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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소련·북괴 공산세력과 맞서 싸운 박정희를 존경하는 일본의 반공자유주의자들

“민주화의 숨겨진 의미, 공산주의 or 국가 파괴”, “미련한 대중이 사회주의·포퓰리즘 자양분”

“국가가 국민의 모든 것을 돌봐주겠다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주의다. 그들(정치가)은 이것을 미끼로 미련한 대중들이 자신에게 투표하게 만든다. 즉 미련한 대중이 사회주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자양분이다”

도우이즈닛포(統一日報, 통일일보) 홍형(洪熒) 논설주간은 올해 3월 25일, 일본 오사카(大阪) 시에서 개최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토론회는 일본인·한국인·재일동포가 함께 한일연대를 추진하는 일본 소재 ‘반공 자유주의’ 시민단체 ‘일한크로싱(日韓クロッシング, http://nikkan-rentai.org/)’이 개최한 것이다.

이날 일한크로싱의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토론회에는 도우이즈닛포 홍형 논설주간,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 아라키 가즈히로(荒木和博) 대표, 아시아자유민주연대협의회 미우라 코타로(三浦小太郎) 사무국장, 국체호지(國體護持) 학당 미나미데 기쿠지(南出喜久治) 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 등을 평가하면서, 당시 시대와 달리 사회주의화 돼가고 있는 현재 문재인 정권의 한국에 대해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홍형, “박정희가 한국의 지배계층을 뒤바꿨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홍형 논설주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대한민국에 ‘기회의 평등’의 기틀을 닦으면서 국민들로부터 노력과 근면성을 이끌어 냈다고 긍정 평가했다. 반대로 ‘결과적 평등’을 지향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던 공산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독설을 날렸다.

홍형 논설주간은 “저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다”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도록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 당시 철저히 노력하는 마을만을 지원했다”며 “국가가 철근이나 시멘트를 분배할 때도 노력하지 않는 마을에는 (이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형 논설주간은 “저는 지금도 인간은 열심히 노력하는 존재이며 그로 인해 인간의 과학기술, 문명이 발전해왔다고 믿는데, 이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의 평등성을 보장한다는 사회는 망한다”면서 “박정희는 그런 세력과 싸웠다”고 역설했다. 

이어 “국가가 국민의 모든 것을 돌봐주겠다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면서 “그들(정치가)은 이것을 미끼로 미련한 대중들이 자신에게 투표하게 만든다. 즉 미련한 대중이 사회주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자양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형 논설주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공산주의식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500년 이상 한국을 지배했던 ‘지배계층’을 바꿔버렸다”며 “옛날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지식인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자가 붙는 신분, 즉 양반들이 첫째고 다음이 농업의 ‘농’, 그 다음은 공업의 ‘공’, 마지막이 장사하는 상인의 ‘상’이었는데 그가 이 순서를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박정희는 기존 지배계층 등을 부정해 이를 반대로 바꿔버렸고, 그렇게 해서 삼성과 현대가 탄생한 것”이라며 “이에 저항했던 관념론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지금 박정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라키 가즈히로, “박근혜, 아주 복잡한 표정 지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는 일본인인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 아라키 가즈히로(荒木和博) 대표는 자신과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와의 인연을 소개한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  
 
아라키 가즈히로 대표는 자신의 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본 만주 육군사관학교 동기였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제가 어릴 적 아버지는 ‘동기생이 한국의 대통령’이라고 (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서 자랐기에, 박정희란 인물에 막연한 친밀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아라키 가즈히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일화도 전했다. 그는 “박근혜가 야당 대표였던 시기에 납치자 문제 집회가 한국에서 열려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박근혜가 온 적 있다”며 “(박근혜 대표에게) 인사를 하면서 ‘제 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의 육사 동기생’이라고 말했는데 그 순간 박근혜는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고 회상했다. 

박근혜 당시 대표가 국민들의 반일감정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육군사관학교생이었단 사실을 언급하기 꺼려하면서도, 아버지의 흔치 않은 일본 만주 육사 동기생이란 말에 반가움을 느끼는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 것.

이후 아라키 가즈히로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조명하면서, 그의 결단력과 추진력, 검소함 등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에 2년 후인 1963년, 군복을 벗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며 ”손에 넣은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건 보통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박 전 대통령의 결단력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당시 경제 개발 계획, 한일국교정상화, 월남 파병 등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었던 박 전 대통령의 추진력과 선견지명에도 존경의 뜻을 표했다. 또 물을 아끼기 위해 변기에 벽돌을 놓았었다는 박 전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하며 그의 검소함에 또다시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요즘 한국 사람 중에 박정희 시대가 없었으면 경제가 더 발전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박정희가 선택한 길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나미데 기쿠지, “박정희가 개혁자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 못해”

또 다른 일본인인 국체호지 학당 미나미데 기쿠지 원장은 “나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동경심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일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고 싶을 정도의 늘 그런 심정이었다”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정치적, 사상적으로는 (문재인 정권의) 한국이란 나라가 아주 이상한 나라로 보이고, 한국은 결코 좋아하는 나라가 아니다”라면서 “다만 박정희는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이어 미나미데 기쿠지 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 업적에 대해 말했다. 그는 “박정희가 (대한민국에)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뤘다”면서 “(박정희는)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었고, 궁극적으로 핵무장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국이 독립하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했다는 것을 박정희는 가장 잘 알고 있었다”며 “이를 어설프게 따라한 것이 현재 북한 체제의 핵개발 및 미사일 개발”이라고 지적했다. 

미나미데 기쿠지 원장은 “이처럼 박정희가 개혁자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며 “존재 자체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전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도 말했다. 미나미데 기쿠지 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를 잃고 그 후에 처음으로 장모의 생일 축하 모임에서 ’짝사랑‘이란 노래를 독창하는데 그 동영상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박정희의 인간성이라고 할까, 그런 (박정희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한국인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했던 김재규를 ‘애국열사’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그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그런 말까지 쓰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미나미데 기쿠지 원장은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이것(애국열사라 칭하는 것)을 용서하는가’라는 생각을 한다”며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미우라 코타로, “민주화 속에 숨겨진 의미는 ‘공산주의’ 또는 ‘국가 파괴’”

