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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마당에 ‘불편한 진실’ 올렸더니 강퇴·삭제...정치 물든 통계학

이우연 연구위원, 페이스북 포럼 ‘통계마당’에 일제시대 탄광서 조선인 임금차별 없었다는 통계분석 올렸다가 강퇴당해

학문의 영역마저 빠르게 정치판을 닮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자료의 학문’이라는 통계학을 논의하는 포럼에서조차 일제시대 ‘불편한 진실’을 담은 통계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관련 게시글을 삭제하고 해당 자료를 올린 학자를 포럼에서 강퇴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페이스북 기반 통계학 포럼인 ‘통계마당(Statistical Ground)’은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이 포럼 담벼락에 올린 다수의 통계 논의 게시글들을 일방적으로 예고도 없이 삭제했다. 게시글과 함께 진지한 논의가 담긴 여러 회원들의 댓글도 모두 날아갔다. 

이우연 연구위원 최초 발굴...일제시대 에무카에 탄광 임금대장

이 연구위원이 올린 통계 자료는 일제시대 한 탄광의 임금대장 그래프. 1944년 5월, 일본 나가사키(長崎) 외곽 에무카에(江迎) 탄광 운탄부 소속 광부 119명에게 임금을 지급한 장부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당시 운탄부에는 일본인 66명, 조선인 53명이 소속돼 있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일제시대 탄광에서 함께 일한 조선인과 일본인의 개별 정보가 담긴 임금대장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통계적 기법을 사용해 이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회원수 1만6,811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기반 통계학 포럼 ‘통계마당’에 가입하고, 지난 12일 처음 관련 자료를 올렸다. 



그는 “한국경제사 연구자들은 한문, 초서, 일본어 등도 해야하니까, 사실 계량경제학 공부를 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며 “그래서 그 곳에 가입해서 질문들을 많이 올렸어요”라고 통계마당 가입 동기를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며칠간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답변을 성심껏 해주신 분들이 많았다”며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학문적 기류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부 회원들이 이 연구위원의 자료를 ‘정치적’이라며 운영진에 삭제를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연구위원의 게시글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상황은 포럼 운영진이 그에게 “해당 글은 통계 정보의 공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것으로 판단됩니다”라고 통보하면서 일단락됐다. 운영진은 15일 그가 올린 관련 글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12일 첫 글을 올린지 사흘만이다. 

비슷한 일은 페이스북 기반 ‘통계분석연구회(statistics analysis study)’라는 포럼에서도 일어났다. 이 연구위원은 이곳에도 같은 자료를 올렸고, 글이 삭제됐다. 그는 현재 통계마당과 통계분석연구회에서 모두 ‘강퇴’ 당했다. 더 이상 글을 올릴수조차 없게 된 셈이다. 

수학적 영역 ‘통계학’의 좌클릭...학문을 침범한 정치

흥미로운 사실은, 통계마당의 운영진 일부가 공공연히 좌파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김재광 카이스트·아이오와대 교수는 이 연구위원과 페이스북 설전을 벌였다. 그는 이 연구위원의 글에 자신을 운영진이라고 밝히며 “취지에 맞지 않는 글은 삭제하곤 합니다”고 썼다. 김 교수는 박원순 서울시장, JTBC 손석희, 표창원 의원, 정청래 의원, 심상정 대표, 가수 이승환, 주진우 기자 등의 페이스북을 팔로우 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페이지 서너곳에도 가입돼 있었다. 김 교수는 2016년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도 동참했으며, 통계 관련 지식을 늘어놓으며 고압송전탑의 인체유해성(암발생)을 시사하는 칼럼을 동아사이언스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극좌파 과학작가 모임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회원이다.(관련기사 : [특집] 과학계 마피아 꿈꾸나?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통계마당의 운영진인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부교수도 아예 페이스북 프로필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리본을 그려넣고 있는 인사다. 황 교수는 인하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던 2016년 10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망진단서의 철학이 언급되는 시대는 퇴행의 시대”라며 “고 백남기씨 사망 원인 논란이 아무리 증폭돼도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황 교수는 의학통계전문가로 알려져 있으나 과거에 광우병 허위선동에까지 참여한 전력이 있는 인사다. 황 교수는 극좌파 과학작가 모임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사실, 위안부 소녀상 설립운동을 주도해온 정대협과 최근 시작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립운동을 주도하는 양대 노총은 모두 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친문좌파·친노좌파 단체들로 분류된다. 이 연구위원의 통계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를 주장하는 세력을 곤란하게 만드는 사료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 한국경제사학자의 통계학적 사료 분석 논의를 차단하는 것이 과연 학문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현실 권력과 사회적 여론으로 인해 논의가 차단된 터부마저도 숫자와 사료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자세야말로 더 학문의 본질에 가까운 게 아닐까. 

정치적 이유 또는 당대 도덕질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소수의 주장을 묵살하고 심지어 ‘왕따’시키는 경향은 최근 국내학계에서 빈번히 목격되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조선인 종군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가 정대협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몇 년간 법정에 끌려다니고 있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성적 욕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책을 썼다가 교수 사회에서 매장 당했고, 2017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조선인 강제연행·임금차별’ 거짓선동의 원흉 박경식을 검증해야

이 연구위원은 일부의 증언보다는 역사적 사료를 중시하는 한국경제사학자로 이른바 ‘강제징용설’의 허구성을 깨뜨리는 의미있는 논문을 발표해왔다. 대표적으로 ‘전시기 일본으로의 노무동원과 탄광의 노동환경(2015)’과 ‘전시기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 탄광부의 임금과 민족간 격차(2016)’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대학생때 학생운동에 앞장서 화염병을 던졌고, 지금도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이지만 학자로서 결코 역사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939-45년, 일본으로 노무동원되 조선인들의 동원과정은 노예사냥과 같은 ‘강제연행’이었고, 일본에서의 노동은 노예노동과 같은 강제노동’이었다는 주장은 1965년 조총련계 조선대학 교원이었던 박경식이 출간한 조선인 강제연행의기록으로부터였다”고 지적해왔다. 

