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도부터 1997년도까지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국내 주요 신문들이 학계 논문 표절에 대해 다룬 보도들이 새삼 조명돼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월 2일, 연구진실성검증센터(센터장 황의원)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논문 표절”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수집한 과거 신문 기사들 20여 건을 수컷닷컴 ‘연구진실성검증센터’ 게시판에 공개했다.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이번 기사 자료 공개를 통해 논문 표절 문제는 언론계가 오래전부터 학계에 대해서 시비를 해온 문제라는 점을 제대로 알리는 것은 물론, 또한 과거엔 논문 표절에 대한 개념과 기준이 없었다는 일각의 주장이 완전 허위라는 점도 널리 알리고 싶다”고 입장을 밝혔다.
논문 표절 문제는 우리 언론이 1960년대부터 시비해왔던 문제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공개한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자료에 따르면, 논문 표절 문제가 우리 신문들에서 최초로 고발이 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964년 4월 13일이었다.
당시 ‘경향신문’은 ‘이렇게 닮을 수가 있나 학술지에 실린 복사 논문’이라는 제목으로 숙명여대 장모 교수의 '한국향토오락 역사적고찰'이라는 논문이 국민대 최상수 교수의 '한국의 세시풍속'이라는 책을 상당 부분 표절해 작성된 것임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경향신문’은 “최교수의 책과 숙대논문집 속의 장교수 논문을 비교해 보면 신통하게 내용과 문장이 똑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어쩌다가 단어가 바꿔지는 혹은 생략하는 정도”라면서, “인용되는 고전기록과 민요들이 영락없이 똑같다. 문장속의 한자 등장도 거의 판에 박은 듯이 같다”고 표절 양상을 자세히 서술하기도 했다.
또한 ‘경향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피표절자인 국민대 최상수 교수가 표절자인 장모 교수에 대한 고소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입장과 표절자인 숙명여대 장교수의 관련 공개 사과의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동시에 싣기도 했다.
피표절자가 신문을 통해 직접 표절자를 고발하기도
한편, 1966년 6월 2일에는 중앙대학교 국사학과 김용덕 교수가 어느 '한국여성사' 관계 논문의 40% 가량이 자신의 논문 내용으로 표절이 되어 채워진 사실을 발견해 이를 ‘동아일보’ 지면을 빌려 공개 고발하기도 했었다.
당시 김 교수는 ‘논문 ‘인용’의 한계’라는 컬럼을 통해 “(표절자에게 직접 시비를 하니) 다른 여러 문헌을 참조/종합한 것이므로 결코 표절이 아니라고 답하였다”면서, “'차제에 사사로운 충을 넘어 학문적 도의'를 위한 하나의 경종으로 (이번 표절 문제를) 공개하려고 결심하였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 학문하는 사람은 표절에 유사한 일은 물론 남의 논문의 논지를 요약/서술하는 경우에나 관련되는 '테마'를 취급할 때에는 반드시 참고한 논문을 밝혀 남의 학문상의 '오리지날리티'를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면서 “이것은 학문 이전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의일 것”이라고 표절을 강력히 성토했다.
김용덕 교수는 글 말미에 선학의 연구성과에 대해 인용을 제대로 하지않는 문화, 또 표절과 같은 문제점이 드러나도 그것을 허심탄회하게 인정치 못하는 세태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표절 국내 문헌조차 사실은 일본 문헌을 표절했던 사례
‘경향신문’ 1977년 12월 15일자 ‘표절 논문 시비, 국회까지’라는 기사와 1978년 1월 10일자 기사 ‘자주문화의 재정립 (5)모자이크 논문-표절 학문’라는 기사는 국회에까지 비화된 K 교수 논문 표절 시비 문제를 다뤘다.
당시 C 대학 K 교수는 자기 논문의 특정 장을 서술하면서 서울대 김학준 교수의 논문의 특정 장을 각주까지 통으로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렸다. K 교수의 표절 문제는 학생들이 고발하고 나섰고, 이 때문에 학교가 학생들을 제적하고 해당 교수에 대해선 면직조치를 취하게 되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K 교수 표절 사건을 다루면서, 그보다 2, 3년전에 있었던, 사실은 표절을 당한 문헌조차 원래는 일본 문헌을 표절을 했던 문헌으로 드러난 이중 표절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표절 사건이 발생한건, 외국 이론의 수입에만 급급한 당대 우리 학계 상황의 비극이라는 것이 ‘경향신문’의 설명이다.
'경향신문'은 고려대 최재석 교수와 서울대 최창규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아직도 일본의 학술 술어까지 그대로 베끼는 것은 큰 문제"라며 "우리나라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자주를 회복했으나 정신적인 자주는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자주적인 창조 능력을 갖출 때, 완전한 독립이 가능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도 성토했었던 논문 표절 문제
1991년 9월 3일자 ‘한겨레’에는 "헌법재판관이 논문 표절"이라는 제목의, 논문 표절 관련 이색적인 기사가 하나 실리기도 했다. 한병채 헌법재판관이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부터 논문 표절 시비를 당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당시 중앙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이상돈 전 위원은, 한병채 재판관이 자신의 1976년도 서울대 법대 석사논문 '미국의 대법원과 사법 적극주의'를 34군데 이상 표절하고 각주까지 여러 군데 훔쳐갔다면서 한 재판관을 상대로 한 저작권분쟁조정신청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제출해 큰 이목을 끌었다.