마지막으로 또 다른 일본인인 아시아자유민주연대협의회 미우라 코타로 사무국장은 “어떤 의미에서 박정희는 한국에 ‘메이지유신’을 한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박정희는) 과거의 양반 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화와 함께 국민의 의식을 주권국가의 국민의식으로 개조하고 징역제도를 통해 근대국가의 국민을 만들었다”며 “중산계급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자라지 않는데, (그가) 중산계급을 키웠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것은 메이지 시대에 우리(일본)의 선배들이 노력한 부분”이라며 “그와 동시에 ‘한국이란 국가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필사적으로 추구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미우라 코타로 사무국장은 “또 박정희는 사상적 공산주의와 북한 및 중국 공산주의 국가들과 싸웠다”며 “일본의 좌익 뿐만 아니라 각 언론사, 또 카터 정권과 같은 미국의 가짜 리버럴 등을 궁지에 몰리게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을 근대화시키는 과정에서 가끔 잔혹한 일이 있었을 수 있고, 힘든 노동자들도 존재했을 것이고, 그에 대한 반체제 운동 속에서 이득을 취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면서 “이러한 (한국인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복잡한 심정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지금의 일부 한국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이기만 한) 이미지는 ‘전교조’의 영향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미우라 코타로 사무국장은 박정희 시대와 달리 ‘민주화’의 열망으로만 뒤덮인 현재의 한국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민주화란 단어는 아주 위험하다. 한국에서 ‘민주화’라는 말이 100% 올바른 말처럼 사용되는데 지금 한국 국내 종북 세력들, 북한 편에 선 사람들은 한때 모두가 민주화를 외쳤다”며 ““민주주의, 인권, 빈부격차를 없애는 것 등이 모두 옳은 일처럼 생각되지만, 이 속에 숨겨진 것(의미)은 공산주의화 또는 국가 파괴, 둘 중 하나”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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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탄생 100 주년 기념 강연회' 패널 토론회 ]



[ '박정희 탄생 100 주년 기념 강연회' 패널 토론회 발언 전문 ]


[사회자]  준비를 잘못해서 기미가요 부르는 것도 깜빡했네요.(웃음) 마지막에 기미가요와 한국의 애국가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선생님들의 소개인데 우선 아까 강의를 해주신 홍형 선생님입니다. 전 주일한국대사관 공사시며 현재 통일일보라는 신문사의 논설주간이십니다. 다음으로 미나미데 기쿠지 선생님이십니다. 아라키 가즈히로 선생님입니다. 다쿠쇼쿠대학 해외사정연구소 교수님이시며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 회장님이십니다. 그리고 미우라 코타로 선생님이십니다. 아시아자유민주연대협의회 사무국장이십니다. 그러면 오늘 주제에 따라 토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모임은 박정희 생탄 100주년 기념강연이라는 주제인데 우선 선생님들께서 한 분씩 ‘박정희와 나’라는 주제로 박정희와 선생님들의 관계라 할까요. 각자의 생각을 5분~10분 이내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홍형] 제가 강의하면서 한 시간 이상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분들께 시간을 드리고 저는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사실 저는 한국의 좌익적 교육 덕분에 이승만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믿었어요. 저 자신은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저는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했어요.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독재자로 불렀고 또 국내외 언론들도 특히 선진국 언론들이 한심한 군사독재라고 하길래 제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그들은 독재자인가.’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것은 아마도 저처럼 그 시대를 산 사람은, 저는 다른 나라에도 가봤지만 한국의 1인당 GDP가 40달러 정도였던 시대에 태어나서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역사를 제 눈으로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의 리버럴이 지금 구미의 모든 대학들을 좌파가 지배하고 있어요. 강연 마지막에 사진으로 보여드린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책입니다. PC란 도대체 무엇인지. 예를 들어 동성애 등을 인정해야 한다든지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안 가는데 정치적으로 치우친 억지 가치관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 경향이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강연에서 설명 드린 한국의 70년 역사에서 반역자인 대통령들을 자유민주주의를 사회주의로 바꾸려고 하는 대통령들을 미국 일본의 언론들은 민주주의 정치가라고 소개하고 칭찬하고 그들이 한국을 장악하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사실 현재 한국에서 50% 이상의 권위를 레닌이 쥐고 있습니다. 동서냉전 시대에 우리가 인식을 못했던 다른 형태의 전쟁에서 서방이 패배한 결과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더 말씀드릴게요. 이상입니다. 

