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원(개명전 최순실) 씨의 이른바 ‘제2의 최순실 태블릿’(최서원의 조카 장시호가 특검에 제출한 태블릿) 관련 정정보도 소송 마지막 변론기일이 오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최 씨가 2017년 국정농단 수사 당시 ‘제2의 최순실 태블릿’에 대해 허위사실을 보도한 언론사 12곳을 상대로 2021년 12월에 시작한 소송이 마침내 마무리되는 것이다.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의 △ 입수경위, △ 사용기간, △ L자 잠금패턴 등 여러 쟁점을 다퉜던 이 소송에서는 태블릿 ‘개통경위’에 관한 특검의 조작 수사가 증인 신문과 포렌식 결과로 입증된 것이 가장 큰 소득 중 하나였다. 이에 본지는 소송대리인 이동환 변호사와 미디어워치 태블릿진상규명단의 도움으로 태블릿 ‘개통경위’ 조작이 과학적으로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개통경위, ‘제2의 최순실 태블릿’ 수사발표의 ‘화룡점정’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은 윤석열·한동훈의 특검 수사 제4팀이 담당한 삼성 뇌물죄 수사과정에서 최서원의 조카 장시호가 “최서원이 사용한 또 다른 태블릿”이라며 2017년 1월 5일 특검에 자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을 말한다. 특검은 닷새 뒤인 1월 10일 정례브리핑에서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의 존재를 처음 공개하며, 연일 수사발표를 이어갔다.
당시 특검은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의 입수경위, 제출경위, 이메일 기록, 사용기간 등을 공개하며, 태블릿은 최서원의 소유라고 확정했다. 최서원이 사용한 모든 휴대전화, 태블릿의 잠금패턴이 공통적으로 ‘L’자라는 수사발표는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에 비해 태블릿 개통경위는 가장 나중에 발표됐다. 2017년 3월 6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다.
당시 특검이 발표한 개통경위는 최서원이 2015년 10월 12일 태블릿을 들고 평소 단골로 이용하는 휴대폰 판매점을 직접 방문해서 개통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런 사실을 입증해주는 진술을 해당 판매점 업주에게서 받아냈다고도 했다. 이처럼 명확하게 개통경위가 발표되자, 언론들은 일제히 수사결과를 보도했다.
개통경위는 태블릿이 최서원의 것임을 확신하게 할 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최종 수사발표에서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뒤늦게 알려졌지만, 특검이 발표한 개통경위는 휴대폰 판매점 주인 김모 씨의 ‘진술서’에만 전적으로 의존했던 것이다. 개통경위를 입증하는 다른 증거는 없었다.
당시 김 씨가 2017년 2월 1일자로 작성한 ‘진술서’에는 “최순실(최서원)이 저희 매장으로 찾아와 태블릿PC를 주면서 개통해달라고 하여 계약서 작성 후 계좌번호는 같이 왔던 안모 씨 명의로 작성하고 개통해줬다”며, 개통일은 “15년 10월 12일”이라고 적혀있었다.
