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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논란⑧] 조선인들을 쇠창살로 된 허름한 건물에 수용했다?

군함도의 오해와 진실 ... “감시탑·쇠창살은 없었고, 누워서 석탄 캘 필요도 없었다”



군함도(정식명칭 하시마섬) 주민들은 일본 산업유산국민회의(産業遺産国民会議, https://www.gunkanjima-truth.com/l/ko-KR/index.html 이하 산유국)과 함께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의 팸플릿 내용도 하나하나 반박했다. 



이 팸플릿에는 ‘일본이 노무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쇠창살로 된 허름한 건물에 수용됐다’, ‘조선인을 감시하기 위한 높이 10미터의 탑도 있었다’ 등 군함도 도민들이 봤을때는 객관적 사실과는 상이한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다. (해당영상 바로가기 :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팸플릿” 을 검증한다)

해당 팸플릿의 내용은 조선인 출신 노무동원 노동자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편향된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해당 문제를 공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이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1. -일본은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의 팸플릿- “일본의 침략과 전쟁으로 희생된 외국인들은, 전후 50년이 지나도 아무런 보상없이 버려져 왔습니다. 가해의 역사가 숨겨져왔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는 국제적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내각총리대신 담화- “전후 50주년 종전 기념일을 맞아” 발췌- “일본은 가까운 과거에 잘못된 국가 정책으로 인해 전쟁의 길을 선택하여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의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중략) “미래에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의심할 여지없는 이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여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표명합니다.


2. -조선인들은 쇠창살로 된 허름한 건물에 수용됐다?-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1916년에 건설된 콘크리트 맨션에는 일본인 광부와 직원들이 살았고, 쇠창살로 된 허름한 건물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용되었다.”

주민1 증언 - “차별이라니... 쇠창살 같은 건 본적이 없어요. (중략) 당시는 탄광이 경기가 좋아서 조선인들도 가족과 함께 외부에서 이주해 왔어요. 가족이 있는 사람부터 순서대로 16호는 좀 좁은 편인데, 17, 18, 19, 20호 그렇게 들어갔어요.”

주민2 증언 - “하시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쇠창살은 본 적도 없어요.”

주민3 증언 - “쇠창살? 그런건 없어요.”

주민4 증언 - “쇠창살 같은 건 없어”

주민5 증언 - “(쇠창살) 그런게 있었다면 난리가 났지.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요. 절대로 그런 건 없어.”

3. -조선인을 감시하는 탑이 있었다?-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조선인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높이 10미터의 탑도 있었다”


주민1 증언 - “감시탑이라고? 10미터나 되는 탑이 어디 있었다는 거지? 하시마는 그런 쓸데없는 탑을 세울만한 땅이 없었을 텐데. 감시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조선인 우두머리한테 조선인 종업원들의 관리 책임을 맡겼어요.”


주민2 증언 - “감시탑 같은건 없었어요.


주민3 증언 - “그런일 없었어.”


주민4 증언 - “감시탑은 없어. 어디에 있었다는 거지? 그런게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어. 10미터나 되는 건물이면 금방 알아보지.”


4. -누운 자세로 고통스럽게 10시간 동안 작업했다?-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규슈 지역의 탄광은 굴착면이 매우 낮아 거의 누운 자세로 작업을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그러한 자세로 하루 10시간 이상 고통을 견디며 석탄을 캐야만 했다.”


주민1 증언 - “누워서 땅을 팔 이유가 없어. 탄층의 경사가 60도 정도에요. 그걸 왜 누워서 캔단 말이에요. 연층갱갱도의 경사도 60도 정도에요. 그걸 캐내는 거지. 누워서 곡괭이로 석탄을 팔 수가 없어. 내가 실제로 갱도를 측량해서 왔다갔다 했다고.”

주민2 증언 - “10시간 노동에 관해서는 일본인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사람들만 10시간 일한게 아니라고. 우리의 아버지들도 똑같이 10시간 일을 했지.

주민3 증언 - “10시간 노동은 보통이었지. 전쟁 전에는. 그 점에 관해서는 일본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야. 조선인하고 똑같은 일을 했었으니까.”




5. -탄광 사망자 절반 이상이 사고사이고, 나머지는 질식, 외상, 압사, 변사?-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화장과 관련된 자료에 따르면 하시마 탄광 사망자는 사고사가 절반 이상으로 나머지는 질식, 외상, 압사, 변사 등이었다”


원폭과 조선인 나가사키현 조선인 피폭자 실태조사 보고서 제 4집(나가사키 재인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회) - 1925년부터 1945년까지 20년간 하시마의 조선인 사망자 수는 121명, 그중 병사가 58명, 사고사는 63명. 병사는 사산아와 발육불량의 영유아도 포함된다. 사고사는 매몰에 의한 질식, 압사, 외상, 가스폭발로 인한 폭발사(변사) 등이 포함된다.


 6.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정보 센터 설치를 약속했다?-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팸플릿 -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지역의 ‘전체적인 역사’를 알림과 동시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 센터의 설립이라는 일본의 약속을 전제로 세계 유산 등록을 결정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2015년 7월)에서의 일본 정부 발언 발췌 - “일본 정부는 기술적, 전문적 견지에서 도출된 이코모스 권고를 존중한다. 특히 ‘설명 전략’의 책정에 관한, ‘각 장소의 역사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도록 하라’는 권고에 대해 성실히 대응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1940년대에 몇 군데에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섬에 끌려와 힘든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한 많은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는 사실과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 정부가 징용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일본은 정보 센터의 설치 등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설명 전략에 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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