[미나미데 기쿠지] 변호사 미나미데 기쿠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제 생각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저는 미성년 시절부터 이른바 ‘민사당’이라는 지금은 소멸한 정당에 소속했습니다. 민사당이란 당은 환경과 국방에 관해서는 민사당을 능가하는 정당이 없을 정도로 굳건한 당이었습니다. 민사당에 입당한 저는 일본의 역사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만약에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시대에 계셨더라면 일본은 청일 러일 전쟁을 안 해도 됐겠다고 그런 생각을 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동경심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정치적, 사상적으로는 한국이란 나라가 아주 이상한 나라로 보이고 한국은 결코 좋아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다만 박정희는 진심으로 좋아했어요. 이상한 비유를 하자면 자이언츠 팀은 싫지만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은 좋아한다는 그런 감각이 있었어요. 그런 감정과 한국에 대한 감정의 거리가 멀수록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저의 동경심은 더더욱 커졌어요. 홍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기념우표도 발행할 수 없는 이런 상황 속에서 예를 들어 독일 등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고생을 알고 동상을 세우거나 했는데 일본에서도 동상 세우고 싶을 정도의 늘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변호사가 된 후에 배우는 과정에서 일본의 전후 헌법이란 것이 헌법적 학문적으로 무효란 것을 알아버렸어요. 그 당시는 개헌론이란 말만으로도 정국이 되는 시대였어요. 저의 헌법 무효론은 세상의 공인을 받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정치가를 목표로 정치가가 되기 위한 부업으로 변호사를 고려했는데, 그 부업을 선택한 것으로 인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정치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깨달았습니다. 여러 일을 거쳐서 1995년에 1995년 6월 9일 중의원에서 전쟁사죄결의안이 통과됐을 때 대규모 원고단을 만들어서 제가 소송의 중심이 되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협력해주셨는데 돌아가신 무라오 지로선생님의 권유로 또 인연이 생겨서 일한문화협회에 가입했습니다. 일한문화협회의 평의원을 지금도 맡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 과정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홍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정말 더 강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일본은 대동아전쟁에서 싸우면서 아시아의 해방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패전으로 패배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뜻을 이어 아시아 해방을 향해서 정말로 인내하면서 커다란 움직임을 만든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즉 대동아전쟁을 어느 의미에서 완성시킨 완성판을 실현시킨 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물론 다른 의견도 있으시겠지만 이것은 저 자신의 역사관이기 때문에 의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어떤 분인지를 여러분들께 전달하기 위해 기획한 자리로 알고 있어요. 이정도로 하고요. 나중에 여러 가지로 현재의 한국정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리라 예상되는데 최민정이라는 한국의 최고재판소 판사가 있는데 그 분도 명백히 말했습니다. 홍 선생님 말씀처럼 작년 2월 25일 오전 0시를 기준으로 대통령의 지위는 실각한 상태입니다. 즉 지금의 대통령은 가짜 대통령이에요. 가짜 대통령이 혁명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고요. 있을 수 없는 사태가 내전, 내란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은 6월 13일에 선거가 있는데 향후의 흐름이 심각하게 우려됩니다.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 즉 완전한 공산주의로 토지 국유화, 기업 국유화, 종교 탄압등 모든 제도가 생겨날 것입니다. 첫째로 국유화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갑자기 시작할지 어떤지는 몰라도 예컨대 고정자산세(재산세)를 대증세하거나 양도소득세의 대중세 등 실질적으로 국유화되어 재산을 포기해야 할 상황까지 갈 거예요. 추미애라는 인물이 한국의 정치인인데 이미 그렇게 발표했고 이런 문제들과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루어낸 한국을 어떻게 지켜야할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 싶어서 문제 제기했어요. 우선 자기소개의 의미로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라키 가즈히로] 아라키입니다. 두 분께서 현재 한국에 연관시켜 말하셨습니다. 제에게 박정희란 인물은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인 추억만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박정희입니다. 일본인까지 포함한 모든 인물 중에서입니다. 두 번째로 존경하는 사람은 저도 미나미데 선배님과 마찬가지로 민사당 사람인데 오사카 출신의 니시오 스에히로 민사당 초대 위원장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첫 번째는 박정희입니다. 저는 지금 한반도 연구로 생계를 세우고 있는데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분명한 이유의 하나가 박정희입니다. 박정희는 대구의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문경이라는 지역의, 한자로 ‘聞慶’이라고 쓰는데 문경이라는 산 속 작은 지역의 초동학교 교사였습니다. 그 후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만주로 가서 만주국의 군관사관학교에 입학합니다. 거기서 2년간 여과과정을 공부했는데 만주국의 군관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 유학해서 본과과정을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육사 본과를 다녔습니다. 그것이 일본 육군사관학교 57기쯤에 해당됩니다. 실은 제 부친과 동기생입니다. 다만 육군사관학교 57기라고 해도 그 당시 2400명의 학생들이 재학했기 때문에 사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주 육사에서 온 학생들은 군복이 달라서 바로 구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는 ‘동기생이 한국의 대통령이다’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서 자란 것이 박정희란 인물에 막연한 친밀함을 느낀 이유의 하나입니다. 참고로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 대통령 시대 박근혜 씨가 야당 대표였던 시기에 납치문제 집회가 한국에서 열려서 참석했는데 그 리셉션에 박근혜 씨께서 오신 적 있어요. 인사를 드리면서 ‘제 아버지께서 박정희 대통령의 육사 동기생입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순간 박근혜 씨는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이 자리에서 반가워하면 안되겠다...’ 하지만 친밀감을 감출 수 없는 그런 복잡한 분위기였어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박정희란 사람은 그 이후에 군인이 되어서 해방 후 한국군에 들어가는데 그런 속에서 한때 조선로동당 좌파 정당의 당원이 됩니다. 그 이유로 사형 당할 뻔 했는데 사형은 면하고 군대에서 쫓겨납니다. 6.25전쟁 시기에 다시 군대로 급히 복귀해서 계속 군인의 길을 걷습니다. 그 당시의 한국군은 1950년 6.25 전쟁 시절 전쟁을 위해 갑자기 팽창시킨 군대였어요. 그 전까지 군대의 기본적인 형태조차 갖추지 못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전쟁이 터졌고, 미국의 도움으로 살 수 있었지요. 형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군대에서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군인들은 아주 귀한 존재였습니다. 갑자기 확장된 군대 내부에서 여러 부정부패가 만연했는데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홍 선생님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나란히 평가하셨지만 저는 이승만, 박정희를 정대로 동열에 두지 않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고 믿고 있어요. 박정희는 청렴결백한 군인이었고 그로 인해 큰 신뢰를 얻었습니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키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런 흐름이 있고 그 후 40대 전반에 정말로 기적적인 일을 해냅니다. 특히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에 2년 후인 1963년, 이른바 ‘민정이관’을 실시합니다. 즉 군복을 벗고 예비역이 되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보통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잡은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박정희도 엄청 흔들렸을 거예요. 그런데 2년 뒤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고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어요. 서울 등 도시부에서는 전부 야당이 이겼고 농촌에서 박정희가 이겼는데 그로 인해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당시 정치를 하던 사람들은 자기들은 이른바 양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인데 자신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민중과 동떨어진 곳에서 정치를 한답시고 한국의 실정에 전혀 맞지 않은 주장만 해서 아무 것도 정할 수 없었습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하기 일년 전 이승만이 부정선거가 발단이 되어 망명해버리는데, 그 뒤를 계승한 민주당 정권은 일본에도 비슷한 이름의 정당이 있었습니다만 그보다 심했어요. 정말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습니다. 경제개혁의 계획 등 계획은 세우는데 실시를 못해요.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그것을 실제로 해나갑니다. 아까 언급하신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는 대통령 이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는 말도 있는데 끝까지 관철시켰어요. 정말로 여기 있는 사진도 그렇지만 제 생각이지만 정말 좋은 얼굴입니다. 현재 한국의 정치인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입니다. 당시 박정희와 함께 한국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얼굴은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모두 정말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요. 그 당시의 한국은 모순덩어리 나라입니다. 돈도 없고, 너무 많은 사회적 모순으로 혼란스럽고 ‘그래도 어떻게든 열심히 해야 한다.’ 후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박정희 시대에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나란 질문을 받고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감각을 심은 것이라고 김대중 조차 그렇게 말했습니다. 박정희 본인은 정말 검소하게 절약하면서 암살 후 청와대 화장실에서 물탱크 뚜껑을 열어봤더니 벽돌이 들어있었답니다. 조금이라도 물을 절약하기 위해 벽돌을 넣어서 물의 사용량을 줄였대요. 아들이 종이를 사용할 때 대통령 관저에서 쓰는 공식 메모지를 아마도 비서관이 줘서 그 메모지를 썼는데 어머니가 그걸 보고 엄청 화를 냈답니다. 정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어요. 대통령 본인도 영부인도 주변 사람들도 이 나라를 위해 지금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자세였고 국민들도 역시 여러 일이 있었지만 따라갔습니다. 당시 반대세력 중에서 동세대인 한석호씨라고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인데 반대세력 크리스찬 등 많이 계셨지만 아무튼 모두가 정권을 잡은 자도, 그에 맞서는 사람들도 모두가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저는 1978년에 가장 장기간 한국에 머물렀는데 3개월간 한국에 살았는데 그 당신의 한국 사람들은 모두 정말 밝았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고, 적선지대도 여기저기 있고, 누나가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몸을 팔거나 그런 사연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 한국은 밝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그 후에 한국 한반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홍 선생님 말씀처럼 그런 것을 모두 부정하려고 하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한국이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버린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그래도 한국 내부에 아무리 현 정권이 부정을 해도 그런 역사가 있었고, 그 당시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전달하고 싶다는 심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미우라 코타로] 동경에서 온 미우라 코타로입니다. 저와 박정희 대통령의 관계라 해도 저는 1960년생입니다. 지금 57세입니다. 제가 소냉시대에 일본 신문을 통해 한국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읽고, 제 부친은 아마 아사히신문 구독자였던 것 같은데 모든 신문이 그랬을 거예요. ‘박정희 독재. 박정희 파쇼’ 등 그런 말들로 넘쳤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마치 암흑의 나라처럼 묘사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정확한 자료들을 제가 수집할 계획은 없지만 제 생각에는 오늘날의 헤이트스피치와 같은 것이 한국을 향해서 벌여진 시대입니다. 이제와 과거를 비판해도 소용없지만 당시 ‘세카이’라는 잡지에 ‘한국에서의 통신’이라는 연재가 있었어요. ‘이와나미 신쇼’에도 게재됐는데 솔직히 말해서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 수준으로 무책임한 내용이 이와나미라는 대형 출판사에 게재되어 한국 정치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전한 그런 시대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 총탄에 맞아 문세관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셨는데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총탄을 영부인이 맞아 죽었는데 여러분도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어린 나이였는데 부친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자연자작이라는 주장이 신문은 거기까지 안 썼지만 그런 소리까지 당시 있었던 것 같아요. 또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 사건은 독재정권에 의해 초래된 어쩔 수 없는 사건이란 논조가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증거도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일본의 언론에서 당시 박정희는 그런 인물로 전해지고 있었어요. 당시 저는 어리고 그런 문제에 관심도 없었지만 가끔 책이나 신문으로 그런 정보를 접했어요. 읽는 걸 좋아해서 중학생 때 ‘그렇구나’ 라고 받아들였지요. 그런 제 인식이 크게 변한 것은 제가 한국을 연구해서가 아니라 후쿠다 츠네아리 씨라는 평론가의 문장을 읽었을 때입니다. 그 분은 진짜로 박정희와 동시대에 직접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서 ‘고독한 사람, 박정희’라는 글을 썼는데 당시 김대중씨도 제 개인의 삶과 연계시키면서 말씀드리면, 저는 당시 동경 치요다쿠의 중학교를 다녔는데 근처에 호텔 그랜드 파레스가 있었어요. 그 호텔에서 김대중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있었지요. 이유는 잘 몰라도 신문의 탑 뉴스였고 그런 사건이 중학교 근처에서 일어났다는게 하나의 충격이었고 그런 속에서 김대중 문제까지 포함하여 이 문제는 한국의 물론 주권침해일지 모르지만 한국 정부가 명백히 이 사람을 정치범으로 규정하여 반 한국 운동을 하는 인물을 한일이 조약을 맺은 후에 사실상 양국은 동맹국인데 그 인물은 쉽게 일본에 입국시켜도 됐는지 일본에서 반한국운동을 하게 내버려둬도 됐는지요. 솔직히 김대중은 조총련과 연대하려고 했잖아요. 그런 짓을 하게 내버려둔 일본의 책임은 없는가. 그런 글을 쓴 사람이 물론 몇 명 있었지만 유명한 분은 후쿠다 츠네아리 씨입니다. 전느 20대 후반에서 30대에 걸쳐 그 글을 읽고 겨우 이해할 수 있었고 당초부터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구나, 물론 민사당 계열의 기관지 문화지에는 그런 글이 많았겠지만 제가 알게 된 계기는 후쿠다 씨의 글을 통해서입니다. 후쿠다씨의 ‘고독한 사람, 박정희’라는 글은 20대 후반에 읽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지금도 일본인이 박정희에 대하여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은 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후쿠다 씨는 자신의 극단을 서울에 데려가서 서울에서 공연하려고 서울에 갔을 때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 암살 직후의 서울시민 반응이라든지 아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호텔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도 그런 분들이 진짜로 침대 정리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등 그런 모습까지 묘사했습니다. 후쿠다 씨가 한 말인데 지금도 충격적인 것은 지금 다시 읽어도 ‘그래 맞아’라고 느끼는데...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반체제파가 가장 곤란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박정희라는 훌륭한 정치가가 한국을 제대로 이끌고 있기 때문에 안심해서 반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 게다가 6.25 전쟁을 겪은 사람들, 공산주의의 끔찍함을 아는 사람들은 나이 들어 죽어가는데 그 당시에는 많이 살아있었지만 나중에 그렇게 되면 반대운동에 제동이 안 걸려 북한으로 일직선으로 향하게 된다고... 박정희 대통령 암살 직후에 그렇게 쓰셨어요.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맞았다고 생각해요. 그 외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여러 개성에 대하여 기술했는데 너무 길어지니까 그만하겠습니다. ‘내가 본 박정희’라는 책은 지금 살 수 없지만 후쿠다 츠네아리 씨의 저작집에는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서 죄송한데 후쿠다 츠네아리 씨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기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르겼던 분들은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한일의 연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박정희를 나중에 배워서 알게 된 사람이고 여기 선생님들과 함께 논의할 자격은 없지만 한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연구자이시거나 한국에서 투쟁하시는 분들이라 가볍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되지만 제가 지금도 계속 생각하는 것은 왜 박정희 대통령이 죽음을 당했나라는 문제입니다. 비전문가의 추측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 어린 제 눈에도 좀 이상하게 비친 것이 카터 대통령의 ‘인권외교’라는 말입니다. 젊은 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만 당시 지미 카터라는 대통령이 있었는데 미국 사회를 좋게 바꾸는 새로운 민주적 대통령이라고 선전했어요. 카터가 대통령 취임 후, 초기에 주장한 것이 ‘인권외교’입니다. 인권외교란 말은 좋게 들리지요. 그러나 중국의 인권도 북한의 인권도 아닙니다. 한국의 미국을 철수시키자는 거예요. 한국은 독재적 정권이라고 하면서요. 무지떄문에 한 발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카터의 방식을 보면, 아니면 좀 지나칠지 모르지만 키신저의 방식을 보면 무지 때문에 한 말이 아니라고 봐요. 그 직후에 그것에 대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어ᄄᅠᇂ게든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홍형 선생님 말씀대로 변호사연합을 만들거나 온갖 노력으로 그에 대항하면서 한국을 진정으로 자립한 국가로 만들고 군사적으로도 자립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암살당한 것입니다. 음모론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은 무엇보다 중국과 연대하려는 정치가들의 입장에서는 아시아에서 일본 이상으로 더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전후 아시아에서 진짜로 공산주의와 정치가는 일본에도 물론 민사당 분들이 계셨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박정희가 유일할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저는 나중에 배워가면서 점차 깨달은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운동 대 반 대한민국, 즉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세력인데 일본도 그렇습니다. 한국을 비웃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일본도 수상한 정보와 언론의 보도만을 믿고 그런 정보에 휩쓸려 정권이나 외교를 논하고 있잖아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계시는 오오에 선생님, 미나미데 선생님께서 전문가이시지만 제 생각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박정희란 사람은, 이게 말해도 될지 모릅니다만은 한국에서 메이지유신을 한 인물입니다. 과거의 양반 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화와 함께 국민의 의식을 주권국가의 국민의식으로 개조하고 징역제도를 통해 전전 일본의 영향도 있겠지만 징역제도를 통해 근대국가의 국가국민군을 만들었습니다. 중산계급을 키웠습니다. 중산계급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자라지 않아요. 이것은 메이지 시대에 우리의 선배들이 노력한 부분입니다. 그와 동시에 일본에는 일본의 국체가 있듯이 한국의 국체는 무엇인가. 한국이란 국가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필사적으로 추구한 사람입니다. 베트남 전쟁에 한국이 파병한 것에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의 입장은 공산주의에 의해 무너져가는 나라에 대하여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박정희 대통령한테는 있었을 거예요. 물론 박정의 대통령의 단점과 문제점에 대해서도 의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 메이지유신과 같은 근대화를 하려고 한 리더가 박정희입니다. 사상적 공산주의와 싸우기도 했지만 북한 및 중국 공산주의 국가들과 싸우려고 한 사람이 박정희입니다. 그에 대하여 그런 사람은 눈엣가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본의 좌익까지 포함해서 좌익만이 아니라 일본의 각 언론사까지 포함해서 또 카터 정권과 같은 미국의 가짜 리버럴도 포함해서, 그들이 궁지에 몰리게 추궁한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감사합니다. 방금 미우라 선생님께서 좋은 주제를 제안해주셨습니다. 박정희 군사 쿠데타를 메이지유신에 비유하시고 말씀을 하셨는데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다카기 마사오, 박정희 씨의 일본인적인 측면이라 할까요. 그런 부분에 대하여 발언해주실 분이 계실까요.

