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이는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미증유의 사건이라는 전제, 인류가 저지른 어떤 가혹행위와도 견줄 수 없다는 테제, 히틀러가 자행한 범죄 가운데서 가장 흉악하다는 주장 등을 업고 아무런 비판 없이 ‘기존 사실’로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와 영화 등의 매체로부터 주입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외경(畏敬)도 한몫하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 뜻을 약간이라도 상대화시키는 듯한 기미를 공석에서 보이면 곧장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Holocaust-denier)의 딱지를 지닐 수도 있다. 딱지가 붙으면 더 이상 학술·대중 매체에서 발언권을 갖기가 힘들다. 마치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예리한 발언으로 독신죄(瀆神罪; 기독교의 신을 모욕하는 죄목)에 걸려 사회로부터 ‘출척’(黜陟)당한 전근대적인 현실을 방불케 한다.”
“국가와 군에 의한 감금·폭행·성노예화되었던 피해자들에게서 ‘애국소녀’로서의 성격을 끌어낸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주류의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어도 한국에서는 특권층의 ‘세계화론자’나 일부 ‘탈민족’파 연구자들 이외에는 그다지 호소력을 가지기가 힘들 것이다. 박유하의 역사수정주의의 시도는, 일본에서는 침략·식민주의에 대한 집단 망각을 기반으로 하는 신보수주의적인 ‘국민적 합의’ 구축에 ‘일본의 선한 의도를 중언해주는 구 식민지 출신으로부터의 증거물’로서 쉽게 이용될 수 있어도, 한국에서는 결국 한일 유착을 원하는 엘리트들과 과거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지니는 다수 평민 사이의 괴리만을 노골화시켰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이야말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넘어 박유하 현상이라는 2000년대 이후 한일 사이의 중대한 지적 담론상의 현상을 역사적으로 규명해내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거 식민지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는, 바꿔 말하면 이스라엘의 민족주의가 위험하지 않다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이스라엘을 봅시다. 600만이라는 유대인이 죽었고, 홀로코스트를 겪었지요.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를 겪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민족주의는 약자의 민족주의고, 스스로를 지키는 민족주의고 가령 독일의 민족주의와는 달리 위험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런 얘기하는 사람들이 저기 팔레스타인이나 아랍 사람들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가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설득시키고 온다면, 나도 그 견해를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요. (웃음) 소위 ‘저항적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논리, 즉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여서 일본의 식민지 경험과 내전을 겪은 아주 독특한 국가다 어쩐다 하는 건 사실 이스라엘의 논리와 똑같거든요. 뭐 홀로코스트란 건 아주 비할 데가 없는(unique) 경험이다. 그러니까 심지어는 아프리카의 제노사이드, 유고에서의 제노사이드와 비교도 하지 말라 하는. 근데 사실 이거 아주 전형적인 논리입니다. 자신들의 역사적인 고통을 특권화시키는 방식이죠.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고통을 특권화시키는 방식의 논리적 귀결은 ‘그래서 내가 하는 것은 정당하다’가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도 그런 거 아닙니까? ... 한/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그간 당했기 때문에 우리 국가와 민족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민족주의에 입각해 조금 과장된 역사서술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일본같이 제국주의 경험을 가진 국가에선 정당할 수 없다는거 아닙니까? 물론 후자의 얘기는 맞아요. 그러나 식민지를 겪었다고 해서 우리의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겁니다.”
