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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정권을 잡자, IMF에 관해 이런 말을 남긴다.

 

“그 많은 돈이 사라져야 할 국가적인 재난도 없었고, 전쟁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김영삼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도가 나고, 자살하고, 가정이 파괴되었는지 모른다. IMF는 20세기말 6.25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은 처참한 비극이었고, 5000만 국민들이 너나없이 겪은 깊은 시련이었을 것이다.

 

모 방송에 ‘자연인’을 다룬 프로가 있다. IMF로 인해 가정이 파탄난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의 사연은 곧 눈물이었다.

 

국가경영에 노력을 다하지 않고, 소급입법이나 제정해서 ‘전직 대통령죽이기’에 몰두했던 김영삼.

 

그러나 이는 문재인의 적폐청산과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북핵과 한미FTA 개정 위기에 직면한 지금, 문재인 역시 나라경제와 안보에 집중하지 않고 적페청산만을 외치고 있다. 김영삼처럼 ‘전직 대통령죽이기’에만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이다. -

 

오직 신(神)만이 심판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은 전두환을 향해 지극히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심판을 한다. 그리하여 사법의 정의는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었고, 진실은 숨고 허구(虛構)만이 국민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두환의 진실은 마침내 응보(應報)를 부른다.

 

응보(應報), 이것은 전두환을 위한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전두환의 진실을 역행한 역대 대통령들은, 그 끝이 하나같이 나빴음을 보면서 응보(應報)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필자(筆者)는 11부 제목을 ‘응보(應報)’로 잡았지만, 이는 차라리‘저주(詛呪)’라 해야 옳을 것이다.

 

먼저, 노태우.

 

노태우는 오랜 친구 전두환을 배신하고 백담사로 보낸다. 그리고 제직기간 동안 단 한번도 찾아주지 않는다. 결국 노태우는 김영삼에 의해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법정에 선다. 그 역시 사형선고와 무기징역과 감형 절차를 밟는다.

 

1심에서는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이후 항소심에서는 징역 17년으로 감형되었으며, 결국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해 말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3후보 모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결국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후인 12월 20일 대통령 당선자 김대중의 요청으로 김영삼 정부에 의해 전두환과 함께 사면복권 되었다.

 

결국 노태우는 거의 3000억에 이르는 추징금을 모두 냈고, 지난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10년 넘게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투병 중이다. 그 역시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예우를 박탈당했다. 88서울 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치고, 무역수지 흑자를 이어갔으며, 중국과의 국교를 맺는 등 우수한 국가경영을 하였으나, 그의 결말은 비참이라는 말밖에는 없다.

 

그러나 전두환은 노태우의 병실을 찾는다. 오랜 옛 친구에 대한 우정이었고, 전두환다운 용서였다.

 

"역사는 그들의 우정에 돌이킬 수 없는 애증의 골을 심어놓았다. 우리 역사가 민주주의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그들의 악연은 더욱 깊어져갔던 것이다."

 

드라마 '제5공화국' 마지막회 中

 

다음은, 김영삼 대통령이다.

 

그의 정치적 세력은 김대중에 미치지 못하였다. 결국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통해 민정당 최고위원이 되었고, 박태준과 김종필을 제치고 대선 후보가 된다. ‘트로이의 목마’라는 표현이 적확한 인물이었다.

 

(참고로 김영삼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노무현은 3당합당에 반대하며 탈당, 이후 김영삼과 정치 노선을 달리하게 된다.)

 

김영삼이 주로 시용한 경구가 바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정말 닭의 목을 제대로 비틀었느냐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전두환이 소위 민주화세력이라는 반정부세력들의 목을 제대로 비틀었다면 대한민국은 정녕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김영삼은 재임 시절 점심을 칼국수로 먹을 만큼 청렴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아들 김현철의 국정농단은 막지 못했다. IMF가 시작되는 한보그룹의 부도. 그 한보그룹 5조 불법대출의 주범이 바로 김현철이었다.

 

따라서 국가경영이란 칼국수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랍스타나 곰발바닥요리를 먹는다 하여도 대통령은 흉이 될 것이 없다. 나라만 부강하게 만든다면 송로버섯 정도야 얼마든지 먹어도 좋다. 칼국수가 전부일 수 없는 이유가 그렇다.

