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스위스 ‘인구 1000만 명 상한제’ 국민투표… 이민 논쟁 격화

주택난·교통난 해법 놓고 찬반 팽팽
가결 땐 EU 자유이동 협정도 흔들릴 듯

인싸잇=전혜조 기자|스위스가 인구를 1000만 명 이하로 제한하는 국민발의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우파 성향 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이 주도한 이번 안건은 인구 증가와 이민 문제, 주택난을 넘어 유럽연합(EU)과의 인적 이동 협정 문제까지 맞물리며 스위스 사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스위스는 14일 인구를 1000만 명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스위스 정부에 따르면 지난 2025년 말 기준 스위스 인구는 약 910만 명이다. 지난 2002년 EU와 인적 이동의 자유 협정을 체결한 이후 약 170만 명 증가했으며, 이 같은 증가세의 주요 원인은 이민으로 분석됐다. 현재 스위스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약 27~30% 수준이다.

 

이번 국민투표 안건인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는 오는 2050년까지 스위스 상주인구를 1000만 명 이하로 유지하도록 헌법에 명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국민 10만 명 이상이 유효 서명하면 헌법 개정안을 국민발의로 제출할 수 있으며, 이번 안건도 해당 요건을 충족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법안이 통과되면 인구가 950만 명을 넘는 시점부터 연방정부와 의회는 난민 수용 제한, 가족 재결합 요건 강화 등 인구 증가 억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스위스 정부는 현재 추세라면 오는 2031년 인구가 950만 명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인구가 1000만 명을 초과할 경우 EU와 체결한 인적 이동의 자유 협정을 2년 안에 종료해야 한다. 이 경우 스위스와 EU 간 주요 양자협정은 물론 솅겐·더블린 협정 참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찬성 측은 급격한 인구 증가가 주택 가격 상승과 교통 혼잡, 환경 훼손, 의료비 증가, 공공서비스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위스국민당은 “통제되지 않은 이민이 스위스를 더 이상 스위스답지 않게 만들고 있다”며 인구 증가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스위스 정부와 경제계는 노동력 부족과 EU 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스위스 경제는 높은 임금 수준과 숙련 인력 수요를 바탕으로 주변국 노동자에 크게 의존해 왔다. 기업뿐 아니라 병원과 요양시설, 호텔, 건설, 관광업 등도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가 높다.

 

스위스 기업의 60% 이상이 EU 출신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구 상한제가 시행될 경우 의료·정보통신·건설 분야 인력난이 심화하고, 생산량이 최대 12%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여론은 팽팽하다. 스위스 공영방송 SRF가 지난달 8일 공개한 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47%로 집계됐다. 이후 조사에서는 반대 52%, 찬성 45%로 반대가 소폭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찬반 양측이 오차범위 안에서 맞서고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투표는 스위스를 넘어 유럽 전체의 이민 정책 논쟁과도 맞물려 있다. 스웨덴은 시민권 취득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 6일부터 성인 신청자의 기본 거주 요건을 기존 5년에서 8년으로 늘렸고, 언어·사회지식 시험도 도입할 예정이다. 소득 요건과 범죄 전력에 따른 대기기간 강화도 추진돼 이민자 시민권 취득 문턱이 높아졌다.

 

프랑스도 올해 1월부터 장기 체류 외국인과 귀화 신청자에 대한 언어·사회 통합 기준을 강화했다. 10년 체류증 신청자는 프랑스어 능력 기준을 기존 A2에서 B1 수준으로 높였고, 귀화 신청자는 B2 수준의 프랑스어 능력과 시민시험 통과를 요구받는다. 시험에는 프랑스 공화국 가치와 권리·의무, 사회·역사 관련 내용이 포함된다.

 

독일에서는 우파 성향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확대하며 이민 제한 논의를 키우고 있다. AfD는 난민 신청 기각자와 체류 자격이 끝난 이민자에 대한 강제 송환, 추방 전 구금, ‘재이주’ 공약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스위스 국민투표는 유럽 각국에서 이어지는 이민 규제 논쟁과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다.

 

스위스 유권자들의 선택은 인구 증가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또 EU와의 자유이동 체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동시에 묻는 성격을 띤다.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스위스의 이민 정책은 물론 유럽 각국의 이민 규제 논의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