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권 세력의 태양광 비리 의혹을 다뤘다가 청와대 사과방송 요구를 받은 KBS ‘시사기획 창’ 제작진이 며칠 전 사내 내부 게시판에 청와대의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복마전…태양광 사업〉을 외압으로 누르려 하지 마라’는 제목으로 된 성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보도본부 수뇌부들의 행태도 <창> 제작진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청와대 브리핑 당일인 지난 21일 제작진은 청와대 측 주장에 대한 반박 입장문을 작성했지만 끝내 발표되지 않았다. 보도본부 수뇌부가 “로우 키(Low Key)로 가자”느니 “2~3일만 지나면 잠잠해진다”느니 하는 표현을 써가며 제작진의 입장문 발표를 막았다. 제작진의 반박 입장문은 사장실까지 보고가 됐다.……청와대 윤도한 수석은 “즉각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밝혔다. KBS 측 누구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정 조치를 요구했는지 밝히길 바란다. <창> 제작진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로부터도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바 없다. 다만 청와대 측 요구를 전달받은 KBS의 그 누군가가 제작진에게 끊임없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고, 입장문 발표도 막았다고 추론하고 있다”

이런 제작진의 성명은 윤 수석이 21일 직접 기자들에게 했다는 브리핑을 근거로 한다. “즉각 이 보도에 대해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화요일 방송후 수요일(19일)에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다” “대통령 관련 부분도 정정보도와 사과 방송을 요구한다. 언론사라면 당연히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취해야할 조치라고 생각한다. (윤도한 수석, 미디어오늘 기사 중)” 윤 수석 본인이 직접 KBS 누군가에게 연락해 정정보도와 사과 방송할 것을 요구했다고 고백한 발언이다. 더구나 제작진에 의하면 본방이 나간 후 편성 상 재방송이 예정돼 있던 태양광 편은 취소됐다고 한다. 이건 증거로서 결정적이다.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명백한 방송법 위반(제4조) 아닌가. 필자는 며칠 전 글에서 박근혜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의 사례를 들어 KBS 보도국장에 전화해 읍소한 이정현이 유죄라면 문재인의 청와대도 유죄이고 이정현이 무죄면 문재인의 청와대도 무죄라고 했다.

길환영과 이정현 검찰 고발한 KBS 언론인들, 양승동과 윤도한은 어쩔 셈인가

박근혜 청와대 홍보수석을 기소한 검찰은 “방송법 해당 조항 취지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 보장이고, 방송 내용이나 편성이 실제로 바뀔 것을 범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통화내용은 방송의 내용 및 분량, 배열 등에 대해 관여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내용에 해당하고, 일반 국민이 항의하거나 비판하는 것과는 다르며 방송 입장에선 정권 실세가 방송 내용에 개인하려 한 건 부적절하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현에 유죄판결을 내린 1심만 본다면 윤도한도 당연히 유죄다. 윤도한의 경우는 재방송 편성까지 취소된 사실이 확인됐으니 질이 더 안 좋은 명백한 위법사례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청와대 담당자가 언론사에 전화를 걸든 만나든 보도에 항의하고 어필할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그 일로 언론사가, 언론인이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자유와 독립은 권력과 언론 사이의 건강한 긴장관계 속에서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한쪽을 강자로 다른 한쪽을 약자로 못을 박아 기계적으로 처벌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론사나 기자들이 전화 받았다고 그때마다 고소고발을 남발한다 해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더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언론사나 언론인 타이틀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외압쯤은 물리쳐서 스스로 언론인의 자격과 자부심을 증명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윤도한 수석의 KBS 개입은 그냥 넘어갈 사안은 분명 아니다. 이정현 사례로 보나 방송법 위반이라는 언론들의 지적도 있는 만큼 윤도한은 KBS 누구에게 어떤 외압을 넣고 재방송은 왜 불방이 되었는지 정치권과 언론이 제기한 의혹에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청와대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굳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나서서 윤도한 수석을 고발할 수도 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태양광 방송 제작진을 비롯한 KBS의 언론인들이다. KBS 수뇌부에게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마련을 요구했는데 그 정도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세월호 보도에 개입했다고 길환영 당시 사장과 이정현 홍보수석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람들이 KBS 언론인, 본인들이다. 길 사장 사퇴하라고 파업까지 했던 자신들의 행위는 그새 잊었나. 똑같은 잣대라면 윤도한의 더 심한 보도개입 사건은 벌써 검찰에 고발됐어야 하고 양승동 사장 사퇴를 위한 파업절차도 지금쯤이면 검토해야 맞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최소한 본인들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려면 보도본부 수뇌부와 양승동 사장에게 사퇴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양 사장과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더라도 검찰 고발이 필요한 것 아닌가. 똑같은 사안에 전혀 다른 대응을 한다면 ‘가재는 게 편’ ‘기레기’라는 국민들의 냉소와 비웃음, 조롱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느냐 아니면 진짜 언론인다운 일관성을 보여주느냐 본인들 하기에 달렸다. 언론인으로서 당신들의 자존심은 1차적으로 진상규명과 함께 양승동과 보도본부 수뇌부가 자리를 그대로 지킬 것인가 아니면 총사퇴로 책임질 것인가로 증명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