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욱 칼럼] 로컬 저널리즘의 위기와 지방자치제의 빈틈

  • 등록 2026.03.20 13: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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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잇=유용욱 주필 |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의 소식을 접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국제 유가 급등, 여의도 정치권의 해묵은 설전(舌戰)과 주식시장의 급등락은 물론 강남의 부동산 가격 추이, 뉴욕 증시의 나스닥 지수까지 실시간으로 우리 눈앞에 배달된다.

 

 

하지만 정작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앞 스쿨존의 위험천만한 공사 현장이나 우리 집 앞 재래시장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된 진짜 이유는 뉴스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민국 미디어 지형이 ‘전국구 이슈’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들면서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로컬(Local)’에서의 삶은 미디어 지도에서 점차 지워지고 있다.

 

로컬에서의 삶이 지워지고 있다는 가장 뼈아픈 실제 사례는 선거철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근 현직 양산시장의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된 상황은, 그 자체로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공정성 논란 또는 이해충돌 논란을 불러오기엔 충분하다.

 

이처럼 비록 기초자치단체장이긴 하지만 자치단체장이 가진 사적 이익과 공적 책임이 충돌하는 바로 이런 지점은 지방자치 행정의 공정성을 그 근본부터 뒤흔드는 중차대한 사안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현직 시장인 나동연 양산시장은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할 뜻을 공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나 시장의 이해충돌 논란 관련 소식은 2026년 3월 현재 국내 어느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 사례는 양산시라는 특정 지역만의 일탈이 아니라 지방자치제도 도입 이후 전국 다수의 기초자치단체에서 반복돼 왔지만, 어느 언론에서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구조적 공백의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길 군수’, ‘도로(道路) 시장’이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선거 때마다 회자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중심의 자극적인 정치 가십(gossip)이나 수도권 중심 기사에 밀려 정작 선거 과정에서 이 정보를 가장 절실히 알아야 할 양산 시민들은 기껏해야 정체 모를 소문이나 확증 편향이 가득한 커뮤니티에서, 누군지도 모를 이가 제공하는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대 로컬 저널리즘의 위기는 단순히 지역 언론사의 만성적인 인력난이나 경영난의 문제로만 미뤄둘 사안이 결코 아니다. 이는 우리 삶의 질과 지방자치제도의 성숙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지방 언론의 ‘감시 공백’을 의미한다. 지역 신문과 방송이 힘을 잃으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대한 건강한 견제 역시 사라진다.

 

지역민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 권력의 부패나 관료들의 비리는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내 집 앞 도로 예산이 특정 지방자치단체장의 땅값과 연동되거나 지역 토착세력과의 유착 비리로 이어지는 ‘작은 권력’의 독주는 우리 민초들의 삶에 훨씬 더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그렇다면 앞으로 지역 매체는 이 사막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이제는 과거 그대로 이어오던 전통적인 보도 방식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단순히 지자체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수준을 넘어 중앙 매체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하이퍼 로컬(Hyper-local)’ 정보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시작된 양산시장의 사례처럼 주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 권력 감시 콘텐츠를 뉴스레터, SNS, 지역 커뮤니티 앱 등 명칭이나 형태를 불문하고 독자의 손안으로 직접 배달하는 신속성과 기동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독자들 역시 거대 포털이 자체 기준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뉴스 피드에서 벗어나 우리 동네를 지켜내려는 작은 매체들에 기꺼이 눈길을 주고 후원하는 성숙한 ‘미디어 시민 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뿌리는 거창한 담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 쓰레기 처리장 문제나 지방선거 과정에서 우리 지역 후보자의 청렴성을 검증하는 것과 같은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로컬 저널리즘의 부활은 단순히 특정 지역사회에서 지역 언론사들 간의 생존 게임이 아니라 우리 지역 주민 개개인에게 주어진 삶의 주권을 되찾는 일이다. 오늘 하루 전국구 이슈의 홍수 속에서 잠시라도 눈과 귀를 돌려 우리 동네를 기록하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그곳에 진짜 우리의 삶이 숨 쉬고 있으며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진짜 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역 언론에 대한 자치단체의 투명하고 제도화된 공적 지원과 시민 후원 모델의 연구·개발이 절실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신들이 딛고 선 땅을 지켜내고자 노력하며, 고단한 지역민들의 삶을 담아내기 위해 애쓰는 이 땅의 모든 지역 언론과 그 구성원들에게 깊은 감사와 함께 마음에서 우러나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힘내라, 지역 언론!!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유용욱 주필 macgyve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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