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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 이란 말은 사용하면 안 되는가?

내가 사용하면 문제없고, 남이 사용하면 패륜인가?

정옥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월24일 MBC라디오 간판 프로그램‘손석희의 시사집중’에 출연해 한 말이 문제가 돼 인터넷뉴스에 수천 개의 비난 댓글이 달리는 등 큰 곤욕을 치렀다. 문제가 된 부분은‘한일합방’이란 표현이었다. 정 의원이 발언 도중‘한일합방’이란 표현을 사용하자, 사회자인 손석희는‘한일합방이 아니라 한일강제병합’이라고 지적했고, 이것이 인터넷뉴스를 통해 보도되자 정 의원에 대한 비난이 빗발친 것이다. 물론 손석희에게는‘개념인’이라는 칭찬이 뒤따랐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정옥임 의원이란 이름도 처음 듣고, 어느 당인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에 정 의원을 대상으로 일어난 비난의 해프닝은 이중잣대의 비겁함을 보여준 분명한 마녀사냥이라는 것이다.

언론과 대중이‘한일합방’이란 표현에 대해서 분노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말한다.“합방이란 말은 양쪽의‘합의’에 의해서 이뤄진 것을 의미하므로 일본의 우익이나 군국주의자나 쓰는 말이다. 그러니‘한일강제병합’이라는 표현이 맞고, 그것을 적확하게 지적한 손석희는 칭찬을 받은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것은 비겁한 거짓말이다. 그들은‘한일합방’이란 말을 싫어하지도, 거부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단지 특정정당 혹은 특정인물이 싫었을 뿐이다. 즉‘남’이 했기 때문에‘불륜’이 된 것이다.

MBC가 즐겨 사용해온 ‘한일합방’이란 말

먼저 문제의 발언을 전국에 방송한 MBC를 보자. MBC는 최근까지도‘한일합방’이란 표현을 방송에서 수 없이 반복해 왔고, MBC기자나 아나운서들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 왔다.

-“안창호 선생의 1911년 입국 기록에는‘한일합방’이후임에도 불구하고 국적이 코리아로 돼 있는데”(2009.10.22 MBC‘뉴스데스크’ )

-“민병석이‘한일합방’에 협력하는 등 친일을 하면서 각종 이권을 얻던 중에”(2009.11.06 MBC‘뉴스데스크’ )

-“전통조기잡이 배는‘한일합방’이후 자취를 감췄으나”(2008.11.01 MBC‘뉴스데스크’ )
MBC를 비롯한 여러 신문방송이 지금껏 빈번히 사용해 온 탓에 대중은‘한일합방’이란 표현에 당연히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당신은 왜 그런 말을 쓰느냐?”는 비난이 나온다면, 그 비난은 오히려 그 말을 전국의 남녀노소에게 퍼뜨리고 주입한 MBC 같은 미디어를 향해야 하지 않는가?

김선동·강기갑·이만열·한홍구의 ‘한일합방’발언은 무죄인가?

국회 최루탄 투척으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은 2011년 7월12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한미FTA는 제2의‘한일합방’과 다름없다”고 말했고, 당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역시‘한미FTA 대중용 자료집’을 통해서 FTA를‘한일합방’이라고 표현했다.

국회의원의 보도자료는 당연히 언론을 향한 것이고, 수많은 언론이 받아본다. 이때 김선동 의원이나 민주노동당에 대해“왜‘한일합방’이란 표현을 쓰느냐?”고 질타하는 언론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민주노동당이‘대중용 자료집’을 공개했을 때 분노한‘대중’이 있었는가?(혹시 그‘대중’이 아닌가?)

학계나 관련 단체들은 어떤가? 친일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친일인명사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만열 역시 2009년 12월31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한홍구 교수와의 대담에서“이번 기회에 일본 정부가‘과거의 한일합방 조약을 비롯해 강압적으로 맺은 모든 조약이 처음부터 무효였다’고 선언하길 기대합니다”라고 말했고, 한홍구 교수 또한 2009년 8월18일자 주간동아 기사에서“한일합방 무렵‘왜성대’라고 불리기도 한 이곳을 중심으로 필동, 회현동 등에 일본인이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나 그 이후로도 이에 트집을 잡거나 비난을 하는 사람, 언론은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번 정옥임 의원의‘한일합방’에는 이렇게 비난이 빗발치는 것인가? 가출했던 기억이 어느 날 갑자기 충격을 받고 돌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3개월 만의 변화, 손석희의 편향성인가 갑작스런 깨달음인가?

또한, 애초 사태의 발단을 마련한 사회자 손석희의 편향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손석희는“ ‘한일합방’이 아니라‘한일강제병합’이다”라고 지적하면 출연자가 비난받고 자신에게는 박수갈채가 돌아오리란 점을 분명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옥임 의원에 과감한 지적을 했다. 물론 거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손석희의 지적이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3개월 전인 2011년 11월28일‘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전원책 변호사와 서해성 작가가 출연했을 때 서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한미FTA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미FTA가 경제영토의 확장이라고 그렇게까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러면‘한일합방’은 한국이 일본을 먹어치운 것이냐, 라는 그런 웃기는 얘기까지 하고 있는 거죠.”
이때 손석희는‘한일합방’이란 표현을 듣고도 아무런 지적이나 발언을 하지 않았다. 불과 3개월 만에 갑자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일까? 아니면 FTA와 관련해서 나오는‘한일합방’이란 표현에는 특별한 면죄부라도 주어진단 말인가?

똑같은‘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A라는 출연자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B라는 출연자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어 대중의 공분을 일으킨 것이 과연 공정함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진행자로서 바람직한 자세였다고 할 수 있을까?

이중잣대 버리고 정치와 언론의 수준 좀 올리자

이번 사건에 대해 정옥임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부적절한 표현’이라며 사과했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정 의원의 사죄는 선거철을 앞두고 몸을 사리는‘오버’로 보이기까지 한다. 바로 엊그제까지 학자, 정당, TV, 기자, 사회자들이 즐겨 써오던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한데 혼자서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석고대죄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옥임 의원 역시 억울해 할 것은 없다. 정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올린 대국민사과에서“내가 몇 년 전 한일회의 할 때 누가 100‘주년’이라고 언급해 그걸 문제제기 했던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말했듯이, 정 의원 본인 역시‘비판을 위한 트집’을 잡았던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잘못을 지적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절대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공익을 위한 지적과 비판에 이중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소동에서 흥분한 대중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채질을 해 분노를 확산시킨 언론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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