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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역사왜곡, 위안부 영화 ‘귀향’과 복사판? 넘실대는 '반일민족주의'

영화는 영화다?라고 한다면...정통 역사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로 군함도 역사왜곡 톺아보기

영화 ‘군함도’의 개봉을 계기로 언론과 시민단체, 정치권이 기다렸다는 듯이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며 반일민족주의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물론 영화는 창작의 영역이다. 따라서 영화 내용 자체는 가공된 이야기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비난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영화 군함도의 수상한 제작 의도와 한일관계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은 이 영화를 단지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로만 이해할수 없도록 만든다. 



우선 시기적으로도 영화 군함도는 좌파 학계가 꾸준히 공론화해온 조선인 징용에 관한 역사왜곡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는 모양새다. 

이른바 ‘강제징용’에 관한 최초의 문제제기는 1960년대 조총련계 재일사학자로부터 시작됐다. 국내 국사학계는 그동안 이 시각을 답습해왔다. 그러다 지난 2015년 군함도(일본명 하시마섬)를 포함한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강제징용은 이제 한일 관계의 주요 쟁점사안으로 떠올랐다. 

‘강제연행 위안부’에 이어 이제 새로운 신화가 된 ‘강제징용 노동자’

군함도는 신화(神話)가 되어가는 중이다. 노동단체와 좌파 시민단체들은 군함도 시사회를 열고 여세를 몰아 곳곳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립하고 있다. ‘강제연행 위안부 소녀상’에 이어 또다른 반일민족주의의 상징물이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역사는 어떠한 반론이나 이견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본 관련 역사는 특히 그러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단지 또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여성주의·평화주의 학자인 박유하 교수가 형사고소까지 당한 필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본지는 군함도가 상징하는 ‘강제징용’에 관한 언론의 왜곡과 학자들의 비양심(非良心)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시리즈를 차례차례 보도한다. 본지는 영화 군함도는 일단 영화로서 두고, 대신에 진실을 이야기할 의무가 있는 방송과 언론, 학계의 역사왜곡 여부를 세세히 검증할 것이다. 모든 국민이 역사의 정확히 진실을 알고  말 그대로 ‘영화는 영화’로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래 시리즈 첫 회는 우리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는 유일한 TV프로그램인 ‘역사저널 그날’의 악의적인 역사왜곡에 관한 보고서다. 



민감한 시기 방영된 ‘역사저널 그날’ 군함도 편

지난 2015년 6월 28일, 인기 역사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군함도의 두 얼굴, 숨겨진 진실’ 편을 방영했다. 

이날 방송의 연출은 문지혜 PD가 맡았고, 책임프로듀서는 황대준, 강희중 씨였다. 자문은 장편소설 ‘군함도’의 작가 소설가 한수산 씨가 맡았다. 출연진은 고정출연자인 최원정 아나운서,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최태성 이투스 한국사 강사, 류근 시인, 이윤석 개그맨였고, 여기에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특별 패널로 참가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2015년 6월 당시는 우리나라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군함도(일본명 하시마섬)를 포함한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해, 후보로 올라있던 시기였다. 전 국민적인 반일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역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한층 진지하고 조심성 있는 프로그램 제작 태도가 요구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날 역사저널 그날의 방송은 군함도의 실상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사교육업체 이투스의 한국사 강사로 현재도 역사저널 시즌2에서 메인 MC로 활약하고 있는 최태성 씨의 노동자들에 대한 ‘채찍질’ 발언은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표현이었다. 

한국사강사 최태성 “조선인 채찍질 당해” 황당 주장

최 씨는 이날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인 노무자들이 일본인 감독관에게 채찍질을 당했다고 발언했다. 노동자가 채찍질을 당하는 모습은 흑인노예 영화에서나 볼법한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조선 광부들은) 하루에 2교대씩 12시간씩 일을 했고, 어떤 경우에는 8시간씩 2번, 그렇게 16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1분1초도 쉴수가 없었다고 그래요. 잠깐이라도 힘들어서 쉬려고 하면 채찍질이 들어오고, 할당량이 정해져 있어서 그게 끝나지 않으면....”

