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합과 꼼수의 선거판, 이제 ‘원칙의 힘’을 보여줄 때다

제 9회 지방선거 후보 등록 마감… 네거티브와 명분 없는 야합 속, 원칙을 지키는 후보와 유권자의 엄중한 상식이 필요한 이유

인싸잇=유용욱 주필 |제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후보등록이 마감됐다. 이제 다음 주 공식 선거운동이 본격 시작되면 각종 선거 홍보물과 현수막 등이 거리를 가득 채울 것이다.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늘 그래왔듯, 각 정당의 총천연색 현수막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다양한 정치 뉴스를 보고 있자면 숨이 턱 막힌다.

 

 

왜냐하면 그 어느 곳에도 참된 미래를 위한 비전이나 민생을 위한 치열한 고민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상대 진영을 향한 날 선 독설과 과거 들추기, 그리고 “저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악마화만 난무할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선거판은 ‘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를 겨루는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니라, ‘누가 더 추악한가’를 폭로하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렸다. 정책과 비전은 실종되고 분노와 증오만 유령처럼 떠도는 이른바 ‘감정 정치’의 과잉으로 정치가 실종되고 ‘축제의 장(場)으로서의 공정한 선거 분위기는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린 상황이다.

 

분노를 파는 ‘게으른 장사’,  갈등의 늪에 빠진 정국

 

정치권이 이토록 네거티브 공방과 진영 논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이 표를 얻기에 가장 쉽고 효율적인 ‘게으른 장사’이기 때문이다. 난마(亂麻)처럼 얽힌 복잡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정교한 정책을 설계해 이를 바탕으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든다. 반면,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하고 지지층의 가슴속에 분노의 불을 지르는 것은 즉각적인 결집 효과를 낸다.

 

상대를 공존의 대상이 아닌 타도해야 할 ‘거악(巨惡)’으로 규정하는 순간, 지지자들은 아군을 향한 모든 합리적 비판의 눈을 감아버린다. 증오를 동력 삼아 굴러가는 정치는 당장 선거 승리라는 달콤한 열매를 줄지언정, 선거가 끝난 후 사회적 공동체를 회복 불가능한 분열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결국 온전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교육 자치부터 재보선까지… ‘명분 없는 야합’의 촌극

 

이러한 ‘장사치 정치’와 게으른 정치공학의 폐해는 비단 교육 자치 선거뿐만 아니라, 중앙 정치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주요 재보궐선거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백년대계의 가치를 논해야 할 교육감 선거마저 정당한 절차를 거친 후보를 두고 뒤늦게 장외에서 명분 없는 합종연횡과 불복의 촌극을 벌이는가 하면, 거물급 정치인들이 맞붙은 영남권의 한 격전지 보궐선거 역시 오직 표 계산에만 매몰된 단일화 싸움으로 변질됐다.

 

공당(公黨)의 검증을 거친 후보와 무소속으로 나선 후보가 지역의 비전이나 민생 대안을 두고 경쟁하는 대신, “너 때문에 표가 분산된다”거나, “절대 안 되는 것은 없다”며 선거 막판까지 서로를 향해 으름장과 정치적 구걸을 오가는 모습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분노를 넘어 개별 후보들에게 연민(憐憫)의 감정마저 느끼게 한다.

 

진영의 논리와 선거 공학에 매몰된 이러한 꼼수 정치 속에서, 정작 유권자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통성과 원칙을 지킨 ‘원칙파 후보’의 존재다. 편법과 야합, 그리고 막판 세 불리기가 판치는 선거판에서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정당한 절차를 따르며 본질을 이야기하는 후보에게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선거의 출발선에서부터 원칙을 무너뜨리고 오직 이기기 위해 야합하는 세력은 결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바르게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다수’의 이유 있는 외면과 소리 없는 경고

 

정치권이 간과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 있다. 광장과 SNS를 점령한 극단적 지지층의 거친 아우성에 가려져 있지만, 이 추악한 감정 정치와 명분 없는 합종연횡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조용히 고개를 돌리는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정 진영의 맹목적인 추종자가 아니다. 민생의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진영의 논리가 아닌 보편적 상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합리적 중도층이자 진짜 유권자들이다. 이들이 정치 뉴스를 외면하고 침묵하는 이유는 정치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혐오를 배설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저질 정치판에 동조하기 싫다는 거부의 몸짓이자, 소리 없는 경고다.

 

하지만 이 침묵하는 다수가 끝내 투표장까지 외면하게 된다면, 우리 정치는 목소리 큰 극단주의자들과 편법을 일삼는 이들에 의해 더욱 휘둘리게 될 것이며 결국 민주주의는 점차 소멸되거나 공동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옴표 저널리즘’의 자성과 유권자의 매서운 심판

 

이제는 언론과 유권자가 중심을 잡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언론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 조회수와 클릭수에 매몰되어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네거티브와 거친 언사, 명분 없는 단일화 싸움을 그대로 받아 적는 ‘따옴표 저널리즘’은 갈등을 중계하고 증폭시켜온 공범이나 다름없다.

 

언론은 싸움 구경을 부추기는 중계업자가 아니라, 후보자가 걸어온 길의 정당성과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송곳처럼 검증하는 본연의 감시자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유권자 역시 분노를 자극하는 마케팅과 꼼수 정치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거친 독설이나 절차를 무시한 야합보다, 정당성을 갖추고 우리의 내일을 어떻게 바꿀지 조용히 비전을 제시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증오를 선동하여 표를 얻으려는 후보, 원칙을 저버린 후보에게는 매서운 표로 심판하고, 비록 화려하진 않더라도 정통성과 원칙을 지키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성숙함이 그 어느 선거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때다.

 

‘누가 더 나쁜가’를 따지는 선거의 결말은 언제나 비극적이다. 그 끝에는 결국 내 삶을 덜 망칠 것 같은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의 씁쓸한 자괴감만 남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주권자인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마지못해 고르는 차악이 아니라, 당당하고 가슴 벅차게 지지할 수 있는 최선(最善)이다.

 

이번 선거만큼은 상대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자, 원칙을 무너뜨리는 자가 아니라, 정당성을 가지고 내일을 말하며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자가 승리하는 ‘누가 더 나은가’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엄중한 상식과 깨어 있는 눈이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