[미나미데 기쿠지]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 이름은 ‘다카기 마사오’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박씨 본관에서 온 이름으로 다카기라고 했는데 우리 시선으로 보면 ‘다카기’라는 성은 ‘고지키(古事記)속의 일본 창조신중에서 최고신입니다. ’다카기 무스비의 신‘이라고 있어요. 속칭 ’다카기노카미‘라 하는데 여기서 유래했다고 봅니다. 다카기노카미와 같이 만약에 일본의 통치가 계속된다면 일본인으로서 여러 세상에서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라고 저는 그렇게 인식했습니다. 자주 창씨개명은 강제적이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창씨는 강제였습니다. 호적 편찬을 위해 아무래도 성씨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데 개명은 임의였어요. 오히려 내무성은 크게 반대했어요. 한국 이름을 안 쓰게 되면 여러 단속에서 대응을 못한다고 내무성은 강력하게 반대했는데 개명도 허용하자는 세력에 밀려 결국 허락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도 창씨개명하지 않고 그대로 박정희라는 이름을 써도 괜찮았지만 일본이름으로 개명한 것은 임의였어요. 강제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상 임의였습니다. 그런 배경을 고려하면 다카기 마사오란 이름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지 않았을까라고 저는 상상합니다. 그리고 다카기 마사오라는 이름보다는 박정희라는 인간, 인물상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역시 안타깝다고 느끼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이른바 김재규한테 죽임을 당했잖아요. 김재규의 묘지가 높은 산 위에 있는데 무엇이라고 써있냐면 ’애국열사‘라고 써 있어요. 그걸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한, 모략설, 음모설 등 여러 소문이 있지만, 그런 말까지 쓴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이것을 용서하지? 물론 남의 묘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 못합니다만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유튜브 등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를 잃으시고 그 후에 처음으로 장모의 생신 축하 모임에서 ’짝사랑‘이란 노래를 독창하시는데 그 동영상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런 인간성이라 할까요. 그런 심정을 저는 느낍니다. 아까 메이지유신이라든지 부국강병 등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동감입니다. 부국이란 바로 ’식산고양(殖産高揚)‘입니다. 재벌이 주도하더라도 그런 형식으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고, 강병이란 측면에서도 궁극적으로는 핵무장이었어요. 미국과의 대립은 있으나 핵무장은 고려했어요. 즉 소국이 독립하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했다는 것을 박정희는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설프게 따라한 것이 현재 북한 체제의 핵개발 및 미사일 개발입니다. 그 길을 향한 선수를 쓴 이른바 개혁자는 박정희였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지금의 한국 역사속에서 광주사건이라든지 세월호 사건은 기만에 넘친 일이란 사실을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단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할게요.  

