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을 만든 자, 블랙홀에 빨려들다

이재명의 개헌 카드, 국면전환의 묘수인가 자충수인가

인싸잇 = 유용욱 주필 |개헌이라는 말만큼 거창한 정치적 수사(修辭)도 드물다. 헌법을 고치는 일은 단순히 권력자의 임기를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통치구조를 바꾸고 국민의 기본권과 권력기관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국가적 대사(大事)다. 따라서 개헌은 정권의 유불리가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놓고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하필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다시 개헌을 꺼내 들었다. 이 대통령은 14일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바꾸고, 개헌을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 단축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4년 중임제와 권한 분산은 자신의 대선 공약이자 일관된 입장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개헌론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왜 지금인가”다. 민심은 지금 개헌보다 온통 먹고사는 문제, 그리고 국정의 공정성에 대해 묻고 있다. 무엇보다 민심을 거세게 흔드는 것은 단연 부동산이다.

 

부동산과 사법 · 안보 불안, 민심의 경고음

 

주식시장은 제한된 참가자의 영역일 수 있지만, 주거 문제는 전 국민의 삶을 담보하는 생존의 영역이다. 한국갤럽의 8월 2주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부정평가가 취임 후 처음으로 긍정평가를 앞질렀고(부정 46%, 긍정 44%), 부정평가 이유 1위는 다름 아닌 부동산 정책이었다.

 

이 숫자는 단순한 지지율 변동이 아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주거 불안이 민심의 거대한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음이다. 여기에 사법체계 개편과 안보를 둘러싼 잡음이 불안을 더한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는 수사 공백과 피해자 보호 우려로 진보 성향 단체마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고, 여론조사 역시 유지 의견이 우세하다. 국방장관을 둘러싼 병역기록 의혹과 탈영 논란은 투명한 자료 공개 없이 봉합되려 하고, 이 와중에 추진되는 사관학교 통폐합 속도전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한미 통상협상의 후속 부담이나 주식시장 변동성 등 숱한 과제 속에서, 국민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삶의 불안과 정부를 향한 의구심이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갑자기 정치권의 시선을 단숨에 빨아들일 수 있는 거대한 의제가 등장했다. 바로 개헌이다.

 

모든 국정 현안을 집어삼키는 정치적 블랙홀

 

개헌은 그 자체로 모든 정치적 의제를 압도한다. 여야가 개헌을 놓고 싸우기 시작하면 언론도 개헌을 보도하고 국회도 개헌을 논의한다. 그러는 사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 부동산 정책의 실패 논란, 각종 의혹과 민생 문제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선관위의 부실 관리 및 선거 부정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 출범을 앞둔 시점에, 집권 여당의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한참 진행 중인 이 시점에 개헌이라는 정치적 블랙홀이 등장한 것이다.

 

개헌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대통령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결과적으로 개헌이 국정에 대한 평가와 민생 현안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의제가 된다면, 그것은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결과 다수의 국민이 ‘자신들의 국정 위기를 덮기 위해 개헌이라는 더 큰 의제를 던진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개헌 이슈는 더 이상 국가의 미래를 위한 담론이 아니라 정권의 위기를 피하기 위한 방패로 비칠 것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을 비롯해 대장동 · 위증교사 · 경기도 법인카드 ·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등 진행 중이던 여러 형사재판을 안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다만 대통령 취임 이후 헌법 제84조를 둘러싼 법적 해석 논란 속에서 각 재판부가 대통령의 국정 수행과 국정 운영의 계속성 등을 이유로 공판기일을 ‘추정’(追定 ; 追後 指定)하면서 이들 재판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권력의 국면 전환을 통한 위기 돌파 시도와 익숙한 데자뷔

 

권력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늘 더 큰 카드를 꺼내왔다. 하지만 우리 현대 정치사는 권력의 결정적 위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그 끝이 어땠는지를 이미 여러 차례 보여준 바 있다.

 

박근혜 정권도, 윤석열 정권도 처음부터 탄핵이라는 결말을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논란처럼 보였던 일들이 민심의 균열로 이어졌고, 그 균열이 커지면서 결국은 권력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파도가 됐다.

 

물론 박근혜와 윤석열의 정치적 사건을 이재명 대통령의 현재 상황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만한 권력이 민심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면서 정치적 위기를 더 큰 정치적 의제로 돌파하려 할 때 나타나는 모습에는 분명한 정치적 데자뷔가 있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에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지율 하락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반대 여론도 일단 정치적 공세라고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민심은 권력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국민 다수가 품고 있는 의문을 설명하고, 국민이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가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지, 국방장관을 둘러싼 병역기록 의혹은 왜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는지, 사관학교 통폐합은 왜 이토록 서둘러야 하는지, 한미 통상협상의 실질적 성과와 부담은 무엇인지, 부동산 정책은 왜 민심의 가장 큰 불만이 됐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청년에게 고작 폐버스를 활용한 주거 대책 같은 발상이 아니라, 고시원에 기껏 욕조를 넣어주는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청년 일자리와 감당 가능한 주거비, 그리고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개헌이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다.

 

블랙홀을 만든 자, 결국은 스스로 빨려 들어가

 

헌법은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운명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문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론을 더욱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들고 나온 개헌이 진정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거치면 될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국정 위기를 잠시라도 덮고 시간을 벌어가면서 국면 전환을 위한 일회성 카드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것은 개헌이 아니라 정치적 블랙홀에 불과할 것이다.

 

필자의 판단은 후자에 가깝다. 만일 내 생각과 판단이 맞는다면 지금 개헌 이슈를 들고나온 이재명 대통령이 간과하고 있는 중대한 요소가 하나 있다. 블랙홀이 가진 무서운 속성이 바로 그것이다. 블랙홀은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뿐 아니라, 때로는 그것을 만든 존재까지 삼켜버린다는 것이다.

 

박근혜도, 윤석열도 자신들이 가진 권력이 그렇게 빨리, 또 그토록 속절없이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는 권력자에게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민심의 경고를 들었는가. 왜 국민들이 저리도 화가 나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노력이나, 적어도 알아보려는 시도는 해보았는가.

 

개헌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면 전환의 묘수가 될 것인지, 아니면 몰락을 앞당기는 신호탄이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모습이 과거 권력의 몰락 과정과 겹쳐 보이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역사는 늘 되풀이되는 것, 미래는 앞에 있지 않아

 

박근혜, 윤석열 그리고 이재명. 이름은 다르지만 권력의 끝에서 반복되는 장면은 어쩌면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누가 그랬다. 역사는 늘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따라서 오만한 권력이 역사의 경고를 외면할 때 우리는 익숙한 장면을 다시 목격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개헌 주장은 자신의 연임이나 본인이 직면하고 있는 사법리스크 면죄부에 대한 확실한 포기 선언 없이는 국민을 속이고자 하는 일시적 정략(政略)에 불과하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권력 연장 개헌'이 아니라, 민생을 챙기고 권력의 사유화를 막는 국정 운영의 정상화다.

 

국민은 결코 미련하지 않다. 헌법이라는 국가의 근간을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사법리스크의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오만한 시도는 민심의 더 큰 분노를 부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이재명 대통령의 섣부른 개헌 제안은 성공적 국면 전환의 열쇠가 아니라, 정권 스스로 몰락을 당기는 결정적 시작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불순한 동기로 블랙홀을 만든 자는 결국 그 블랙홀에 자신부터 빨려 들어가는 것, 그것이 이 정권이 역사에서 배워야 할 가장 잔인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