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보내는 나라에서, 영웅을 지켜내는 나라로

  • 등록 2026.04.14 16: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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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잇=유용욱 주필 | 완도의 냉동창고는 차가웠다. 불이 났음에도, 그 공간은 사람의 숨을 더 먼저 얼려버리는 구조였다. 밀폐된 벽과 천장 사이에 쌓인 유증기, 순식간에 시야를 삼킨 연기, 몇 분 사이에 폭발적으로 바뀐 상황. 그 안에서 두 명의 소방관은 끝내 출구를 찾지 못했다.

 

불길은 잡혔지만, 그날 이후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너무 늦게 질문을 던지게 됐다.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한 사람은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둔 가장. 출근길마다 “안전”을 입에 달고 살았고,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원칙을 중시하던 베테랑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다섯 달 뒤면 결혼식을 올릴 예비신랑이었다. 휴일도 반납하고 현장을 지키며, 곧 국수를 대접하겠다던 청년. 그날 아침 그들의 지극히 평범하던 하루는 영웅의 서사로 시작되지 않았다. “다녀올게.” “조심히.” 너무도 평범한 인사로 집을 나섰지만, 그 평범함은 끝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영결식장에서 울려 퍼진 편지 한 장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빠는 나의 영웅.” 어린 자식의 떨리는 목소리는 아빠에 대한 찬사이자 질문이었다. 우리는 과연 이 영웅을 어떻게 대했는가. 살아 있을 때, 현장에 들어가기 전과 들어간 뒤, 그들의 생명은 충분히 보호받았는가.

 

 

사고의 경위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냉동창고라는 밀폐된 공간, 가연성 자재와 유증기가 축적되기 쉬운 환경, 화기를 동반한 작업, 잔불 정리를 위한 2차 진입. 대피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빠져나오지 못한 현실. 출구까지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였다. 그 짧은 거리를 가로막은 것은 불길만이 아니었다. 정보의 부족, 판단의 관성, 그리고 ‘늘 그래왔던’ 방식에 대한 맹신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이런 순간마다 ‘숭고한 희생’이라는 말을 꺼낸다. 그 말은 분명 진심이지만, 동시에 대단히 위험하다. 숭고함이라는 말이 현실에서의 책임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이라는 단어는 때로 참 편리하다. 그러나 밀폐 공간에서의 내부 진입 기준은 더 엄격했어야 하지 않았는지, 요구조자(要救助者)가 없는 상황에서의 무리한 진입은 멈출 수 없었는지, 로봇과 무인 장비로 대체할 준비는 충분했는지, 현장 정보 공유와 통제는 제때 작동했는지 등등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소방 현장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숭고함은 다음 희생을 예고하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환기가 어려운 공간에서는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폭발로 이어진다고. 시야가 사라지는 순간, 오랜 숙련과 경험조차 무력해진다고. 그래서 내부 진입의 기준을 바꾸고,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기술과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예산과 규정, 관행과 문화 중 무엇을 우선에 둘 것인가의 문제다.

 

영웅의 용기에 기대는 사회는, 그 용기가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영웅을 세우려 할 뿐이다. 남겨진 이들의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른다. 웨딩드레스 대신 상복을 입은 약혼자, 아들의 마지막 외침을 듣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무너진 어머니,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가족들. “불에 안 타는 옷을 입혔어야 하지 않느냐”는 탄식은 개인의 원망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향한 절규다.

 

위로의 말은 그날을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삶은 계속된다. 그래서 예우는 영결식장의 식순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남겨진 이들의 생계와 교육, 그리고 심리 치유와 공동체의 동행까지, 끝까지 이어지는 책임이어야 한다. 동료로 살아남은 이들의 트라우마 또한 개인의 몫으로 방치돼서는 안 된다. 죄책감과 공포를 안고 다시 현장에 서는 일이 용기가 되지 않도록, 국가가, 소방당국이 그리고 각종 제도가 먼저 나서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영웅을 기리는 데 능숙한 나라로 남을 것인가, 영웅을 지켜내는 나라로 나아갈 것인가. 후자를 택한다면, 답은 분명하다. 내부 진입의 기준을 재정의하고, 위험을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는 장비와 체계를 구축하며, 판단의 관성을 끊어낼 교육과 지휘 문화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은 종이 위에 머물지 않고 빠르게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아이의 편지 속 한 문장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빠는 나의 영웅.” 그 말이 더 이상 장례식장에서만 울리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지금 당장 바뀌어야 한다. 다시는 영웅의 이름으로 보내지 말자. 화재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이 다시는 희생 없이 살아서 돌아오게 하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이들이 영웅을 대하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진짜 추모다.  영웅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남겨진 유족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유용욱 주필 macgyve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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