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백소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중·일을 비롯한 5개국에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구했다.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국제 유가 타격 등이 여론을 악화시키면서, 이곳에서 선박 통행의 정상화를 위해 동맹국에 파병을 요구한 것으로 국제사회는 인식하고 있다. 현재 이재명 정부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사실상 중립을 유지하는 만큼, 향후 미국 측으로부터 군함 파견 등의 요청이 공식적으로 들어온다면 이를 어떻게 이행할지 고민스러운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미국과 협력해 해협의 개방과 안전 유지를 위해 군함을 보낼 것(will be sending War Ships)”이라며 “우리는 이미 이란의 군사력을 100% 파괴했지만, 그들이 아무리 심하게 패배했더라도 이 해협 어딘가에 드론 1~2기를 보내거나, 기뢰를 투하하거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인위적 제약을 받는(are affected by this artificial constraint) 국가로 중국과 프랑스, 일본, 영국 그리고 한국 등을 거론하며 “이들 국가들이 함정을 보내 완전히 무력화된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해협을 해방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당 문장의 맨 앞에는 실현 가능한 걸 기대하는 뉘앙스의 “Hopefully(바라건데)”라는 표현을 붙여 사실상 이들 국가가 이행할 수 있는 일을 요구한다는 걸 의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은 (이란의) 해안선을 집중 폭격하고, 이란 선박과 함정을 계속 격침할 것”이라며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는 곧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고, 안전하며,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NBC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해당 트루스소셜 메시지에 대해 “그들(동맹국)은 (파병을) 약속했을 뿐 아니라,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인터뷰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할 국가명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또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며 “미국은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모든 면에서 이란을 때렸고, 완전히 파괴하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받는 세계의 국가들은 그 항로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은 모든 일이 빠르고 원활하며 잘 진행되도록 그 국가들과 조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전쟁 기간 중 이스라엘이 아닌 제3국에 군사작전 협조를 명시적으로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쟁이 미국 측의 예상과는 다르게 장기화의 조짐도 보이고 있고, 동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석유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동맹국이 직접 군함을 보내 상선 호위 등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요구로 보인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를 수입하지만, 그 비중은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받는 세계의 국가들’을 언급한 건 한국을 비롯해 중동으로부터의 원유 도입량이 상당한 국가가 호르무즈 해협 상선 통행 관리의 주된 역할을 맡고, 미국 측은 이를 지원하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파병 시 ‘국익, 한미동맹, 이란 측 반발’... 변수 충돌 우려
사실상 파병에 해당하는 이번 요구가 미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들어온다면, 한국 정부는 국익은 물론이고, 미·이란 전쟁에 군사적 개입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리스크, 한미동맹,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9년 아덴만에서 활동하던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으로 파병해 일대 해역 등에서 활동하는 해적들로부터 한국 선박을 호위한 적이 있다.
정부는 트럼프 1기 때인 지난 2020년 1월 미군이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제거하면서 중동 긴장이 고조되자, 청해부대의 작전 임무 구역을 확장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한국 상선 호위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당시 국회에 제출된 청해부대 파병 동의안에 명시된 파견지역은 아덴만 해역 일대여서 호르무즈 해협 활동에는 국회 비준동의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 포함’이라는 문구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작전이 가능했다.
당시에는 독자 작전이었지만 이번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만큼, 청해부대의 임무도 달라져 별도의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는 안보 상황이 안정되면 호르무즈 해협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연합 구성 노력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9일(현지시간) 로이터에 “우리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운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들을 우리의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 다소 전향적인 프랑스와 영국과는 다르게 중국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미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14일 호르무즈 해협에 해군 전력을 배치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CNN의 질의에 “중국은 즉각적 적대 행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며 “모든 당사국은 안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에너지 공급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며 사실상 파병 요구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일본의 경우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그동안 이란이 에너지 시설을 포함한 민간 및 외교 시설까지 공격해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비난했지만, 파병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호르무즈 해협 기뢰 제거를 위해 자위대를 현지에 보내는 것은 현재 고려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집단적 자위권의 발동 기준인 ‘존립위기 상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지난 12일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기뢰) 제거를 위한 사전 준비로 자위대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전개하는 것은 상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호위와 관련해서 미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정부 차원에서 법률 검토에 이미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가네코 야스시(金子恭之) 국토교통상은 이날 회견에서 오만만에 정박 중인 일본 관련 선박에 낙하물이 떨어져 선박 일부가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일본선주협회에 따르면, 오만만에 4척의 일본 관련 선박이 대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파병은 오는 19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릴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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