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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칸하나다] ‘겟칸하나다(月刊Hanada)’ 창간의 전체 진상

하나다 편집장이 설명하는 ‘WiLL’ 에서 ‘게칸하나다(月刊『Hanada』)’ 로 이적하게된 경위와 ‘게칸하나다’ 로고 디자인의 기원 등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겟칸하나다(月刊Hanada)’의 하나다 가즈요시(花田紀凱) 편집장이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에 2019년 11월 22일자로 공개한 ‘‘겟칸하나다(月刊Hanada)’ 창간의 전체 진상(月刊『 Hanada 』創刊の全真相)’ 제하 칼럼을 ‘겟칸하나다’ 측의 허락을 얻어 번역 게재한 것이다.(번역 : 황철수)






[필자소개] 이 글의 필자는 하나다 가즈요시(花田紀凱)로, ‘겟칸하나다(月刊『Hanada』)’의 편집장이다. 1942년 도쿄 출생이며, 66년에 분게이슌주(文藝春秋, 문예춘추)에 입사했다. 88년 ‘슈칸분슌(週刊文春, 주간문춘)’ 편집장에 취임해 부수를 51만부에서 76만부로 늘린 종합 주간지 맨이다. 94년 ‘마르코폴로(マルコポーロ)’ 편집장에 취임했으며 침체 상황의 잡지 부수를 5배나 늘렸지만 95년에 한 기사가 문제가 되어 사임했고, 1년 후 퇴사했다. 이후 ‘uno!’ ‘맨즈워커(メンズウォーカー)’ ‘헨슈카이기(編集会議, 편집회의)’ ‘WiLL’ 등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2016년 4월부터 현직(겟칸하나다 편집장)에 있다. 



‘겟칸하나다(月刊Hanada)’ 창간의 전체 진상(月刊『 Hanada 』創刊の全真相)

시사월간지 ‘위루(WiLL)’의 다테바야시 아키히코(立林昭彦) 편집장이 우리 6명의 아스카신샤(飛鳥新社) 이적 문제에 대해서 매우 시시한 내용을 썼기 때문에, 정확한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에서 이하와 같이 적는다.

① 상표의 건(商標の件)

언제까지 이런 시시한 문제를 말할 것인가. ‘WiLL’의 다테바야시 아키히코(立林昭彦) 편집장에게 하는 얘기다.

지금 ‘위루(WiLL)’ 측에서는 “‘WiLL’의 상표를 구할 수 있었다”, “‘WiLL’의 깃발이 지켜졌다”라고 기뻐하고 있다. 또한 ‘WiLL’ 12월호에도 ‘편집장으로부터(編集長から)’(편집장 칼럼)를 통해 “(겟칸하나다 편집진 측의) 그런 불법 행위가 법치국가에서 허용될 리가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마치 ‘겟칸하나다’측이 관련해 불법행위라도 한 것처럼 쓰고 있다.

심지어 회사 홈페이지에서도 ‘삼가알림 ‘WiLL’ 잡지명 쟁탈전의 내막(謹告『WiLL』誌名争奪戦の内幕)’이라는 엉터리 보고서가 게재되어 있다.

이런 쓸데없는 문제를 다루는 것은 시간낭비다. 당연히 묵살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오해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경위를 기록해 둔다.
 
왜 기존 ‘WiLL’ 편집부 전원과 또 DTP 담당자 전원이 아스카신샤(飛鳥新社)로 이동하게 됐는가, 일단 이에 대해서는 당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증보해서 아래 별고②로 썼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은 이 내용도 살펴보길 바란다.

