 특정 약초가 특정 질환에 어떤 효험이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이라면 약초학의 역사에선 특기할 만 하다.

그런데 ‘동의보감’은 동시대 영국의 약초학 책보다도 훨씬 수준이 떨어졌다.

허준(1539 - 1615)은 1613년에 ‘동의보감’을 간행했다. 이와 동시대의 영국의 외과의사로 주로 배에서 일했던 존 제라드(John Gerard, 1545 - 1611, 위키 인물 항목 링크(영문))라는 인물이 있다. 생몰 연대가 허준과 거의 겹친다.
 
존 제라드는 1597년에 ‘약초(THE HERBALL)’라는 책을 출판했다. ‘동의보감’의 출간보다 16년 전의 일이었다. 이 책에는 200여 종의 약용 식물들의 상세한 삽화와 그 효능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존 제라드의 책을 스캔해서 그대로 소개하고 있는 사이트(https://archive.org/details/mobot31753000817749)에 접속해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시대를 고려한다면 상당히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구난방으로 기술된 ‘동의보감’과 비교할 바 아니란 것이다. 음양오행설과 같은 어떤 특정 도그마에 구속된 내용도 아니다.
 





‘동의보감’ 간행 15년 전인 1597년에 이미 영국에선 저런 책이 출판되어 누구나 돈만 내면 사볼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동의보감’은 시대적 한계를 감안해도 세계적, 보편적 기준에서는 모자라는 책이다.

사실 18세기면 이미 영국에선 노동자들까지 신문을 보면서 정치를 논했다. 우리가 ‘동의보감’을 이리 높이 떠받드는 것은, 한편으론 ‘조선왕조실록’정도가 무슨 엄청나게 선구적이요 대단한 기록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유럽사, 세계사에 대한 엄청난 무식과도 사실 궤가 통하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그래도 객관성을 기하려는 노력 등 시대적으로 어쨌든 앞서가는 면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동의보감’은 전혀 그렇지도 않다. 다시 한번 ‘동의보감’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영국에서 출판된 저 책의 내용을 ‘동의보감’과 비교하며 살펴보기 바란다.

‘동의보감’이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국보(國寶)'가 아니라 그보다 급이 떨어지는 '보물(寶物)'로 지정(1085호)되어있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일이다.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보편적 가치가 있는 책 ‘노걸대’, ‘박통사’

독자들이 오해할지 모르겠는데 필자는 무슨 자학사관같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머리좋은 우리 조상들도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만한 문화유산을 많이 남겼다.

참고로, '문화유산'의 사전적 정의는 "장래의 문화적 발전을 위하여 다음 세대 또는 젊은 세대에게 계승ㆍ상속할 만한 가치를 지닌 과학, 기술, 관습, 규범 따위의 민족 사회 또는 인류 사회의 문화적 소산. 정신적ㆍ물질적 각종 문화재나 문화 양식"이다.

그렇다면 ‘동의보감’같은 수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교역사학적 관점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으로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만한 문화 기록유산으로 무엇이 있을까?

필자는 바로 고려 말기에서 조선 말기에 걸쳐 역관들의 중국어 교재로 쓰였던 ‘노걸대’와 ‘박통사’와 같은 책을 꼽는다.
 



특히 ‘노걸대’ 고려시대 판본은, 발간 당시에도 수준이 떨어졌던 ‘동의보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전문적인 사학자들 외에는 이런 책의 존재 자체도 모르겠지만, 실은 이런 책들이야말로 한국인의 자랑거리인 것이다.

아래는 우리나라의 독보적 역사 학술 전문기자 중 한분인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의 ‘노걸대’와 ‘박통사’ 설명이다.(세계유일 元代 중국어 회화서 「노걸대」 완역, 김태식 기자, ‘연합뉴스’, 2004년 7월 12일)


고려 왕경(王京) 개성을 떠나 육로로 원나라 대 도(大都), 즉 지금의 베이징(北京)인 연경(燕京)으로 장사를 하러 가던 고려상인 세 명이 요양(遼陽)을 지나던 길에 말을 팔러 역시 연경으로 가던 중국상인과 마주쳤다.


