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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하시모토 토오루는 필요한가

철밥통 공무원과 정면승부하는 정치인, 하나쯤 있어야하지 않을까

일본에 하시모토 토오루라는 정치가가 있다. 변호사 출신으로 TV연예프로그램에 등장해 전국적 지명도를 얻은 뒤, 38세에 한국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오사카부지사(府知事), 41세에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 시장에 당선된 인물이다. 개혁성향이 강한 하시모토는 시의회나 공무원 노조, 언론, 기존 정당들과 충돌해오면서도 대중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시모토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유권자들 속을 후련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시장에 되고나서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은 공무원개혁이다. 철밥통 체질과 과다한 수당이 문제가 되고 있는 오사카시 체질개선에 칼을 든 것이다.

오사카시 공무원들의 수당, 업무태도에 대한 보도를 보면 시민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시가 운영하는 오사카 시영버스는 90% 노선이 적자인데도 버스운전사들은 평균 739만 엔이라는 고액연봉을 받아왔다(민간 버스회사 평균은 약 544만 엔). 28년간 적자를 기록해왔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세금을 쏟아 부어 고액연봉을 지급해왔던데 대해 하시모토 시장은“일반 기업에서라면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며 제동을 걸어 38% 삭감한 460만 엔으로 내려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공무원들의‘세금 축내기’는 오사카시뿐만 아니라 일본 각지 지자체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공무원들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만들어진 희한한 각종 수당들은 일본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진급서 누락해 동기들에 비해 출세하지 못한 공무원의 월급을 올려주기 위한‘출세곤란수당’ , 45세까지 결혼하지 못한 공무원에 주어지는‘독신수당’ , 햇볕을 받지 못하는 곳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에 주어지는‘지하근무수당’ , 현금을 만지는 일은 신경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지급하는‘현금취급수당’ , 안경 쓰는 공무원의 안경 값을 보조하는‘안경수당’ , 청소작업 때 비가 내리면 작업이 힘들다는 이유로 지급하는‘우천수당’등 민간기업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우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지자체들이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공무원들에게는 민간기업 이상의 급여와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수·개혁·좌파·우파란 이름의 ‘기득권’과의 대결

선거공약으로 공무원 임금과 인원 삭감을 들고 나온 하시모토 토오루를 오사카시 공무원들은 달가워하지 않았고, 매년 임금교섭으로 대립하는 공무원 노조나 많은 수당과 보너스를 받아오던 고위직 공무원들은 더더욱 반감이 컸다. 하시모토가 당선될 경우 자신들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시 재정은 개선되더라도 말이다).

하시모토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일부 공무원들은 하시모토의 상대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유세를 지원했다. 하시모토의 상대후보는 당시 현직 시장이기도 했는데, 우파 성향의 자민당, 여당인 민주당, 좌파 성향의 공산당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희한한 광경을 연출했다. 성향이 전혀 다른 3당이 동시에 같은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하지만 우파 자민당과 여당인 민주당으로서는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는 안정이 필요했고, 공무원 노조와 긴밀한 관계의 공산당은 노조에 반감을 가진 하시모토 당선을 막아야만 했다.

기존 정당, 언론, 공무원, 지역 재력가들이 필사적으로 하시모토 당선을 저지하려 한 것이다. 정당들은 상대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했고, 매스컴은 하시모토의 출신(천민, 차별지역 출신)과 이미 사망한 부모(아버지가 야쿠자 출신) 얘기까지 꺼내 네거티브 선전을 했다. 하지만 60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린‘개혁의 아이콘’하시모토를 막지는 못했다. 2011년 11월, 하시모토는 58.9% 득표율을 보이며 기득권 세력이 지지하는 후보에 압승, 오사카 시장으로 당선됐다.

시장에 당선되자 하시모토는 본격적인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제일 먼저 직원 노조 사무실을 시청건물에서 철거할 것을 노조에 요구한다. 이것은 노조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지난 시장 선거 때 선거운동을 했던 오사카시 공무원은 깨끗이 떠나라”며 사실상의 사표를 요구했다. 하시모토 당선을 저지하려 했던 오사카시 노조가‘안티 하시모토’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편드는 행위, 더군다나 자신을 낙선시키기 위한 운동을 했으니, 책임을 지라는 말이었다.

공무원들은 새 시장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민들은 하시모토 발언에 열광하며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2011년 12월25일 후지TV가 조사한‘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공무원 개혁에 대해 찬성하는가’에 대한 설문에서 하시모토는 81%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새로운 형태의 포퓰리즘인가 구국의 지사(志士)인가

이런 하시모토 토오루에 대한 한국 언론의 평가는 혼란스럽다. 어떤 언론은 개혁성향의 젊은 그를 두고‘일본의 안철수’(동아일보)라고도 하고, 기존 정당에 속하지 않은 세력이란 점을 들어‘일본판 박원순’(주간동아)이라고도 하며, 일본 국가제창과 기립을 강요하는 모습을 두고‘극우 시장’(한국일보, 세계일보)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이렇듯 제각기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은 하시모토가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복합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개혁을 추구하는 모습은 진보 성향으로 비쳐지지만, 핵무장에 긍정적인 모습은 보수로, 조총련 학교에 대한 지원금 동결은 우익으로, 일본 공산당마저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극단적 개혁파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변혁과 개혁을 내걸고 기득권과 대결하고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가 투표에서 연달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가장 큰 요인은‘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언행’을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기존 정치인들도 유명 인사를 대동하거나,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거나, 유권자에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유권자를 치켜 올리거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사탕발림 식 공약이 아닌, 특정 대상에 집중적 비판을 가해 유권자들을‘후련하게’만드는 전략으로 지지를 받았다.

이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하시모토의 행적을‘정치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실제 그가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말’에 의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실언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일본인들이 여전히 하시모토에 열광하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공무원들이나 기존 정치인들에 깊은 불만과 염증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한국도 많은 국민들이 공무원들에 불신감을 갖고 있으며,‘철밥통’은 곧 공무원을 뜻하는 표현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하지만 많은 정당들이나 정치가들은 감히 그들만의‘성역’을 건드리지 못한다. 좌파정당도 우파정당도 그런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당장 4월의 총선에서도 선심공약들이 화제가 될 뿐 감히‘공무원들 수당, 임금을 깎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표를 깎아먹을 수 있으며,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도 그런 정치가가 하나쯤 나와도 되지 않을까? 그것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라 하더라도, 기존 정치세력이 싫어하고 기득권 세력이 반발할 만한 사람이라면 정치권에 새로운 자극을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발이 두려워 해야 할 말과 추진해야할 개혁에 눈감는 것이 진정한‘포퓰리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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