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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좌파를 탄압하다', 박유하 교수 필화 사건의 아이러니

진보좌파의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민족주의 비판가 박노자 교수, 임지현 교수의 충격적 ‘변절’

박유하 교수가 저서인 ‘제국의 위안부’로 인해 형사법정에까지 서게 되면서 그간 박유하 교수와 대동소이한 주장을 펼쳐왔던 진보좌파 지식인들의 ‘변절’ 문제가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박유하 교수는 1990년대부터 일관되게 여성주의·평화주의 노선을 걸어온 진보좌파 지식인이다. ‘친일파’ 낙인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 교수를 극우 학자로까지 오해하는 실정이지만,  사실 그는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보수우파 쪽과는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다른 인연이 없다.

박유하 교수의 위안부 문제 관련 주장도 여성주의자·평화주의자 입장에서의 권력화된 민족주의(내셔널리즘으로도 번역됨)에 대한 비판과 맞닿아 있다. ‘제국의 위안부’ 역시 ‘조선의 순결한 처녀’만이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라는 식,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관점이 갖는 폭력성을 다분히 진보좌파의 입장에서 지적하고 있는 책인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분명 뚜렷하고 일관되게 진보좌파의 입장, 노선을 취해온 박유하 교수를 옹호해주고 두둔해주는 인사들을 진보좌파 진영에서 오히려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 이른바 ‘제국의 위안부’ 필화(筆禍) 사건이 갖고 있는 아이러니다.

물론, 당대에 진보좌파 진영내 주류적 입장, 다수파 입장에 서 있는 종북주의·민족주의 노선 인사들이 박유하 교수를 ‘매국노’ 프레임 또는 ‘내부고발자’ 프레임으로 비토하는 일이 아주 이상하게 보이는 일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만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박 교수와 대동소이한 노선으로서 한국의 민족주의 문제를 비판해왔던 일부 비주류 소수 진보좌파 지식인들조차도 대세에 순응하며 ‘제국의 위안부’ 문제로 박 교수를 공박하며 사실상 ‘변절’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대표적인 ‘변절’ 진보좌파 지식인으로 오슬로국립대 박노자 교수가 손꼽히고 있다.

대표적인 민족주의 비판 지식인 박노자 교수의 ‘변절’

러시아 태생으로 귀화 한국인인 박노자 교수는 사실 그간에 박유하 교수보다도 더더욱 선명하게 민족주의 비판에 앞장서왔던 지식인이다. 

박노자 교수는 심지어 위안부 문제보다도 훨씬 폭력적인 민족 학살 문제였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문제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의) ‘아름답고 불쌍한 우리’ 만들기”라고 비판했던 전력이 있을 정도로 민족주의 비판에 있어서는 강경노선을 취해왔다.

물론, 박노자 교수는 당연히 한국 사회의 반일강박관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원천적으로 부정되고 있는 일본 측의 학설인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나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역시 한국에서는 영웅으로 대우받는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의 폭력성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적 의견을 제시해 큰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박노자 교수는 최근 ‘제국의 위안부’ 필화 사건이 터지자 기존에 자신이 취해왔었던 민족주의 비판가로서의 입장을 완전히 버리고 엉뚱하게도 박유하 교수에 대한 비판의 선봉에 나섰다.

박노자 교수는 진보좌파 매체인 레디앙에 2016년 6월 5일자로 기고한 ‘역사와 화해의 문제 : 파시스트는 화해가 아니라 단죄의 대상’ 제하의 글을 통해 뜬금없이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일본 황군을 위한 일종의 변론이 아닌 변론”을 했다고 단정했다. 

박노자 교수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황군과 조선인 모집책들의 역할분담이 어떻게 됐든, 또 황군이 그 성노예들을 좋은 방식으로 관리했든 나쁜 방식으로 관리했든, 궁극적으로 군에 의한 여성들의 강제적 성노예화는 전례가 없는 초대형 전쟁범죄”다. 

