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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논문표절, 과거로 갈수록 심각했던 ‘관행’?

“50~60년대에는 번역표절 이외엔 거의 없어...악질적인 ‘텍스트표절’은 90년대 이후 유행한 것으로 보여”

남의 텍스트를 그대로 베껴쓰는 형태의 논문표절은 근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오히려 적었을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논문표절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앵무새처럼 “과거의 관행”이라고 항변해온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17일, 연구진실성검증센터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노골적인 형태의 논문표절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대학교, 대학원의 양적 팽창과 관련이 깊을 수 있다”면서 제한적이고 편향적일 수 있는 샘플에 의한 결론이지만, 보다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50~60년대 '엘리트 박사' 시절에는 재인용표절·텍스트표절 등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봤을 때 과거로 갈수록 논문표절이 성행했다는 식 속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본지는 연구진실성검증센터에서 연구윤리분야 제도분석 및 인문경제분야 학술논문 검증을 주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이모 팀장(49)의 경험과 설명을 바탕으로, 논문표절의 시대별 특성과 대학가의 현실, 해결방법 등을 Q&A 형태로 재구성해봤다. 이모 팀장은 자신의 분석을 연구진실성검증센터의 공식 입장이나 확정 사실로는 받아들이지는 말고, 일단은 다수 논문 조사 경험에 근거한 가설로만 받아들여 달라고 강조했다.


 

Q: 논문표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논문 표절은 과거의 관행”이라는 주장이 등장하는데.

A: 이른바 ‘논문표절은 과거의 관행’이라는 통념은, 나의 조사 경험과는 분명 배치된다. 통념대로라면 과거로 갈수록 논문표절이 더 심해야 하는데, 내 조사 경험으로는 오히려 1990년대 이전으로 갈수록 악의적인 논문표절이 덜 발견되는 것 같다. 물론 전수조사나 엄정한 무작위조사에 의한 결론이 아니므로 단정할 수 없지만, 나와 같이 논문표절 조사를 해보면서 비슷한 경험을 토로하는 친구들이 있다.



Q: 왜 1990년대인가.

A: 최근 논문표절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이전에는, 대체적으로 석박사 논문의 질적 수준과 표절 정도가 대학원의 양적 팽창과 반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학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 때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5.31교육개혁안을 발표함에 따라 대학원의 기능·유형이 다양화해지고 전문대학원도 도입됐다. 이때부터 대학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60년대에는 2~3천명 정도에 불과하던 대학원생 수가 90년대 중반 10만명을 넘어섰고, 2000년대 이후로는 30만명이 훌쩍 넘는다. 과거에는 대학원생은 주위에서 찾아보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취업의 도피처로까지 여겨지는 수준이 됐다. 급작스러운 대학교, 대학원의 양적 팽창이 찍어내기식 석박사 논문 양산과도 무관치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Q: 대학원의 증가 이외에 논문표절이 만연하게 된 다른 이유는 없나. 

A: 1990년대 이후 논문표절이 만연하게 된 원인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아까도 말했다시피 대학원 숫자의 폭발적 증가다. 이로 인해 수준 낮은 대학원도, 수준 낮은 논문도 늘게 됐다. 이로 인해 대학원생의 이미지도 사회 엘리트가 아니라, 점점 그저 평균적 지능 수준인 학생들로 변하게 됐다.

두 번째로는 정보기술의 발달을 들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인 인터넷의 발달과,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이 가능해진 컴퓨터 문서작성 프로그램의 일반화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컴퓨터의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 간단히 복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세 번째로는 ‘전문 컨설팅’ 업체를 빙자한 논문 대필 업체의 성행이다. 이와 관련 황당했던 경험도 있다. 서울의 한 명문 대학의 경영학과 논문들을 대거 검증했었던 일이 있었다. 검증 대상 논문은 최근 논문인데다, 윤리서약서까지 첨부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다른 논문과 제목부터 내용까지 100% 일치했던 경우까지 있었다.

이러한 원인들로 인해 1990년대 말 이후로는, 일부 뛰어난 논문의 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논문의 질적 수준과 연구윤리 의식이 “쓰레기”라고 평해야 할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본다. 조심스럽게 얘기해야겠지만 이 시기에는 정상적인 논문이 오히려 굉장히 희소했다. 






Q: 그렇다면 1990년대 이전 과거에는 어땠나. 근대 고등교육 체계가 막 자리잡기 시작하던 50~60년대에는?

