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비극'이 된 날… 누가 이 욕망과 방조(幇助)의 열차를 멈출 것인가

'부동산 대신 주식' 외치던 정부와 레버리지에 영혼을 판 개미들의 찬란하고 쓸쓸한 종말

인싸잇 = 유용욱 주필 | 이틀 연속 코스피와 코스닥 양대 시장의 거래 기능이 일시 정지됐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서늘한 푸른색 하락 화살표와 ‘서킷브레이커’라는 다섯 글자는 2026년 7월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맞이한 가장 참혹하고 뼈아픈 성적표다.

 

장중 12% 넘게 폭락하며 5,200선마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시장은 단순한 패닉을 넘어 공포 그 자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꿈의 시가총액이라 불리던 8,000조 원을 넘보며 환호하던 증시에서, 한 달 만에 2,000조 원이 넘는 피 같은 국민 자산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코스피 지수 6000선의 꿈을 무너뜨린 56조 원의 손실

 

글로벌 IB 씨티은행에 따르면 이번 폭락장에서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했다가 입은 손실만 무려 56조 2,000억 원(약 387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대형 반도체주를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종목 고배율 레버리지 ETF와 32조 원을 돌파했던 신용융자 잔액이 이번 폭락장의 기폭제가 됐다.

 

상승장에서 달콤한 수익을 약속하던 2배, 3배의 레버리지는 시장이 돌아서자 투자자의 목을 조르는 날카로운 단두대로 변했다. 마진콜을 버티지 못한 반대매매 물량이 또 다른 폭락을 부르고, 그 폭락이 다시 강제 청산을 부르는 ‘공포의 악순환’ 속에서 개미들의 영혼까지 불타버렸다. 이 참혹한 현장의 진짜 책임자는 과연 누구인가.

 

‘국민 자산 증식’이라는 미명과 당국의 방조가 낳은 인재(人災)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거친 글로벌 풍랑이 만들어낸 불가항력적 자연재해가 아니다. 예견된 징후를 외면하고 판을 키운 명백한 '인재(人災)'다. 정부와 정치권은 과열된 집값을 잡겠다는 고육지책으로 "주가지수 5000, 6000 시대를 열겠다", "자산 증식은 부동산이 아닌 자본시장으로 가라"며 연일 나팔을 불었다. 세제 혜택과 온갖 유인책이 춤을 췄고, 언론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주식시장의 낭보(朗報)를 타전했다.

 

국민들은 정부의 호언장담(豪言壯談)을 믿었다. 부동산으로 가는 사다리가 끊어지자, 자산 형성을 위한 마지막 집단적 탈출구라 믿고 주식시장으로 돈을 싸 들고 몰려들었다. 그러나 정부가 가리킨 그 길의 끝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건전한 기업 성장의 결실을 나누는 선순환 투자가 아니었다.

 

그곳은 고위험 파생상품과 변동성이 득실거리는 위험천만한 외나무다리였다. 정책 당국은 자금 유입이라는 실적에만 급급했을 뿐, 그 자금이 시장의 체력을 약화시키고 자멸을 부를 레버리지 광풍으로 흘러 들어가는 혈관을 방치했다. 그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금융당국의 안일함과 무책임한 수수방관이다.

 

당국은 단일종목 고배율 레버리지 ETF처럼 조그만 충격에도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위험 상품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일반 개인투자자의 안방까지 깊숙이 침투하도록 문을 넓게 열어주었다. 시장 변동성이 극에 달하고 경고음이 울릴 때조차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더니,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터지고 시장이 시스템 붕괴 직전에 몰려서야 국회에 나와 "송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증거금을 올리고 신규 매수를 제한하겠다는 뒷북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56조 원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날리고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투자자들에게 당국의 '어설픈 사과'는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한다. 시장의 변동성을 제어하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파수꾼이 도리어 판을 키우고 위험을 방치한 방조자 역할을 한 셈이다.

 

시장은 '도박장'이 아니며, 레버리지는 '지름길'이 아니다

 

그러나 정책과 당국의 실책 뒤에 숨어 자기합리화만 하기엔, 탐욕에 눈이 멀었던 개인투자자 자신들의 책임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아무리 역대 최고 실적을 낸 우량 기업이라 할지라도 고평가 논란과 글로벌 경기 침체, 파생상품의 청산 압력 앞에서는 맥없이 곤두박질치는 것이 냉혹한 자본시장의 본질이다.

 

하지만 수많은 개인은 ‘빚투’와 ‘고배율 레버리지’라는 위험천만한 무기를 들고 탐욕이라는 이름의 열차에 자발적으로 몸을 실었다. 주가가 꺾이고 있음에도 매수 평단가 228만 원에 SK하이닉스를 계속 사들이며 위험한 ‘물타기’를 감행하고, 손실률이 30%, 50%를 넘어서도 "언젠간 오르겠지", "정부가 살려주겠지"라며 버티는 모습은 투자라기보다 '맹목적인 신앙'에 가까웠다. 상승장의 기억에 취해 변동성을 리스크가 아닌 '대박의 기회'로 착각한 결과는 가혹했다.

 

레버리지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치트키가 아니라, 하락 시 내 자산을 순식간에 소멸시키는 지옥의 폭탄이다. 정책 실패와 유도된 광풍이 시작점이었을지라도, 스스로 리스크를 외면한 채 '일확천금'만을 좇았던 투기적 심리까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잃어버린 신뢰, 그리고 자본시장의 뼈아픈 교훈

 

자본시장을 떠받치는 가장 튼튼한 기둥은 '신뢰'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신뢰는 십수 년의 세월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정부의 말을 믿고 자본시장에 들어왔다가 빈털터리가 된 청년들과 투자자들이 이제 주식시장을 '건전한 자산 형성의 장'이 아닌 '정부가 판을 깔아준 합법적 도박장'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투자자가 환멸을 느끼고 떠나버린 증시는 유동성을 잃고 말라붙는다. 기업들은 미래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 기능을 상실하게 되며, 이는 결국 가계 부실과 소비 위축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 전체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금부터라도 고위험 레버리지 및 파생상품에 대한 전면적인 제도 재검토에 적극 나서야 함은 물론, 무책임한 시장 유도 정책이 초래한 이 비극에 대해 명확한 법적·정책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단순한 봉합이 아닌, 자본시장이 수행해 온 본래의 기업 자금 조달과 국민 자산 형성이라는 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제도적 수술을 단행하는 것만이 더 이상의 자본시장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그리고 투자자들 역시 이번 비극을 냉정하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세상에 '쉽고 빠르게 버는 돈'은 없으며, 리스크를 통제하지 않는 투자는 결국 개인의 삶을 파멸시키는 비극으로 끝난다는 자본시장의 오래되고 냉혹한 명언을, 우리는 56조 원이라는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다시 배우고 있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