우선 ‘위루(WiLL)’라는 잡지명의 사연부터 얘기하겠다. 아스카신샤로 이적이 확정된 후 잡지명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있었다. 사실, 기존의 ‘WiLL’이라는 잡지명은 창간 당시에 애초 내가 고안해낸 잡지명이다(디자인도 마찬가지), ‘WiLL’을 출판해오던 이전 출판사(WAC 사)의 스즈키(鈴木) 사장도 당초에는 “기존 편집부가 그냥 이동해서 다른 회사에서 잡지를 내도록”이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WiLL’라는 잡지명도 같이 아스카신샤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스즈키 사장이 갑자기 말을 바꿔서 ‘WiLL’이라는 잡지명은 넘기지 않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이 건도 아래 별고② 참조).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새로운 잡지명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만약을 위해서 상표 등록도 조사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WiLL’이라는 잡지명 상표 등록은 10년이라는 기간이 지났으며 유예기간도 6개월이나 지났었다. 즉, ‘WiLL’을 출판해오던 WAC 사는 그 시점에서는 상표 등록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스카신샤가 즉시 등록을 신청했다. 상표 등록은 선원권(先願権)이 인정된다. 즉 먼저 신청한 측에 권리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일정한 심사 기간이 지나면 ‘위루(WiLL)’라는 잡지명 상표는 아스카신샤가 권리를 취득한다. 현재 왓쿠(WAC) 사 쪽에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도록 내걸고 있는 내 명함(‘New WiLL’을 내세우고 있는)은 그 시점에서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 ‘WiLL’이라는 이름을 다른 업종의 회사가 또 등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같은 업종이 아닌 한 이런 것이 인정된다). 즉, 스즈키 사장은 그 정도의 체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스카신샤는 고문 변호사를 통해 이 회사와 상표 양도 교섭을 시작했다.

바로 그럴 때 이 이적 소동을 다룬 ‘슈칸신쵸(週刊新潮)’(2016년 3월 31일 호) 기사가 나왔다. 그러자 그 다른 업종의 회사에서 “말썽에 휘말리는 것은 곤란하기에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해왔다.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은 당연하다.

아스카신샤로서는 새로운 잡지명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겟칸하나다(月刊Hanada)’라는 잡지명은 아스카신샤 사장의 제안이다. 나는 잡지 이름으로서는 참 건방지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독자에게 새로운 잡지를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기 위해 이 잡지명을 사용하게 됐다.

그래서 WAC 사 측이 홈페이지에서도 뭇 사람들의 이목을 끌도록 내걸고 있는 그 ‘New WiLL’이라는 명함은 나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도대체 여기서 무엇이 어떻게 불법행위라는 것인가. 다테바야시 편집장은 상표 등록에 관한 그런 경위를 스즈키 사장으로부터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일까.

‘WiLL’측에서는 2년이 지나서도 이런 일에나 집착하고 있다, 평소 잘하는 욕설 같은 것을 할 틈이 있다면, 다테바야시 편집장, 조금은 기획에 더 신경쓰고 지면의 충실을 고민해보면 어떤가.

쓰는 김에 더 써두지만, 지금의 ‘WiLL’은 표지도, 본문 레이아웃도, 대부분 애초 내가 고안했을 때 그대로다. 레이아웃과 디자인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② 이적의 경위(移籍の経緯)

‘슈칸신쵸’ (2016년 3월 31일 호) 와이드 특집에서 ‘위루(WiLL)’ 집단 이적 건이 다뤄졌다. 입사 3년차라고 하는 젊은 기자가 일요일 밤에 갑자기 내 집으로 찾아 왔다. 나의 코멘트를 쓰겠다면 사전에 내가 확인하는 조건으로 취재에 응했다.

젊은 기자의 열정에 감동했기에 제대로 설명은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후에 확인한 바로는 내 코멘트(이것은 확인했었다)의 바로 뒤에 “갑작스러운 믿을 수 없는 설명”이라는 말이 덧붙여지면서 내 코멘트 내용은 다 부정됐다. 정말이지 젊은 기자에게 항의의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어차피 그 말은 데스크가 덧붙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젊은 기자의 열의도 있고 해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기사에는 WAC 관계자라는 인물의 엉터리 이야기가 길게 쓰여 있었다.

“사장이 나이도 고려해서 하나다 씨에게 ‘이제 일선에서 퇴진하시고 편집주간 직함은 어떻습니까?’라는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장에 집착하는 하나다 씨가 분노했던 결과, 이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스즈키 사장에게 그런 타진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시작은 2015년 8월 26일이다. 스즈키 사장이, 갑자기 내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하나다 씨가 내 스트레스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다 씨의 후배들, 부원들과 함께 어딘가 다른 출판사에 가서 ‘WiLL’을 맡아 주십시오. 뭣하면 M씨(광고 담당)도 데리고 나가십시오.”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스즈키 사장 본인이 암에 걸렸던 것까지도 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데없이 그런 말을 들었다고는 하더라도, 아마 또 무슨 원인으로 스즈키 사장이 흥분한 나머지 그렇게까지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선 그때는 곧이 듣지 않고서 넘겼다.