A: 대한민국 건국 후 50~60년대에는 대학원생이 전체 인구의 0.01% 수준이었다. 굉장히 미미했고, 따라서 대학원생이 된다는 것은 곧 학자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승만 박사, 조병옥 박사 등 ‘박사’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던 시절이다. 그런 당시에는 남이 쓴 글을  ‘복붙’식으로 그냥 그대로 훔쳐 석박사 학위를 받겠다는 식의 표절이라는 건 상상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때문에 표절의 양상이 다른데, 남의 문장을 훔쳐 쓰는 ‘텍스트표절’은 거의 없었고, 다만 외국어 원서를 번역만 해서 적절한 인용처리 없이 수록하는 양태가 나타난다. 당시는 학문적으로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의 문헌을 수입하던 단계였던 영향도 크다.


 
Q: 70~80년대에는 어땠나.

A: 나의 조사 경험으로는 70~80년대에 들어서면 표절이 ‘재인용 표절(2차 문헌 표절)’을 중심으로 이뤄지는게 나타난다. ‘재인용 표절’(2차 문헌 표절)은 논문 참고문헌의 출처까지도 도용하는 표절이다. 번역 표절이 그래도 외국 문헌 소개의 이점이라도 있었다면 사실 재인용 표절은 어떤 이점도 없는 표절이다. 재인용표절은 말하자면 대표적으로 번역서를 한두권 읽는걸 가지고, 마치 수 많은 외국어 원서를 읽은 것처럼 표기하는 행태다. 원서(1차 문헌)를 읽을 능력조차 없는, 한마디로 연구능력이 근본적으로 없는 이가 저지르는 표절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이 시기까지만 해도 자잘한 텍스트 표절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원문을 보고 연구한다’는 대학원생의 프라이드가 있어서 그런지, 논문은 현학적인 양태를 보인다.



Q: 70~80년대라면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차지한 386세대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들 세대의 논문은 어떤 특성이 있다. 

A: 386세대는 당연히 재인용 표절이 많다.  다만, 90년대 이후 세대에 비하면 표절이 만연한 세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하듯, 이들 세대가 대체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맞는 것 같다. 당시는 격동의 시대였기 때문에 공부를 할 여건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독재정권에 항거한 시위와 학생운동을 하느라 학문에 필요한 절대적 시간 자체가 부족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인지 386세대의 논문표절은 대부분 책 한두권을 참고하고도, ‘재인용 표절’을 통해 수많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 원서를 직접 본 것처럼 거짓으로 출처표기를 하는 양태가 나타난다. 조국 민정수석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인문사회경제학 분야의 경우, 386세대 논문은 내용면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구 소련 체제에 대한 동경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한 주제가 많았다. 현실을 부정하며 끝까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믿음을 부여잡는 모습이 지금와서 돌아보면 애처롭게까지 느껴진다. 



Q: 2000년대 이후 논문 표절 실태는 어떠한가. 

A: 2007년을 기점으로 교육부가 나서서 연구윤리기준을 마련하고 대학별로 연구진실위를 설치하는 등 점차 연구윤리 검증 절차와 기준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6단어 연쇄 중복’과 같은 기준도 이 때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준은 마련됐지만 대학의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대학이 의지만 있다면 논문표절 문제는 어느정도 바로잡을 수 있는데, 대학마다 단지 많은 대학원생들을 유치하려는 경쟁만이 벌어지는 상황이 됐다. 한마디로 대학원이 산업 구조화되고 교육부-대학-대학원생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적폐 해소가 요원한 상황이다. 



Q: 논문표절은 범죄라는 사회적인 인식은 강화되고 있지 않나.

A: 그나마 2012년 문대성 논문표절 의혹 사건 이후로 정치권 저명 인사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이 이뤄지고 있다. 덕분에 최소한 현재의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전면적인 표절은 피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조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 학교들도 수시로 논문표절 예방교육을 하고 있고, 단속도 역시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문재인 정권 들어서 논문표절 혐의자들이 잇따라 장관·수석에 임명되고 있는데.