“이게 사실 채찍질을 맞지 않아도, 그냥 움직이는 과정에서 계속 몸이, 피부가 긁히면서 상처가 굉장히 심하게...”


최 씨의 발언은 실수로 헛 나온 말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프로그램 제작진도 군복을 입은 일본인이 벌거벗은 조선인 노동자들을 채찍질 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재현해 자료화면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자료화면에서는 안전모조차 쓰지 않은 벌거벗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줄지어 갱도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 중엔 허리가 90도 가까이 굽은 노인까지 있었다. 잠시후 일본군이 맨몸이나 마찬가지인 조선인 노동자의 등을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매 맞는 조선인의 등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새겨졌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보다도 더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실증학자 이우연 연구위원 “공개매질은 말도안돼”

최태성 씨의 채찍질 발언에 대해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말이 안될 뿐 아니라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전시기 조선인 징용에 관해서 실증적 연구를 해온 거의 유일한 국내학자다. 

이우연 연구위원은 “군국주의 시대 특성상 구타는 일본의 기업문화로 조선인과 일본인 공통적으로 발생한 문제였다”며 구타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당시는 일본군이 총력전인 상황이라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가 기업들을 엄격하게 관리감독 했기 때문에, 공개적인 매질과 채찍질이 있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될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료도 찾아볼 수 없다. 연구자로서 오히려 그 발언의 근거가 궁금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국가의 생산능력을 총동원하고 있었으므로 석탄광산의 노무자 관리에 철저했다는 것이다. 조선인 노무자들이 산업 생산의 핵심자원인 석탄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채찍질과 같은 심한 공개 매질은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만약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반발해 파업을 하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단체를 결성 파업도 벌였던 조선인 광부들

실제, 당시 일본 내 탄광에서 일하는 조선인 광부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쟁의를 일으킨 사례가 있다. 책 ‘지쿠호오 이야기: 규슈 지쿠호오 탄광을 중심으로 한 격동의 민중사(오오노 세츠코, 커뮤니티)’에 따르면, 1932년 조선인 광부들 최초의 쟁의인 ‘아소오쟁의’가 일어났다. 이 장면은 ‘역사저널 그날’의 자문을 맡은 한수산의 소설에도 등장한다. 

“우석의 마음을 휘어잡아 떨리게 한 것은 후루까와탄광에서 있었다는 조선인 광부들의 저항이었다. 밀린 임금을 내라. 최저임금을 보장하라. 그것이 후루까와탄광 조선인 광부들의 주장이었다. 갱도 입구에 주저앉으면 파업을 시작한 광부들은 갱 안으로 들어가 농성을 이어갔다. 회사에서는 밀린 임금의 시급한 해결을 약속하며 상여금이라면서 일인당 50전씩읠 지급했다. 그러나 거기에 현혹될 광부들이 아니었다. ‘한 사람도 입갱하지 말라.’ ‘회사를 두렵게 여기지 말고 다 나오시오.’ 광부조직쟁의단 본부가 광업소 여기저기에 한글 격문을 써 붙였다. 탄광 측이 보안요원이라는 진압부대를 동원해 갱 안으로 진입하자, 결국 광부들은 밖으로 나와 신사 안에 집결했다.”


조선인 광부들은 스스로 쟁의본부를 조직하고 한글 격문을 써 붙였으며, 최저임금과 밀린 임금의 지급을 요구했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다. 최태성 씨와 제작진이 묘사한 노동현장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시 일본의 탄광은 일본인이 조선인을 마치 노예 부리듯 하며 마음대로 채찍질을 할 수도, 하지도 않았다는 게 이우연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사료보다는 증언이 중요하다”는 최태성씨

본지는 최태성 씨와 접촉해 채찍질 발언의 역사적 출처를 캐물었다. 하지만 최 씨는 관련 출처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본지는 최태성 씨에게 이메일과 메신저 등을 통해 조선인 노무자의 임금 수준, 노동환경, 업무강도, 강제동원의 증거 등에 관해 질문했으나 최 씨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관련 사료의 조직적 은폐 가능성과 생존자 증언의 중요성’만을 거듭 강조했다. 

