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호국(護國)과 흔들리는 민주(民主),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싸잇=유용욱 주필 | 6월, 지금 대한민국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했지만, 정작 이 땅의 공기와 자유를 누리는 우리는 그 숭고한 희생의 무게를 잊어가는 듯하다. 국가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국민적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할 공영방송의 현주소는 작금(昨今)의 서글픈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내 유일의 국가 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KBS의 올해 현충일 방송 편성표를 보면서 필자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단순한 정부 추념식 중계방송 외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보훈(報勳)의 의미를 깊이 있게 되새기는 '현충일 특집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청률 경쟁과 상업성에 밀려 공영방송의 가장 기본적인 공적 책무마저 방기한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영방송조차 외면한 피의 가치

 

수많은 호국영령들의 피와 눈물로써 지켜낸 자유대한 금수강산(錦繡江山) 위에서 평화를 누리는 이 땅에서, 정작 공영방송이 그들이 흘린 피와 눈물의 가치를 외면할 때, 대한민국의 정신적 근간은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공영방송이 외면한 호국(護國)과 자유민주주의 수호(守護)의 가치는 뜻밖에도 6월의 밤,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광장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최근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로또 당첨 확률보다 높은 사전투표 개표 결과 동일한 득표 수.

 

민주주의의 꽃이자 가장 기본적이고 성스러운 주권 행사 현장에서 발생한 이 치명적인 부실과 부정 의혹은 수많은 시민을 광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며칠 밤낮을 새우며 밤이슬, 새벽이슬을 맞은 채 "부정선거, 재선거"와 "당일 투표 수개표"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정치적 진영 논리의 분출이 아니다.

 

청년과 대학생, 직장인, 그리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젊은 부부부터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까지, 그들이 손에 든 도화지 한 장에는 '참정권 훼손'에 대한 분노와 '민주주의 근간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잠실 광장에서 피어난 2026년의 호국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결연한 의지는 우리 모두에게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2026년 6월, 다시 새겨보는 호국(護國)의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 호국의 뜻이 총칼을 들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토를 지키는 일이었다면, 지금의 헌정 체제하에서의 호국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규정한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주권을 지켜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잠실 개표소 앞을 지키는 시민들의 외침과 몸부림은 또 다른 형태의 '호국'이다. 국가의 선거 관리 부실을 질타하고 공정한 민주 절차의 회복을 요구하는 것은, 선열(先烈)들이 피 흘려 세운 이 나라의 '자유와 정의'라는 기둥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조차 변변한 특집 프로그램 하나 없이 호국보훈의 달을 무심히 지나치고 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아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온몸으로 지켜내기 위한 몸짓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의 기본적 책무를 망각한 대통령과 집권 여당, 그리고 제대로 된 비판조차 하지 못하는 일부 권력 지향적 언론들과 수사기관 책임자들은 지금이라도 잠실의 광장과 전국 곳곳에서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3만 미발굴 호국영령들이 꿈꾼 나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고,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권리는 사라진다. 현충일 추념식의 사이렌 소리와 묵념이 박제된 의식(儀式)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리고 잠실에서 울려 퍼지는 시민들의 함성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엄중하게 되짚어봐야 할 때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그 주권을 지키는 모든 걸음이 바로 오늘날의 '호국'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추정하는 미발굴(未發掘) 6.25 전사자만 최대 1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전국 이름 모를 산하에서, 또 국립현충원 · 호국원에서 영면(永眠)하고 있는 대한민국 호국영령들이 마지막 거친 호흡을 거두는 순간 자신들이 지켜내고자 한 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의 대한민국이었을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대한민국 전역에서 자유대한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던져 장렬하게 산화(散華)한 이땅의 모든 호국영령들의 영원한 안식(安息)을 기원하면서 남겨진 유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과 마음으로부터의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하고싶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