[아라키 가즈히로] 아까 미우라씨 말씀 중에서 메이지유신을 지향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에서 1972년부터 유신체제를 헌법 개정을 통해 채택합니다. 저는 한국의 유신은 메이지유신이 아니라 쇼와유신, 쇼와유신(昭和維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26 사건 때 박정희는 19세였어요. 당시 아직 학교 교사 시절인가요. 그 후에 한 일로 5.16의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아무튼 일군만민(一君万民)이라 해도 한국의 경우 천왕도 없고 이조시대 왕족은 있었지만 왕족을 받드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떠맡아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거고 거기까지 생각하셨는지와는 별도로 그 당신의 목표는 못 먹는 사람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 하나만을 목표로 한 쇼와유신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부친은 박정희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군인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육사 56기생보다 5~6살 나이가 많았대요. 제 부친은 지금 93세인데 그 당시 육사 재학시절, 쇼와유신의 노래라든지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치활동은 안했지만 그런 노래는 불렀답니다. 박정희는 원래 가난한 농민 집안의 출신으로 빈곤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랐습니다. 아무튼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한국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도중에 구미라는 역이 있어요. 한자로는 ‘龜尾’라고 씁니다. 그 근처에 박정희의 생가가 있습니다. 혹시 한국 여행 중에 시간이 있으시면 구미역에서 택시를 타시고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각라고 말하면 바로 데려다 줍니다. 지금은 관광지처럼 변했지만 옛날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인데요. 말씀드렸듯이 사형된 뻔도 했고 고생이 많은 인생을 걸었습니다. 첫 부인 사이에 자식이 하나 있었지만 결국 이혼했고 암살된 육영수 여사 사이에도 한명 더 자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잘 안돼서 6.25 전쟁 중에 재혼한 상대가 육영수 여사입니다. 아들 박지만 씨도 육군사관학교 출신인데 마닐라 한국대사관의 주재부관이었던 육군의 권태환이라는 분이 동기인지는 모르지만 시기적으로 같은 시기에 육사에 있었대요. 한번은 대통령 관저에서 불러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육군사관학교 학생시절입니다. 그때 자신도 육사 학생이고 대통령도 군인출신이니까 군대 이야기를 할 줄 예상했는데 군대 이야기는 일절 안했답니다. 경제 이야기만 하셨다고 해요. 무엇보다 밥을 먹을 수 있게 하고 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런 말씀만 하셨는데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구의 사범학교, 교사 양성 학교의 당시 교사들을, 일본인 선생님들을 후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국으로 초대해서 대통령 관저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그 때 선생님한테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은 자신은 무력으로 대통령 관저를 점거해서 이 지위를 얻었다고 정말로 자기 자신이 역사의 불가사의를 느낀다고 그러니까 언젠가 자신도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고 각오하고 있다. 그런 말을 했답니다. 쿠데타는 실패하면 당연히 사형이니까 상당한 각오를 하셨겠지요. 박정희 대통령 자신은 아마 죽을 각오로 권력을 잡으셨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유신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회자] 오늘은 박정희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모이셨네요. 