 

그렇다면, 온 국민의 눈물을 쏟게 하였던 IMF 진행과정을 살펴보자.

 

1990년대는 3저(低) 호황으로 빚을 내서 투자하면 돈을 버는 시절이었다. 따라서 기업들이 과도한 차입을 통해 투자를 확대, 외형을 불렸고, 당시 30대그룹 평균 부채비율은 518%나 되었다.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 과정에서 정경유착, 분식회계가 만연하였다.

 

여기에 김영삼의 강력한 의지로 OECD 가입하여 자본시장 개방하였고, 해외 투자가 몰려들어 원화가치 급등하였다. 원화가치 급등이란 환율 하락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수출 부진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경상수지는 적자, 외채는 증가하였다.

 

여기에 태국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아시아 시장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빌려준 돈 못 받을까봐 불안해 하였고, 한보그룹 부도를 시작으로 은행과 기업들 연속 부도가 시작되었다. 당시 한보그룹은 2천억원 정도의 자기자본으로 5조 5천억원의 대출을 받아 당진제철소 짓다가 망했는데, 이 5조에 이르는 대출에 김현철이 관여한 것이다.

 

특히 당시 재계 8위였던 기아차 부도가 컸다. 이런 부도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분식회계가 세상에 드러났고, 이를 지켜본 외국인들은 한국의 투자환경을 불신하게 된다. 한국에 돈 빌려줬던 외국인들이 한국도 태국처럼 되는 것 아니냐며 투자금을 회수하자, 안그래도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가 없는데 한화를 달러로 바꿔서 회수하므로 외환보유고는 고갈 되었다.

 

결국 외환이 없어 모든 외채에 대한 지급 불능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달러로 갚아야 하는데 달러가 없어 못 갚게 되자, 유동성 부족에 의한 국가부도가 예상되므로 사전에 IMF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부도와 파탄에 이르러, 자살과 이혼과 가정파괴로 인해 고통을 받았는지 모른다. 6.25 이후 가장 많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들의 무능이 증명된 IMF사태는 이로써 끝나지 않는다.

 

더욱 기관인 것은 진실을 숨기려 한 사실이다. 7차 교육과정 5-2 교사용 교과서. 국민의 과소비가 외환위기 원인이라고 하였고, 5-2 학생용 사회과탐구 교과서도 마찬가지 내용이었다.

 

이로써 김영삼은 역사적 조롱을 받는 인물로 전락하였다. 국가경영에 매진하지 않고, 전직대통령 잡기나 하였던 응보(應報)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김영삼의 사망 때 빈소를 찾아가 조의(弔意)를 표한다.

다음은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당선 즉시 김영삼이 만들어 놓은 IMF시대를 극복해야 했다. 지진 같은 국가적 재난도 없었고, 전쟁도 없었던 마당에 노태우 시절까지 이어지던 무역흑자와 외환보유고가 모두 거덜났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고 나서는 전두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에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 당선 즉시 전두환을 사면, 용서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을 前대통령으로서 어느 정도 예우해줬으며 국정에 대해서 의논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도 이에 대해서 언제나 감사한다고 언급한다. 전두환 노태우의 석방은 당시 대통령 당선자 김대중의 요청으로 이루어 졌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김대중 입원 시에 전두환은 병문안을 가서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전직 대통령들이 가장 편했다” 라고 고백한 걸로 미루어보면, 말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용서하고 괴롭히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김대중은 대북불법송금부터 북한 핵 개발에 대한 거짓말까지 숱한 비난과 의혹을 받았으나, 천수(天壽)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전두환은 김대중의 빈소를 찾아가 지극한 조의를 표한다.

 

그 다음 대를 이은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전두환을 증오 했던 인물 중 하나다.

 

5공 청문회 당시, 청문회장에서 퇴장하려는 전두환에게 자신의 명패를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본인은 그 명패를 바닥에 내팽개친 것으로 자서전에 기술하고 있으나, 명패 투척 사건은 노무현의 결말에 대한 복선적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알 수 없으나 사이가 안 좋았다는 건 확실하다. 그래도, 2003년 취임을 앞두고 설에 유인태 정무수석을 보내서 세배를 드린 것을 보면 적당하게 예우는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노무현 자서전 명패 투척 사건에 대한 기술이다.

