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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뉴스위크, “북한의 비핵화는 정권이 바뀌거나 세계가 바뀔 때나 가능”

“한 국가가 핵병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 혹은 세계가 바뀔 때의 둘 중 하나다”

한·미·일이 북한에 2020년 ‘도쿄올림픽’ 이전까지 핵 폐기 완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일본발 보도가 나온데, 국제사회의 제재 시작부터 핵 폐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 폐기 사례는 핵 개발 단계가 아니라 핵 완성 단계의 경우로서는 세계사적으로 현재까지는 유일한 경우다. 북한도 역시 핵 완성 단계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만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비핵화 사례는 깊이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지난 5일, 일본판 ‘뉴스위크(Newsweek)’ 지는 ‘남아프리카의 사례에서 배우는 핵포기의 조건(南アフリカのケースに学ぶ核放棄の条件)’ 제하로 미국 ‘슬레이트(Slate)’ 지의 칼럼니스트인  조슈아 키팅(Joshua Keating)의 기명 칼럼을 게재했다(지면으로는 2018년 3월 20일에 공개). ‘뉴스위크’, ‘슬레이트’, 그리고 조슈아 키팅은 모두 좌파 쪽에 속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비핵화 사례 분석 자체는 충분히 새겨들을만 하다.



완성 단계에서 핵을 포기한 유일한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조슈아 키팅은 “북한이 진심으로 핵보유를 단념하는 것은 정권이 바뀌거나 세계가 바뀔 때뿐이다”라는 비관적 슬로건으로 칼럼을 시작했다.

조슈아 키팅은 “개발에 성공한 핵병기를 폐기한 국가는 현재까지 한 나라밖에 없다”며 그 사례가 바로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폐지를 단행하려고 한 1989년의 남아프리카다”라고 밝혔다.

그는 “미북교섭의 가능성이 급부상한 지금 이 남아프리카 비핵화 사례는 몇 가지 교훈을 가르쳐 준다”면서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에 대해서 독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조슈아 키팅은 “우라늄이 풍부한 남아프리카는 처음부터 핵병기와 인연이 있었다”며 “세계최초로 원폭 제조에 성공한 멘하튼계획에서 사용된 우라늄의 일부도 바로 남아프리카산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50년대 후반에는 남아프리카는 우라늄의 주요 수출국이 되었고 1960년대 초에 원자력 연구개발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남아프리카의 핵 개발 연구목적은 최초에는 평화이용이었다고 한다. 대형 토목 프로젝트에 이를 활용하려는 구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남아프리카 내부에서는 곧 이를 핵병기 개발로 돌리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에 국제적인 우려가 고조됐다고 한다.

이에 1977년에는 소련과 미국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기폭장치의 실험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해, 압력을 통해서 이를 중지시키기도 했다고 조슈아 키팅은 전했다.

아프리카 남부 국가들의 복잡한 정치정세가 남아공을 핵개발로 이끌어

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그런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병기 개발에 오히려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한다. 그 배경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포함한, 아프리카 남부 국가들의 복잡한 정치정세 문제가 있었다.

조슈아 키팅은 “1975년에 앙고라와 모잠비크가 잇달아 포루투갈에서 독립,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은 좌파 정권이 남아프리카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조직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남아프리카가 통치한 나미비아에서도 공산주의 진영과 아프리카제국의 지원을 받는 게릴라와의 사이에서 독립전쟁이 계속되었다”고 설명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남부 국가들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신장을 막기 위해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에 의지했지만, 1976년부터 CIA 의 외국에서의 비밀활동에 대해서 미국의 여론이 좋아지지 않아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일이 어려워졌다.

조슈아 키팅은 “1977년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미국을 포함한 만장일치로 남아프리카에 대한 무기금수결의를 채택했다”며 “금수의 첫째 이유는 아파르트헤이트였으나 이 결의에는 핵개발 계획에 대한 ‘중대한 우려’도 포함되었다”고 전했다.

