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選擧), 정치인을 바꾸는 날이자 우리의 수준을 증명하는 날

  • 등록 2026.05.26 17: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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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잇=유용욱 주필 |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치인들의 언어와 태도는 유난히 따뜻해지고 겸손해진다. 평소엔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던 이들이 갑자기 민생을 말하고, 수년간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들이 선거를 몇 달 앞두고는 ‘당선 후 즉시 시행’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가 유난히 부지런해진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부지런함의 방향이다.

 

 

원칙보다 표 계산이 앞서는 정치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책의 일관성보다 표 계산이 앞선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특정 이슈에서는 시장을 적대시하다가, 다른 국면에서는 시장의 편에 서고, 원칙에 충실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여론과 선거 지형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꾼다.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정당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내로남불식 태도가 갈수록 선명해진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운 것은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개혁’이고, 불리하면 ‘선동’이라는 이 지긋지긋한 이중 잣대는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최근 불거진 이른바 ‘기업 때리기’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특정 기업을 정치적 메시지의 도구로 삼는 방식은 어쩌면 아주 쉽게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의 주목을 끌 수는 있어도, 그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현금성 정책 경쟁, 선거를 흐리다

 

이처럼 정치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구도로 재단(裁斷)하고, 숨겨진 분노를 자극하는 순간 가장 쉬워진다. 그러나 쉬운 정치는 또 꼭 그 쉬운 만큼 위험한 정치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문제는 선거를 앞두고 어김없이 반복되는 현금성 정책 경쟁이다. 고유가 극복, 물가 안정, 민생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각종 지원금이 쏟아진다.

 

물론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정부의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책이 언제,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서, 그리고 어떤 재원으로 추진되는지를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현금 살포는 국가적 정책이라기보다 특정 정당의 선거 전략에 가깝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어느 선거를 막론하고 선거는 정책 경쟁의 장이 아니라 금권(金權)선거, 관권(官權)선거의 무대가 된다. 누가 더 많은 돈을,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눈에 띄게 풀 수 있는지가 승부의 기준이 된다면 민주주의의 수준과 양상은 급격히 떨어지고 흐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국가재정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남고, 정책 실패의 책임소재는 흐려진다. 결국 이런 선거는 특정 정당이 표를 얻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국정을 운영할 자격을 증명하는 데는 실패하는 정치다.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시험(試驗)이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이고, 선거는 축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시험’이라는 것이 필자의 편견(偏見)에 가까운 주관(主觀)이다. 선거는 특정 정치인이 자신의 소속 정당과 함께 유권자들 앞에서 지난 시간의 성과와 실적을 설명하는 자리이며, 유권자들은 해당 정치인과 소속 정당이 내밀고 있는 성적표를 보고 냉정하게 평가해 다시금 기회를 줄지 말지를 판단하는 의식(儀式)이어야 한다.

 

물론 소속 정당이 없는 무소속 정치인 역시 그간 자신의 성과와 실적으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각종 선심성 현금 지원 정책과 다양한 물질적 혜택이 정책이라는 미명(美名) 하에 난무하는 혼탁한 선거판에서는 이런 기본 원칙이 잊혀질 수밖에 없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 유권자들의 냉철한 판단을 흐리기 마련이고, 긴 호흡의 정책과 철학은 언제나 그래왔듯 뒷전으로 밀려난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는 역대 그 어느 선거보다 그 결과가 갖는 의미가 클 것이라는 결론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할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심성으로 쏟아내는 대규모 현금성 지원 약속들은, 아무리 느슨한 잣대로 평가를 하려 해도 그것이 당장 위법(違法)은 아닐지언정 대단히 부적절하다는 평가는 피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결국 답은 유권자의 선택에..

 

이러한 부조리(不條理)한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유권자의 태도다.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는 비록 보잘것없이 작아 보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한 표 속에는 우리 지역의 행정 수준, 삶의 질, 그리고 정치 문화의 방향에 대한 주권자의 판단과 결심이 담겨 있다.

 

이제 우리는 조만간 선택의 순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누가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책임 있게 말해왔고, 말한 것에 대해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선거철의 언어가 아니라, 선거 이전의 행적을 기준으로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그저 자동(自動)으로 굴러가는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는 감시와 참여, 그리고 비판적 사고가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 시민이 무관심해질수록 정치는 가장 손쉬운 선택을 하게 된다. 자극적인 구호나 즉각적인 현금 살포, 이 모두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약속들이다. 따라서 그것이 선거를 통해 적절하게 걸러지지 않고 반복되면 정치의 수준은 시민의 기대치가 아니라 시민의 방심(放心)에 맞춰진다.

 

결국 우리가 선거 결과를 통해 스스로 깨어 있음을 정치인들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장 질 낮은 지도자들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지방선거는 여느 해 선거처럼 단순히 지역 일꾼 몇을 뽑는 통상적 절차가 아니라, 이제 앞으로 우리는 어떤 정치 문화를 선택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자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는 선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돈으로 마음을 사려는 정치, 원칙 없이 그저 시류(時流)에 흔들리는 정치에 제동을 걸고 준엄하게 경고를 보낼 것인지, 아니면 또 한 번 눈앞의 작은 실리(實利)에 눈을 감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외면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선거일은, 그것이 누구를 뽑는 어떤 선거이든 간에 분명 특정 정치인을 선택하고 바꾸는 날이지만, 그와 동시에 유권자 시민 스스로의 수준을 증명하는 날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그날 그 선택의 무게를 잊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유용욱 주필 macgyve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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