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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한의학을 비판해온 문화비평가이자 과의연 특보인 서범석님의 시리즈 한의학 비판 글인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입니다. 서범석님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필치에 더해 한의학 문제를 바라보는 보다 풍부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귀한 원고를 투고해주신 서범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전 글 :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 : 왜 '한의학'을 '고대중국의학'이라 불러야 옳은가?


필자가 원래는 한의학이 주는 신비감에 굉장히 매료되어 있던 사람이다. 소싯적에는 혈자리를 배워 뜸 깨나 떠본 적이 있을 정도. 비록 실질적 효과는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런 관심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져, 도올 김용옥 선생이 대학로에서 한의원을 운영할 때는 직접 방문하기까지 하였다. 1998년의 일인데, 당시 도올 선생은 권도원 박사가 주장한 8체질론에 근거해 진료를 하고 있었다. 학부 시절, 선생의 저작들 깨나 탐독한 덕에 개인적 흥미도 있는 데다 신병(身病) 상담도 받을 겸 겸사겸사 내원했던 것이다. 자비를 들여 한의원이라는 곳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예약을 하고 삼십 분쯤 기다렸을까, 차례가 되어 진찰실에 들어갔다. 검은색 치파오를 입고 안경을 코 중간까지 걸리게 내려쓴 선생이 필자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가타부타 별 말 없이 생년월일, 가족 관계 등을 물으며 진료 기록지를 작성하였다. 작성 도중에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며 무언가 셈하는 품이 무슨 역(易) 계산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랬다. 행동 하나 하나가 섬세하다 못해 약간 신경질적이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 문진을 마친 후 나의 요골 동맥을 한참 짚어보더니 발목 부분에만 재빨리 침을 놓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는 내 말대로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 넌 장부 중에서 폐가 쎄고 간이 약해. 해독작용을 하는 간이 약하니 고기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생선은 돼. 그러니까, '스님 + @식'으로 먹는 거야. 여기서 @는 생선이야. 응? 그렇게 먹어. 뭐 깡통에 든 음료수, 인스턴트 식품 절대 먹지마. 밤늦게 먹고 자면 피가 정혈 작용이 안되니까 자기 서너 시간 전에는 암것도 먹지 말고. 약이란 약은 너한테 다 해로우니까 먹지 말구. 하다못해 비타민제도. 그리고 네 몸에서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떼버려라. 시계니, 벨트에 있는 쇠딱지 그런 거 안돼. 나무, 나무, 나무가 좋아. 너한텐. 젓가락도 쇠로 된 거 말고 나무 젓가락을 써라.”

“저기요, 실례지만 쇠붙이가 제가 앓고 있는 질환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여전히 경외감을 잃지 않은 채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답신이 왔다. “폐는 곧 금(金)이야. 넌 폐가 쎄니까 금(金) 기운이 승하단 얘기야. 그럼 쇠붙이가 좋겠어, 안 좋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글쎄, 약을 좀 지어줄 테니까 달여 먹고 넌 음식 가려 먹는 데나 신경 써라.”


당최 무슨 소린지 어리둥절하였지만 계속 물어봐야 성격상 자상한 답변을 들려줄 것 같지가 않아 진료비를 계산하고 터덜터덜 나왔다. 손에는 가려야 할 음식표, 10만원 어치의 '해롭다는(!)' 약 스무 첩 - 한약은 약 축에도 못 낀다는 것을 자기 고백이라도 하는 것인지 - 이 들린 상태였다. 마침 점심 때가 되어서 주위를 둘러 보는데 닭갈비 집이 보이길래 생각했다. 일단 뭐라도 좀 먹고 보자. 


절대 먹지 말라던 육식을 하면서 처방에 대해서 좀 구조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인스턴트 식품이 안 좋다는 거야 너무 상식적인 얘기고. 고기먹지 말라는 거야 그렇다 쳐도 쇠붙이를 몸에 붙이고 다니지 말라는 얘긴 뭐지. 요즘 세상에 쇠붙이가 안 들어간 게 있을라고. 또 나무로 된 벨트 버클은 들어본 적도 없다. 삼겹살에 소주도 이젠 안녕이란 말인가. 시시콜콜한 고민 끝에 집에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젓가락을 나무 젓가락으로, 반찬을 푸성귀 위주로 바꾸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이 오만상을 찌푸리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올 선생이 왜 금속을 몸에 대지 말라고 했는지에 관해 약간이나마 힌트를 얻게 된 것은 그 해 말의 일이다.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지인에게 책 한 권을 얻어보게 된 것이다. 표지에는 ‘도올 선생 한의학 특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것은 시중에 판매용으로 제작된 책이 전혀 아니다. 1996년, 도올 서원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펼친 한의학 강의 내용을 한 학생이 녹취한 후 타이핑하여 책의 꼴로 만든 것이다. 일종의 불법 서적인 셈인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책을 구했다는 희열에 들떠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해당 책 중, 오행과 장부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폐가 왜, 왜? 금(金)이냐? 비행기를 타고 가면 운해를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우리가 은하철도 999를 타고 전 우주를 여행한다면 지구라는 정차역으로 오는 그 은하철도 999가 가장 희한하게 생각할 게 아마 이 구름이라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솜 같은 게 널려 있으니 말이죠.

