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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논란②] “사람 있으면 석탄 더 나오는데 죽였겠냐”

“몇 십년 동안 군함도에서 살았지만 학대 절대 없었다”

이전기사 : [군함도논란①] “군함도에는 조선인 전용 유곽이 있었다”



일본 산업유산국민회의(이하 산유국)의 ‘누가 군함도의 희생자인가’ 영상은 군함도를 소개하는 나래이션으로 시작했다.


영상은 군함도를 “세계유산이자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중 하나인 군함도,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한 거대한 해저 탄광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독일의 유력지 남독일신문이 ‘중국과 한국의 강제 노동자 천명 이상이 이 섬에서 죽었으며 그들의 시체는 폐갱이나 바다에 버려졌다’고 보도한 것을 반박했다. 

산유국은 ‘(한국 노동자 시체를 버린 일은) 절대 없어요 말도 안돼요”,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만큼 석탄이 더 나오는데 중요한 인력을 왜 죽였겠냐는 거죠”라고 말한 증언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며 “우리는 변호사를 통해 해당 신문사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정정기사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또 남독일신문이 "대전 중에 일본인 노동자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중국과 한국의 강제 노동자로 대체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 “일본인도 같이 있었죠. 일본인 희생자도 있었고 조선인과 중국인 희생자도 있었을 겁니다. 아우슈비츠와 동급으로 보면 곤란해요”라고 주장하는 증언자의 영상을 띄우며 이 기사를 지적했다.


산유국은 중국, 한국의 노동자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주장을 당시 실제 일본 언론 기사를 통해 해부했다.   
실제로 1935년 3월 27일자 나가사키일일신문 호외에는 군함도에서 발생했던 가스폭발사고가 기록됐다. 해당 기사에는 ‘희생자는 27명. 그안에 일본인은 18명, 조선인은 9명이었다. 최전선에서 구출을 지휘하던 탄갱 최고 간부도 2차 폭발로 인해 사망했다’고 기록됐다.

산유국은 “그 후 종전까지 하시마에서 다섯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중대사고는 1944년 7월12일의 사고 단 한번 뿐이었다”며 “그 사고로 인한 희생자는 5명 모두 일본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산유국은 탄갱신문에 실린 전시중의 일화속에는 민족의 장벽을 넘어선 끈끈한 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다며 실제 군함도 주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한 노파는 “군함도에서 조선으로 인양될 때 군함도 주민들이 해안으로 나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사람들을 조선으로 돌려보냈다”고 증언했다. 

영상은 “우린 몇 십년 동안 군함도에서 살았지만 학대나 그런 건 절대 없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사이좋게 지냅시다”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한 여노인의 인터뷰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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