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외교 돋보기] 日 한일군수협정 요청에 선 그은 李 대통령… 커지는 안보공조 공백(2)

英 싱크탱크도 한미일 협력 지속 필요성 제기
쿼드·파이브 아이즈, 中 견제·안보협력 강화
국제 안보 재편 속 한국 외교 선택 논란


英 싱크탱크도 한미일 협력 지속론


한일 군수지원협정 논의는 한국과 일본의 양자 문제를 넘어 한미일 공동 대응 체계와 맞물려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측이 제안한 한일 ACSA 논의에 국민 정서를 이유로 선을 그으면서, 이 문제는 한일 관계를 넘어 안보공조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도·태평양 안보 질서는 미국, 일본, 한국뿐 아니라 영국, 호주, 인도 등 주요국의 협력 구도 속에서 재편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국제정책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도 한미일 협력의 지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채텀하우스는 한미일 협력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중국의 공세적 움직임을 견제하고, 인도·태평양의 안정과 억지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한미일 협력이 과거사와 정치적 변수 속에서도 지속돼야 하며, 방위·안보와 경제안보 분야에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이는 한일 ACSA 논의가 단순한 군수지원 문제를 넘어 인도·태평양 안보 구도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유사시 연료와 탄약, 수송 지원을 제도화하지 못하면 한미일 공동 대응은 선언적 협력에 머물 가능성이 커진다. 이재명 정부가 낮은 단계의 방위교류는 이어가면서도 군수지원협정에는 선을 긋는다면, 한미일 안보협력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쿼드 협력은 속도 내는데… 한일 ACSA는 제동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쿼드는 인도·태평양 안보협력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쿼드는 중국의 동중국해·남중국해 압박을 견제하는 동시에, 항행의 자유와 해양안보, 북한 비핵화 문제를 인도·태평양 안보 의제로 다뤄 왔다.


일본은 쿼드의 주요 축 가운데 하나다.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가 해양안보와 대중 견제 성격의 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과의 군수지원협정에 선을 긋는 것은 국제 안보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인도·태평양 안보질서에 이미 깊이 연결돼 있다. 그러나 한일 간 군수지원 체계가 제도화되지 않으면, 한미일 공조는 위기 상황에서 작전 지속성과 군수지원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국제 안보 재편은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은 한미일 협력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고, 쿼드는 일본을 포함해 해양안보와 대중 견제 성격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군수협력에 제동을 건 판단은 국제 안보 재편 흐름과 엇박자를 낸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파이브 아이즈 확장 속 한국의 선택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구성된 파이브 아이즈는 정보 공유를 중심으로 한 안보 협력체다. 최근에는 군사정보뿐 아니라 사이버 안보, 첨단기술, 공급망, 경제안보 분야로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북한의 위협은 핵·미사일에만 그치지 않고 사이버 공격, 불법 자금 조달, 기술 탈취, 정보전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 변수도 군사적 팽창과 경제적 압박, 기술 패권 경쟁이 맞물린 복합 안보 사안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일본, 호주, 영국 등 주요 우방국의 안보 네트워크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느냐는 국가안보 역량과도 연결된다. 한일 ACSA 논의는 이 연결망 안에서 한국이 어느 위치에 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안으로 읽힐 수 있다.


한국이 일본과의 군수지원협정에 선을 긋는 사이, 주요 우방국들은 정보 공유와 해양안보, 군사훈련, 경제안보를 축으로 협력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 외교가 국제 안보 네트워크의 확장 흐름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과거사 앞세운 안보 제동 논란


한일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 자위대의 한반도 활동 가능성에 대한 국내 우려도 남아 있다. 다만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안보 협력 문제를 과거사와 국민 정서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과의 군수지원협정에 선을 그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국가안보보다 국내 정치 부담을 먼저 고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일 ACSA는 유사시 연료와 탄약, 수송 지원 등을 제도화하는 협정인 만큼, 단순한 외교 현안이 아니라 한미일 공동 대응 체계와도 연결돼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한일 ACSA의 “현실적 필요성” 자체는 인정했다.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국민 정서상 어렵다고 밝힌 만큼, 안보 판단보다 정치적 부담을 앞세운 것 아니냐는 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쟁점은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넘어,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의 실질적 제도화에 어디까지 참여할 것인지로 옮겨가고 있다.


수색·구난훈련 재개에도 ACSA는 난항


한일 방위협력 흐름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달 3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 뒤 양국이 이달 중 약 9년 만에 한일 수색·구난 공동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 장관이 한일, 한미일 방위협력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는 설명도 내놨다.


수색·구난훈련과 방위 당국 간 교류는 비교적 부담이 낮은 협력으로 분류된다. 반면 ACSA는 유사시 군수지원 체계를 공유하는 협정이다. 연료와 탄약, 수송 지원 등 군 작전 지속성과 직결되는 만큼, 한일 군사협력의 실질적 문턱으로 평가된다.


한국 정부가 방위 당국 간 교류는 이어가면서도 ACSA에는 선을 긋는다면, 한미일 안보협력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진다. 일본의 부담 커졌다. 북한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이유로 한국과의 안보협력 확대를 원해 왔지만, 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 ACSA 논의는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워졌다.

 


위협은 현실, 협력은 선택


이번 논란은 한일 과거사 문제를 넘어 한국 외교안보 노선의 방향성과 맞물려 있다. 한국이 일본과 어느 수준까지 안보협력을 제도화할 것인지, 미국 주도의 한미일 안보 구상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제사회가 인도·태평양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한일 군수지원협정을 국내 정서 문제로 묶어두는 것은 향후 안보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일 ACSA 논의는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워졌다. 다만 안보 위협은 멈추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한국 외교가 한미일 안보 현실보다 국내 정치 정서와 대중·대북 관계에 더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