조슈아 키팅에 따르면, 1980년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6발의 핵탄두와 각종 미사일을 완성시켰고 비핵화 직전에 7발 째의 핵탄두를 거의 완성시켰다.

냉전이 끝나면서 10여 년에 걸쳐 어렵게 성사된 남아공의 비핵화

결국 냉전이 끝나면서부터야 남아프리카 공화국 비핵화의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조슈아 키팅은 “냉전이 종결되는 분위기 속에서 친소련 세력에 의한 침략 위험성은 저하됐다”면서 “앙고라에서는 정전협정이 성립하여 쿠바 병사 5만명이 귀국했고, 남아프리카도 나미비아에서 철군했다”고 밝혔다.

악명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한 국제 제재의 경제적 타격도 컸고, 어쨌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개발 계획은 국제관계 개선에서는 걸림돌이었다.

조슈아 키팅은 “1989년 P.W.보타를 대신하여 남아프리카 대통령에 취임한 F.W.데클레르크는 대외관계 개선을 위한 두 가지 조치를 바로 취했다”며 “하나는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의 상징이었던 ANC간부인 넬슨 만델라의 석방, 또 한 가지는 핵병기를 폐기하여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남아프리카의 NPT 가입이 실현된 것은 1991년이다”라며 “또한 1993년에야 IAEA(국제원자력기관)가 핵개발 계획의 폐기를 정식으로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조슈아 키팅은 “남아프리카의 사례가 시사하는 것은 핵병기 폐기에 대한 성급하고 과도한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라면서 “제재에 일정한 효과가 있었다고 해도 남아프리카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70년대 후반에 국제사회가 추진한 남아프리카의 고립화와 금수는 오히려 핵개발을 가속시켰다”고 지적했다.

조슈아 키팅은 “북한이 대화 자세를 보인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안이한 기대는 금물이다”라면서 “한 국가가 핵병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 혹은 세계가 바뀔 때의 둘 중 하나다”라고 비관하며 칼럼을 마무리했다.

세계가 바뀌고, 특히 정권이 바뀌어야만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조슈아 키팅의 지적은 북한 체제를 일단 용납하려고 기도하는 문재인 정권의 시도에 비춰봤을때 분명 시사하는 바가 커보인다는 분석이다. 


* 본 기사에서 조유아 키팅 칼럼 내용 번역은 박아름 씨의 도움을 받아서 이뤄진 것입니다.


[편집자주] 그동안 한국의 좌우파 언론들은 중국과 북한의 갓끈전술 또는 이간계에 넘어가 늘상 일본의 반공우파를 극우세력으로, 혐한세력으로만 매도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반공우파는 결코 극우나 혐한으로 간단하게 치부될 수 없는 뛰어난 지성적 정치집단으로, 현재 문재인 정권을 배출하며 중국과 북한에 경도된 한국이 경계하거나 대비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국외자와 제 3자의 시각(또는 devil's advocate의 입장)에서 한국의 그 어떤 언론보다도 도움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일본에도 아사히와 마이니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디어워치는 한국 외신 시장에서 검열되어온 미국의 자유보수 세력의 목소리는 물론, 일본의 자유보수 세력의 목소리도 가감없이 소개해 독자들의 국제감각과 균형감각을 키워드릴 예정입니다. 한편, 웹브라우저 구글 크롬은 일본어의 경우 사실상 90% 이상 효율 수준의 번역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의 고급시사지라도 웹상에서는 한국 독자들이 요지를 파악하는데 전혀 장애가 없는 번역 수준입니다. 미디어워치는 한국 독자들이 일본쪽 외신을 접하는데 있어서, 편향되고 무능한 한국 언론의 필터링 없이 일본 언론의 정치적 다양성(특히 자유보수 세력의 목소리)과 뛰어난 정보력(특히 중국과 북한, 동아시아 문제와 관련)을 가급적 직접 경험해볼 것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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