김씨가 작성한 ‘진술서’는 특검의 최종 수사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 그리고 최서원이 피고인이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뇌물공여 등 사건(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84호 사건)’에 증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은 ‘유심 재사용’ 방식 개통…SKT 지점·대리점 직접 방문해야
특검이 발표한 ‘개통경위’가 허위였다는 단서는 수사발표 5년만인 지난해 7월 ‘제2의 최순실 태블릿’ 반환소송(2022가단5013554 사건)에서 실시한 디지털포렌식 감정에서 일부 포착됐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다. 먼저 이 태블릿은 유심을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개통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태블릿의 첫 이동통신(LTE)은 특검이 밝힌 2015년 10월 12일이 아니라, 하루 뒤인 13일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이 ‘유심 재사용’ 방식의 개통이라는 것은 다른 휴대폰에서 한 번 사용했던 ‘중고 유심’을 재활용해서 개통한 후 태블릿에 장착했다는 의미다. 이는 이동통신사에게서 부여받은 전화번호가 유심 내부에 2건 이상이 저장돼 있는 기록을 근거로 포렌식 전문가가 감별해낸다. 문제는 유심을 재사용해서 개통할 경우, 반드시 지점이나 대리점을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고 유심으로 개통하기 위해서는 유심에 저장된 기존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새로운 가입자 정보를 주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휴대전화 업계에서 ‘포스(POS)’라고 부르는 전용 장비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중고 유심을 재사용하는 방식을 ‘포스 개통’이라고 부른다. 바꿔 말하면, ‘포스 개통’을 할 수 있는 장비와 전산 시설이 갖춰진 곳에서만 개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SK텔레콤에서는 지점, 또는 직영대리점을 직접 방문해야 중고 유심을 재사용하는 방식의 개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특검이 태블릿이 개통된 장소로 발표한 김 씨의 매장은 SK텔레콤 지점·대리점이 아니라, 동네마다 흔히 있는 일반 휴대폰 판매점이다. 다시 말해 김 씨의 매장에서는 태블릿 개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제2의 최순실 태블릿’ 반환소송에서 ㈜SK텔레콤을 상대로 이뤄진 문서제출명령에서도 확인됐다. 당시 재판부는 △ 김 씨의 매장이 SK텔레콤 직영대리점인지, 아니면 일반 휴대폰 판매점인지, △ 김 씨의 매장에서 중고 유심을 재사용하는 방식의 개통 처리가 가능한지를 질의했다.
지난해 12월 SK텔레콤은 “김 씨의 매장은 휴대폰 판매점”이며, “유심을 재사용하는 개통은 반드시 스윙 연동된 유심 기계로 초기화하는 등 POS 개통 처리가 필수다. 휴대폰 판매점에서는 처리할 수 없다. POS 개통을 위한 전산장비가 있는 지점·대리점을 방문해야 개통 처리가 가능하다”는 공식 답변을 법원에 회신했다. 특검이 발표한 ‘개통경위’가 허위였음이 다시 한 번 확증된 것이다.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과, “10월 13일이 개통일”
앞서 언급했듯, 포렌식 결과에서는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의 첫 이동통신(LTE)이 2015년 10월 12일이 아니라, 하루 뒤인 13일 오후 1시 28분에 이뤄진 것으로 나온다. 개통 시점에 이동통신이 곧바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포렌식 기록은 태블릿의 실제 개통일이 특검이 발표한 2015년 10월 12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최서원 씨의 태블릿 반환소송에서는 이를 교차 확인해주는 감정 결과가 제시됐다. 그것도 소송 상대편인 피고 측에서다. 이 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법무부, 박영수 특검)은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과가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을 포렌식한 일부 결과를 ‘의견서’에 담아 지난해 5월 법정에 제출했다.
의견서에서 대검찰청은 “개통이란 유심을 통한 LTE 등 모바일 네트워크에 연결된 상태를 의미한다”면서, 태블릿에 대해서는 “2015. 10. 13. 13:22경 처음으로 유심을 통해 SKT 통신망에 연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고, 같은 날 13:28경 다시 시도하여 연결에 성공한 것으로 이때 개통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과도 제2의 최순실 태블릿’의 개통 시점을 2015년 10월 13일 오후 1시 28분으로 특정한 것이다. 첫 이동통신이 13일 오후 1시 28분에 이뤄졌다는 태블릿 반환소송에서의 포렌식 기록과 일치한다. 이는 2015년 10월 12일에 개통했다는 김 씨의 ‘진술서’는 물론 특검의 수사결과가 허위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판매점 업주 김 씨, “태블릿 개통 완료하고 안모 씨에게 인계”
특검이 발표한 개통경위가 허위라고 판단할 수 있는 두 가지 단서, 예컨대 태블릿은 유심을 재사용하는 ‘포스’ 방식으로 개통됐고, 실제 개통일이 2015년 10월 13일이라는 포렌식 기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휴대폰 판매점 주인 김 씨의 ‘진술서’를 완벽히 탄핵하려면, 김 씨는 2015년 10월 12일 태블릿을 어떻게 개통했는지 보다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이번 태블릿 정정보도 소송에서는 최서원 측 이동환 변호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재판부가 결국 김 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수락했다. 증인신문은 지난 8월 서면으로 이뤄졌다. 김 씨가 2017년 2월 특검에 제출한 ‘진술서’에 이어 2023년 8월 ‘서면 증언’까지 확보하게 된 셈이다. 김 씨의 ‘서면 증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최서원은 태블릿을 이미 다른 곳에서 구입해놓은 상태에서, 김씨의 매장에서는 유심만 개통했다. 이에 김씨는 유심 개통을 위한 신규계약서와 태블릿에 대한 정보를 담은 OMD 신청서를 작성하는 등 태블릿 기기 등록을 위한 절차를 수행했다.
