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에서 중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를 통한 첨단 인공지능 반도체 우회 구매를 차단하는 지침을 내면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다시 반도체 공급망 규제 국면으로 들어섰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지난달 30일 중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를 통한 첨단 인공지능 반도체 확보 경로를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새 지침을 발표했다.
이번 지침은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물리적으로 중국 밖에 있더라도 미국산 첨단 AI칩을 구매할 경우 수출 허가 요건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수출통제는 중국과 특정 최종사용자, 고성능 반도체 품목을 중심으로 운용돼 왔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말레이시아 등 제3국에 세운 해외 법인을 통해 미국산 고성능 반도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번 조치는 이 같은 우회 경로를 막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통제망이 중국 본토를 넘어 제3국 법인과 해외 거래 구조까지 넓어진 셈이다. 미국은 중국 기업이 해외 법인 형태를 갖추고 있더라도, 본사와 실질 지배 구조가 중국에 있다면 안보상 위험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이번 지침은 새 규제 체계를 전면 도입했다기보다, 기존 수출통제의 적용 범위를 중국계 해외 법인과 제3국 거래까지 명확히 한 조치에 가까운 것으로 풀이된다.
블랙웰·루빈 등 고성능 AI칩 겨냥… 기존 데이터센터 사용 중단은 제외
이번 지침의 핵심 대상은 대규모 AI 연산에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다. 엔비디아의 블랙웰·루빈 계열 칩과 AMD MI350X 등 고성능 AI 반도체가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품목으로 거론된다.
이들 칩은 생성형 AI 모델 훈련과 대형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핵심 장비다. AI 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군사·안보 역량과도 연결된다. 미국은 첨단 AI칩이 군사 시뮬레이션, 감시 체계, 사이버 역량, 무인체계 고도화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수출통제가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니라 안보 조치로 운용되는 이유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AI 역량 확대를 늦추기 위해 반도체 접근 경로를 제한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번 지침이 기존 데이터센터의 반도체 사용을 즉시 중단시키는 조치는 아니다. 이미 확보한 칩을 사용 중인 데이터센터나 서버 유지보수까지 일괄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초점은 신규 구매와 추가 확보, 우회 거래 차단에 맞춰져 있다.
미국이 통제 범위를 넓히면서도 기존 산업망 충격은 관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AI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 팹리스 기업, 대만 파운드리, 동남아 조립·검사 거점, 중국 수요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규제를 한꺼번에 강하게 적용할 경우 미국 기업 매출과 글로벌 데이터센터 운영에도 충격이 생길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중국의 첨단 AI칩 접근은 제한하되, 기존 공급망 전체를 흔드는 방식은 피하는 선별적 통제에 가깝다.
미중 기술패권, 공급망 심사로 확대… 한 기업도 부담 가능성
이번 조치로 미중 기술 경쟁의 초점은 반도체 공급망 관리와 최종사용자 심사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를 자국 기술 발전을 막기 위한 압박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미국은 첨단 AI 기술이 군사력과 정보력, 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만큼 국가안보 차원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미중 경쟁은 관세나 무역수지 문제를 넘어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AI 반도체는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군사 기술, 사이버 안보, 자율주행, 로봇 산업까지 연결된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AI칩 확보 경로를 좁히는 동안, 중국은 자국산 반도체 개발과 대체 공급망 확보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지침은 한국 기업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AI 반도체 통제가 중국 본토를 넘어 해외 자회사와 제3국 거래로 확대되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서 거래 상대방과 최종 사용처 확인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한국 반도체 기업과 장비·소재 기업도 미국 수출통제 기준을 더 면밀히 살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중국 기업의 해외 법인, 제3국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사업자와 거래할 경우 실질 지배 구조와 최종 사용처 확인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미국의 수출통제가 중국 본토를 넘어 해외 법인과 제3국 거래로 확대되면서, 반도체 공급망 전반의 거래 심사도 한층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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