최태성 씨는 이메일 답신에서 “질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료적 근거를 내 놓으라, 이 말씀이신 듯 합니다”면서 “당시 일제 강점기는 일본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기에...우리는 식민지였기에...일본에게 불리한 관련 자료는 조직적으로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이기에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복기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숫자와 문서가 보이지 않기에 그 증언들은 허구라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면서 “앞으로의 우리가 살아야 할 시대에 이 같은 전쟁이 반복되어선 안되기에 그 증언을 토대로 그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 더 의미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집단구타 증언은 존재...공개매질과는 달라

최태성 씨는 채찍질 발언의 역사적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지만, 제작진은 어느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대본과 그래픽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채찍칠처럼 끔찍한 사례는 아니지만, 집단 구타를 당했다는 증언이 존재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파도가 지키는 감옥섬(윤지현, 선인)’에 따르면, 한 일본 시민단체가 기록한 하시마 탄광 증언 중에는 “관리사무소에서 린치를 당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매일 설사를 해서 몸이 매우 약해졌다. 그래도 일을 쉬려고 하면 관리사무소에 끌려와서 린치를 당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네, 일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때까지 구타했다”(파도가지키는 감옥섬, 37쪽)


그러나 이 증언 조차도 채찍질과는 차원이 다르다. 관리사무소에서 린치를 가하는 것과 공개적인 장소에서 매질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매질과 구타는 노동자가 아닌 노예를 상대로나 가능한 형태의 체벌이다. 그러나 파업 사례와 임금 수준, 여가 생활 등을 고려할 때 당시 군함도 조선인 노무동원자들은 저항권을 완전히 상실한 ‘노예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길가다 납치·유괴 당했다는 증언을 강조

이날 방송에서는 조선인 노무자들이 일본인에게 이른바 ‘노예사냥’을 당해 탄광으로 끌려갔다는 극히 일부의 증언을 마치 일반적인 사례인 것처럼 방송했다. 특별 패널로 출연한 강동진 교수와 최원정 아나운서의 발언을 통해서였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날 방송에 특별 패널로 출연 조선인의 생활과 환경을 주로 설명했다. 

방송 초반 강 교수는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일본 내 탄광으로 끌려갔는지를 설명했다. 그 때 최원정 아나운서는 놀랐다는 듯이 “그러니까 전쟁 막바지에는 거의 뭐 ‘인간사냥’을 하듯 막 끌고 간 거잖아요?”라고 끼어들었다. 그러자 강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실제 한 증언에 따르면, 심지어 그냥 길을 가는 사람도 그냥 트럭에 태워서 강제동원 현장으로 끌고 갔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전체 출연진은 서로를 돌아보며 침통한 표정으로 “납치죠.” “네 납치죠” “유괴네요” 라도 맞장구를 쳤다.  

이러한 구성은 완벽한 조선인 노예사냥, 인간사냥의 장면을 연출한려한 제작진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제작진은 극히 일부의 노예사냥 식 증언이 전체에 해당하는 사실처럼 구성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노예사냥을 당했다’는 주장은 문서나 기록으로는 확인할 수 없으며, 그마저 극히 일부의 증언에 불과하다.

‘증언’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학계에서조차 꾸준히 도전받고 있는 쟁점 사안이다. 증언의 역사적 사료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정부나 기관, 기업, 개인 등이 작성한 ‘문서’의 가치가 더욱 앞선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적 사료로서의 증언의 가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방대한 조선인 모집동원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제작진이 과연 몰랐을까. 



조선인 노무동원 규모·절차·방법 등 역사기록 존재

일본 정부가 조선인 노무동원자를 모집·징용하는 과정 전체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우선 일본 정부는 필요한 석탄 생산량과 기업별, 지역별 탄광기업의 요구를 수렴해 전체 노무동원자 규모를 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총독부는 행정조직과 알선업체 등을 활용, 필요한 인원을 모집했다.  

