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폴리틱스워치 (정치/사회)


배너

에드먼드 로스 등은 왜 앤드류 존슨 탄핵에 반대했나?

의회가 모호한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할 경우 대통령職의 권위 추락 우려...지금 우리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얼마나 공정한가?

※ 본지는 앞으로 조갑제닷컴(http://www.chogabje.com)의 역사, 외교, 안보 분야의 우수 콘텐츠들을 미디어워치 지면에도 소개하는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본 콘텐츠는 조갑제닷컴 회원토론방, 필명 '47 로닌'님의 글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불충분한 증거와 당파적인 이해관계로 인해서 내쫓기게 된다면, 대통령직(職)의 권위는 크게 실추될 것이며, 결국은 입법부의 종속적인 기관으로 지위가 전락하고 말 것이다. - 에드먼드 로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를 당한 대통령은 제17대 앤드류 존슨이었다. 사유는 존슨이 전쟁부(국방부) 장관 에드윈 M.스탠턴을 해임한 것이 ‘공무원 재직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연방하원은 “의도적으로 법률을 위반했으며, 독재적으로 의회의 의사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존슨을 소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내리지만, 미국에서는 연방하원이 탄핵소추, 연방상원이 탄핵결정을 맡는다.

의회가 탄핵 사유로 제시한 몇 가지 이유는 사실 애매모호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존슨이 탄핵당한 것은 그가 공무수행에 있어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남북전쟁 후 재건정책을 둘러싼 의회와의 갈등이라는 측면이 컸다. 존슨은 원래 남부 민주당 출신이면서도 남북전쟁 당시 연방의 유지라는 링컨의 대의에 공감해 북부 편에 섰던 인물이었다. 그는 부통령으로 있다가 링컨이 암살당하는 바람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존슨은 전후(戰後) 남부에 대해 유화책을 쓰면서 화합을 통해 연방을 재건하려던 링컨의 유지(遺志)도 충실히 계승하려 했다. 하지만 공화당 강경파가 지배하는 의회는 존슨의 유화책에 사사건건 반대했다. 스탠턴은 그런 공화당 강경파의 우두머리였다. 존슨의 탄핵은 대통령과 의회의 싸움이었다.





연방상원의원 수는 당시 54명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그 중 36표가 필요했다. 공화당 의원은 42명, 민주당 의원은 12명이었다. 민주당이 앤드류 존슨 편을 들더라도 공화당 의원들만 단결하면 탄핵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탄핵 이전에 이미 6명의 공화당 의원이 ‘지금까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존슨을 탄핵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탄핵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36명만 찬성해도 탄핵안은 통과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남북전쟁 당시부터 연방에 대한 충성파였고, 앤드류 존슨의 정책에 철저하게 반대해 온 의원들이었다.

하지만 탄핵추진세력을 당황하게 하는 일이 또 발생했다. 캔자스 출신 상원의원 에드먼드 G.로스가 탄핵에 미온적이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던 날 로스는 동료 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스츠레이그, 정말 중요한 문제가 생겼네. 내가 관련되는 한, 나는 공화당원이고, 존슨과 그의 정책에 반대하지만, 그는 한 피고인으로서 가장 공정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네.”


로스는 앤드류 존슨에 대한 극렬한 반대활동을 통해 정치적으로 입신(立身)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공화당 강경파도, 그를 의회로 보낸 캔자스 여론도 경악했다. 상원의 탄핵결정 투표가 있기 전날, ‘D.R안토니와 1000명’의 이름으로 유권자들이 그에게 전보를 보내왔다. 

캔자스주는 모든 증거를 검토한 결과, 대통령의 유죄판결을 요구한다.


다음날 로스는 답전(答電)을 보냈다.

나는 여러분들이 나에게 유죄판결에 찬성을 해라, 혹은 반대를 해라 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공정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선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국가의 최고선(最高善)을 위해서 내 판단에 따라서 투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탄핵안은 모두 11개 항으로 되어 있었다. 먼저 대통령 탄핵안의 전체적인 지지 여부를 묻는 투표부터 실시했다. 로스가 투표할 차례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24명이 탄핵 결정에 찬성표를 던졌다. 나머지 11명도 찬성할 것이 확실했다. 문제는 로스였다. 하지만 로스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했다. 탄핵안은 일단 부결되었다. 며칠 후 실시된 나머지 탄핵안의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도 로스는 계속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앤드류 존슨은 탄핵을 모면할 수 있었다.

로스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일관되게 반대해 온 존슨의 탄핵에 왜 반대했을까? 로스는 후일 이렇게 술회했다.