왜냐하면 2014년 늦여름부터 스즈키 사장의 건망증이 심해져서 약속시간을 잊어버리거나, 상대방을 기억도 못하는 일이 빈발하여 여직원들도 곤란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변덕도 심해지고, 판단이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이전부터 스즈키 사장이 갑자기 이성을 잃고서 큰 소리로 직원에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출판부장인 M 국장 등을 다른 젊은 편집부원들이 있는 앞에서 ‘너’라고 부르거나 큰소리를 치고, M 국장은 잘 참았지만,  다들 속을 태우고 지켜보고 있었다. 편집부원들은 아침부터 불쾌한 기분이 되었다(M 국장도 후에 퇴사).

이런 일이 있었다. 2014년 가을 영업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당시 영업부장이었던 S씨가 지인인 K씨라는 중년 여성을 데리고 왔고 스즈키 사장이 입사시켰다.

분명히 능력은 있었을 것이다. 스즈키 사장은 K씨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해서 매일 밤 식사에 데려갔고 휴일에는 골프에도 동행시켰다. 이에 대해 스즈키 사장은 후에 “S와도 둘이서 식사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회사에서는 K씨를 비정상적으로 마음에 들어 했었던 사장의 태도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스즈키 사장이 젊은 직원들에게 “네번째 결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암시하고 다녔다고 후에 듣게 됐다.

영업부장인 S씨가 어느 날 삿포로로 출장을 갔다. 그러자 S씨가 없는 사이에 K씨는 부장자리로, S씨는 부원 자리로 바뀌어 버렸다. 결국, S씨가 자신의 지인인 K씨를 데려온 탓에 K씨에 의해 그 지위를 빼앗기게 된 셈이다.

출장에서 돌아와서 자신과 K씨의 자리가 바뀌어 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S씨가 놀란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날, 입사해서 아직 2개월 정도인 K씨는 집행역원(執行役員, 집행위원으로서 회사간부)이 됐다. 물론 누구에게도 상의 등은 없었으며 스즈키 사장의 독단이다.

K씨가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해 스즈키 사장에서 몇 번이나 들었다. 얼마 후 영업부장이었던 S씨는 퇴사했다. 당연하다. 저런 일을 당하면, 정상적인 정신상태의 인물이라면 회사에 머물지 못한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 2014년 11월, 스즈키 사장에게 암이 발견됐다. 12월 초, 게이오(慶應)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하면 성대가 유실 될 수 있다면서 항암제와 방사선으로 치료하게 됐다.

그 무렵부터, 스즈키 사장의 시기심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져서 K씨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K씨 자택을 조사시키기도 했다. 그 앞잡이가 된 것이 영업부의 M이고, M은 일부러 K씨의 자택 문패 사진까지 찍어왔다(후에 스즈키 사장이 나에게 그 사진을 보여 주었다).

문패에 2개의 성이 있었던 것을 두고 다른 남자와의 동거의 증거라면서 스즈키 사장은 화를 냈었다(후에 K씨에게 묻자,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성이었을 뿐이라면서 놀라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K씨가 해고되었다. 갑자기 해고되었다. K씨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상담신청을 받고서 한 번은 밖에서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그래도 한 번은 스즈키 사장에게 말한 적도 있다. 그토록 능력을 인정하고 있던 K씨를 왜 갑자기 해고하는지, 라고 하면서.

“직원 모두가 사장인 나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스즈키 사장은 그녀가 독신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젊은 여성 직원을 내세워 반란을 시도하려고 하는 연판장을 쓰게 하는 등 K씨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 직원은 얼마 전까지 서로 높이 평가했던 같은 여성이다.

