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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덕칼럼] 박지원은 왜 김경재를 두려워하는가

북핵사태, 김경재와 박지원, 일대일 끝장토론으로 결판내라!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가 지난 9일 광화문 기자회견을 통해 “김일성과 김정일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 직후부터 비밀리에 핵폭탄 개발을 기획, 1998년도에 본격적으로 이를 착수시켰다”며 “핵폭탄 개발에 한창 자금이 필요할 2000년도, 박지원 현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등이 주도하여 산업은행, 현대그룹을 동원 4억 5천만 불이라는 막대한 현찰을 김정일의 해외 비밀계좌에 넣어주었다. 이 돈이 핵폭탄 개발에 쓰여졌을 것은 뻔한 일이다”고 비판했다.


김 총재는 “이렇게 북한 핵폭탄 개발에 실질적 돈을 지원한 박지원-임동원 등은 그 핵폭탄 방어용 무기인 사드 배치마저 극구 반대하며, 북한 김정은 세력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회에 즉각 박지원 등을 증인으로 세워 청문회를 개최, 불법 대북송금의 숨겨진 의도와 그 망국적 결과에 대해 낱낱이 국민에 보고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현대의 정몽헌 회장이 당국의 압력에 못 이겨 10억 불의 돈을 김정일에게 보내고 이 전모를 검찰에 진술, 고민 끝에 자살했다는 세간의 의혹도 정부가 앞장서서 밝혀주기를 요구한다”고 국회에 요청했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과 미디어워치 변희재 전 대표는 아예 박지원을 겨냥 "북한 김정일이 1998년도부터 핵개발에 착후했다는 게 정설이므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불법 대북송금을 논의하면서, 만약 핵개발 사실을 알고도, 불법으로 김정일 개인계좌에 4억5천만불을 송금했다면, 여적죄로 사형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 김경재, 박지원 이 둘은 약 50여년 전 미국에서부터 인연과 악연을 이어온 사이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만난 박 위원장과 김경재 총재는 사업가와 언론인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김 총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 김대중의 인권문제연구소 재정지원을 위해 박지원을 워싱턴 DC까지 동행하여 DJ에게 소개한 바 있다. 박지원 위원장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씨에 줄을 대고 있었으나, 김경재 총재의 설득으로 노선을 바꾸게 된 것.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으로 뒤바뀐 김경재와 박지원의 운명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박지원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것도 지금의 사드배치와 밀접한 관계있는 대북 문제 때문이다. 김 총재는 지난 1999년 현역의원이자 DJ의 특사로 평양을 방북한 뒤 돌아와 청와대 보고에서 김정일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인민을 굶겨죽이는 지도자와 이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지원하는 물품이 제대로 주민들에 보급되는지 모니터링조차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과의 관계는 서둘러선 안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총재의 의견을 선뜻 수용하지 않자 심지어 “이렇게 대북관계를 서두르니 대통령님이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는 말이 세간에 돌지 않습니까”라고 따져묻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DJ의 명령은 간결했다.


"좋아. 지금부터 김동지는 대북문제 손떼고 여의도에서 의정활동에 전념하라고."


"알았습니다. 북한문제에 대해 손 떼겠습니다."


반면 당시 원외였던 박지원 위원장은 김총재를 대신하여 DJ의 방침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측근으로 올라서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의 첫 작업은 남북정상회담이고, 이를 위해 현대그룹을 통해 총 4억 5천만달러의 돈을 김정을 개인계좌로 넣어주는 것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박지원 위원장은 산업은행을 움직여 4천억원의 대출을 현대그룹에 주선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잘사는 형이 가난한 동생을 찾아가는데 빈손으로는 갈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북한 김정일이 1998년도부터 핵개발을 본격 추진했고, 2006년도에 핵실험을 성공했기 때문에, 2000년도에 김정일 개인계좌로 들어간 4억 5천만 달러가 핵개발에 사용되었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박지원 위원장은 형무소 생활을 했으나 오히려 그 경력으로 햇볕정책의 후계자가 되어 야당의 실력자가 되었고, 김총재는 DJ가 주도해온 햇볕정책에서 이탈, 박근혜 대통령 특보를 거쳐, 자유총연맹 총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 둘의 운명은 정확히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에서부터 갈라지게 된 것이다. 바로 이 문제로 50년 지기 김경재와 박지원이 16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김경재 총재가 박지원 위원장의 미국에서의 생활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다는 설이 돌면서, 보수논객과 보수매체에서 박 위원장을 비판할 때, 김경재 총재를 거론한 적이 있다. 프런티어타임즈는 ‘박지원, 부인 미국서 자살소동 왜?’라는 기사에서 “김경재 전 의원은 미국에서 전경환에 줄을 대고 있던 박지원을 김대중 쪽으로 픽업한 인물로, 박지원 대표의 돈, 여자 등 사생활을 완전히 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경재 총재는 당시 “박지원 대표의 내연녀 등에 대해 들은 바는 있으나,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며, “박지원 대표에 대해 정치적 비판을 할 수야 있겠지만, 치사하게 남의 사생활을 들추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TV조선의 ‘판’에 출연했을 때도 “내가 입 열면 박지원의 정치생명은 끝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사생활을 거론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박지원 부인의 '자살설 운운'은 듣도 못한 이야기라고 했다.


반면 박지원 위원장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꾸준히 비판해온 바 있다. 2010년 10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이명박 정부를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이라고 했다"는 박 위원장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자 김총재는 "중국 사대주의 발상"이라며 비판했다. "왜 우리가 '시진핑의 평화'에 잣대를 맞춰야 하느냐"는 일침이었다. 마치 현재의 사드배치 논란을 예견이나 한 듯, 박위원장을 친중 사대주의라 비판했던 것이다.



사적 관계 넘어선 김경재와 박지원, 북핵사태 끝장토론으로 결판내라


김경재와 박지원은 이렇듯 인연과 악연을 이어갔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둘 간의 관계에서 박지원 측이 더 피하는 분위기이다. 뉴욕에서부터 이 둘과 인연이 있던 문일석 브레이크뉴스 발행인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 당시 대북송금사건으로 인해 수감 중인 박지원이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했던 세브란스 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설날 무렵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김경재에게 전화를 건 이후 박지원에게 바꿔줬다. 화해를 위한 중재였다. 그 중재가 빗나갔다. 박지원이 “구누냐?”고 물었다. “김경재”라고 답했다. 이때 박지원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냐?”고 성질을 내면서 불쾌하게 말했다. 병원에서 나왔을 때 김경재와 통화했다. 박지원의 행동에 대해 말하자 김경재는 허허 웃었다. 김경재는 그때까지도 "화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음을 엿보았다>


그러나 현재 이 둘의 관계는 사적인 인연과 악연의 차원을 넘어섰다. 북한 핵폭탄 위협이 현실화된 지금, 김경재 총재는 북핵 저지를 위한 보수측 전선의 야전 사령관으로,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DJ와 노무현의 햇볕정책 노선의 맏형으로 둘은 국운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 둘이 장외에서 신경전을 벌이기 보단, 깔끔하게 100분토론 같은 데서, 북핵폭탄 사태를 놓고, 일대일 끝장토론을 해보면 어떨까. 그들의 50년 정치경력을 걸고, 누가 국민들에게 더 설득력있는 논리를 제시하느냐 갖고 간단히 판을 가려보자는 것이다.


최소한 김경재 총재의 경우는 이를 피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박지원 비대위원장만 수락하면 내주라도 사상 최고의 토론전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박종덕 데일리저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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