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던 6.25 전쟁이 휴전한 때로부터 3년 뒤인, 1956년에 만들어진 논문작성법 문헌이 발견됐다. 2000년도 전까지 우리 학계에 인용과 표절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표절자들의 주장을 무색케 하는 자료다.
무려 60여 년전에 발간됐던 논문작성법 문헌의 발행자는 고 서복환 전 이리학원 이사장이다. 그는 1961년 전북 익산시에 소재한 이리학원을 인수한 뒤 이사장을 역임했다. 서 이사장은 당시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했던 일한 도서출판사를 직접 운영하며 1956년에 ‘논문작성법’을 발간했다.
황의원 연구진실성검증센터장은 “이 문헌에 나오는 인용법이라든가 각주 및 출처표기에 관한 내용은 2014년에 나온 논문작성법 자료들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다”며 “게다가 논문작성법을 자침(나침반)에 비유해 학생들의 논문 쓰는 고통을 덜어 주겠다는 편찬자의 의도도 밝혔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실성검증센터에서 밝힌 해당문헌의 서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논문은 연구의 기록이며 과학적인 문서이다. 개인과 집단이 심혈을 경주(기울여 쏟은)한 연구도 연구 그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논문의 형식으로 된 과학적 기록이 이루어짐으로써 이것을 토대로 상호발전의 계단이 되며 후세의 연구재료가 됨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에 있어서 이러한 논문작성의 지침이 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특히 젊은 학도들이 얼마나 고심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가함은 상상 이외의 것이 있는 것이다. 하등의 지침 없이 논문을 쓴다함은 자침(나침반)없이 대해를 항(항해)하는 주인(배주인)과 같은 노릇이라 할 것이다.”
황의원 센터장은 “이 문헌에서는 직접인용과 간접인용에 대해서도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직접인용의 경우 원문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야만 하며 이 때 이중인용부(double quotation marks “”)를 붙여야만 한다고 나와 있다”면서 “간접인용의 경우는 절대로 원문자의 의도를 왜곡해서는 안 되며, 이 때 인용부호는 쓰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각 대학들 1970~80년대 출판한 논문작성법 내용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연구진실성검증센터에서 밝힌 해당문헌의 직접인용과 간접인용 부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직접인용
인용이 짧은 때에는 이중인용부(double quotation marks “”)를 붙여서 본문 중에 삽입하게 되는데, 국문에서는 흔히「 」와 같은 부호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인용문의 (글)자체(인쇄의 경우)를 상이하게 한다든가 또는 선을 그어가지고 명료하게 인용문임을 표시할 수 있을 때에는 이와 같은 인용부를 생략할 수가 있다.
인용문이 길어 4~5행 이상에 미칠 때에는 다른 절(paragraph)로 하는 것이 좋다. 이런 때에는 약간 작은 활자(인쇄의 경우)를 사용하되 행간을 좁히는 것이다. 인용문중의 인용어 또는 인용문은 단인용부(‘’)를 붙여서 구별한다.
직접인용은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글)자체를 변경하거나 원문에 없었던 선을 그었을 경우에는 명백히 인용자가 하였다는 것을 밝혀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인용자가 삽입한 문구는 각괄호로 표시하고, 문구를 생략한 곳은 4개의 점(....) 으로 표시한다. 이 부호는 생략이 인용문의 앞(1개 항목의 문장 중에서) ‘中’ 뒤의 어느 곳에서 행하여졌거나 마찬가지이다. 또 그 중의 1개의 절 혹은 여러 개의 절을 생략했을 때는 1행만 앞서 표기한 점으로 메꾼다. 즉 이같이, 이 행의 앞과 뒤에다 인용문을 쓴다.
또 타인의 논문 중에서 자기설(자신의 주장 부분)에 하여금 사용한 어떤 문구만을 빼내서 이것을 논평한다든가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앞뒤를 잘라버린 인용문은 인용 당한 저자의 꿈에도 생각지 않던 표현이 되고 마는 수가 흔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그와 같은 불합리가 허용된다면 해가 서쪽에서 뜰 것이다」라는 문장 중에서 일부를 빼버리고 「그는 태양이 서쪽에서 뜬다고 주장하고 있다」와 같은 것이다.
간접인용
이것은 타인의 업적의 내용을 인용 소개하는 것으로, 인용부호는 쓰지 않는다. 이 경우에도 원저자의 주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허지만 때로는 부주의로 말미암아 원문의 뜻이 다소 변경되는 수도 적지 않다. 특히 악질의 것은 고의로 쓸 데 없는 문자를 부가한다든가 필요 있는 문자를 삭제하거나 해서 심하게 원문을 왜곡해서, 그것을 자기설(자신의 주장 부분)의 원호(구원하여 보호)에 이용하거나, 또는 이 뜯어 고친 문장을 원저자의 진의인 것처럼 꾸며대고, 그것에 대해서 공격의 화살을 던지는 자가 있다. 이와 같은 짓은 법률적으로 제재하는 길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과학자의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악덕행위이며 이것은 학술상의 범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의원 센터장은 “이처럼 휴전 직후인 1956년도 논문작성법 내용뿐만이 아니라, 연세대, 서강대, 고려대, 경북대, 단국대, 성신여대, 이화여대, 수원대 등에서 1970~80년대에 출판한 논문작성법 내용도 역시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과거에는 규정이 미비했다’ 혹은 ‘과거에는 표절에 대한 인식 자체를 못했다’와 같은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라고 단언했다.
황 센터장은 이어 “과거에도 논문 표절 관련 지침이나 교육은 현재와 별반 다를 것이 없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논문 표절에 대한 징계 수위가 근래 들어 더 높아졌다는 것 뿐”이라면서 “논문 표절이 문제가 됐을 경우 과거 상황을 들먹이며 논문 표절 사실 자체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일단 인정하고 문제 자체를 공론화해야 후학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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