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칸신초] 위안부 소녀상 철거운동하는 한국인들, 활동 이유를 말하다

‘슈칸신초(週刊新潮)’ 2022년 11월 3일호 게재, ‘한국인들의 위안부상 철거 운동, 일본 및 독일 원정 집회’ 김병헌 소장 수기

미디어워치 편집부 mediasilkhj@gmail.com 2022.11.13 14:41:01


※ 본 기고문은 일본 유력 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 2022년 11월 3일호에 게재된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운동하는 한국인들 “소녀상은 거짓과 증오의 상징” 활동 이유를 말하다(「慰安婦少女像」撤去運動を行う韓国人たち 「少女像は偽りと憎悪の象徴」活動理由を語る)’ 제하 수기를, 슈칸신초 측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한국어 기고문 원문을 기초로 슈칸신초의 번역에 맞게 재편집하였습니다.





현재 위안부 소녀상은 한국 내에 150개, 해외에는 34개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일본의 ‘표현의 부자유전’에서 전시되기도 했었는데, 이 소녀상에 대한 철거 운동이 한국에서 시작됐다. 친일이라면 죄인 취급을 받는 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활동이 생겨났을까. 그 중심인물이 기고를 했다.


[필자소개] 김병헌(金柄憲).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1958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출생.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과정 수료.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 경원대, 중앙대 강사, 독립기념관 전문위원.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도 맡고 있다.



“소녀상 실물을 처음 봤다고 밝힌 한 여성은 만감이 교차했는지 다소 울먹이기도 했다.”

지난 8월 6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던 ‘표현의 부자유전·교토(表現の不自由展・京都)’ 전시회 관련 기사 내용 중 일부다. “검열이나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전시 중단에 몰린 예술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미술전”으로 명명된 이 기획전에서,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상의)를 입고 맨발로 앉아 있는 위안부 소녀상을 마주한 저 기사의 여성은 난폭하게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무자비하게 성폭행을 당했을 어린 소녀를 떠올렸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한때 이와 똑같이 생긴 소녀상을 서울의 노선버스 앞좌석에 앉혀 서울 시내를 누비게 하여 많은 시민들의 주목을 받게 한 적이 있었다. 소녀상을 직접 목도한 시민들 중 상당수는 ‘표현의 부자유전’을 관람한 저 여인처럼 눈물을 떨구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부부의 제작 의도는 상당히 성공을 거둔 셈이다. 

세계 각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운동

현재 이 소녀상은 일본 각지를 순회 중이다.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あいちトリエンナーレ)’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表現の不自由展・その後)’에 전시됐다가 항의가 접수되면서 전시가 중단됐던 '평화의 소녀상’은 올해 8월 6, 7일 교토에 이어, 같은 달 25일부터 28일까지 나고야에서 다시 전시되었다.

필자는 이 때문에 나고야에서 전시 중지를 호소하기 위해 급히 일본을 방문하여 거리에서의 항의운동과 기자회견을 실시했다. 같은 달 26일에는 이 기획전에서 열린 소녀상 작가 김운성 씨와의 토크 행사에 참여해, 위안부를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소녀로 형상화한 상을 제작한 근거를 묻기도 했다. 내가 나고야에 있을 줄은 몰랐겠지, 김 씨는 위안부 할머니가 그저 그렇게 증언했다고만 말하고 내 질문에 대해선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필자는 지금 세계 각지의 소녀상에 대해서 철거를 요구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 일단(一端)을 전하고자 한다.





정의연 시위에 10명 밖에 오지 않는 날도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수요집회(데모)’(매주 수요일 개최)가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한동안 집회가 제한되면서 이는 1인 시위 형태로 진행됐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1일, 코로나 방역정책이 ‘단계적 일상회복(위드코로나)’으로 전환됐다. 누구든 집회 신고만 하면 인원수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집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위드코로나는 수요집회를 주도해온 정의기억연대(구 정대협, 이하 정의연)에게는 성황을 이루었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여기저기 장소를 전전해야 하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집회의 시작이었다. 위드코로나 이후 처음 맞는 지난해 11월 3일 수요일, 정의연 집회는 약 30년간 지켜오던 소녀상 앞자리에서 연합뉴스 건물 앞자리로 밀려나는 굴욕을 맛봤다. 대항하는 보수계 단체 ‘자유연대’가 선순위 집회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달 후인 12월 1일에는 정의연은 연합뉴스 앞에서 국세청 뒤에 있는 좁은 장소로 밀려났다. 이번에는 필자가 대표로 있는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에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이후 정의연은 수요시위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전전하는 방랑객 신세가 됐다. 불과 3년 전인 2019년 8월 14일 정의연 집회에서는 주최 측 추산 2만 명이나 되는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러나 자금 유용 문제와 위안부와의 불화 등이 발각된 이후, 이제는 참가자가 10명을 겨우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독일 원정 집회