따라서 박노자 교수에게는 이런 위안부 문제를 행여라도 민족주의 비판의 주제나 소재로 삼는 것은 “과거의 국가범죄나 파쇼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소행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위안부 문제로는 새로이 실체적 사실관계를 캐거나 일체 다른 목소리를 내어선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박노자 교수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와 같은 성역화는 600만명의 유대인들이 극단적 구속 환경 하에서 생명까지 잃어야 했던 홀로코스트 문제에 대해 그가 보여줬던 냉정함과는 완전히 대비된다. 

박노자 교수는 한겨레21 에 2002년 11월 28일자(436호)에 기고한 ‘비극의 상업화, 홀로코스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홀로코스트) 이는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미증유의 사건이라는 전제, 인류가 저지른 어떤 가혹행위와도 견줄 수 없다는 테제, 히틀러가 자행한 범죄 가운데서 가장 흉악하다는 주장 등을 업고 아무런 비판 없이 ‘기존 사실’로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와 영화 등의 매체로부터 주입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외경(畏敬)도 한몫하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 뜻을 약간이라도 상대화시키는 듯한 기미를 공석에서 보이면 곧장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Holocaust-denier)의 딱지를 지닐 수도 있다. 딱지가 붙으면 더 이상 학술·대중 매체에서 발언권을 갖기가 힘들다. 마치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예리한 발언으로 독신죄(瀆神罪; 기독교의 신을 모욕하는 죄목)에 걸려 사회로부터 ‘출척’(黜陟)당한 전근대적인 현실을 방불케 한다.”


당시 박노자 교수는 유대인이 벌이고 있는 ‘홀로코스트 상업화’ 문제를 최초 제기한 용기있는 학자 노먼 핀켈스타인(Norman G.Finkelstein)을 예찬하며, “그가 ‘홀로코스트 산업’의 진실을 이야기한 것은 오랫동안 매체와 교육이 만든 성역에 눌리고 속은 세계인의 ‘정신적 해방’의 문제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롯한 현재의 온갖 학살 희생자들의 ‘권리찾기’ 문제”라고까지 주장했다.

박유하 교수도 한국인이 벌이고 있는 ‘위안부 문제 권력화 문제를 용기있게 지적했다고 볼 수 있는 학자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는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상업화’  문제를 지적한 노먼 핀켈슈타인을 평가하는 잣대와 한국인의 ‘위안부 문제 권력화 문제를 지적한 박유하 교수를 평가하는 자신의 잣대가 왜 180도 다른지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전혀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 추종 민족주의자까지 동원해 박유하 교수 비판한 박노자 교수

한편, 박노자 교수는 최근 일본 메이지가쿠인 대학 정영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서인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푸른역사 刊)를 다음과 같이 예찬하며 박유하 교수를 일본 극우파를 위해 복무하는 역사수정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국가와 군에 의한 감금·폭행·성노예화되었던 피해자들에게서 ‘애국소녀’로서의 성격을 끌어낸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주류의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어도 한국에서는 특권층의 ‘세계화론자’나 일부 ‘탈민족’파 연구자들 이외에는 그다지 호소력을 가지기가 힘들 것이다. 박유하의 역사수정주의의 시도는, 일본에서는 침략·식민주의에 대한 집단 망각을 기반으로 하는 신보수주의적인 ‘국민적 합의’ 구축에 ‘일본의 선한 의도를 중언해주는 구 식민지 출신으로부터의 증거물’로서 쉽게 이용될 수 있어도, 한국에서는 결국 한일 유착을 원하는 엘리트들과 과거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지니는 다수 평민 사이의 괴리만을 노골화시켰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이야말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넘어 박유하 현상이라는 2000년대 이후 한일 사이의 중대한 지적 담론상의 현상을 역사적으로 규명해내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다.”


물론 박노자 교수의 이런 평가는 심각한 오해다. 사실,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서 정대협 등 이른바 위안부 지원단체들이 한국의 민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위안부 피해자 규모를 지나치게 과장해왔음은 물론, 특히 ‘강제연행’ 문제와 관련해 실제로는 사료적 뒷받침이 잘 되지 않고 있는 ‘일본군 헌병에 의한 직접 납치설’을 고수해 여론을 왜곡·호도하고 있는 문제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 무엇보다도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의 출신(계급)과 경험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오로지 ‘조선의 순결한 처녀’라는 이미지 하나로 쓸어 담고 있는 한국의 위안부 담론이 갖는 폭력성 문제를 폭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위안부 문제 관련 이런 모든 부조리들은 이 나라 반일민족주의의 거친 억압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바로 박유하 교수의 진단이다.