중국상인 : 친구들, 당신들은 어디서 오셨소?
고려상인 : 우리는 고려 왕경에서 왔습니다.
중국상인 : 이제 어디로 가시는가?
고려상인 : 우리는 대도(大都)로 갑니다.

그 이름도 야릇한 「노걸대」(老乞大)라는 중국어 회화학습서의 첫 대목이다.

제목의 뜻을 종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인 「박통사」(朴通事)와 더불어 「노걸 대」는 고려 및 조선왕조에서 중국어 전문 통역관(당시는 대체로 이런 사람을 역관 譯官이라 불렀다) 양성을 위해 편찬한 회화책 중 하나이다.

물론 다른 책도 있었겠으나, 고려 이후 조선왕조 멸망 무렵까지 중국어 학습교 재로서 판본을 거듭하며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 회화책이 「노걸대」였다.

1998년 12월14일. 중국과 대만, 일본 등지의 해외 중국학 관련 학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고려시대의 상황을 담고 있는, 「노걸대」 원본에 해 당하는 판본이 발굴,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노걸대」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성종 14년(1483)에 기존 「노걸대」를 대폭 줄이고 고친 이른바 '산개(刪改)' 「노걸대」였으며, 가장 널리 알려지고 통용된 것으로는 중종 10년(1515년) 무렵 중국어 역관 최세진(崔世珍)이 한글 번역을 붙여 발행한 「번역(飜譯) 노걸대」가 있다.

그런데 이들보다 시대적 배경이 훨씬 빠른 고려시대로 설정된 판본인 '원본' 「 노걸대」가 한국에서 발견됐던 것이다.

이 책은 실명을 알 수 없는 고려 상인이 사촌형제 둘과 함께 고려 특산품인 말 과 인삼, 모시, 삼베 등을 연경에 갖다 팔고, 다시 고려에서 팔 물건을 사서 돌아오 는 여러 상황을 당시 중국어 구어체로 기록하고 있다. 대화는 고려 상인들과 그들의 연행길에 동행한 중국 상인이 주고받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 「노걸대」가 지닌 가치는 실로 다대하지만, 무엇보다 당시 '살아있는 중국 어'의 실상을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전하는 자료가 없다는 점이 꼽힌다.

「노걸대」는 이와 함께 고려 및 조선의 통역관 양성체제와 그 실상을 엿보게 하고 당시 습속을 드러내며, 또 조선과 중국간 무역의 실상도 알려준다.

중국 여관에서 숙박비를 에누리하자, 못하겠다 옥신각신하기도 하고, 중국에서 싼 값에 구입한 물품을 고려로 가져가 폭리를 취하려는 모습도 관찰된다.

방탕한 생활 끝에 패가망신한 사람의 이야기를 곁들임으로써 교훈성을 높이고 있으며, 원대에 통용되던 '보초'라는 지폐 사용법도 나온다. 또 고려 상인이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묘사한 여행안내서이기도 하다.


다음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신병주 교수의 ‘노걸대’와 ‘박통사’ 설명이다.([신병주의 역사에서 길을찾다]① 세계로 소통하는 문,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 신병주(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세계일보>, 2007년 11월 6일)


조선시대의 중심 외국어는 당연히 중국어였다. 다만 모든 백성에게 중국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중국 사신을 접대하고, 중국에 파견되는 사절단을 수행하는 역관들을 중심으로 중국어 학습이 이루어졌다. 물론 지식인층 중 상당수는 중국어를 능숙히 구사하였다. 대표적으로 세종 시대를 빛낸 학자 신숙주는 중국어, 여진어, 몽고어, 일본어에 두루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어 학습을 위해서는 교재가 필요했다. 중국어 회화의 교재로는 ‘노걸대’가 있었다. ‘노’는 상대를 높이는 접두어로서, 우리말의 씨(氏), 영어의 미스터(Mr)쯤 된다. ‘걸대’는 몽골인이 중국인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3명의 고려 상인이 말과 인삼, 모시를 팔기 위해 중국에 다녀온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적어 놓은 책이다.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은 완전히 회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노걸대’에는 말을 사고 파는 법, 북경에 도착하여 여관에 드는 방법, 조선의 특산물인 인삼을 소개하는 방법 등이 중국어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실무에 필요한 실용 회화책이라 할 수 있다.