정의연의 수요시위가 소녀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고 판단한 우리 정의연 비판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은, 올해초 각 단체별로 진행해왔던 정의연 비판 집회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위안부사기청산연대’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평소에는 각 단체별로 활동하다가 큰 이슈가 있을 때는 다 함께 뭉쳐서 정의연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는 취지였다. 

그 첫 행사가 바로 2월 16일 ‘우리는 친구’라는 주제의 ‘한일우호 시민한마당’이었다. 구 일본대사관에서 내려다보이는 연합뉴스 앞에는 일장기와 태극기가 휘날렸다. 예전 같았으면 ‘친일파’, ‘매국노’ 같은 고함과 행패가 난무했을 텐데 신기하리만큼 조용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금만 다른 소리를 내도 ‘극우의 망언’이라고 비난하던 언론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기세를 몰아 해외에 있는 소녀상에 대해서 철거 시위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 독일 원정 시위를 계획했던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제안이었다. 제안은 바로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졌다. 처음에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호기롭게 독일 베를린과 미국 글렌데일에서 각각 소녀상 앞 집회를 연이어 하려고 했지만, 이내 코로나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항공료와 장거리 여행에 대한 부담으로 미국행은 단념하고 독일로 향했다.

취재했지만 보도하지 않아

독일 베를린의 미테구에는 브론즈로 된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에 대한 항의활동을 하기 위해 필자는 ‘위안부사기청산연대’의 주옥순(엄마부대 대표), 이우연, 요시다 켄지(吉田賢司, 통역)와 함께 6월 25일부터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현지를 방문하게 됐다.

여행 첫날 인천공항에는 뜻밖에도 공영방송 'KBS' 취재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베를린의 소녀상을 설치한 '코리아협의회'(독일의 한국계 시민단체. 한정화 대표)를 대상으로 위안부 문제로 거짓말을 하지 말 것과 소녀상을 자진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게 독일행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내용은 보도가 되지 않았다. 

장장 14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날 아침에, 출국 전에 신고해둔 집회 장소로 향했다.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표현의 부자유전’의 소녀상과 같이 착색이 된, FRP(섬유강화플라스틱) 재질의 소녀상이었다. 브론즈로 된 소녀상의 맞은편, 코리아협의회가 점유하고 있는 장소에 ‘표현의 부자유전’과 같은 형태의 소녀상이 반입되어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몇 사람의 독일인들과 현지의 일본인들도 있었다.

한편 브론즈로 된 소녀상은 어찌된 일인지 모기장으로 덮여 있었다. 우리가 훼손을 할까봐 코리아협의회 측에서 보호막을 쳐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행동은 이처럼 늘 유치하다. 좀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훼손할 생각도 없었지만, 만에 하나 소녀상에 흠집이라도 낸다면 우리가 온전하게 귀국할 수 있을까.





“비문의 내용은 모두 거짓말”

“위안부 사기 이제 그만!”이라고 쓴 현수막 설치, 그리고 유튜브 전송을 위한 스마트폰 세팅 등 집회 준비를 마치고 소녀상 대좌(台座)에 새겨진 비문을 살펴봤다. 2020년 9월에 이 소녀상 제막식을 한 지 열흘 만에 미테구청이 한 차례 철거 명령을 내렸다. 그 이유가 이 비문(碑文)에 있다. 문제가 된 문장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역에서 무수한 소녀와 여성들을 납치했고 그들에게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During World WarⅡ the Japanese military abducted countless girls and women from across the Asia-Pacific region and forced them into sexual slavery.) 