박노자 교수는 박유하 교수의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대신에 거듭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 극우파에게 어떻게 이용될 수 있다는 식 정치공학적 음모설만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밌는 것은 박노자 교수는 ‘홀로코스트 상업화’를 얘기한 노만 핀켈슈타인이 독일 극우파에게 어떻게 이용될 수 있다는 식 얘기는 이전에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극우파 운운하는 박노자 교수의 저와 같은 논리는 ‘위안부 문제 권력화’를 지적한 박유하 교수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사실, 민족주의 비판가인 박노자 교수가 같은 민족주의 비판가인 박유하 교수를 공박하기 위해 북한 추종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조총련 계열 지식인 정영환 교수를 예찬하는 행태는 아이러니 중에서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영환 교수는 반국가단체인 조총련 산하 단체의 일원으로 방북해 역시 반국가단체인 범청학련 총회에 참석하는 종북활동을 했으며 이미 이전에 두차례 방한했을 당시에도 반국가단체인 한통련 인사들과 회합하는 등 종북전력이 깊은 인사다. 정영환 교수는 이러한 종북전력 때문에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한국판 출판기념회 참석을 위한 방한이 정부 당국에 의해 불발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박노자 교수는 정영환 교수의 방한 불발 문제와 관련해서도, 정영환 교수의 종북전력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으면서 단지 ‘재일적 조선인’(사실상의 북한 국적) 때문에, 또 마치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했기에 탄압을 받게 됐다는 식, 생뚱맞은 변호 칼럼까지 한겨레에 기고했다. 

이는 박노자 교수의 진보좌파내 주류 지향성이 어느 수준까지 치닫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다. 박노자 교수의 ‘변절’과 관련해서는 그의 상당수 저서와 칼럼을 출판하고 게재해준 한겨레와의 유착도 한 원인일 것이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민족주의는 반역이지만, 위안부 문제로 다른 목소리는 안된다는 임지현 교수

박노자 교수와 더불어 역시 민족주의 비판가로 유명한 서강대 임지현 교수도 박유하 교수 필화 사건과 관련 ‘변절’의 양태를 내비춘 진보좌파 지식인이라는 지적을 피하지는 못한다.

임지현 교수는 2015년 12월경에 박유하 교수의 저작을 '학문과 표현의 자유' 관점으로만 볼 수 없고, 정대협의 위안부 관점만 정설(定說, orthodox)이므로 이설(異說, heterodox)을 주장하는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입장이 담긴 진보좌파 지식인들의 집단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임지현 교수는 해당 비판 성명에 이름을 올린 일을 제외하고는 박노자 교수처럼 집요하게 박유하 교수에 대한 박해에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임지현 교수가 그간에 축적한 민족주의 비판 문제와 관련 상징성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박유하 교수 비판 성명 참여를 간단하게 볼 수는 없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제목의 책까지 펴낸 바 있는 임 교수는 민족주의 비판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른바 ‘적대적 공범관계’ 이론으로 유명하다. ‘적대적 공범관계’ 이론이란 한 나라의 민족주의가 강해질수록 상대국의 민족주의 또한 같이 강해진다는 이론이다. 임 교수는 한일 관계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좌파 지식인들이 일본 민족주의는 비판하고 한국의 민족주의는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써, 부메랑 효과로 오히려 일본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역설적 현상도 이 ‘적대적 공범관계’ 이론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해서조차 부정적인 임지현 교수는 물론 박노자 교수와 마찬가지로 일본 측의 학설인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상 인정하는 입장이다. 임지현 교수는 심지어 ‘만보산 사건’이라고 하여 일제시대 당시 한국인들(한반도인들)이 2등 국민으로서 일본인들을 등에 업고 중국인들을 멸시하고 박해했었던 사례를 고발한 전력도 있다.