관계 논문인 ‘전시기 일본으로의 노무동원과 탄광의 노동환경(이우연, 2015)’에 따르면, 일본의 조선인 노무동원 방식은 모집, 관알선, 징용 세가지가 있었다. 조선인이 강제성이 있는 징용 대상자에 포함된 건 1944년 8월 ‘각의결정’에 따른 같은해 10월부터였다. 이때, 강제성은 군대에 징집되는 것과 같이 ‘법적 의무’를 진다는 뜻으로서, 무력으로 ‘노예사냥’을 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특히, 기록에 따르면 모집·징용된 조선인이 일본 사업장까지 가는 기차 삯, 뱃삯, 식비, 간식비는 모두 일본 기업이 부담했다. 도착 이후에도 기숙사는 무료였으며, 가족이 있어 사택에 사는 경우에는 일본인과 같은 임대비용을 납입해야 했다. 모두 ‘증언’이 아닌 명백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는 사실들이다. 

논리적으로도 노예사냥은 전혀 말이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돈과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일본으로 도항하려고 했던 증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재일 조선인 인구는 1910년 2600명에서 1938년 79만6927명까지 상승했다. 당시 조선인에게 일본은 일자리와 학업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가고싶은 곳이었지, 결코 노예사냥을 당해 끌려가야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정부의 전시 모집·동원 이전부터 일본 전역의 탄광에는 자발적으로 찾아온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3평 방에 8~15명이 수용됐다는 뻔뻔한 과장

강동진 교수는 조선인 기숙사에 관해서 도를 지나친 과장된 묘사를 하기도 했다. 도시공학과 교수로서 강 교수는 이날 방송에 출연해 주로 군함도의 구조와 조선인 숙소 등에 관해 설명했다. 

강 교수는 조선인 생활공간에 대해 “조선인 노동자들은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최대 8~15명이 함께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화면에는 ‘테이블보다 살짝 큰 규모에 8~15명이 생활’이라는 커다란 자막이 떴다. 만약 사실이라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상상조차 힘든 인권유린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확인 결과 강 교수의 발언은 과장된 것이었다. 강동진 교수는 본지와 만나 이날 발언이 사실임을 강조하면서 그 근거로 책 ‘파도가 지키는 감옥섬(윤지현, 선인)’에 나오는 증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책 33쪽 증언은 충격적인 방송내용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나는 하시마 북쪽에 있는 조선인숙소(2층건물)에 수용되었다. 그곳에는 250명의 조선인이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들어오자 500명이 되었다. 2층에 있는 약 10㎡ 크기의 방에 8명을 집어넣었다. 바다의 물보라가 강한 기세로 창밖의 널빤지를 때렸다.”(1943년 봄 경남 의령에서 동원된 서씨 할아버지의 증언)


위 증언 어디에도 8~15명이라는 표현은 없다. 그럼에도 방송 제작진과 강동진 교수는 8명이라는 증언을 거의 2배나 부풀려 ‘8~15명’이라는, 의도적이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는 왜곡을 했던 셈이다. 또한 위 증언에는 분명히 ‘조선인 숙소’라는 표현이 나옴에도, 제작진은 방송 화면에 ‘수용소’라는 자막을 만들어 띄웠다. 

추가적으로, 위 증언만으로는 ‘3평에 8명 수용’이 일시적 수용이었는지 지속적 수용이었는지도 추정하기 어렵다. 다만, 증언의 맥락 상 갑자기 많은 조선인이 추가로 하시마섬에 들어오면서 부족한 숙소에 무리하게 배정됐다는 설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수용소라는 표현도 악의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수용소는 당시 조선인이 노무동원자가 아니라 마치 감금상태인 노예나 학살대상자였던 것 같은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풍기는 가치 편향적인 단어다. 군함도 관련 연구와 증언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이 거주했던 생활공간은 막사나 숙소, 기숙사와 같이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군함도를 아우슈비츠와 동일시...지나친 과장 아닌가

제작진의 프로그램 제작의도는 하시마 탄광을 나치의 아우슈비츠를 대비시키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방송인 이윤석은 “하시마섬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반성하는 일종의 구명보트의 역할을 하기를 기원한다”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경우는 자신들의 과오를 밝히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계유산에 등재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윤석 씨의 발언은 듣기 좋은 말이지만 그 근간에는 왜곡된 전제가 깔려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군함도를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와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비유였다. 

