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19일) MBC를 통해 지켜 본 ‘국민과의 대화’는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 탁현민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예상했던 대로 끝나고 말았다. 대화의 주제와 맥락, 질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패널들의 중구난방 무질서와 혼란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고 자랑하는 동갑내기 대통령에 부채의식과 감사함을 느낀다는 사회자 배철수의 오글거리는 칭송을 양념으로 더한 이 ‘각본 없는 대화’가 무엇을 알리고 싶었는지 청와대 의중만 두드러졌다. “명백한 실언”이라고 지적당했던 탁현민은 “그러나 대통령께서 왜 국민과의 대화를 하시는지는 알 것 같다. 어떤 질문도 그 수준과 내용에 상관없이 당신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감히 들여다본다”고 했다. 탁 씨가 들여다 본 청와대 의중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대통령의 쇼타임이란 뜻 아닐까. 포털 사이트 기사에 “대깨문과의 대화” “문빠 팬클럽 정모” “정권 홍보쇼”와 같은 냉랭한 댓글 의견이 많이 보였던 것도 그렇게 이해한 국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질문 전문가’들인 기자들과의 회견 요구는 피하면서 선별된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것은 대통령이 불편한 질문을 피한다는 이미지를 준다. 실제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관한 질문을 받고도 대통령은 ‘현 정부의 전월세 가격은 안정돼 있다’거나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안정화됐다’는 식으로 현실을 무시한 엉뚱한 자화자찬으로 끝냈다. 그 자리에 기자들이 있었다면 서울 강남 중심의 집값 폭등의 원인, 문재인 정부 부동산 규제 정책의 허점과 같은 송곳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선 대통령에게 자기 신세를 호소한다거나 ‘대통령이 늙은 것 같아 눈물이 난다’는 식으로 대통령 지지자들의 응원의 목소리만 뒤엉켰다. 그것은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다. 도떼기시장과 같은 무리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짓는 것에 익숙한 대통령이겠지만 자영업자와 영세 상공인들을 말려 죽이는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제를 왜 강행하려는지 물어야 했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 탁현민의 탁견
또 조국 사태 수사를 축소, 방해하는 것이 검찰 개혁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한미일 동맹 파괴로 이어지는 지소미아 파기는 왜 그렇게 고집하는 것인지, 대통령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확산되는데도 왜 침묵하고 있는지 대통령에게 직접 묻는 자리가 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질문들을 접한 대통령은 분명 불편해했을 것이다. 그제 ‘국민과의 대화’ 장에는 국민이 묻고자 하는 질문 대신 성소수자와 난민의 문제, 다문화, 개성공단 재개와 같이 대통령이 평소 친근해할만한 질문만 무성했다. 이런 질문들도 의미가 있지만 국민 대다수가 평소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다.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경제와 안보 외교의 중요한 질문은 빠지거나 대통령이 엉뚱한 대답을 하는 바람에 난삽한 자리가 되어버렸다. “300명의 표본집단을 과연 어떻게 뽑아낼 수 있을지, 또 대통령에게 궁금한 300명을 무작위로 뽑으면 그게 전체 국민과의 대화에 부합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던 탁현민의 우려를 재확인했을 뿐이다.
국민과의 대화를 팬미팅으로 만든 청와대 보좌진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역시 언론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 언론은 이날 대통령과 300인 패널의 만남을 ‘각본없는 도떼기시장 드라마’로 만든 청와대와 현실감각을 잊은 듯한 문 대통령에 대해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 고작 “할 일이 태산’임을 확인시켜 준 국민과의 대화(경향신문)”라거나 “봇물처럼 쏟아진 ‘국민 목소리’, 문 대통령 새겨들어야(한겨레)” 정도에 그칠 뿐이다. ‘정권의 입’ 노릇에 충실한 공영방송사들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전파낭비라는 비난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청와대와 여권이 언론의 어떤 비판에도 시종일관 무시하거나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도록 만든 ‘언론불감증’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질문과 답변이 제거된 ‘국민과의 대화’에 대화는 없고 대통령의 독백쇼만 있었다. 청와대는 “왜 하(했)는지 모르겠다”는 탁현민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앞으로 참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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