[미나미데 기쿠지] 한마디만 될까요? 아라키 씨가 발언한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에는 2.26 사건을 말하는데 그 쿠데타를 할 때, 2.26 연구라는 것을 오랫동안 했답니다. 관련 문헌을 전부 모아서 2.26 사건이 실패한 최대 원인부터 분석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두머리를 잡지 못한 것이 2.26 사건의 실패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즉 대통령을 격리시켜 우두머리를 누른다. 이게 성공의 비결이라고 확실하게 배우셨어요. 이상 제 추가 벌언입니다. 

[사회자] 감사합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택시를 운전하는데 가끔 한국 여행사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박정희를 100% 긍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잘한 점, 잘 못한 점이 있었다는 의견이 많아요. 정치적 의견을 명백히 밝히지 않으려는 분위기를 느끼는데 선생님들 중에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인, 또는 낡은 이미지,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 파병 등 김대중 사건도 그렇고요. 또 지역적인 차별이라 할까요. 지역에 따라 호불호가 심했다는 등 지금도 남아있죠? 경상도와 전라도인가요? 그런 부분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홍형] 아까 말씀드렸지만 결론적으로 이것은 냉전이었습니다. PC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인간은 생각할 때 말을 통해서 생각을 합니다. 말, 용어를 지배한다는 것은 인간의 사고력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도록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인데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공하고 그런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 정의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포퓰리스트들은 국가가 모두 공짜로 해준다고 하고 보통 사람들은 그쪽으로 투표합니다. 연금제도는 비스마르크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 독일은 엄청난 속도로 유럽의 강자로 되었는데 또 그를 위해 전쟁도 많이 했는데 정치적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것이 이른바 연금제도입니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의료보험을 의료보험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보험제도를 갖고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하면 새마을 운동이 떠오릅니다. 그는 철저히 노력하는 마을만을 지원했습니다. 국가가 철근이나 시멘트를 분배할 때 노력 안하는 마을에는 안 줬어요.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메이지유신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부정하고 국가가 국민의 모든 것을 돌봐주는 방법은 망하는 길입니다. 그런 식으로 국가가 국민의 낙원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공산주의입니다. 사회주의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미끼로 미련한 대중들이 자신에게 투표하게 만듭니다. 즉 미련한 대중이 사회주의, 포퓰리즘의 자양분이 되는 거예요. 그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동서냉전 시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70년대까지는 사회주의가 국제사회를, 지구를 석권할 정도였습니다.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그런 사람들이 머지않아 소련이 미국을 추월한다는 등 그런 주장을 하던 시대입니다. 지금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유럽, 모두 그런데 그런 세력이 진지하게 사람의 진정한 인간의 진정한 자주, 주체성을 인정하고 열심히 살도록 하는 것, 그게 그들의 적이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알게 됐는데 사회주의권의 최대의 적이 한국이었어요. 동서냉전시대에. 여러분께서 언급하셨듯이 한국이 나빠서가 아니라 미국과 손을 잡고 공산주의와 철저히 싸운 것이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온갖 비방 증상을 했을 뿐입니다. 지금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언론 및 정치적 공작을 통해 당하게 됩니다. 그것을 우려해서 굳이 이 말씀을 드렸어요. 저는 지금도 인간은 열심히 노력하는 존재이며 그로 인해 인간의 과학기술, 문명이 발전해왔다고 믿어요. 그것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의 평등성을 보장한다는 그런 사회는 망합니다. 박정희는 그런 세력과 싸웠어요. 어느 정도 성공했고요. 박정희는 생전에 입버릇이 된 말이 있었어요. ‘내 묘에 침을 뱉어라’ 그는 애초부터 죽을 각오로 한 거예요. 그러니까 독재라는 소리를 듣는 거죠. 수년간의 임기를 예를 들어 아시아의 다른 지도자들을 보면 한국, 대만, 이스라엘, 싱가폴도 그렇고 몇 가지 스타일이 있어요. 그 중 목숨을 걸어서 일한 지도자를 가진 나라는 성공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적당히 3년, 4년, 5년... 임기를 즐기면서 지낸 지도자를 가진 국가 중 역사상 성공한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속이고 있어요. 민주주의를 하려면 거기까지 철저하게 국민이 그것을 자각하고 땀 흘리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지도자를 존중하고 완성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심정으로 박정희 시대를 뒤돌아보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 