그 후에도 스즈키 사장의 행동은 점점 이상해져갔다. 나는 스즈키 사장과 매주 월요일 1시에 협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회의에서, 나는 여러 번 스즈키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즈키 씨에게 만약 최악의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잡지 편집은 할 수 있지만 경영 능력이 전혀 없고 다케바야시 씨도 마찬가지이므로 그렇게 되면 회사가 이상해집니다. 30명 가까이의 직원들이 헤매게 됩니다. 지금 스즈키 씨가 할 일은, 누구라도 스즈키 씨가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서 경영을 아는 사람을 고문으로라도 좋고, 집행역원으로라도 좋으니까 선임하는 것입니다. 은퇴한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스즈키 씨가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스즈키 사장은 이에 대해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행동에도 옮기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바로 이런 것이 스즈키 사장이 말하는 ‘스트레스’였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스즈키 사장은 거듭해서 은행 관계자를 회사에 불러 장부를 확인시켰다. 경리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회사에 대한 평가 등을 시켰던 것 같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상의도 없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른다.

11월초, 스즈키 사장은 또 다시 8월 26일에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나에게 했다. 올해 중에 행선지를 결정하고, 부원들과 다 같이 나가라는 것이다. 또 내년 4월까지 기존 ‘WiLL’ 편집부는 타사로 이적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 말까지 들으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전부터 잘 아는 아스카신샤의 도이 나오미치(土井尚道) 사장이 기존 ‘WiLL’ 편집부를 맡아주었다.



11월 7일, 아스카신샤라는 이름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스즈키 사장에게 한 출판사가 우리를 맡아 주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갑자기 스즈키 사장이 안색을 바꾸어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다 씨도, 그쪽 사장도 비즈니스 감각이 없군요. 난 공짜로 ‘WiLL’을 양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뭐예요? 스즈키 씨는 우리 편집부원을 데리고 나가라고 말했잖습니까.”

“공짜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입씨름 끝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5억 엔입니다! 한 푼도 값을 깎아 줄 수 없습니다.”


이 출판 대불황 하에서, 5억 엔이나 지불할 출판사가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스즈키 사장은 계속해서 5억 엔을 외쳤다.

이때부터 스즈키 사장의 언동은 점점 이상해져 갔다. 뭔가 이야기를 하고, 반박하면, 바로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른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다른 편집부원들에게도 호통을 치고 그것이 좁은 사장실에서 외부로도 다 들렸다.

이전에 말했던 것을 곧 잊어버리곤 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런 얘기는 들은 바 없습니다!”라며 격앙했다. 결국 말했다, 말하지 않았다, 의 결론이 안 나는 논쟁이 될 뿐이었고, 스즈키 사장과의 대화는 정말 소모적이었다.

회사에서 그러는 것이 싫어서 어느 날 근처의 르누아르라는 찻집에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스즈키 사장이 갑자기 일어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르누아르의 여자 점원, 손님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놀라서는 스즈키 사장과 내 쪽을 멀리서 포위하고 있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이상이 그 1년 반, 왓쿠(WAC)라는 작은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지금도 스즈키 사장에게 은의를 느낀다. 편집자로서 마지막(이 아니게 됐지만) 무대를 만들어준 것이 스즈키 사장이기 때문이다.

11년간 서로 잘 노력해왔다고 생각한다. 영업(광고)과 편집의 분업으로 11년이 걸려 ‘WiLL’은 여기까지 왔다. 출판계에서도 일단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스즈키 사장은 “순간풍속으로라도 한번쯤 ‘분게이슌주(文藝春秋, 문예춘추)’를 앞지르고 싶다”는 공통의 꿈을 말하고 있었다.

스즈키 사장이 우연히 암에 걸려버린 것은 불운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보다 다소 젊기는 하더라도 스즈키 사장 역시 나름대로 적은 나이는 아니었던 만큼 당시 상황에서 좀 더 각오를 다진 발언과 행동을 해주길 원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한 저명한 여성 비평가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다 씨, 인간은 참 약한 것 같습니다.” 이 말이 전부다.

③ ‘혼노자시(本の雑誌)’* 2016년 7월호에 기고한 글(『本の雑誌』 2016年7月号への寄稿)

* [편집자주] ‘혼노자시(本の雑誌)’는 서평을 중심으로 책과 활자매체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일본 월간지다.

