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윤승배 기자 | 한국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실미도’의 안내자막이 개봉 23년 만에 수정됐다. 영화 속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이 사형수나 무기수 등 범죄자 출신으로 묘사된 부분이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23일 국방부에 따르면, ‘실미도 희생자 유족회’는 영화에 포함된 기존 안내자막의 수정을 요청했고, 국방부도 지난 7월 영화 배급사인 CJ ENM에 자막 수정을 요청했다.
CJ ENM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지난 4일부터 수정된 안내자막이 영화에 반영되고 있으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도 수정 자막이 제공될 수 있도록 관련 업체에 요청한 상태다.
새로운 안내자막에는 영화에서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을 특수범죄자, 사형수, 무기수로 묘사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른 영화적 설정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실미도 부대 공작원 가운데 사형수나 무기수는 없었으며, 대부분 일반 민간인이었다는 사실도 명시됐다.
특히 “영화 ‘실미도’로 인해 고통을 받으신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과 유족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지난 2003년 12월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1968년 북한의 1·21 사태 이후 창설된 공군 소속 북파공작원 부대를 소재로 제작됐다. 영화는 당시 실미도 부대원들을 사형수나 무기수 등으로 묘사했지만, 실제 조사 결과와는 차이가 있었다.
기존에도 영화 시작 전 실제 북파공작원들의 출신이나 상황과 영화 속 설정이 다를 수 있다는 취지의 안내문이 있었지만, 실미도 부대원들의 실제 출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 이들이 범죄자 출신이었다는 오해를 바로잡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북한 무장공비의 서울 침투 사건 이후 북한 침투를 목적으로 창설됐다. 공작원 31명 가운데 7명이 훈련 과정에서 숨졌으며, 남은 24명은 1971년 부대를 탈출해 서울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군경과 교전을 벌여 20명이 숨졌고, 살아남은 4명은 사형을 선고받아 이듬해 형이 집행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6년 실미도 사건과 관련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사과와 유해 발굴 등을 권고했다. 국방부는 2024년 실미도 공작원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장관 명의로 사과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이번 조치가 실미도 부대 공작원이 사형수·무기수가 아닌 일반 민간인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되고, 희생자 및 유가족의 명예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실미도 희생자 유족들의 의견을 존중해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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