즉, 지구는 말이죠. 불덩어리에요. 그리고 땅이 있어서 부숙이 가능한 거예요.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물이죠. 그래서 생명이 발생하고 이 생명력이 불 때문에 기화를 시키죠. 그 기화된 것이 만약에 도망가 버린다면 끝이죠. 그런데 구름이라는 이 현상은 참으로 고마운 거예요. 도저히 이 물기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는 현상이 구름이에요. 절대 도망 못 가요. 그래서 다시 그것을 응결을 시켜요. 그리고 다시 떨어뜨려요.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에서 가장 차가운 게 뭐에요? 쇠죠. 쇠가 가장 찹니다. 찰 뿐만 아니라 가장 단단합니다. 모든 것이 밀폐됩니다. 그러니까 동양인들이 생각한 폐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동양인들이 생각한 폐라는 것은 가스 익스체인지가 아니라 상초(上焦)에 덮는 하늘의 막이에요. 차가운 하늘의 막이에요. 여기서 물은 도망갈 수가 없어요. 나는 폐가 왜 금(金)인지를 부안 내변산에 있는 월출암에서 깨달았어요. 바로 솥뚜껑입니다. 솥뚜껑.

옛날에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는 데, 아궁이의 불은 뭐에요. 화(火)에요. 그 위에서 끓는 건 수(水)에요. 그래서 그래서 이것을 떠미는 힘은 뭐예요? 기화된 힘이에요. 그런데 그 기화된 힘을 막는 건 뭐에요. 쇠뚜껑이에요. 쇠뚜껑이 막아주기 때문에 거기서 물이 끓고 빙빙 빙빙 도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쇠뚜껑이 인체의 폐입니다. 이 폐야말로 상초의 대표적인 겁니다.

이제마가 말하는 폐라는 것은 상초(上焦) 그 자체를 말하는 겁니다. 이제마의 폐의 개념에는 뇌까지 다 들어가요. 잘 살펴보면 사람의 서있는 것이 쇠뚜껑 모양이에요. 불알에서 불이 지펴져 가지구 타오르면 위에서 딱 막아줘야만 내려갑니다. 폐의 가장 중요한 특징에는 숙강지기(肅降之氣)와 통조백맥(通凋百脈)이라는 말을 써요. 기화된 것을 다시 물로 만들어서 다시 모든 맥에 보내주는 게 폐라 이거야. 그걸 서양에서는 가스 익스체인지라고 하고 우리 동양에서는 폐의 금기운이라 본거여.


즉, 필자는 폐가 크고 간이 작은 금양인에 속하므로 금속을 몸에 붙이고 다니면, 안 그래도 강한(?) 금기운을 가진 폐가 더 강해져버리므로 신체 전반의 밸런스가 무너져버린다는 별 등신같은 논리였던 것이다. 도올 선생 주장처럼 동양의학에서 ‘폐(오행 중 金에 해당)’가 해부학적 실체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개념일 뿐이라면, ‘형이상학적 금(金)’ - 도대체 이런 게 존재하는지부터가 의문이지만 - 에 해당하는 것과 접촉할 때 문제가 되어야지 왜 ‘실체적 금속’이 닿았을 때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이런 식으로 하자면, ‘간(오행 중 木에 해당)’이 쎈 사람은 초목(草木)에도 닿으면 안 될 것이요, ‘비장(오행 중 土에 해당)’이 쎈 사람은 흙을 밟아서는 곤란할 것이다.


