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경제전문가 세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국가경제를 자유방임하는 것이 올바른지 아니면 국가개입(엄밀한 의미는 정부개입, 이후는 정부개입으로 부르기로 한다)이 더 나은지에 대한 논쟁이 심각하게 벌어질 것 같다. 이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 미리 경제사 및 경제학설사를 잠깐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자유방임이냐 정부개입이냐의 논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서로 양극단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방임주의자들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므로 정부는 국방과 경찰의 임무(소위 야경국가의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정부개입주의자들은 시장은 실패하기 마련이므로 모든 일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시장은 항상 제대로 작동할까 아니면 항상 실패만 할까? 모두 다 틀렸다. 시장기능은 제대로 작동하기도 하고, 가끔은 실패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양극단의 주장은 모두 틀렸다고 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때도 있고, 자유방임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정부의 개입이 필수적이고, 시장이 실패하지 않을 때라면 굳이 정부의 개입이라는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
그럼 그 기준은 어떻게 판단할까? 즉, 언제 시장기능이 실패했다고 봐야하고, 언제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역사적으로도 자유방임주의와 정부개입주의는 서로 교차해왔다. 둘 중 어느 것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우선, 19세기 중반 이전에 중상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으며 정부개입주의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금이라는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당시에는 돈을 벌어드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중농주의가 한 때 주목을 받았으나, 산업혁명이 확산된 이후에는 차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그 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뒤부터는 시장의 기능이 더 중요하게 떠올랐으며,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한 고전파 경제학과 그 뒤를 이은 신고전파 경제학이 크게 득세하였고, 자연스럽게 자유방임주의가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이것도 멀리 가지는 못했다. 그 뒤를 이어 다시 정부개입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과거 농업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제공황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자주 나타났고, 이것이 시장의 실패로 인식되면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해졌다. 20세기 초에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입각한 공산혁명까지 터지면서 정부개입주의가 더 큰 각광을 받았다. 여기에다가, 1930년대에 발발했던 세계대공황이 결정적이었다. 이게 바로 시장실패의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졌으며,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한 케인즈 경제학은 정부개입주의에 승리를 안겨준 것처럼 보이게 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련이 눈부시게 발전하자 소련을 적대시하던 나라들조차 정부의 개입을 더욱 강화했다. 무엇보다, 케인즈 경제학에 입각한 경기조절정책이 세계대전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소위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연 것으로 여겨지자, 정부개입주의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런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자, 정부의 개입이 더 많은 나라일수록 국제경쟁은 물론이고 성장잠재력에 있어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구체적으로,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은 물론이고 산업시설의 피해도 거의 없었던 영국과 미국이,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것은 물론이고 산업시설이 거의 모두 폐허화했던 독일과 일본에게 밀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세계대전의 승패는 산업기술이 결정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더욱이, 석유파동 이후에는 이 두 나라는 스태그플레이션(물가불안과 경기후퇴의 동시 진행)에 장기간 시달려야 했다.
특히 영국은 ‘영국 병’에 걸렸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경제가 끊임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고, 1976년 말에는 소위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이 외환위기를 겪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야 했다. 결국 영국은 대처리즘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즉, 민영화, 규제완화, 개방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미국도 1980년에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뒤 레이거노믹스를 내세워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선택했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영국이 독일을 앞지르고 미국이 일본을 앞지르는 일이 벌어지자,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인 대세를 이루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유럽에서 마지막까지 신자유주의를 배척하고 사민주의를 고집했던 독일과 프랑스조차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10%를 넘나들었던 실업률이 이런 변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정부가 경제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고 국민성 자체가 국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일본 역시 이런 시대적 조류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이런 나라들의 경제도 지금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세계적인 추세와는 정반대로 흘러가려 하고 있다. 정부개입주의가 다시 득세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 실업률이 3%를 겨우 넘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실업률이 10%를 웃도는 일이 벌어진 뒤에야 비로소 정부개입주의가 고개를 숙일까?
그렇다고 정부개입을 무조건 배척하고 자유방임만을 주장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부개입주의도 자유방임주의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시대상황에 따라서 정부가 개입할 수도 있고, 자유방임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세계대공황 때처럼 국가경제가 위기적 상황에 빠져들 때에는 당연히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가경제에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때가 아니라면 시장의 기능에 좀 더 많은 것을 맡겨도 좋을 것이다. 정부개입은 필연적으로 비용을 수반하므로. 그런 비용은 국민복지에 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끝으로,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이라는 책은 정부개입주의에 이론적 근거를 훌륭하게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의 논리전개는 여러 가지 맹점을 안고 있다. 이 문제는 뒤에 시간을 내서 자세하게 비판해볼 생각이다.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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