임 교수는 2005년 5월경 서울대 웹진 스누나우와의 인터뷰 ‘“한국 국사 교과서, 과연 일본보다 낫습니까?”’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거 식민지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는, 바꿔 말하면 이스라엘의 민족주의가 위험하지 않다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이스라엘을 봅시다. 600만이라는 유대인이 죽었고, 홀로코스트를 겪었지요.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를 겪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민족주의는 약자의 민족주의고, 스스로를 지키는 민족주의고 가령 독일의 민족주의와는 달리 위험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런 얘기하는 사람들이 저기 팔레스타인이나 아랍 사람들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가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설득시키고 온다면, 나도 그 견해를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요. (웃음) 소위 ‘저항적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논리, 즉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여서 일본의 식민지 경험과 내전을 겪은 아주 독특한 국가다 어쩐다 하는 건 사실 이스라엘의 논리와 똑같거든요. 뭐 홀로코스트란 건 아주 비할 데가 없는(unique) 경험이다. 그러니까 심지어는 아프리카의 제노사이드, 유고에서의 제노사이드와 비교도 하지 말라 하는. 근데 사실 이거 아주 전형적인 논리입니다. 자신들의 역사적인 고통을 특권화시키는 방식이죠.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고통을 특권화시키는 방식의 논리적 귀결은 ‘그래서 내가 하는 것은 정당하다’가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도 그런 거 아닙니까? ... 한/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그간 당했기 때문에 우리 국가와 민족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민족주의에 입각해 조금 과장된 역사서술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일본같이 제국주의 경험을 가진 국가에선 정당할 수 없다는거 아닙니까? 물론 후자의 얘기는 맞아요. 그러나 식민지를 겪었다고 해서 우리의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겁니다.”


민족주의 비판에 있어 박유하 교수의 입장과 임지현 교수의 입장은 특별히 다른 것이 없다. 다만 박유하 교수의 경우는 임지현 교수보다 한발 나아가 민족주의 비판에 있어서 가장 뜨거운 감자라고 할만한 위안부 문제까지 주제와 소재로 다뤘을 뿐이다.

결국, 임지현 교수의 박유하 교수 비판 성명 참여는 한국에서의 민족주의 비판은 임 교수 자신의 수위와 처신 이상이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임 교수가 직접 나서서 그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박유하 교수 필화 사건은 진보좌파의 타락상 보여준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


박유하 교수는 작년 12월 20일 ‘제국의 위안부’ 관련 1심 결심공판에서 명예훼손죄로는 이례적인 수준의 형량인 징역 3년형을 구형받았다. 대표적인 민족주의 비판 지식인들조차 모조리 다수의 여론에 굴복, ‘변절’을 해버린 상황에서 어쩌면 이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미디어워치는 이전에 박유하 교수를 기소한 권방문 검사도, 현재 박 교수를 민사소송으로도 계속 옭아매고 있는 박선아 변호사도 실은 모두 진보좌파 출신임을 고발한 바 있다. 이들이 박유하 교수가 실제로 어떤 정치적 정체성의 지식인인지 모를 가능성은 낮다. (관련기사 : ‘진실’ 안보이고 ‘종북’과 ‘좌파’만 보인다...박유하 비판 인사들)

물론 같은 진보좌파끼리는 생각이 달라도, 또 노선이 달라도 침묵하고 서로 봐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당대 진보좌파가 패거리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진영내 다수의 목소리를 제외한 일체 소수의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데 있다. 

소수파 입장에 선다는 것을 늘 최대 정치적 존립 명분으로 삼아온 정치집단인 진보좌파가 같은 아군임은 말할 것도 없고 소수 중의 소수 입장에 서있는 박유하 교수의 양심 하나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유하 교수가 까밝힌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상이 아니라 어쩌면 이미 너무나도 썩어버린 한국 사회 진보좌파의 타락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박노자 교수와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관련 위선적 대담

박노자 교수와 임지현 교수는 ‘당대비평’ 등 계간지를 통해 2천년대 초반부터 민족주의 비판으로 상징자본을 축적해온 대표적인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에 자신들보다 더 진정성있게 민족주의 문제를 비판한 박유하 교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친 탄압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지지했다. 이런 전력의 박노자 교수와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 비판을 앞으로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고볼 일이다. 

