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이 제안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에 대해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 속 주요 동맹·우방국과의 안보공조 공백 우려와 신뢰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日 ACSA 요청에 “국민정서상 어렵다”… 사실상 거절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 ACSA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일본 언론 기자가 협정에 대한 생각을 묻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국민 정서상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현재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뭔 소리야’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보기에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 하면 나 혼난다. 우리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과거사 문제나 영토 문제에 대해 갈등이 있다”며 “그렇다고 다른 걸 다 포기할 필요는 없다. 관리해 나갈 수 있는 것은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미일, 한일 군사협력 문제에 대해서는 “동북아시아의 안보 문제는 복합적인 다자안보 체계로 길게 보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은 조심해야 하는 측면들이 있다”고 밝혔다.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군수지원협정이라는 실질적 군사협력 단계에서는 과거사와 국민 정서를 이유로 제동을 건 것이다.
北·中 위협 커지는데… 군수협정은 과거사·여론에 제동
ACSA는 유사시 양국 군이 연료, 식량, 탄약, 수송 등 군수물자와 서비스를 서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다. 단순한 외교 교류나 공동훈련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군수지원 체계를 공유하는 협정인 만큼, 한일 군사협력의 제도화로 평가된다.
일본이 ACSA를 희망하는 배경에는 북한과 중국 변수가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고, 중국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주요 변수로 꼽힌다. 일본은 한국과의 ACSA 체결을 통해 양국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을 포함한 한미일 공조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구상을 이어왔다.
한일 양국은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군수지원협정 가능성을 논의했다. 해당 협정은 연료와 식량, 탄약 등 핵심 군수물자의 상호 제공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북한 위협과 중국의 공세적 움직임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과의 ACSA 체결을 추진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정부는 일본의 식민지배 문제와 자위대의 한반도 활동 가능성에 대한 국내 여론을 고려해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당시 일본 측이 제안한 ACSA가 논의됐다고 인정하면서도 “양국 국민의 이해와 설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한일 국방 당국 사이에서 ACSA 논의가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은 북한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이유로 협정 체결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여론과 과거사 문제를 앞세워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이후 이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국민 정서상 어렵다”고 밝히면서, 국방 당국 차원의 신중론은 대통령 메시지로 한 단계 더 선명해졌다. 사실상 일본 측 제안에 대해 한국 정상 차원에서 제동을 건 모양새다.
시진핑 방북엔 긍정 평가… 한일 협력엔 선 긋기
이번 발언이 더 주목되는 이유는 같은 기자회견에서 나온 중국 관련 발언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두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과 중국이 밀착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반면, 일본과의 군수지원협정에 대해서는 국민 정서와 과거사를 이유로 선을 그은 것이다. 이 때문에 외교안보 노선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도 불가피해졌다.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실질적 제도화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북중 접촉에는 긍정적 메시지를 낸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대중·대북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고, 주요 동맹·우방국도 한국 정부의 한미일 안보공조 의지를 주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대중 견제 구상의 연장선으로 보고 경계해 왔다. 북한도 한미일 군사협력 확대를 꾸준히 비난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한일 군수지원협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대통령실이나 정부가 이를 직접 인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이 안보 위협을 이유로 협력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과거사와 국민 정서를 앞세워 거리를 둔 만큼, 대중·대북 외교 기조와 연결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졌다.
美 한미일 구상 속 한국 역할도 재점검 가능성
이번 발언은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별개의 동맹국으로만 보지 않는다. 북한 핵 위협, 중국 견제, 대만해협 안정, 인도·태평양 해상질서 유지라는 큰 틀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ACSA는 일본만의 양자 현안이 아니라 한미일 안보협력의 실효성을 높이는 장치로 거론돼 왔다. 유사시 연료와 탄약, 수송 지원을 제도화하지 못하면 한미일 공동 대응은 선언적 협력에 머물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일본과의 군수지원협정에 선을 그은 것은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한미일 안보공조의 제도화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질 수 있는지를 다시 따져보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ACSA의 “현실적 필요성” 자체는 인정했다.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민 정서상 어렵다고 밝힌 만큼, 안보 판단보다 국내 정치 부담을 앞세운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과거사 앞세운 안보 제동… 현실 외면 논란
과거사 문제와 현재의 안보 협력은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군수지원협정을 과거사와 국민 정서를 이유로 거절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안보 현실보다 국내 정치 정서와 역사 문제를 앞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이 걸린 군사협력 사안을 역사 문제로 묶어둔 판단이 향후 안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는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외교안보는 정서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특히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과거사 문제로 묶어두는 것은, 안보 현실보다 국내 정치 정서를 우선한 판단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일 ACSA 논의는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워졌다. 다만 안보 위협은 멈추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한국 외교가 한미일 안보 현실보다 국내 정치 정서와 대중·대북 관계에 더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 동맹·우방국이 한국의 한미일 안보공조 기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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