‘노걸대언해’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게 한글로 해설한 책으로, 요즈음으로 치면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적은 번역서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어가 보급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 우리나라 중세 국어의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

‘노걸대’는 몽골어로도 번역, 간행되었다.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는 몽고어로 ‘노걸대’의 내용을 싣고 우리말로 그 음을 달아 풀이를 해 놓은 책이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는 이미 멸망했지만 언젠가 몽고어가 필요한 시기가 올 것으로 판단하고 몽고어 학습에도 신경을 썼던 조선 후기의 시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지난 5월 몽골 대통령 부부가 규장각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단 하나, 바로 ‘몽어노걸대’를 보기 위함이었다. 필자는 몽골어 학습에 기울였던 선조의 열정이 현대 한국과 몽골의 우호 협력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노걸대’와 함께 대표적인 중국어 학습서로 꼽히는 책은 ‘박통사’이다. 통사가 역관의 직책인 만큼 ‘박씨 성을 가진 역관’이라는 뜻이다. 노걸대’가 상인의 무역활동을 주제로 하는 ‘비즈니스 회화’에 가깝다면, ‘박통사’는 중국의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전당포에서 돈을 빌리는 상황, 공중목욕탕의 요금과 때밀이, 차용증 쓰기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박통사’는 ‘노걸대’보다 고급 단계의 언어를 반영하고 있어서, 중국어와 우리말의 생생한 모습과 함께 풍속 및 문물제도까지 접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박통사언해’는 ‘박통사’를 우리말로 풀이한 책이다.


저 '노걸대'와 '박통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어 교재다. 원나라 시대의 중국어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는 최고의 자료가 고려시대 판본 ‘노걸대’인 것이다.

필자가 즐겨찾는 중국 전문가 중은우시님 블로그에도 ‘박통사’가 언급되는 글이 하나 있다. 바로 '칫솔질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역사(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2626)'라는 글이다. ‘박통사’에 시장에서 칫솔을 사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아무튼 ‘노걸대’와 ‘박통사’는 동아시아의 교류와 협력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그 가치가 대단히 높은 책들임을 알 수 있다.
 
위의 기사에는 ‘몽어노걸대’를 보려고 몽골 대통령 부부가 얼마전에 규장각을 방문했다는 내용도 있다. 중세 몽골어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일테니 그들에겐 정말 귀한 자료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려시대 판본 ‘노걸대’는 중국인들에게도 무척 소중한 의미를 가진 자료인 것이기도 하다.

‘노걸대’, ‘박통사’는 중세 한국어, 중국어, 몽골어의 보고이면서 당시의 생활사와 국제교류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당연히 이런 고서가 한국인의 자랑거리가 되어 세계에 알려져야함이 마땅함에도, 출간 당시의 세계 보편적인 기준에도 한참 처지는 ‘동의보감’과 같은 넌센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선정은,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을 선정하는데 있어 특정 국가의 매국적 로비단체에 어떻게 좌우되는지, 또 어떻게 그 선정이 각 국가간 대충대충 나눠먹기 식으로 진행되는 건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메디팜뉴스'의 동의보감 비판 관련 기사 :

[1]동의보감 과연 세계적 의학 가치 있는가?

[2]동의보감 과연 세계적 의학 가치 있는가?

[3]동의보감 과연 세계적 의학 가치 있는가?


중국의 한의학 비판이론가 장궁야오 교수 관련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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