[미나미데 기쿠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저는 솔직히 절찬하는 사람입니다. 존재 자체가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러 사건이 있었지요. 가장 많이 비판 받는게 김대중 사건입니다. 김대중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김대중 사건을 바라보면 당연히 납치는 안좋고 주권침해가 있었다는 등 여러 비판이 있지요. 그 사건 하나만을 보면 맞는 말인데 김대중은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대통령이 된 후에 미국의 연방의회조사국인 CRS 발표에도 있었지만 결국 10억 달러를 북한에 다 갖다 바쳐서, 기술도 다 바쳐서 지금 북한의 핵 개발 및 미사일 개발의 기반을 만든 사람이 김대중이잖아요. 노무현 정권에서 현재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그 10배 이상의 돈이 약 20조원 정도의 돈이 계속 북한에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돈을 이용해서 여러 일을 벌였어요. 예를 들어서 김대중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김대중을 죽였어야 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김대중 사건 후의 광주사건도 그렇습니다. 광주사건은 완전히 북한이 배후에서 조작한 소행입니다. 지만원 씨가 열심히 싸워서 최고재판에서 이겼는데 지금 다시 재판을 일으켰더라고요. 2차 재판입니다. 한마디로 광주사건은 한국이 보유하는 M16 이라는 총기로 광주 시민이 죽은 게 아닙니다. 시위대가 조달한 카빈총으로 죽었어요. 누가 카빈총을 조달했을까요? 아시잖아요? 그래서 지만원씨는 승소했고 북한의 모략에 의한, 배후에서 조작된 사건이라고요.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 김대중은 그 다음에 노무현 선거 때 완전한 엉터리예요. 부정 집계 소프트웨어를 납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노무현이 당선된 거예요. 현재도 문재인의 대선 명백히 지적되고 있는데 투표용지의 위조가 대량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선됐어요.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의 사건만을 다루면서 박정희의 행위를 비난해봤자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봐야 합니다. 정치적 결단이란 반대로 박정희를 비판하라고 한다면 김대중 사건을 목적대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즉 실패한 것이, 후세에 오늘과 같은 현실을 남기고 한국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 많은 인권침해가 있잖아요. 매일과 같이 인권침해가 있는 곳이잖아요. 인원 수로 정의를 측정할 수 없지만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일살다생(一殺多生)’이란 말이 있듯이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 행위는 옳은 정치적 판단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잖아요? 이 사건을 일반적인 살인사건, 유괴사건의 시점으로 바라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전체적인 평가로 이것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런 연쇄속에서 세월호 사건도 그래요. 세월호의 그 종교단체. 문재인은 그 단체의 고문변호사였다고 하잖아요? 자신은 18억원 밖에 재산이 없다고 하면서 그 종교단체 대표가 소유한 원산 근처의 큰 별장의 명의자가 문재인으로 변했습니다. 누가 지적을 해도 전혀 문제시되지 않아요. 대통령이란 권한으로 모든 것을 봉압하고 있으니까요. 도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을 비난하고 있는건지.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해도 아무 의미 없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박정희의 유일한 실패는 김대중 사건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게 한국에 화근을 남겼습니다. 노골적인 표현이지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라키 가즈히로] 김대중 사건에 대해서 말씀 드리자면 1973년 8월 8일입니다. 제 17살 생일이었어요. 이상한 인연을 느낍니다. 아마 박정희 자신은 사전에 몰랐다고 생각해요. 또 박정희가 명령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그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촌탁으로 알아서 한 일이지요.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이란 인물을 아주 싫어했다는 사실은 틀림없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만약 이 일을 잘 수행하면 대통령이 좋아하실거라고 생각해서 실행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미 돌아가신 분이지만 제가 신세를 진 한국 연세대학에 이기택 교수님이라고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이랑 말씀을 나누면서 그때 이렇게 할걸 그랬다면서 방금 미나미데 선생님의 이야기는 결코 일본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 다쿠쇼쿠 대학에 몸담고 있는데 전 한국 해군이셨던 고영철 선생님이 가끔 TV에도 출연하시는데 고영철 선생님의 설에 의하면 한국인이란 위에 난폭한 지도자가 서서 난폭하게, 억지로 끌고 가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바라보면 박정희는 정말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아요. 물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시간이 지나서 뒤돌아보면 역시 잘했다, 좋았다고 어쩌면 2000명 정도의 사람이 희생됐을지 모르지만 2000만명이 행복해졌잖아요. 요즘 한국 사람중에 가끔 박정희 시대가 없으면 경제가 더 발전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그 선택 이외에는 없었고 박정희 이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부분도 있었다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박정희의 좌절이나 실패에 저는 오히려 매력을 느끼는 부분도 있습니다. 플러스, 마이너스로 생각하면 플러스가 절대적으로 컸다는 것이 하나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우라 코타로] 제가 아까 메이지유신이라고 했는데 앞서 두 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쇼와유신’이란 표현이 그 정신을 표현하는데 더 알맞네요. 제가 메이지유신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메이지유신에 대해서도 각자 생각이 다르시겠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어느 정도 리더십을 가지고 근대화를 달성했다는 점이고, 근대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그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발생합니다. 모두가 성공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홍 선생님의 의견과 다를 수 있지만 역시 근대적인 국민과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이 일부 무너질 수도 있고 또 급속도로 산업 발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일시적으로 부담이 된 시기도 있었을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하여 청와대의 야당이라고 불린 사람이 바로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입니다.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지금의 정책을 유지할 수 밖에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든지 그런 문제에 대한 신념을 가진 분이었고 청와대의 야당이라는 소리까지 들으셨답니다. 한국의 지인한테 들은 이야기라서 사실 확인은 안 해봤지만 박근혜 씨가 당선된 것은 박정희 씨의 딸이기 때문인지 물었더니 아니다. 육영수 여사님의 딸이기 때문에 당선된 거다.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그런 말을 하셨고, 물론 사실인지 확인은 안되지만 그 정도로 육영수 여사는 사랑받는 분입니다. 그런 분을 문세광이 죽였어요. 이것은 조총련의 책임입니다. 조총련이 시킨 일이니까요. 하지만 문세광이 총을 쏜 배경에는 일본 언론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었을 거예요. 게다가 그 후에 일본 정부는 그때 한국 정부측에서 조총련을 해체시켜달라는 요구가 있었을 거예요. 그것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일본측입니다. 그 당시 엄청난 반일운동이 한국에서 일어났어요. 일본 대사관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직전까지 갔어요. 저는 그 모든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반일운동만은 한국이 옳았다고 믿습니다. 결국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총련이 존재하는데 사실은 한일조약을 맺은 후, 일본과 한국이 국교를 수립해서 한국을 정당한 정부로 인정하고 물론 여러 역사적 문제는 있지만,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앞으로 함께 가자고 결정한 단계에서 조총련이라는 북한 조직의 존재를 용납해온 것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잖아요. 저는 지금도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 점에 관해서는 확실히 일본에 책임이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고요.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을 근대화시키는 과정에서 가끔 사람에게 잔혹한 일도 있을 수 있고, 힘든 노동자들도 존재했겠고, 그에 대한 반체제 운동속에서 이득을 취한 사람도 있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복잡한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일부 한국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솔직히, 한국에는 ‘일교조’가 우파로 보일 정도의 ‘전교조’란 조직이 있는데 그런 조직이 있답니다. 학교 교육 그 자체에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 영향도 있을 거예요. 그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태극기 시위가 열리고 있어요. 일본에서 전혀 보도되지 않지만. 그 분들에게 어느정도 박정희에 대한 지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이대로 가면 한국은 북한한테 당한다고 들고 일어난 군인정신과 지금 태극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연결된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런 부분에 한국의 희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박정희 시대에 가꾸어진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말씀드릴게요. 주제에서 벗어나서 죄송하지만 홍형 선생님과 제 의견이 다를지 모릅니다만 여러분 레닌은 잘 아시겠지만 오늘 사진이 나온 안토니오 글람시는 모르는 분도 계시겠지요. 쉽게 말하면 이 사람은 어느 정도 경제 발전한 국가에서는 노동자에 의한 폭력 혁명 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혁명을 하는가? 우리가 혁명할 때 해야 할 일은 문화, 언론, 재판소 이 3가지를 모두 거점으로 장악하고 특히 말을 혼란시킴으로써 혁명의 기본을 만들 수 있다고 했어요. 이것은 레닌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한 가지만 더하자면, 저도 앞으로 조심해야 하는데 민주화란 단어는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좋은 단어인데 ‘한국의 민주화’라는 말이 100% 올바른 말처럼 종종 사용되는데 지금 한국 국내 종북 세력들, 북한편에 선 사람들은 한때 모두가 민주화를 외쳤어요. 민주화란, 자유민주주의란 공산주의사상을 절대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사상입니다. 민주화란 말로 위장한 민주화란 말을 이용한 공산화야말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공산주의 혁명이며 지금 한국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세력들, 나아가 일본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과제가 민주주의, 인권, 빈부격차를 없애는 것... 모두 옳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속에 숨겨진 것은 모두 공산주의화 또는 국가 파괴, 둘 중 하나입니다. 자유도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요. 이런 단어들, 즉 자유, 민주주의 격차를 줄이는 것조차도 공산주의를 부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저는 지금 가장 필요한 박정희가 남긴 정신은 소련도 동유럽도 붕괴한 상황에서 중국은 실제로는 거의 자본주의고 공산주의는 끝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언어를 이용하여 공산주의가 아주 교묘하게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속에 언어적으로 침투함으로써 전부 변질시키고 있어요. 폭력 혁명 이상으로 무서운 언어 혁명, 언어의 혼란입니다. 박정희한테 배워야 하는 점은 이 부분이며 한국의 민주화에 있어서, 광주폭동까지 민주화로 간주해버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홍형] 짧게 말할게요. 박정희가 한 일이 쇼와유신이냐, 메이지유신이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에서도 역시 쿠데타인지, 혁명인지에 대한 논의가 30년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박정희가 한 일을 군사혁명이라고 말하면 모든 공직에서 쫓겨난다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그 형식은 틀림없이 쿠데타였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그로 인해 한국이 완전히 다른 국가가 됩니다. 그래서 혁명이에요. 틀림없는 혁명입니다. 메이지유신에 해당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1945년 8월에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해방된 한국은, 이제 식민지에서 해방됐기 때문에 식민지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가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건 악몽이지요. 그럼 한국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게 문제였지요. 한국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과 같은 길을, 그 길을 달립니다. 휴전선인 38도선의 남쪽은 그랬고 북한에는 사회주의가 군사력으로 이식되었습니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모두 잘 아시겠지만 문제는 한국에서 이승만, 박정희가 무엇을 했냐면 500년 이상 한국을 지배한 지배계층을 바꿔버립니다. 옛날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지식인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자가 붙는 신분, 즉 양반들이 첫째고 그 다음이 농업의 ‘농’입니다. 그 다음은 공업의 ‘공’이고, 마지막이 장사하는 상인의 ‘상’입니다. 박정희는 이 순서를 바꿉니다. 박정희가 순서를 바꿨습니다. 한국의 500년 역사속에서 이례적인 시대가 왔습니다. 박정희는 모든 기득권과 기존의 지배계층 양반 등을 부정해서 실사구시처럼 반대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삼성도 현대도 나왔습니다. 이 혁명에 저항한 관념론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지금 박정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방금 미우라씨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은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잘못된 것입니다. 일본인이 메이지유신 이후에 서양의 여러 문건을 번역했는데 잘못 번역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정도를 말하며 ~주의, ~ism(이즘)이 아닙니다. 그런데 멋대로 ~주의를 붙이고 ‘민주주의’란 말로 번역되었어요. ~주의가 붙으니까 무너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것을 철저히 이용한 것이 아ᄁᆞ 지적하신 용어 전쟁입니다. 박정희는 한마디로 한국은 자유의 방파제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삼키는 파도라고 말했어요. 이상입니다. 