박유하 교수 필화 사건은 진보좌파의 타락상 보여준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
박노자 교수와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관련 위선적 대담 박노자 교수와 임지현 교수는 ‘당대비평’ 등 계간지를 통해 2천년대 초반부터 민족주의 비판으로 상징자본을 축적해온 대표적인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에 자신들보다 더 진정성있게 민족주의 문제를 비판한 박유하 교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친 탄압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지지했다. 이런 전력의 박노자 교수와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 비판을 앞으로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고볼 일이다. 다음은 2007년에 출간된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웅진지식하우스 刊)에 실린 임지현 교수와 박노자 교수 사이의 대담 내용이다. 대담 제목은 ‘임지현, 박노자 대담 : 외길이 아닌 여러 갈래의 민주주의 –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다. 민족주의 비판을 그저 ‘시늉’으로만 해온 지식인들의 타락과 위선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판단되어 일부 발췌해 공개한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교수는 물론 위안부 문제가 젠더, 계급, 민족의 총체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문제가 젠더와 계급의 문제를 은폐·억압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 * * 임지현 : 우리는 일본을 특별하게 대하도록 교육받아 왔습니다. 곧 그들이 우리를 식민 지배했기 때문에 모든 일본인은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컬렉티브 길트(집단적 죄의식, collective gult) 관념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습니다.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컬렉티브 길트의 논리가 은연중에 조승희 사건에도 적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승희가 가해자였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컬렉티브 길트를 느꼈던 것이지요. 조승희 사건과는 전혀 정반대의 양상을 드러내지만 결국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요코 이야기’에 대한 한국인과 언론의 반응이었습니다. ‘요코 이야기’는 요코 일가가 함경북도 나남에서 일본으로 귀환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것인데, 그때 한국인들에게 강간과 살해, 약탈의 위협을 겪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알려지는 순간 한국인들은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피해자로 그려져야 하는데 가해자인 일본인 요코가 피해자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코가 한국인을 가해자로 그린 것에 대한 분노는 조승희 사건과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컬렉티브 길트가 그 밑에 깔려 있습니다. 박노자 : 컬렉티브 길트에다가 컬렉티브 라이터스니스(collective righteousness), 즉 피해자로서의 집단적인 정의감도 섞여 있습니다. 그건 근대적인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늘 정의로웠다. 우리는 늘 피해자였다. 우리는 가해자일 수 없다와 같은 말처럼 집단을 구별화시키고, 통합시키고, 집단으로서의 명분을 부여하는 데 집단적 정의만큼 효과적인 게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보면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유대교 신도들을 국민화시켰습니다. 즉 우리 모두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라는 말을 앞세워 국민을 군사화했던 것이지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역사와 쓰시마 정벌에서 알 수 있듯이 외침을 하기도 했으면서도 우리는 외침한 적 없다, 우리는 정의로운 민족이다 등을 강조하며 피해자로서의 정의감을 퍼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 임지현 : 문제는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환원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민주화의 미래를 사고하는 데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유 자체를 아예 가둬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요. 박노자 : 맞습니다. 일제 때 조선인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었는데, 그 말은 민족 차별의 주체로서 일본인들이 모든 조선인들을 부르는 칭호였습니다. 개화기 때는 계몽주의자들이 주체가 되어서 국민화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됐지만, 일제 때는 국민화 작업이 이민족에 의해서 역으로 진행되었고, 그래서 민족 차별이 도리어 민족의 주체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민족이라는 단어가 계급적인 모순이나 지역적인 모순을 덮어버린다는데 있습니다. . . . 임지현 : 아까 사회제국주의 얘기도 했지만, 문제는 한국의 노동운동 자체가 여전히 민족주의나 국민국가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나 국제적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계급 주권 쟁취의 문제가 전투적 노동자들에게 달려 있고, 민족주의의 계파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밥, 꽃, 양’ 사건에서 봤던 것처럼 노동자 내부에서도 차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곧 노동자 계급의 단일대오라는 것은 전형적인 19세기의 산업적 구조에서 가능한 일이고 지금은 이미 역사적 조건,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는 노동자 대오가 단일하지 않고, 다양한 집단으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계급적인 성뿐만 아니라 젠더라던가 한국인 노동자냐 이주 노동자냐에 따라서 갈리기도 하는데, 이런 복합성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느냐가 또 문제가 되겠지요. 