읽는 것도, 또 만드는 것도 포함하여 ‘잡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지만,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잡지가 무엇이냐? 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LIFE’라고 대답한다(내가 만든 잡지는 별도로 하고).

전쟁 전에, 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이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로 이주했다. 아버지도 현지의 대학을 졸업하고서 전후에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근무했다.

그런 관계로 전후에 물품이 부족했던 시대에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주 소포가 도착했다. 당시 일본에는 없었던 통조림, 누들, 스프, 치즈, 초콜릿 등을 보내왔는데, 소포는 오래된 영어 신문이나 잡지가 충전재로 들어 있었다. 바로 그 속에 ‘LIFE’가 있었다. 적자(赤字)로 된 윤곽선 폰트의 제자(題字)가 눈부셨다. 

영어는 읽을 수 없어도 사진을 보면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초콜릿도 좋았지만 ‘LIFE’가 들어가 있으면 더욱 좋았던 그 시절이 지금도 그립다.

여담이지만, 내가 이제까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기뻤던 것은 1932년 ‘LIFE’ 창간호다. 창간호 표지는 1929년 대공황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테네시 강 개발 계획으로 완성된 후버댐의 흑백 사진이다. 지금도 소중히 하면서 때때로 꺼내서 보곤 한다. 



이런 옛 추억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WiLL’ 편집부 ‘전격이적’(『WiLL』編集部の「電撃移籍」)’(‘유칸후지(夕刊フジ)’의 기사 제목이기도 하다) 이후에 ‘겟칸하나다’ 창간과 관련 기존 회사 사람들이 이런 저런 시시한 것을 말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위루(WiLL)’라는 잡지명을 고안하고, 또 대문자 뿐이라면 경직되어 보여서 I를 소문자로 한 것은 바로 나의 아이디어다. 그리고 ‘LIFE’에 대한 오마쥬로서 빨간색에다가 흰색 윤곽선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TIME’을 본따서 잡지 표지를 빨간색으로 테두리 친 것이다. 깊은 생각이 담긴 로고이며 디자인이다.

이런 사정이 있음에도 “(‘겟칸하나다’와 ‘WiLL’의) 디자인이 서로 흡사하다”든지 하는 것은 가소롭다. 분하다면 지금의 ‘WiLL’ 편집장이 새로운 디자인을 생각해 보면 어때,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원래 나 자신도 'WiLL'로서 편집자 생활을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는 것을 넘어서 어차피 당연히 끝날 예정이었다.

존경하는 야마모토 나쓰히코(山本夏彦) 씨는 84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시쓰나이(室内, 50여 년간 발행된 일본의 가구 · 목공 · 인테리어 관련 잡지)’ 편집장을 역임했다. 때때로, 공작사(工作社)에 가보면 책상에 몸을 구부려 열심히 교정쇄에 수정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노려라, 야마모토 나쓰히코를(目指せ山本夏彦)”이라고 말하곤 했었지만(물론 농담식으로 하고 다녔던 말이다), 언젠가 머지않은 미래에 누군가에게 ‘WiLL’을 맡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말, 사장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하나다 씨가 내 스트레스가 되었기 때문에, 부원 전원을 데리고 어딘가 다른 회사에서 일해주시기 바랍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약 10년 전, 사장과 둘이서 'WiLL'의 창간을 결정했다. 영업을 사장이, 편집면을 내가 담당하고,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래도 적당히 존재감이 있는 잡지로 키웠다.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남편에게서 갑자기 이혼을 선고 받은 조강지처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부부도 오랜 세월을 함께 살면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서로 양보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자녀(즉, 편집부원들)의 장래도 생각해야 하고.

설득을 시도했지만 사장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질병 때문에 인내심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말까지 들었다면 어쩔 수 없다. 지난해 11월, 오래전부터 알았던 아스카신샤 사장에게 이야기를 했고, 아스카신샤는 ‘WiLL’과 편집부 전원을 맡아주었다.