[사회자] 감사합니다. 너무나 쟁쟁한 분들께서 나오셔서 시간이 부족하네요. 마지막으로 한 분만 질문을 받겠습니다. 

[질문자] 다른 분들의 질문까지 2~3개를 합쳐서 질문하겠습니다. 남북은 지금도 휴전상태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것을 종전으로 바꾼다고 보도되었는데 종전이 되면 현재 남북의 기본틀이 크게 변합니다. 이 점에 대해 일반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이런 상황을 바라고 있습니까? 단순히 좌파 언론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요? 또 북한에 대한 의문인데 종전 협정을 맺고, 연방제를 실현하기 위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있는건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미나미데 기쿠지] 제가 지금 가장 큰 위기감을 느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는데 어떤 시나리오냐면 김대중 시대에 이른바 3단계 통일론이라고 우선 느슨한 연함체에서 연방제로 이행, 그 다음에 완전 통일이라고 구상했는데 현재 문재인이 하고 있는 것은 두 개의 국가 하나의 제도. 두 나라 제도를 동일하게 만들면 연방제에서 단번에 완전 통일이 가능합니다. 두 국가 두 제도에서는 연방제에서 완전 통일로 가는데 장벽이 높아요. 그래서 지금 헌법 개정해서 이걸 하려고 하는데 지금 구상대로 가면 완전한 적화통일입니다. 그렇게 적화통일을 해서 북한에 핵이 있으니까 이른바 이스라엘 방식, 파키스탄 방식처럼 핵을 묵인하고 지금의 조중 국경, 즉 남북이 병합되면 양국의 조약을 공유하게 되는데 한일동맹과 조중동맹이 동시에 양립하게 됩니다. 조중동맹을 파기하고 기존의 반미에서 친미로 변화하고 친미반일 정권으로 그런 통일정권이 생긴다고 핵무장한 러시아에 대하여 중공에 대하여 트럼프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반공, 대중국, 대러시아에 대한 교두보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건 최고의 거래입니다. 그것을 노리는게 아닐까...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즉 반미에서 극단적으로, 극적으로 친미로 변하고 과거와는 달리 한반도와 미국간에서 한일동맹을 인계하고 조중동맹을 파기하고 대치한다는 한반도 통일하고 러시아 및 중공에 대치한다... 이것이 미국의 요구이자 ICBM이 미국까지 도달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안전하지요. 결국 헤매게 되는 건 일본입니다.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예요. 진짜로 지금의 이상한 흐름은 이 움직임은 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라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느낍니다. 

[사회자] 홍형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홍형] 선거를 통해서 악당정권이 태어난 사례가 역사에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있었지요. 한국의 반역정권만이 아닙니다. 칠레의 아젠데 정권 등 여러 사례가 있습니다. 대체로 전체주의적인 독재체제가 나타나면 그것을 선거로 정상화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매우 어려워요. 다만 그들 좌파는 언론을 지배하고 언론을 잘 활용해서 여기까지 성공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 세계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우선 김정은의 핵 포기는 있을 수 없고요. 그들을 죽이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지금 그들이 여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거예요. 키신저처럼요. 화려한 여러 연출도 하고요. 그런데 불가능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공부는 안하고 언론이 흘리는 정보만을 수동적으로 믿고 있어요.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예전처럼 거대 미디어가 사람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각자가 손바닥안의 휴대폰과 PC로 전 세계에서 얼마든지 팩트, 사실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어요. 모두가 그렇게 변하면 거대 미디어는 그람시가 말했듯이 거대 미디어를 통해 혁명을 성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회자] 죄송합니다. 시간이 다 돼서요. 간담회가 있으니까 그 자리에서 부탁드립니다. 일단 토론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여기서 양국 국가를 제창하겠습니다. 한일 양국에 경의를 표하고 양국의 국가를 제창하시겠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 분들의 동영상을 보시면서 한국 국가를 함께 제창하시겠습니다. 함께 못 부르셔도 기립하시고 경의를 표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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