다음은 2007년에 출간된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웅진지식하우스 刊)에 실린 임지현 교수와 박노자 교수 사이의 대담 내용이다. 대담 제목은 임지현, 박노자 대담 : 외길이 아닌 여러 갈래의 민주주의 –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다민족주의 비판을 그저 ‘시늉’으로만 해온 지식인들의 타락과 위선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판단되어 일부 발췌해 공개한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교수는 물론 위안부 문제가 젠더, 계급, 민족의 총체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문제가 젠더와 계급의 문제를 은폐·억압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 * *

임지현 : 우리는 일본을 특별하게 대하도록 교육받아 왔습니다. 곧 그들이 우리를 식민 지배했기 때문에 모든 일본인은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컬렉티브 길트(집단적 죄의식, collective gult) 관념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습니다.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컬렉티브 길트의 논리가 은연중에 조승희 사건에도 적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승희가 가해자였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컬렉티브 길트를 느꼈던 것이지요. 조승희 사건과는 전혀 정반대의 양상을 드러내지만 결국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요코 이야기’에 대한 한국인과 언론의 반응이었습니다. ‘요코 이야기’는 요코 일가가 함경북도 나남에서 일본으로 귀환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것인데, 그때 한국인들에게 강간과 살해, 약탈의 위협을 겪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알려지는 순간 한국인들은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피해자로 그려져야 하는데 가해자인 일본인 요코가 피해자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코가 한국인을 가해자로 그린 것에 대한 분노는 조승희 사건과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컬렉티브 길트가 그 밑에 깔려 있습니다.

박노자 : 컬렉티브 길트에다가 컬렉티브 라이터스니스(collective righteousness), 즉 피해자로서의 집단적인 정의감도 섞여 있습니다. 그건 근대적인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늘 정의로웠다. 우리는 늘 피해자였다. 우리는 가해자일 수 없다와 같은 말처럼 집단을 구별화시키고, 통합시키고, 집단으로서의 명분을 부여하는 데 집단적 정의만큼 효과적인 게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보면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유대교 신도들을 국민화시켰습니다. 즉 우리 모두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라는 말을 앞세워 국민을 군사화했던 것이지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역사와 쓰시마 정벌에서 알 수 있듯이 외침을 하기도 했으면서도 우리는 외침한 적 없다, 우리는 정의로운 민족이다 등을 강조하며 피해자로서의 정의감을 퍼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

임지현 : 문제는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환원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민주화의 미래를 사고하는 데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유 자체를 아예 가둬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요.

박노자 : 맞습니다. 일제 때 조선인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었는데, 그 말은 민족 차별의 주체로서 일본인들이 모든 조선인들을 부르는 칭호였습니다. 개화기 때는 계몽주의자들이 주체가 되어서 국민화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됐지만, 일제 때는 국민화 작업이 이민족에 의해서 역으로 진행되었고, 그래서 민족 차별이 도리어 민족의 주체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민족이라는 단어가 계급적인 모순이나 지역적인 모순을 덮어버린다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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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 아까 사회제국주의 얘기도 했지만, 문제는 한국의 노동운동 자체가 여전히 민족주의나 국민국가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나 국제적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계급 주권 쟁취의 문제가 전투적 노동자들에게 달려 있고, 민족주의의 계파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밥, 꽃, 양’ 사건에서 봤던 것처럼 노동자 내부에서도 차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곧 노동자 계급의 단일대오라는 것은 전형적인 19세기의 산업적 구조에서 가능한 일이고 지금은 이미 역사적 조건,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는 노동자 대오가 단일하지 않고, 다양한 집단으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계급적인 성뿐만 아니라 젠더라던가 한국인 노동자냐 이주 노동자냐에 따라서 갈리기도 하는데, 이런 복합성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느냐가 또 문제가 되겠지요.