이 연구위원은 “대다수 한국인들은 1939-1945년에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과 달리 ‘민족차별적’으로, 임금을 받지 못했거나 매우 적어서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한국인들의 ‘상식’은 어디에서 생겼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가까이는 한국`일본의 노무동원 연구자들의 주장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경식의 책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박경식의 이 책은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또는 ‘노예사냥과 노예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블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박경식의 민족간 임금차별 주장의 근거는 단지 하나의 표에서 유래한 것이며, 박경식은 그 표의 수치를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박경식이 ‘민족적 임금차별’의 수량적 근거로 제시한 것은 무엇일까? 일반 국민이나 통계학전문가들은 당시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임금에 대해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많은 자료가 있을 것이며, 박경식도 그에 근거하여 주장한 것이리라고 막연히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한 광역적 조사는 이루어져 본 적도 없고, 당연히 그러한 자료도 없다. 박경식은 일본 노동과학연구소라는 곳에서 1941년에 조사하여 1943년에 발간한 ‘조선인 노무자 근로상태에 관한 조사보고’에 있는 단 하나의 표(173-174쪽)속에 들어 있는 ‘D탄광’ 1개의 사례를 인용하였을 뿐이다.”


이 연구위원은 “이 표에 따르면, 전체 조선인의 75%가 50엔 미만의 1개월 임금을 받고 있었던데 반해, 일본인은 그 82.3%가 50엔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다. 박경식은 이를 근거로 ‘민족적 임금차별’을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박경식의 해당 서술은 역사학 연구자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기만행위이며 통계의 왜곡”이라고 비난하면서 박경식이 “A와 F탄광의 조선인, 일본인 평균일급과 평균월급이 나와 있는데, 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각각 9.5%, 13.4% 낮을 뿐이다. 박경식은 이처럼 자신이 이용한 통계자료의 바로 아랫줄에 있는 수치들마저 무시하였고, 독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민족차별이라는 선입견에 눈이 먼 박경식의 결정적인 통계 오독을 비판했다. 


“연구자라면 위와 같은 임금의 차이가 왜 생겼는지 의문을 가져야했다. 그저 ‘민족차별’만 주장하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놀랍게도, 해당 자료의 바로 앞, 169-170쪽에는 민족별 근속기간의 분포표가 게재되어있다. 세 번째 사진에서 박경식이 인용한 D탄광을 보면, 조선인은 74.8%가 근속년수 1년 미만인데 반해, 일본인은 70.4%가 1년 이상의 근속기간을 갖고 있다.


탄광부들의 생산성은 숙련도에 달려있었고, 그것은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는 당시에도 상식이었다. 동일한 임금체계를 적용해도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대부분 성과급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올린 포스팅에서 조선인들의 기본급 평균은 일본인보다 낮았지만, 일본인보다 높은 기본급을 받는 조선인들도 많이 있었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박경식의 오류가 수정되기는커녕 더욱 공고화되는 현실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연구자의 기만’이라고 일갈했다. 

“박경식의 ‘바이블’이 출간된 지 무려 52년이 지났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이러한 문제를 검토하지도, 교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강제·노예론’자들의 책임도 박경식의 잘못만큼이나 막중한 것이다. 내가 이러한 문제를 밝힌 논문을 이미 2년 전에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무런 반론도, 오류의 인정도 없다. 이 또한 국민들과 관련 연구자에 대한 기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우연, 통계학자들에 일갈 “통계학에 민족 앞세우나”

마지막으로 이우연 연구위원은 자신을 강퇴시킨 통계학 포럼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남겼다. 당대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한 대가를 치뤘지만, 기개만큼은 여전한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개별 정보를 담은 ‘임금대장’을 최초로 발굴했고, 그를 이용하는 데 통계적 기법을 사용했으며, 그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기초통계량의 일부를 제시했다. 누차 설명했듯이, 이것은 여러 샘플들 중에서 하나를 선정한 것이 아니라, 1945년 이래 유일하게 발견된 자료다. 

나는 지난 논문에서 제도적,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민족적 임금차별’의 증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총력전이라는 전시상황에서 그러한 차별을 할 인센티브가 없었으며, (차별을 하면) 그것이 오히려 기업의 이윤극대화를 저해하는 상황이었다. 즉 에무카에 탄광의 ‘임금대장’으로부터 얻은 임금 관련 통계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아직도 ‘임금의 민족차별’을 상상·전제하고 있는 통계학전문가들은 이 자료가 표본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통계학에는 민족이 없어도 통계학자에게는 민족이 있다’고 우기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참고자료 (이우연 연구위원의 페이스북 관련자료 링크) :


박경식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과 한일 일부 연구자들의 “강제노동"· "노예노동”이라는 역사날조에 대해


1944년 5월 일본 나가사키 한 탄광 운탄부 임금대장에 관한 글


통계마당에서 포스팅 삭제를 요청하는 댓글 반론에 대한 답변


“강제노동=노예노동” 주장자들의 통계적 사기와 에무카에 탄광 임금대장의 대표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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