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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일에 해남 옥매산...옥동선착장에서 무슨일이?

광부 222명 중 118명바다에서 희생... '옥매광산 광부수몰사건 70주년 합동추모제'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이날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했다. 국권을 일제에 강탈당한 8월 29일을 경술국치일이라 한다.

경술년인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한 이후 광복이 되기 전까지 36년간 계속된 일제의 수탈 속에 해남 옥매산 광산은 일본의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淺田化學工業株式會社)에서 개발 운영한 광산으로, 당시 이 광산에서 일하던 노무자들이 1945년 4월 제주도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했다.

대부분 해남 황산과 문내 지역이 고향인 이들 광부 222명은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20일 배를 타고 고향으로 오다가 배가 침몰해 절반이 넘는 118명이 희생된 사건이 '옥매광산 광부 수몰 사건' 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노역 동원된 뒤 귀향하다 배 침몰로 목숨 잃은 이들 광부들의 영혼을 달래는 추모제가 경술국치일인 29일 오전 이들 광부 222명이 제주도로 끌려갔던 전남 해남 옥동선착장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박철희 옥매산희생자 유족회장과 회원들을 비롯한 지역민과 박철환 해남군수, 명현관 전남도의회의장, 김성일 전남도의원, 서해근.정명승.김병덕 해남군의원, 그리고 국무총리실 산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 차디찬 바다 위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만 광부들의 넋을 위로하고 합동제사를 지내는 이날 추모제는 연희단 '팔산대'의 추모공연을 시작으로 희생자 유족들의 합동제사, 헌화·추모사 낭독에 이어 초혼무공연과 추모가등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행사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고향을 지척에 두고 차디찬 바다 위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만 이들 광부들을 그린 연극 ‘그들의 귀향’을 준비중인 극단 ‘미암’에서 유족회와 공동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박철환 해남군수는 “역사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가 있고. 뼈아픈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고 말하고 “잔혹한 일제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 우리 곁에 맴돌고 있는 그 영령들의 한을 푸는 것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일"이라고 밝혔다.

명현관 전남도의회 의장 역시 추모사에서 “우리나라는 해방 70년이 되는 올해,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일제청산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러한 분개할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옥매산 광산 노동자분들의 억울한 죽음은 결코 잊혀 져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옥매광산 광부 수몰 사건'의 생생한 현장을 증명해 주는 듯 이곳 옥매산 앞 부두에는 당시 일본이 옥매산에서 채굴한 명반석을 파쇄하여 가져가기 위해 지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해방되기 약 3년 전부터 짓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완공을 보지 못했고, 해방되던 무렵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채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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