 

‘내가 청문회로 꼭 덕만 본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회복이 안 되고 있을 만큼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일도 있다. 소위 '명패투척사건'이 그것이다. 청문회에 나온 전두환 씨가 퇴장할 때 내가 명패를 집어던진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나는 당시 언론에 의해 '국회의원의 자질이 문제'라며 매우 무식하고 경우 없는 깡패(?)로 비난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나에게서 그런 이미지를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그 반대로 "기왕이면 머리통을 정통으로 맞출 일이지 그게 뭐요?" 하면서 통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전두환 씨에게 명패를 던진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내동댕이를 친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전두환 씨에게 대한 분노보다는 당시 내가 소속하고 있던 통일민주당의 지도부에 대해 화가 치밀어 내동댕이쳤던 것이다.’

 

자신의 명패 투척과 투신자살은 서로 복선적 관계에 있음을 이제야 필자(筆者)도 깨닫는 바다.

 

그리고 이명박.

 

이명박은 전두환과는 철저하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을 지킨 인물이다. 보수든 진보든 멀리도 가까이도 하지 않는 중도적 인물로서 지극히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이명박은 전두환과도 중도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2017년 현재, 법적으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빠짐없이 전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전두환의 응보(應報)에서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에 이르면, 전두환의 응보(應報)는 구체성을 띤다. 박근혜는 전두환에게 연좌제를 적용시키는 입법을 한다. 전두환의 아들 3형제에 대해 전두환 추징금의 굴레를 씌운 것이다.

 

전두환은 박근혜가 빈손으로 청와대에서 물러났을 때, 무려 6억을 준다. 생활에 보태 쓰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1980년 시절 6억이라면 얼마나 많은 돈인지 모른다. 공무원 봉급이 5만원, 집 한 채에 불과 몇 백만 원 하던 시절이었다.

 

전두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비록 그 측근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을 비판하고 전두환의 권력에 빌붙기 위해 박근혜를 배신하는 일은 있었어도, 전두환이 박근혜를 도와주었으면 주었지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더구나 전두환은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를 사형시킨 주동인물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전두환 추징금 환수에 박차를 가한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 ‘전두환 추징법’이 만들어지고 채동욱의 검찰이 사냥개 역할을 한다. 초법적인 연좌제법으로 사돈의 팔촌 재산까지 압수수색을 벌였다.

 

아들의 이혼한 전처 집까지 뒤졌다. 이순자 여사는 당시를 이렇게 술회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 대통령 시절에 와서, 나는 생을 포기할 뻔했다. 아들은 아버지 추징금으로 탈탈 털리고 벌금 낼 돈이 없자 강제노역장에 나가 '황제 노역'이니 '신선 노역'이니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지금 박근혜는 탄핵을 받고 구치소에 있다. 박근혜의 몰락은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모든 보수우익의 가치가 사라지고 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까지 무너뜨린 결과를 낳았다. 박근혜는 왜 그렇게 전두환을 미워했을까. 전두환은 박근혜를 위해 최태민을 처단한 적이 있었다. 혹시 그 때문이었을까. 최순실이 그랬을까.

 

그러나 대통령의 자리에서 대한민국 정상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여도 부족한 판국에 박근혜는 김영삼처럼 ‘전두환 잡기 에 몰두했던 것이고, 응보(應報)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문재인은 현재 진행 중이다. 불과 취임 1년이 못 되었지만 불길한 예측이 앞선다. 문재인의 얼굴에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의 모습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지금 자행되고 있는, 전직대통령잡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적폐청산에서 우리는 김영삼의 소급입법 그림자를 보고 있다. 더구나 김대중의 대북불법송금이며 노무현의 반미와 북핵 옹호까지 무려 세 명이나 되는 전직대통령의 실패가 어른거린다.

 

지난 추석 때 문재인은 관행을 깨고 전두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이명박을 제외하고 전직대통령들이 추석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로 현직 시절 저질렀던 범죄 때문입니다. 전두환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면을 받긴 했지만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유죄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전직대통령 예우대상이 아닙니다”

 

2017년 10월 26일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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