A: 학계를 생각해서라도 논문표절 혐의자를 최소한 교육부장관으로 임명해선 안 된다고 본다. 지금이 중요하다.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대학과 정부가 의지를 갖고 논문표절 근절 의지를 보여준다면, 연구윤리사(史)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시기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문재인 정부가 논문표절 혐의자를 교육부장관으로 앉히려하고, ‘너도나도 잘못했으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하면, 논문표절 근절은커녕 우리나라 학계가 무너질 수 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이 책임을 질 건 지고 논문표절 근절 의지를 다진다면, 우리사회 지식사회로 나아갈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Q: 난마와 같은 상황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A: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각 대학의 연구진실성위원회 폐지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2007년부터 각 대학에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지만, 우리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서구의 제도를 이상적으로 도입했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지침'만 봤을때는 아마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정부 주도로 좋은 연구윤리교재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서울대를 비롯 각 대학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논문표절 의혹만 불거지면 ‘팔이 안으로 굽는’ 판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논문표절 혐의자를 조사하고 대학 측에 징계를 요구해야할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 서울대 진실위의 경우는 특정 학자를 음해하는 등 심지어 학내 파벌 싸움의 도구로까지 기능하고 있다는 혐의마저 있다. 우리나라는 한시적으로라도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교육부 산하기관이 '제 3의 검증기관'으로서 논문 표절 검증을 총괄해야 한다. 당장에 각 대학에 권한을 나눠주기에는, 각 대학은 연구윤리위반 문제 해결에 필요한 능력도 의지도 없는 상황이다. 



Q: 논문 표절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A: 논문표절은 원칙적으로 대학원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과 지도교수의 문제이고 책임이다. 지도교수는 학생이 연구윤리를 준수하도록 지도하고 점검할 의무가 있고, 대학은 자신들이 부여한 학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헌데, 우리나라에서는 논문 표절 논란에서 지도교수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대학원생이면 그래도 성인인만큼 책임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논문표절의 책임을 오로지 논문작성자에게만 전가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Q: 표절은 한국인의 특성인가. 

A: 아니다. 우리도 역시 역사적으로 나름 학문윤리에 있어 엄격했다. 조선시대는 의외로 표절에 대해 엄격한 사회였다. 조선은 ‘유교적 사실주의’를 숭상한 국가로서, 말을 할 때도 “어느 책 어느 성현의 말씀에 따르면...” 이라고 운을 띄우는 습관이 있었다. 유교사회에서도 제대로 인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여기서 유교적 사실주의는 회화에서도 나타난다. 임금의 초상화를 그릴 때도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고, 주름과 검버섯까지도 사실대로 그려 넣었다. 철저한 기록문화도 값진 유산이다.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태종이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를 하고 그 사실을 적지 말라고 당부했더니, 사관은 오히려 “임금이 말에서 떨어진 사실을 사초에 적지말라고 했다”는 것까지 기록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특히, 조선시대 한치윤이 저술한 ‘해동역사(海東繹史)’는 인용 서적이 550권에 달한다. 서양과 중국, 일본의 문헌을 망라하는 참고문헌 표기는, 현대의 기준에도 크게 모자라지 않은 문헌 출처표시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Q: 논문표절은 근절할 수 있을까. 

A: 인간사가 그렇듯 음주운전이 완전히 근절이 안되는 것처럼 논문표절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상당히 줄일 수는 있고 또 어떻든 최대한 줄여나가야만 지식사회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일단 공론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다 잘못했는데 봐주자’는 현상유지 내지 퇴행적 해결책 보다는, 잘못을 모두 드러내 놓고 문제해결을 위해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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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2013년 초 본지 산하 부서 및 기구로 출범했다. 앞서 2012년에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 문대성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박사논문 표절 문제와 관련 정치권에서 대대적 논란이 불거졌었던 사건이 바로 미디어워치 산하 연구진실성검증센터 설립의 계기가 됐다. 학자도 아닌, 운동선수의 표절에 대해 유독 가혹하게 비판하는 언론과 학계, 정치권의 위선을 보며, 특정인의 논문표절만을 그토록 문제시하는 우리 사회의 진짜 논문표절 실태를 살펴보자는 것이 연구진실성검증센터의 설립 취지였다. 


이후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좌우 및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논문표절검증을 진행했다.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그간에 논문 표절 문제를 파헤친 유명인사는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이준구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등 30~40명을 헤아린다.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2013년 말부터 미디어워치에서 독립했고, 이후 독립 교육컨설팅업체 및 미디어워치 객원연구소로 활동하며 공개적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논문 표절 및 연구부정행위 검증 의뢰와 자문 의뢰를 받고 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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