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문제에 몰두했던 아베 전 수상을 기억하며

아베 전 수상이 뿌린 납북 피해자 구출에의 씨앗,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겠다

미디어워치 편집부 mediasilkhj@gmail.com 2022.08.02 13:56:02



※ 본 추도글은, 일본의 유력 국제 외교안보 싱크탱크 ‘국가기본문제연구소(国家基本問題研究所)’에 2022년 7월 19일자로 게재된,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의 아베 전 수상 추도글 ‘납북자 문제에 몰두했던 아베 전 수상을 기억하며(拉致問題に取り組んだ安倍元首相)’를, 니시오카 교수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 요시다 켄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수상이 암살을 당하자 북조선 납치 피해자 단체인 ‘가족회(家族会)’와 ‘구출회(救う会)’는 지난 7월 8일 연명으로 성명을 냈고 “납치라는 테러와 싸워온 아베 총리가 도리어 테러를 당하는 일이 왜 벌어지는가. 억울하고 슬픈 마음을 말로 다할 수 없다”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했다. 

‘가족회’와 ‘구출회’는 또한 “아베 총리가 주도한 대북 최강도 제재는 지금 효과를 보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존망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납북자 문제로 일본과의 협상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납북자 구출은 이제부터 중대한 고비를 맞을 것이다. 이 시기에 아베 총리가 안 계신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꺾일 수 없다. 모든 납북자의 즉각적인 일괄귀국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아베 총리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며 추도했다.

피해자 가족의 곁을 지킨 25년

‘가족회’와 ‘구출회’가 1997년 납치 피해자의 귀환을 위한 운동을 시작한 이래 25년이 지났는데, 그 기간 내내 줄곧 아베 전 수상이 함께 했었다.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수상의 방북 후 북조선이 납치를 인정하기 전까지 우리는 거의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납북사실을 국내외에 발신해 왔다. 당시부터 아베 전 수상은 자민당 내 노나카 히로무(野中広務) 씨 등 당권파의 각종 압력을 받으면서도 우리 곁을 지켰다.

2004년, 북조선이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 씨의 사망 증거로 고온에서 화장된 인골을 내놓았을 때, 당시 고이즈미 정권은 일조(日朝) 국교정상화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데이쿄대학(帝京大学)의 요시이 토미오(吉井富夫) 교수의 최신 기술을 통한 감정으로 해당 뼈가 메구미 씨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판명된 후, 아베 전 수상은 “앞으로는 사망의 증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살아있는 피해자의 팔 등을 절단하여 실제 유골을 만들어버릴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이 발족하자마자,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는 일조국교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 “피해자가 생존하고 있다는 전제하 귀국을 요구할 것”이라는 정부 방침을 결정했다. 이 또한 우리들이 당시 요구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대북 압력으로 귀국 실현을 압박하려는 전략이었다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 아베 전 수상은 최우선 과제로 납치 문제에 몰두했다. 그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가족회’와 ‘구출회’에 현 상황을 설명해줬다. 어떤 때에는 배석하고 있던 외무성 국장 등 관리 대부분을 퇴석시키고(정부납치대책본부 사무국장만이 방에 남는 것이 허용됐다), 필자를 포함한 모임의 임원들에게만 구출 전략을 성의껏 알려줬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베 전 수상과 필자의 생각이 거의 같다는 사실에 놀랐고, 동시에 강한 감동을 받았다. 이 전략은 경제제재와 미국 등의 국제적 압력(군사압력 포함)으로 북조선 정권을 위기에 몰아넣고, 당국의 최고지도자를 일조정상회담의 장으로 끌어낸 뒤, 2002년 북조선에서 일방적으로 사망선고를 고했던 요코다 메구미 씨를 비롯한 8명의 피해자 전원의 일괄 귀국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아베 전 수상 추모성명에 쓰여있듯 우리는 이미 북조선을 몰아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제부터가 마지막 승부의 때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리도 아베 전 총리가 남기고 간 과제인 납북자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아베 전 수상이 뿌린 납북 피해자 구출에의 씨앗을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겠다고 필자는 결심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대신 순직에 대한 가족회 및 구출회 성명
(安倍晋三元総理大臣殉職に対する家族会・救う会声明)


필생의 사업으로 북조선 납치 문제에 임해 온 아베 신조 전 총리대신(이하 아베 총리)이 습격당했다. 납치라는 테러와 싸워온 아베 총리가 도리어 테러를 당하는 일이 왜 벌어지는가. 억울하고 슬픈 마음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1990년대 초, 아직 의원 비서 시절에 아리모토 케이코(有本恵子) 씨 부모님의 호소를 받아, 납북자 문제 해결에 임했다. 97년 ‘가족회(家族会)’와 ‘구출회(救う会)’가 운동을 시작할 때, 함께 일어나 싸워 준 소수의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다. 거의 고립무원의 전쟁을 치르고 있던 우리 가족회와 구출회 입장에서 아베 전 총리의 존재는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2002년 9월, 고이즈미(小泉) 총리 방북 당시에도 관방부장관으로서 정부에 납북자 구출을 최우선으로 두며 혼신의 노력을 해주셨다. 방북에 동행한 아베 총리는 다음 날 아침, 가족회와 구출회를 찾아와 정부가 단정적으로 사망이라고 전한 피해자에 대해, 사실 사망 확인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중대한 사실을 최초로 우리에게 전해주셨다. 그 덕분에 우리는, 북조선이 일방적으로 사망 통보를 한 피해자에 대해 사망 확인이 확실히 된 것이 아니므로, ‘사망자’ 또 ‘유족’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긴급 어필을 내놓을 수 있었다.

2006년 제1차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아베 총리가 본부장으로 전 각료가 본부원인 정부납치문제대책본부를 신설하고, 납치문제담당 장관을 처음 임명하였다. 그 체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97년도부터 정부 내 납북문제를 전담하는 부서의 설치를 요구해 왔고, 그것을 실현해 준 것이 아베 총리였다.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후, 총리가 앞장서서 피해자 구출을 위해 노력했다. 그 성과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세 차례나 납치 해결을 촉구했다. 그때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메시지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고, 그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미조(米朝) 정상회담이 결렬돼 이후 납치 문제가 진전되지는 않았지만, 그때 아베 총리의 평양 방문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후 아베 총리는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그 제안은 이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총리(岸田文雄) 하에서도 계승됐다.

아베 총리가 주도한 대북 최강도 제재는 지금 효과를 보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존망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납북자 문제로 일본과의 협상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납북자 구출은 이제부터 중대한 고비를 맞을 것이다. 이 시기에 아베 총리가 안 계신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꺾일 수 없다. 모든 납북자의 즉각적인 일괄귀국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아베 총리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레이와(令和) 4년 7월 8일 
납북피해자가족연락회(北朝鮮による拉致被害者家族連絡会) 대표 요코타 타쿠야(横田拓也)

납북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협의회(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ための全国協議会) 회장 니시오카 쓰토무(西岡 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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