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콘텐츠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http://www.i-sbm.org)'이 제공하는 공익콘텐츠입니다. 이번 글은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 한의학을 비판해온 문화비평가이자 과의연 특보인 서범석님의 시리즈 한의학 비판 글인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입니다. 서범석님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필치에 더해 한의학 문제를 바라보는 보다 풍부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귀한 원고를 투고해주신 서범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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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튜더(Tudor) 왕조를 배경으로 한 ‘튜더스(Tudors)’라는 드라마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헨리 8세가 당시(16세기) 잉글랜드 지방을 강타한 돌림병 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덜덜 떨며 손수 피를 뽑는 장면 말이다. 무지하기가 맑은 똥물을 약으로 마셨던 조선 시대 왕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정예 어의를 거느렸다는 왕들까지 이 지경이었으니, 중세 시대 조선과 영국을 살았던 인간들의 전반적인 몽매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몽매주의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참혹했다. 과다 출혈로 인한 체력 고갈 혹은 감염성 질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물론 ‘엄청나게 사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되거나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생존자들이야말로 사혈법이 수천년간 반복될 수 있었던 굳건한 토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집트의 구체성과 대비되는 인도 및 중국의 관념론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보자.
고대 인도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5원소로 본 것은 불, 물, 흙, 공기, 공간이다. 고대 중국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5원소로 본 것은 불, 물, 흙, 나무, 철이다. 인도 및 중국고대의학의 ‘쁘라나(prana)’나 ‘기(氣)’는 각각 ‘나디(nadi)’와 ‘경락(經絡)’이라는 에너지 통로를 통해 인체를 순환한다. 그리고 이 ‘나디’와 ‘경락’이라는 통로 중에서도 특히 많은 에너지가 모인다는 센터가 바로 ‘차크라(chakra)’나 ‘경혈(經穴, 그 중에서도 단전)’인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고대의학도 이 둘만큼 그 컨셉트가 똑같은 것은 없다. 이웃한 두 나라의 고대 의학에서 이렇게나 유사한 원형 개념들이 발견되는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넘기기는 어렵다.
덧붙여, 고대인도의학과 고대중국의학에는 ‘쿤달리니(Kundalini)’와 ‘소주천(小周天)’이라는 특별한 공통 개념도 존재한다. 우선 차크라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최신판을 검색해보면, 차크라는 모두 합쳐 88,000개가 있다는 둥 아니라는 둥 괴이쩍기 짝이 없는 잡설로 채워져있다. 이마저 학파 간 의견일치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여하튼,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7개 정도로 압축되는데, 이 차크라들은 대강 척추 뼈 끝에서부터 척추 뼈를 따라 정수리까지 순서대로 존재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왜 하필 척추에 이것이 존재한다고 착안하였을까? 고대 인도에는 사람이 죽으면 관에 담아서 강물에 7일간 담가두는 힌두교 풍습이 있었다. 7일간 강물에 담근 후 끄집어내면 사체가 흐물흐물해지며 내장 기관은 사라지고 주로 근골격계만 남아있게 되므로 수습이 쉽다. 자연히 뼈, 근육, 인대에 관한 해부학적 지식이 혈관, 신경계, 내장 기관에 대한 지식을 능가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체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며 모든 뼈와 이어진 듯 보이는 척추에 대한 강조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어쨌거나, 척추뼈를 따라 이어져있다는 7개의 차크라는 다음과 같다.
쿤달리니(Kundalini) 명상, 탄트라 요가에서는 제 1차크라인 무라다라 차크라에 ‘쿤달리니’라는 영적 힘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것은 일반적인 ‘쁘라나’하고는 조금 다른 개념인데, 일종의 ‘특별판 쁘라나’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쿤달리니는 흔히 똬리를 튼 뱀으로 묘사된다. 인도에서 유래한 명상, 호흡, 요가 등은 이 힘을 자극하여 제2, 3, 4, 5, 6차크라를 순서대로 지나 최종적으로 제 7차크라인 사하스라라 차크라까지 끌어올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제 7차크라까지 쿤달리니가 도달하여 똬리를 튼 뱀이 허리를 똑바로 펴게 되면, 이른바 ‘물꼬가 터진 것’이다. 이 단계에 도달한 개인은 각성, 해탈, 성통공완하게 되는 것이며, 이렇게 생성된 통로로 우주적 에너지가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다.
이 쿤달리니 명상에 대해서 논할 때 무슨 의천도룡기 장무기가 구양진경 신공을 터득하는 과정을 보는 듯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대중국의학에도 이와 똑같은 컨셉트가 있기 때문이다. 소주천(小周天) 및 대주천(大周天)이 그것이다. 소주천은 정수리에 있다는 백회혈(≒사하스라라 차크라)에서부터 생식기와 항문 사이에 있다는 회음혈(≒무라다라 차크라)까지 몸 앞면 정중앙선의 경락(임맥)으로 기를 내리고 거꾸로 회음혈에서 백회혈까지 몸 뒷면 정중앙선의 경락(독맥)으로 기를 올려서 순환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인체를 옆에서 보았을 경우, 쿤달리니 명상의 척추를 따라 오르내리는 직선적 순환 동선이 소주천에서는 몸 앞뒷면을 따라 도는 곡선적 순환 동선으로 변환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대주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경락을 뚫어서 기를 사통팔달 시켜버리는 것이다. 최소한 구체적 통로나마 제시하고 있는 소주천에 비해서 대주천이 어떤 통로를 통해서 발생한다는 것인지는 모호한데, 아마 고대 중국인의 상상력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혹자는 여기서 '차크라나 경혈은 역시 실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인도와 중국 두 지역의 의자들이 이를 공통적으로 인식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다. 헛소리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왜 이집트, 그리스, 유럽, 아프리카 등 여타 지역 더 많은 수의 고대 의자들은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는 ‘쁘라나’나 ‘기’조차 못 느끼는 산송장들이라서 그랬던 것인가. 인도나 중국 고대인들보다 훨씬 열등한 인식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그런 것인가.
그것보다는 공통 문화유산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인도와 중국처럼 붙어있는 두 지역에서 유독 이렇게나 유사한 인체관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인접 지역에서 비슷한 교리를 가지는 종교들이 발생하는 것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적 아이디어 역시 종교적 아이디어와 마찬가지로 고대 유대인들과 이슬람인들, 이슬람인들과 인도인들,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처럼 지역적으로 인접한 문명 혹은 문명적으로 엮인 지역들끼리 서로 강렬한 정신감염력을 주고받아 성립한 것이다. 따라서, 고대중국의학은 중국 문명이 독자적으로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인도 문명과의 교감을 통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고대 인도인들의 초기적, 원형적 아이디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와 선(경락)은 연장되고 점(경혈)이 찍히면서 회자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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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로필 :
퇴몽사(退蒙士) 서범석
현재 모 고등학교에서 입학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회기여활동으로서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홍보특별보좌관’도 겸임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성균관-조지타운 대학교 TESOL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넘게 중증 아토피로 고생하며 여러 대체 의학을 접했지만, 그 허상에 눈을 뜬 후 사이비 의‧과학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몽매주의’를 퇴치하는 번역 및 집필 작업에 뛰어들었다.
저서: Q&A TOEIC Voca, 외국어영역 CSI(기본), 외국어영역 CSI(유형), 외국어영역 CSI(장문독해)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1) : 왜 '한의학'을 '고대중국의학'이라 불러야 옳은가?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2) : 도올 조우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3)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①
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4) : 고대의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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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국의학 몽매주의 (6) : 세계 보건기구(WHO)의 경혈 위치 표준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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