⦁ 최서원은 이날 김씨의 매장에서 ‘새 유심’을 구입한 후, 이 유심을 개통한 것이다.
⦁ 김씨는 이날 자신의 매장에서 개통 업무를 마무리한 후, 태블릿에 장착된 유심을 통해 이동통신(LTE)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확인했다. 태블릿의 전원을 켜고, 와이파이는 끈 상태에서 이동통신(LTE)이 잘 되는지 개통 테스트를 수행한 것이다.
⦁ 최서원은 일찍 매장을 떠났고, 같이 왔던 경리직원 안모 씨가 개통 업무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김씨의 매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2015. 10. 12. 이날 자신의 매장에서 태블릿 개통을 정상적으로 모두 완료한 후, 안 씨에게 태블릿을 인계했다.
이처럼 김 씨가 2015년 10월 12일 자신의 매장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밝힌 증언은 과학적으로 이미 밝혀진 포렌식 기록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먼저 김 씨는 최서원이 자신의 매장에서 ‘새 유심’을 구입해서 개통한 것처럼 증언했다. 만일 태블릿이 새 유심으로 개통됐다면 김 씨의 매장에서 개통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태블릿은 중고 유심을 재사용해서 개통됐고, 이러한 개통은 SK텔레콤 지점·대리점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김 씨는 이날 자신의 매장에서 이동통신(LTE)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지 개통 테스트까지 하고, 모든 개통 작업을 완료한 후 태블릿을 경리직원 안모 씨에게 인계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태블릿의 이동통신은 이날이 아니라, 2015년 10월 13일에 처음으로 이뤄졌다.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과도 실제 개통일을 10월 13일로 판정했다.
이동환 변호사는 “김 씨가 허위로 작성한 2017년 2월 1일 ‘진술서’를 더욱 구체화해서 ‘서면 증언’을 제출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확실히 위증을 하게 된 셈”이라며 “특검이 발표한 개통경위를 탄핵할 수 있는 포렌식 기록을 우리가 이미 확보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김 씨가 ‘서면 증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김 씨가 특검에 제출한 2017년 2월 1일 ‘진술서’는 명백히 허위로 밝혀졌다. 이에 김 씨의 ‘진술서’를 유일한 근거로 삼아 2017년 3월 6일 특검이 발표한 개통경위도 결국은 조작 수사였다는 사실이 마침내 확정됐다.
당시 김 씨는 차명폰(대포폰)을 상습적으로 개통해주는 업주였다. 수사기록을 보면, 특검은 김 씨를 오랜 기간 최서원과 유착한 대포폰 판매 업주로 간주했다. 그리고 2017년 2월 1일 김 씨의 매장을 압수수색했다. 김 씨의 ‘진술서’는 바로 이때 작성된 것이다. 대포폰 상습 개통으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한 김 씨가 특검이 원하는 내용으로 ‘진술서’를 작성해줄 동기가 충분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김 씨는 이후 어떠한 조사나 처벌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