‘한겨레’는 “(한병채 재판관의 논문에는) 이씨의 석사논문을 한 두쪽씩 거의 그대로 옮겨 쓴 곳이 여러군데 눈에 뜨인다”, 또 “학술논문이 다른 자료를 인용할 때는 각주를 붙여 문헌명을 밝히는 것이 관례인데 한씨의 논문에는 물론 이씨의 이름이 한 군데도 언급돼 있지 않다”면서 이상돈 전 위원의 논문 표절 시비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당시에 이상돈 전 위원은 "나 개인의 피해를 보상받고 싶은 것은 다음 문제다. 우리 사회의 지도적 인사, 특히 국민이 헌법적 권리를 의탁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윤리문제를 심판대에 올리고 싶다"면서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를 넘어 법정에도 이 문제를 가져갈 뜻을 '한겨레'를 통해 밝히기도 했었다.
(* 이후 이상돈 전 위원은 2013년도에 'MBN'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논문 표절 스캔들이 결국 한병채 재판관 측에서 공식 사과하고 배상을 한 것으로 마무리됐었다며 관련 비화를 전했다.)
표절에 관대한 학계의 문제, 서울대 법대 장승화 교수의 사례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공개한 ‘네이버 뉴스라이브리’의 1997년도 이전 기사들 중에서는, 표절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엄중히 처리하지 않는 우리 대학의 백태를 다룬 것도 있다.
‘한겨레’의 1996년 11월 24일자 기사인 ‘장승화 교수 '논문표절' 기사 관련 한겨레21 소송’, 같은 해 11월 25일자 기사 ‘다툼 핵심 '표절' 여부판단 유보’, ‘같은 12월 4일자 기사, ‘'표절교수' 의혹 진상조사 촉구’ 기사는, 서울대 법대 장승화 교수의 하바드 로스쿨 논문 표절 문제를 다뤘었다.
장승화 교수의 논문 표절 문제는 ‘한겨레’는 물론, 'SBS' 방송사와도 소송전으로 비화되었을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학문적 스캔들이다. 당시 서울대 법대 양승규 교수는 회고록을 남기며 장승화 교수에 대한 서울대 법대의 연구부정행위 조사가 합당하게 이뤄지지 않았음을 폭로하기도 했었다.
‘한겨레’는 국민회의 설훈 의원의 입을 빌려서도 장승화 교수를 비판했다. 당시 설훈 의원은 뇌물 의혹까지 제기하며 "장 교수 외에도 서울대 법대에 표절의혹이 있는 교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대 법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논문표절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본지 확인에 따르면 장승화 교수는 로스쿨 체제로 전환된 현재까지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장 교수는 2012년에 WTO상소기구 위원으로 선출돼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에서 연이어 터졌던 표절 사례
한편, ‘동아일보’는 1997년 10월 28일자 ‘'빈머리' 채우는 '비양심' 표절’이라는 기사를 통해 서울대 법대 C교수가 ‘법철학’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같은 법대 S교수의 논문을 수십여 페이지 베꼈으면서도 일부에만 출처표시를 한 ‘비양심’ 표절 사례를 지적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C교수는 표절 문제가 불거지자 책을 회수하고 학교에 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시 C교수의 휴직사유에 표절행위가 명시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서울대 측도 공식적으론 징계형식의 휴직이 아님을 밝혔었다는 것이 ‘동아일보’의 보도다.
서울대 법대 C교수는 이미 94년에도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서 '법학사'라는 일본 문헌과 관련해 표절 시비에 휘말린 점에 대해서 공개 반성을 하기도 했었던 전력이 있었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표절 문제에 연루된 C교수의 휴직 문제는 ‘한겨레’ 역시 1997년 7월 28일자 기사 ‘'표절' 법대교수 휴직 권고 서울대’를 통해 거듭 조명되기도 했다. ‘한겨레’는 해당 기사에서 C 교수를 최모 교수로 특정했다.
(* 위 사건의 표절자 C교수는 후일 ‘주간동아’ 등에 의해 서울대 법대 최종고 교수(법사상사 전공)로 확인됐다. 피표절자인 S교수는 법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심헌섭 교수다. 최종고 교수는 서울대에서 ‘법과 윤리’ 등을 강의하기도 했던 학자로, 표절 관련 사건으로 휴직 후 서울대 법대에 복귀한 뒤 2013년까지 교편을 잡은 후 정년퇴임했다.)
"표절, 인간성을 의심케 하는 부정직한 행위"
‘동아일보’, 1997년 10월 28일자 ‘표절, 외국대학의 경우 금단의 열매’라는 기사는 미국 시라큐스대 규정집을 인용해 표절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타인의 생각이나 의견, 계획, 구상을 가져다 쓰거나 타인의 과제물을 제 것인 양 제출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실수이든 막론하고 표절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각주, 참고문헌, 인용표시를 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이 쓴 구절이나 생각은 말을 바꾸어 사용했다 하더라도 출처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다”‘동아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근대적 형태의 대학 역사가 긴 외국에서는 표절을 '학문 세계의 중범죄', '인간성을 의심케 하는 부정직한 행위'로 본다”면서 “(외국에서) 학생들에게는 학문적 신사도를 지키도록 하면서 스스로 원칙을 어기는 선생이란 흔치 않다. 학생이나 교수사회의 표절은 상식 이하의 행위로 배척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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