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 칼럼] 트럼프가 언론을 이용하는 법, 레거시가 장동혁을 트럼프로 만드는 역설

인싸잇=심규진 | 정치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언론이 어떤 정치인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정치인을 더 크게 만들어 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를 ‘언론과 싸워 이긴 정치인’ 정도로 기억하지만, 사실 트럼프의 진짜 강점은 언론을 이긴 것이 아니라 언론을 이용했다는 데 있다.

 

트럼프는 일찍부터 정치와 미디어의 본질을 이해했다. 대중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비호감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욕을 먹더라도 사람들이 계속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게 만들면 결국 정치적 영향력은 커진다.

 

트럼프는 바로 그 원리를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1990년대 초, 트럼프는 첫 번째 아내 이바나 트럼프와의 이혼 과정에서 불륜 스캔들에 휩싸였다.

 

상대는 당시 배우이자 모델이었던 말라 메이플스였다. 언론은 연일 트럼프를 공격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치명적인 스캔들이었다.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기업인이라면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고 변명하거나 사과하는 데 집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그는 위기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를 확대하고 재포장했다.

 

당시 미국 타블로이드 언론의 최강자였던 내셔널 인콰이어러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불륜 스캔들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꿔 버렸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유명한 “Best Sex I've Ever Had” 헤드라인이다.

 

기사에 따르면 말라 메이플스는 트럼프와의 관계를 두고 “내 인생 최고의 섹스”라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원래라면 불륜남, 가정 파괴자라는 이미지가 씌워져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를 오히려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남성” “스타 같은 플레이보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라는 이미지로 전환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불륜의 도덕성보다도 트럼프라는 캐릭터 자체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스캔들의 피해자가 아니라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훗날 많은 언론인들은 이러한 방식을 “캐치 앤 킬(Catch and Kill)” 전략의 한 사례로 분석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불리한 이야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강력한 이야기로 덮어 버리는 것이다.

 

트럼프는 언론을 적으로 만들면서도 동시에 언론의 관심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CNN이 공격하면 “가짜뉴스”라고 반격했다. 뉴욕타임스가 비판하면 “기득권 언론의 공격”이라고 맞섰다.

 

언론은 트럼프를 비판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루 종일 트럼프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 국민들은 CNN을 보든 FOX를 보든, 뉴욕타임스를 읽든 워싱턴포스트를 읽든, 하루 종일 트럼프라는 이름을 듣게 됐다.

 

트럼프는 언론의 부정적 보도를 무료 광고로 활용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장동혁 현상에서도 비슷한 측면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만 캐릭터는 정반대다. 트럼프는 공격적이고 직선적이며 전투적인 사업가형 정치인이다. 반면 장동혁은 원래부터 신중하고 차분한 법조인 이미지가 강했다.

 

말을 아끼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상대방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캐릭터만 놓고 보면 오히려 문재인에 더 가깝다.

 

문재인 역시 한때 “착한 중산층 변호사” “상식적이고 점잖은 정치인” 이미지로 대중적 호감을 얻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장동혁을 바라보는 일부 레거시 미디어의 태도는 문재인을 대하던 방식이 아니라 트럼프를 대하던 방식에 가깝다.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고, 연일 부정적 보도를 쏟아내고, 정치적 흠집을 부각하려 한다.

 

최근 한 레거시 매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흥미로운 평가를 들었다.

 

그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TV조선 보도는 “상당히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결정적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새로운 불법 의혹이 제기된 것도 아니며, 기존에 알려진 내용을 반복적으로 재구성한 기사에 가깝다는 평가였다.

 

정치권에서 새로운 팩트가 나오면 파장이 커진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오히려 반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손실을 일부라도 회복하려 했다는 이야기. 변호사가 피해자를 변론했다는 이야기. 그 이상의 결정적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치 거대한 비리 의혹이 있는 것처럼 프레임이 형성되려 한다면 오히려 대중은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공격 자체가 아니라 공격의 설득력이 떨어질 때다.

 

공격이 과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사람들은 공격받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문재인도 비슷했다. 과거 문재인을 향해서도 수많은 의혹과 루머가 제기됐다. 금괴설, 자녀 특혜 취업설, 각종 부정부패 의혹이 등장했다.

 

당시 보수 진영 일부는 문재인의 ‘착한 변호사’ 이미지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떠했는가.

 

지지자들은 오히려 “우리 편이 과도하게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며 더 강하게 결집했다.

 

공격이 반복될수록 문재인의 도덕성 이미지는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는 역설이 나타났다.

 

지금 장동혁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오히려 이번 논란을 통해 사람들은 장동혁 개인의 삶과 가족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장동혁을 ‘부패한 정치인’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검소한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 스캔들이 있는가. 자녀 입시 비리가 있는가. 병역 비리가 있는가. 이른바 대한민국 정치인을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3대 스캔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장동혁의 삶을 살펴보며 의외로 평범하고 검소한 생활 궤적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 정치인들처럼 화려한 강남 라이프스타일이나 과시적 소비 이미지도 없다. 자녀 교육 역시 특권층의 전형적 서사보다는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의 모습에 가깝게 비춰진다.

 

결국 공격하려고 시작한 보도가 역으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아닌가”라는 인상을 남기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팬덤 정치의 본질은 사랑이 아니다. 고난 서사다. 팬덤은 칭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동의 적이 있어야 한다.

 

우리 편이 공격받고 있다는 감정이 생기는 순간 팬덤은 더욱 강력해진다. 트럼프 지지층이 그랬다. 문재인 지지층도 그랬다. 그리고 최근 장동혁 지지층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칭찬받을 때보다 공격받을 때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분노와 위기의식이 행동을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장동혁은 매우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기본 캐릭터는 문재인형이다. 부드럽고 신중한 법조인.

 

그러나 그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은 트럼프형이다. 레거시 미디어와 충돌하고, 끊임없이 공격받고,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즉, ‘문재인형 이미지’와 ‘트럼프형 미디어 효과’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사람들은 장동혁을 과격한 정치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동시에 ‘기득권 언론에게 집중 공격받는 정치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 조합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문재인식 호감 이미지와 트럼프식 팬덤 결집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역사는 반복된다. 언론은 때때로 특정 정치인을 공격한다. 그러나 모든 공격이 정치인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치인은 공격을 받을수록 존재감이 커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언론이 그 정치인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인이 언론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그랬다. 문재인도 어느 정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장동혁 역시 비슷한 역설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레거시 미디어가 장동혁을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매일 장동혁을 뉴스의 중심에 올려놓고 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지지하든 비판하든, 모두가 장동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에서 그것은 때로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된다.

 

어쩌면 지금 레거시 미디어는 장동혁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치 않게 장동혁의 정치적 체급을 키워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조교수 약력

정치 문법을 문화 전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우파의 문화적·정치적 복권과 승리를 이끄는 담론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연구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교육부 미디어개발국 및 스페인 과학혁신부의 지원을 받아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ICA)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역민방 청주방송과 미디어다음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실무를 아우르는 보수 우파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국민스피커 심규진 교수〉를 통해 정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민심과 데이터 기반 정치 평론이라는 대중적 실험에 나서고 있다.

▶ 유튜브 검색: @kyujinshim78

저서로는 『하이퍼젠더』,『K-드라마 윤석열』, 『새로운 대한민국』(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