도올 선생은 하바드에서 동양철학을, 원광대에서 한의학을 전공했다. 나의 경우 어떤 인간이 하바드를 나왔건, 스탠포드를 나왔건 그런 비본질적인 학위 따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실제 그 사람이 '하는 말'과 '쓰는 글'을 통해 드러나는 통찰력에 오히려 신경을 쓴다. 사람들은 외국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면 무턱대고 쪼는 경향이 있는데, 하바드를 나와도 쪼다는 여전히 쪼다일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고대중국의학에 담긴 몽매주의에 어렴풋이나마 눈을 뜬 것이 아마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신병이란 ‘아토피 피부염’을 가리킨다. 중학교 3학년이던 해 겨울, 전신에 정체 모를 부스럼이 난 적이 있다. 요즘처럼 따뜻한 물을 맘껏 쓸 수 있는 시절은 아니었기에 잘 씻지 못해서 생긴 단순 피부병이려니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동네 약국에서 피부병 연고를 타오셨다. 당시는 의약 분업이 되기 훨씬 전이라 일반 시민들은 약사를 준의사로 받아들였다. 전문의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라든가, 그런 것이 필요없는 일반의약품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던 때다.

10년이나 지나서야 당시 도포하였던 연고가 고강도 스테로이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모든 스테로이드 연고는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전문의 처방 없이는 함부로 팔 수 없다. 효과가 탁월한 만큼 부작용도 크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바를 때만 좋아질 뿐 그치면 이내 상태가 악화되어 그 후로도 상당히 장기간 고생하였다.

역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중에는 무좀약을 준 약사도 있었다. 나는 무좀약을 얼굴에 발라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이 당시 의사나 약사들은 심각히 반성해야 한다. 감기에 걸렸다 싶으면 항생제, 피부 트러블이 있다 싶으면 스테로이드를 막 퍼주었다. 무지몽매한 환자들에게 ‘그 곳만 가면 금새 낫는다’며 입소문이 났던 약국, 의원, 병원들이 따지고 보면 모두 최고강도 스테로이드, 초강력 항생제를 남용하던 곳이다. 특히나 감기의 경우, 항생제는 아무 효능조차 발휘할 수 없는 약물인데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몽매주의가 고대중국의학계에만 만연된 것은 아니다.

※ 항생제가 감기 치료와 전혀 무관하다는 퇴몽글을 링크해 두니 읽어두면 유익할 것이다.

1. 감기에 항생제 처방 99% 무의미하다

2. 아시아 국가 항생제 오남용 심각

와중에 몇몇 한의원에서도 ‘천연 한방 원료’ 운운하면서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연고들을 팔아 치웠는데 지금 와서 이것은 추적조차 안 된다. 한약에는 보험 적용이 안 되었기 때문에 - 요즘은 부분적으로나마 되고 있다 - 근거 자료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꼭 시스템이 미비했던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는 점은 다음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스테로이드 검출 아토피 로션에 피해자 집단 소송>, 2011년 2월 10일, 메디컬투데이

최근 아토피에 효과가 좋다는 일부 화장품에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돼 아토피 로션 판매를 해온 한의원을 상대로 관련 제약사와 피해자들이 고소장을 제출했다.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된 ‘아토하하 크림’과 ‘K1’ 등 아토피 전용 로션을 판매해 온 ‘□□ 한의원’과 관련 판매업체로 밝혀진 ‘○○○’ 등을 적발한 가운데 로션을 사용한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걸었다. 식약청은 적발된 화장품에 대해 회수 및 폐기 조치하고 해당 제품 제조사에 대해 행정처분과 위법사항에 대해 12개월의 업무 정지령을 내렸다. (중략)

지난해 12월부터 논란이 된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아토피 로션은 ‘□□ 한의원’에서 판매해 8~10만원 가량의 가격을 주고 피해자들이 구매를 했다. 임신·육아 전용 커뮤니티인 ‘△△△△ 베이비’카페에는 수십 명의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한 피해자는 “한의원에서 파는 크림을 양약 제조하는 회사에 맡겼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조속히 이런 일이 나오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글 :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3)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①


저자 프로필 :

퇴몽사(退蒙士) 서범석

현재 모 고등학교에서 입학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기여활동으로서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홍보특별보좌관’도 겸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성균관-조지타운 대학교 TESOL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넘게 중증 아토피로 고생하며 여러 대체 의학을 접했지만, 그 허상에 눈을 뜬 후 사이비 의‧과학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몽매주의’를 퇴치하는 번역 및 집필 작업에 뛰어들었다.

저서: Q&A TOEIC Voca, 외국어영역 CSI(기본), 외국어영역 CSI(유형), 외국어영역 CSI(장문독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시리즈 / 서범석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특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 : 왜 '한의학'을 '고대중국의학'이라 불러야 옳은가?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2) : 도올 조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3)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4)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②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5) : 뜸사랑 체험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6) : 세계 보건기구(WHO)의 경혈 위치 표준화 작업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7) : 경락 대뇌피질 기원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8) : 컨디셔닝, 플라시보, 노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9) : 고대중국문명의 플라시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0) : 고대중국의학의 현대적 적응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1) : 고대중국의학의 효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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