박노자 : 지금 한국의 노동계급은 국적, 세대, 학력 수준 등이 복잡합니다. 노동운동이 잘되려면 임단협을 할 때에도 저소득 노동자, 이주 노동자, 여성 노동자의 월급 인상부터 높이 책정하고, 정규직 노동자의 인상률은 조금 낮게 책정해서 연대적인 임단협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산별노조가 아니니까 우리 기업 차원에서만 빨리 많이 인상하자, 언젠가는 잘리니까 지금이 기회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신분이 영구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돈을 받고 나중에 잘리고서는 다른 걸 하겠다는 소부르주아적인 지향성이 강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집단 이기주의 같은 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저소득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겠지요. 한국 노동계급의 현실 자체가 아직은 대단히 초보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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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를테면 교수 노조의 일차적인 목표는 교수들의 처우개선이나 연구 환경 개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교수 노조는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식인 집단으로서 큰 문제에 대해서만 발언을 하고 있잖아요. 즉 우리는 전부 진보이고, 진보를 대변하고 표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 사회적인 문제가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떤 부분은 양보하고 어떤 부분은 그럴 수 없다고 해야 하는데 어디서도 타협의 가능성은 없고, 서로 진보라고 싸우는 양상만 벌어지는 것입니다.

박노자 : 진보는 민족이나 국민처럼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그만큼 압도감이 대단히 강한 표현이지요. 계급, 계층마다 진보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고, 그 이해관계를 조절하자면 대단히 복잡다단한 민주적인 협상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의 진보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전체의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사회는 대립적인 계급 관계가 얽히고설킨 여러 집단의 복합체인데 우리는 것을 유기체라고 생각해서 이것이 함께 나아가는 것을 진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의 억압과 ‘2차 폭력’ 문제 고찰해온 박노자 교수의 변신


아래는 박노자 교수가 20051030일자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아래에서 "일본의 "국민기금"을 1990년대 후반에 받은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난한 국내 시민 단체나 언론"이 바로 정대협류와 한겨레류이고, 박유하 교수는 바로 이들을 비판했던 이가 바로 박유하 교수다. 지난 10여년 동안 박유하 교수의 논지는 화해를 위하여부터 제국의 위안부까지 달라진게 전혀 없다. 하지만 박노자 교수의 박유하 교수 논지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그때와 지금이 상당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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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교수의 책, 그리고 우리의 "민족"의식


어제 밤에 계속 몇 시간 동안 박유하 교수 (세종대)의 <화해를 위하여>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024463)라는 신작을 읽었습니다.


지금 우경화돼 가는 일본과는 우리가 꼭 박유하씨가 제시하시는 방식으로 "화해"할 필요가 과연 있는지, 가해 세력의 직계 후계자들이 집권한 구 식민모국과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 지 저로서 솔직히 아주 큰 의문입니다. 즉, 일본의 입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자는 저자의 참신한 자세에 영감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의견에 동의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수두록합니다.


그럼에도 박 교수의 책에 한 가지 부분에 가슴이 뭉클해졌는데, 그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기를 인용한 부분이었지요. 어떤 할머니가 "왜놈보다도, 나를 모집책에게 팔아넘긴 내 아버지가 더 밉다"고 했답니다. 그걸 참 숙고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너무나 쉽게 "민족"의 테두리에 접어넣잖아요. 즉, 우리에게 그건 "저들의 악한 민족"이 "우리의 선한 민족"을 괴롭힌 "사건"이 되지요.


문제는, 여성이 남성 본위의 사회에서 피해를 입는 사건 치고는 그렇게 단순한 사건이라고는 없다는 것이지요. 식민지 구조에서의 억압, 강제성의 분위기, 민족 차별 등이 근본 문제라고 당연히 볼 수 있지만, 진작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인신매매한 조선인 남성도, 자신을 정신대에 보내놓고도 자기 딸만큼 빼돌린 "있는 집"의 조선 여선생도 더 미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부장제", "계급", "사회에 만연한 폭력", 그리고 "식민지적 민족 차별과 강제"가 중첩한 상황에서는 "민족"적 부분만 강조한다면 피해자에게 2차 폭력이 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제가 박유하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해도, 일본의 "국민기금"을 1990년대 후반에 받은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난한 국내 시민 단체나 언론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국민기금"은 아무리 "의도가 불순하고 국가적 사죄와 배상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평생이 망가진 사람에게는 우리가 "민족적인" 도덕적 린치를 가할 권리라곤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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