일단 아스카신샤라는 사명은 감추고 사장에 이렇게 보고했는데 사장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하나다 씨도, 그쪽 사장도, 비즈니스 감각이 없군요. 난 한번도 공짜로 ‘WiLL’을 넘긴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입씨름 끝에 다짐을 받기 위해서 얼마에 넘기겠냐고 묻자, 무려, “5억 엔. 한푼도 값을 깎아 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농담이 아니다. 이 출판 대불황 하에서, 5억 엔을 즉시 낼 수 있는 출판사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5명의 사람을 떠맡아야 한다. 인건비만으로도 상당한 금액이다. 하지만, 여러 번 설득을 해도 사장은 들어 주지 않았다.

원래도 쉬 이성을 잃어버리곤 했던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야기를 하고서 서로 다른 생각이 대립하면 바로 이성을 잃어버렸다. 어느 날엔 찻집에서 격분해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해서 가게 손님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여러 일들이 있어 ‘WiLL’ 기존 편집부원과 DTP 담당자의 ‘전격 이적’이 결정된 것이다. 이 1년 동안은 ‘WiLL’의 편집을 하면서 협상을 했기 때문에 정말 피곤했다.

마지막이 된 ‘WiLL’ 5월 호 편집도 전력투구했다. 나는 내가 만드는 잡지에 있어서 대충대충은 하지 않는다. 매출도 좋았다. 이에 대해서는 전 ‘슈칸아사히(週刊朝日)’ 편집장인 야마구치 가즈오미(山口一臣) 씨가 ‘WEB RONZA’에 이렇게 써주셨다.

“하나다 씨가 마지막으로 편집한 ‘WiLL’ 5월 호를 보면서 편집자의 긍지를 느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지막까지도 부실함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회사와 옥신각신하고 있는데다가 이적도 정해져 있으니까 보통의 편집자라면 적당히 하고 싶다는 심정이겠지만, 이 ‘마지막 호’는 오히려 평소보다 기합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중략) 독자에 대해서는 대충대충하지 않겠다는, 그야말로 하나다 씨 답다, 고 감탄한다.”


아는 사람은 알아준다는 것이다. 이는 기쁜 일이다.

‘위루(WiLL)’에 대해서는 처음에 쓴 것처럼 나는 물론 애착이 있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을 다 쓰진 않겠지만, 상표권도 취득했다. 그러나, 스즈키 사장의 무리한 요구를 듣는 사이에 그만 싫증이 나고 말았다.

자기 이름을 새로운 잡지명으로 하는 것은 약간 부끄럽기는 하지만 독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확실히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겟칸하나다’ 창간호에도 전력투구했었고 사실상 매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연이어 떠오른다. 역시 잡지 만들기의 현장은 즐겁다.

④ 이적 후 WAC 사의 대응(移籍した後のWAC社の対応)

이적 이후의 일에 대해 기록해둔다. 나는 일단 기존에 왓쿠(WAC) 사의 전무이사였지만, 어느 날, 스즈키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어제 이사회에서 하나다 씨의 해임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사의 해임은 이사회가 아니라 주주 총회에서만 결정할 수 있다. 스즈키 사장은 그런 기본도 모르는 것 같았다.

2016년 4월, 나, 그리고 다른 편집부원 4명, 또 DTP 담당자까지 총 6명은 아스카신샤로 이적했다. 후에 광고담당자도 이적했다. 편집부원을 포함하여 누구 하나 기존 회사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이 소동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적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스즈키 사장은 부원들에게 퇴직금을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 근무한 편집부원은 14년째 (주)왓쿠(WAC)에 근무했는데 ‘이강은퇴(依願退職, 의원면직)’를 했다. 그런데 한 푼도 퇴직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회사가 적자도 아닐텐데 말이다. 이것은 분명히 노동기준법 위반이 아닐까.

그리고 나 자신도 3월까지 근무하면서 최선을 다해 5월 호를 편집했고 손수 신문광고까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3월 분의 임금은 지불되지 않았다. 영수증과 명세서를 제출한 교통비, 경비도 한 푼도 지불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상표가 어떻다 저떻다, 라든지 시시한 것을 말하겠다면 일단 우리 6명의 퇴직금, 월급, 비용을 지불한 뒤에나 말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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