아우슈비츠는 유태인을 무차별 집단 수용하며, 인종 청소를 공개적으로 내걸고 독가스실을 동원해 수백만명을 살해한 현장이다. 제작진은 일제의 군함도를 나치의 아우슈비츠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똑같이 바라보는 자신들의 시각을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파하려한 혐의가 짙다. 

군함도, 조선인-일본인 공동노동현장

그러나 군함도는 감옥과 같은 수용소가 아닌 노동현장이었고, 조선인은 결코 노예나 범죄자가 아니었다. 단지 군함도는 조선인들이 모집·징용돼 일본인들과 똑같은 현장에서 일한 여러 광산중 하나였을 따름이다. 

물론, 군함도는 고되고 위험한 노동현장이었으며,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들에게 서러운 차별도 분명 받았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군함도를 아우슈비츠나 요덕수용소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장된,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하다. 

실제 조선인 노무동원자들의 임금은 일본인에 비해 10~20% 가량 적었지만, 조선의 면장 연봉에 비하면 그래도 3~4배에 달하는 고액이었다. 일본인과 조선인은 같은 갱에서 일했으며, 능력 있는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높은 임금을 받았다. 

당시 조선인들은 본국에 송금하고 남은 임금의 약 40%를 정도를 용돈으로 사용했다. 돈을 사용할 휴일이 있었고, 여가와 유흥을 즐길 시설이 있었다. 생활은 독신남성의 경우 일본 회사가 제공하는 기숙사에 무료 배정됐으며, 가족이 있는 사람은 일본인과 똑같은 돈을 내고 사택을 신청할 수 있었다. 

조선인들은 탄광에서 고된 노동과 차별에 시달렸지만, 권리를 찾기위해 노동 쟁의를 벌인 사실도 있다. 광부 모집에 응해 왔던 일부는 계약기간 2년이 지났지만 계약을 갱신하거나 연장해 계속 일한 기록도 많다. 집에 급한 사정이 있으면 회사의 허락을 얻어 본국으로 귀국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는 모두 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진 객관적 사실관계다.



반일민족주의 광기 조장하는 언론·학계

대다수 국민들이 일본과 군함도, 강제징용을 나치와 아우슈비츠, 유태인학살과 동일시하는 현재의 상황은 누가 만들었을까. 조총련 사학계와 반일 시민단체들이 끊임없이 변주하는 역사왜곡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는 언론과 방송, 영화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과 정권의 눈치를 보며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일제시대 전공 역사학자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본지는 ‘역사저널 그날’ 군함도편의 역사 왜곡·과장과 관련 제작진에게 직접 문의하려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KBS1 TV 측은 본지에 이날 군함도 편은 문지혜 PD가 제작했으며, 그는 현재 출산휴가 중이라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본지는 책임CP와 담당PD들에게도 이메일과 문자 등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아쉽게도 ‘역사저널 그날’ 군함도 편에서 나온 역사왜곡·과장 발언에 대한 책임을 출연진과 특별 패널에게 묻기는 힘들어 보인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역사저널 그날’은 애초 논란이 있는 역사주제를 철저하게 고증해 방송할 제작환경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 패널로 출연했던 강동진 교수는 “매주 선사시대부터 현대사까지 아우르는 수천년의 시기 중에서, 일주일에 하나씩 주제를 선정해 방송을 하는 환경”이라면서 “역사 전공자라고 해도 자기전공 시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 깊이 검토해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 경험상 출연진들은 모두 제작진이 써주는 대로 방송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본지는 출연진 증 유일한 역사학자인 신병주 교수에게도 이메일을 통해 군함도와 관련 역사적인 사실관계를 질문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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