박노자 : 지금 한국의 노동계급은 국적, 세대, 학력 수준 등이 복잡합니다. 노동운동이 잘되려면 임단협을 할 때에도 저소득 노동자, 이주 노동자, 여성 노동자의 월급 인상부터 높이 책정하고, 정규직 노동자의 인상률은 조금 낮게 책정해서 연대적인 임단협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산별노조가 아니니까 우리 기업 차원에서만 빨리 많이 인상하자, 언젠가는 잘리니까 지금이 기회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신분이 영구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돈을 받고 나중에 잘리고서는 다른 걸 하겠다는 소부르주아적인 지향성이 강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집단 이기주의 같은 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저소득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겠지요. 한국 노동계급의 현실 자체가 아직은 대단히 초보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 임지현 :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를테면 교수 노조의 일차적인 목표는 교수들의 처우개선이나 연구 환경 개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교수 노조는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식인 집단으로서 큰 문제에 대해서만 발언을 하고 있잖아요. 즉 우리는 전부 진보이고, 진보를 대변하고 표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 사회적인 문제가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떤 부분은 양보하고 어떤 부분은 그럴 수 없다고 해야 하는데 어디서도 타협의 가능성은 없고, 서로 진보라고 싸우는 양상만 벌어지는 것입니다. 박노자 : 진보는 민족이나 국민처럼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그만큼 압도감이 대단히 강한 표현이지요. 계급, 계층마다 진보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고, 그 이해관계를 조절하자면 대단히 복잡다단한 민주적인 협상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의 진보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전체의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사회는 대립적인 계급 관계가 얽히고설킨 여러 집단의 복합체인데 우리는 것을 유기체라고 생각해서 이것이 함께 나아가는 것을 진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민족주의의 억압과 ‘2차 폭력’ 문제 고찰해온 박노자 교수의 변신 아래는 박노자 교수가 2005년 10월 30일자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아래에서 "일본의 "국민기금"을 1990년대 후반에 받은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난한 국내 시민 단체나 언론"이 바로 정대협류와 한겨레류이고, 박유하 교수는 바로 이들을 비판했던 이가 바로 박유하 교수다. 지난 10여년 동안 박유하 교수의 논지는 ‘화해를 위하여’부터 ‘제국의 위안부’까지 달라진게 전혀 없다. 하지만 박노자 교수의 박유하 교수 논지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그때와 지금이 상당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 * *
어제 밤에 계속 몇 시간 동안 박유하 교수 (세종대)의 <화해를 위하여>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024463)라는 신작을 읽었습니다. 지금 우경화돼 가는 일본과는 우리가 꼭 박유하씨가 제시하시는 방식으로 "화해"할 필요가 과연 있는지, 가해 세력의 직계 후계자들이 집권한 구 식민모국과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 지 저로서 솔직히 아주 큰 의문입니다. 즉, 일본의 입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자는 저자의 참신한 자세에 영감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의견에 동의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수두록합니다. 그럼에도 박 교수의 책에 한 가지 부분에 가슴이 뭉클해졌는데, 그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기를 인용한 부분이었지요. 어떤 할머니가 "왜놈보다도, 나를 모집책에게 팔아넘긴 내 아버지가 더 밉다"고 했답니다. 그걸 참 숙고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너무나 쉽게 "민족"의 테두리에 접어넣잖아요. 즉, 우리에게 그건 "저들의 악한 민족"이 "우리의 선한 민족"을 괴롭힌 "사건"이 되지요. 문제는, 여성이 남성 본위의 사회에서 피해를 입는 사건 치고는 그렇게 단순한 사건이라고는 없다는 것이지요. 식민지 구조에서의 억압, 강제성의 분위기, 민족 차별 등이 근본 문제라고 당연히 볼 수 있지만, 진작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인신매매한 조선인 남성도, 자신을 정신대에 보내놓고도 자기 딸만큼 빼돌린 "있는 집"의 조선 여선생도 더 미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부장제", "계급", "사회에 만연한 폭력", 그리고 "식민지적 민족 차별과 강제"가 중첩한 상황에서는 "민족"적 부분만 강조한다면 피해자에게 2차 폭력이 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제가 박유하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해도, 일본의 "국민기금"을 1990년대 후반에 받은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난한 국내 시민 단체나 언론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국민기금"은 아무리 "의도가 불순하고 국가적 사죄와 배상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평생이 망가진 사람에게는 우리가 "민족적인" 도덕적 린치를 가할 권리라곤 없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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