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돈 교수 "김유신 역할 재조명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단재 신채호는 중국을 끌어들여 백제나 고구려 같은 '동족'(同族) 국가를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신라의 김유신(金庾信.595-673)을 골수까지 증오했다.
이 때문에 그의 승리로 점철된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거의 무록(誣錄.거짓기록)"이라고 혹평하면서, "김유신을 무엇으로 칭(稱)하느뇨? 대개 김유신은 지용(智勇.지혜와 용기) 있는 명장이 안이요, 음험취한(陰險鷲悍.교활)한 정치가이며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에 잇지 안코 음모로 인국(隣國.이웃나라)을 난(亂.어지럽힌)한 자(者)이다"(조선상고사)라고 선언했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이런 단재의 주장이 "남북한 역사학계에 크게 영향을 끼쳐 어쩌면 (김유신에 대한) 관심을 끌지 못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으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하지만 "이는 사실 당시의 역사상을 잘못 이해한 데서 내린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주 교수는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소장 김복순)가 1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을 주제로 공동 개최하는 학술대회 기조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김유신에 대한 평가도 저절로 새롭게 이뤄져야 마땅하다"고 강조할 예정이다.
주최측이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주 교수는 "삼국은 그 어느 쪽도 서로 동족국가로 여기지 않았다"면서 "사실 한(韓)민족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상태로 출발한 것이 아니며 당시에는 아직 형성 과정에 있었을 뿐이며 따라서 서로 비슷하다는 동류의식은 갖고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대립, 격돌해야 하는 적대세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한국고대사에 대한 자료가 전반적으로 크게 부족한 가운데서도 김유신의 경우 그 분량이 자못 많고, 그가 수행한 역할이나 비중이 막중함에도 그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현상이 "의아스럽다"면서, 이제 "7세기 동아시아 차원에서 전개된 격동의 한가운데서 중심자적 역할을 담당한 김유신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김유신 열전을 끝맺으면서 당시 고려인들은 "꼴 베고 나무하는 어린아이까지 김유신을 알고 있다"고 했다.
주 교수는 이런 김부식의 증언이 "결코 과장된 표현만을 아닐 터"라면서 김유신은 그가 활동하던 7세기 동아시아 사회의 유명인이었다고 강조했다.
그 증거로 648년 김춘추가 당나라에 들어갔을 때 당 태종 이세민이 김유신의 이름을 익히 듣고서 그의 인물됨을 물었던 사실이 있고, 나아가 668년 신라사신 김동암(金東巖)이 일본에 갔다가 귀국할 때, 일본조정에서 김유신에게 배 1척을 선물로 주고자 한 사실이 있음을 들었다.
주 교수는 이로 볼 때 "7세기 당시 김유신의 위상이 대단하였음을 웅변"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향후 김유신 연구는 신라는 물론, 동아시아 정국의 흐름이라는 큰 틀에서 다각도로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물론 과장, 허위가 뒤섞인 김유신 관련 기록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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