넓은 의미로 따진다면, 국가 내의 동등한 기관인 행정부의 독립성이 심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 불충분한 증거와 당파적인 이해관계로 인해서 내쫓기게 된다면, 대통령직(職)의 권위는 크게 실추될 것이며, 결국은 입법부의 종속적인 기관으로 지위가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훌륭한 정치조직을 타락시켜서, 의회 내의 당파 독재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것은 이 나라가 탄생된 이래 가장 교활한 위험이었으며, 미국 정치의 가장 악랄한 요소에 의해서 조종을 당하고 있었다. 만약 앤드류 존슨이 비당파적인 투표에 의해서 무죄 방면(放免)되지 않았다면, 미국은 당파에 의한 통치의 위험성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다수에 동조하는 특징을 나타냄으로써 국가조차 위험 속으로 몰아넣게 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로스는 앤드류 존슨이 이뻐서가 아니라, 미국 헌정(憲政)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탄핵결정에 반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로스를 비롯해 앤드류 존슨의 탄핵결정에 반대했던 공화당 의원들은 모두 정치생명이 끝났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 캔자스로 돌아왔을 때, 로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왕따’였다. 하지만 로스는 당당했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를 저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일이 오면 나를 축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神) 이외의 그 누구도 나에게 가치를 주었던 투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이미 지나간 가장 큰 위험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해 냈기 때문이다.”


후일 존 F. 케네디는 용기 있는 사람들에서 한 장(章)을 에드먼드 로스를 비롯해 앤드류 존슨의 탄핵결정에 반대표를 던졌던 의원들에게 할애했다. 케네디는 이렇게 썼다.


그는 그가 정치적으로 매장당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의무를 다하였다....로스가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는 그 일을 했다. 그는, 그의 행동이 그 자신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결한 애국심으로 그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했다. 그는 정당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에드먼드 로스와 함께 반대표를 던졌던 메인주(州) 출신 윌리엄 피트 페슨던도 여론의 압박을 물리치기 위해 비상한 용기를 발휘해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중은 감정과 편견으로 자극받게 되자 사나운 맹수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 자신의 자존심과 깨끗한 양심을 유지할 것이며, 적어도 시간은 내 행동의 동기를 정당하게 평가해 줄 것이다.”


그는 자신을 협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맞섰다. 

“나는 재판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책임도 없고, 증거를 살펴보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권리로 나의 판단과, 심지어는 선고(宣告)에 대해서까지 간섭을 하려고 드는 겁니까?....그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공정한 재판에 대한 선서를 했습니다.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내 행동과 그것의 결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미조리 출신 존 B.헨더슨도 협박에 당당하게 맞섰다. 

“나는 법과 양심에 따라서 공정한 판결을 할 것이며, 그것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할 것이라고 나의 친구들에게 전해주시오.”


역시 탄핵결정에 반대했던 테네시 출신 조셉 스미스 포울러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내 조국과 후손을 위해 행동했을 뿐이다.”


포울러에 대해 케네디는 이렇게 평했다. 

그는 ‘불안한 시기를 틈타 표면에 나타나서, 꺼져가는 혁명의 불길을 계속해서 타게 하려는 정객(政客)들에게 끌려 다니기를 거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논의되고 있다. 이미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40명 가까운 의원들이 탄핵에 찬성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에도 말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비호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는 나도 누구 못지않다. 또 나는 대통령이 거리의 요구에 의해 하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탄핵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대통령을 쫓아낼 때 쫓아내더라도 헌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기소에 해당하는 탄핵소추, 그리고 재판에 해당하는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회의 탄핵소추부터가 얼마나 공정한지 의구심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사(公私)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최순실 같은 3류 인생들에게 좌우된 것은 잘못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도 이미 드러났다.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고,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만한 권위를 상실한 것도 사실이다. 미르재단이나 K재단의 모금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한 것은 분명 적절치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행동을 했는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 검사의 기소장에 해당하는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법적으로 면밀한 검토를 해야 한다. 형사재판에 회부되었을 때에 어느 판사라도 유죄판결을 내릴만한 불법사실에 준하는 잘못을 저질렀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가 준비하고 있는 탄핵소추안은 어떤가? 듣기로는 변호사 출신 야당 의원이 작성한 탄핵소추안에는 미르재단이나 K재단이 재벌들로부터 모금한 돈, 최순실이 받은 뇌물들도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포함시켰다고 한다. 황당하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그 의원의 친구가 뇌물을 받았을 경우, 검사는 그 의원이 뇌물을 받았다고 기소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7시간’을 탄핵사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세월호 7시간’동안 대통령이 아무리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불법은 아니다. 헌법의 행복추구권 침해를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도 웃기는 얘기다. 대통령은 정책수행 과정에서 불가불 일부 국민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런 국민들은 모두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하야(下野)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식으로라면 김대중, 노무현도 골백번은 더 하야하고, 탄핵당했어야 했다.

이런 식의 탄핵소추안이라면 공정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기에 더해 대통령을 소추하려는 의원들에게 당파성도 엿보인다. 야당은 물론이거니와 새누리당 내 의원들도 당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좀더 크게 보면 대통령 권력과 국회권력의 충돌이라는 측면도 있다.

대통령을 탄핵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이 무죄라는 얘기도 아니다. 그걸 1차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인 만큼, 탄핵할 때 하더라도 공정하게 하라는 것이다. 거리의 함성에 좌우되지 말고, 헌정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판단하라는 얘기다. 앤드류 존슨의 탄핵결정에 반대표를 던졌던 의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