비문대로라면 위안부들은 일본군에 납치돼 전시 성폭력 아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전쟁범죄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소녀상은 그러한 피해자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된다. 하지만, 이 비문의 내용은 모두 거짓이다.

소녀상도 거짓말

국제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적군이나 점령군에 의해 자행된 납치·강간·살인 등의 행위를 ‘전쟁범죄’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 조선은 일본의 점령지가 아닌데다 조선 여인은 일본 국민이었다. 더구나 일본군 위안소는 점령지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 방지를 위해 설치·운용된 합법적 매춘 공간이었으며, 위안부는 위안소 주인과 계약을 체결한 다음 신분증명서를 발급받고 출국했으며 현지에 도착해서는 영사관과 경찰에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영업허가를 얻어 돈을 벌었던 직업여성이었다. 전쟁범죄 피해자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소녀상도 거짓이기는 마찬가지다. 소녀상 작가 김운성·김서경 부부는 ‘빈 의자에 새긴 약속’이라는 책에서 “일본군의 꼬임에 넘어가거나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10대 초중반의 어린 여성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11살짜리 자신의 딸을 모델로 13세~15세 소녀의 모습으로 소녀상을 제작했다”고 썼다. 

하지만 당시 일본군 위안부는 17세 이상이 아니면 영업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니까 13~15세 소녀는 애초에 일본군 위안부가 될 수 없었다. 일본군에 의해 끌려갔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13~15세 소녀라는 이야기도 모두 거짓말이다.

방해받은 집회

독일 코리아협의회는 위안부가 전쟁범죄의 피해자라는 주장과 함께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유태인과 같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은 200~300만 명에 이르지만, 일본군에게 살해된 위안부는 단 1명도 보고된 바가 없다. 

일본군 병사는 위안소 규정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일본군 위안소를 이용할 수 없었다. 위안부들 중에는 고액의 수입으로 루비나 비취,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을 구입한 사람도 있었다. 고향으로 생활비나 학비 등을 보냈다는 증언도 있다. 전쟁범죄 피해자이면서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같다는 코리아협의회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그래서 우리는 집회 내내 코리아협의회에 “거짓말 하지 마라”고 외쳤던 것이다. 
 
우리가 소녀상 주변에서 집회를 하는 동안 코리아협의회 측에서는 야유를 보내거나, 스피커 소리를 높이는 방법으로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방해를 했다. 어떤 사람은 가운데 손가락을 위로 세우고 욕을 하기도 했다. ‘평양에서 만나자’는 문구가 인쇄된 셔츠 차림의 사람이 인공기가 붙은 피켓을 들고 배회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위안부 피해자라고 들고 나온 사진들은 어처구니없게도 대부분 조선인도 아니었다. 이러한 코리아협의회 측의 비이성적인 연출은 29일까지 진행된 일곱 차례 집회 내내 반복되었다. 



문제의 본질은 ‘빈곤’

이처럼 코리아협의회는 미테구청과의 계약 내용도 무시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영구존치를 하려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빈 협약을 위반한 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 설치나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한 30년 간의 수요시위와 같은 떼쓰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 나가도 샌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대로 되어버렸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가난이다. 과거 한때 나라가 가난했고, 부모가 가난했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부모가 단돈 몇 푼을 받고 자식의 등을 떠밀어 윤락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그녀들이 위안부로 진입한 경위는 다양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가난 때문에 일어난 부끄럽고도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불행한 역사도 역사이기에 기억하고 반성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반드시 역사적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정의기억연대가 주도한 위안부 운동은 위안부 역사를 통째로 왜곡·날조해 왔다. 위안부 소녀상은 이러한 날조된 정보를 토대로 제작된 거짓과 증오의 상징인 것이다.

거짓말에 기반한 표현까지 존중해야 하나?

소녀상은 현재 한국 국내에 150개, 해외에 34개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표현의 부자유전’이라는 이름의 기획전에까지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부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게다가 이 전시는 교토에 이어 나고야, 고베,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도시를 옮겨가며 계속된다고 하니 심히 걱정이 된다.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거짓을 바탕으로 한 왜곡된 표현까지 존중할 이유는 없다. 

미테구에 설치된 소녀상이나 표현의 부자유전에 전시된 소녀상 모두 ‘평화’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거짓과 증오의 상징물일 뿐이다. 진정한 평화는 진실과 마주할 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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